소설리스트

무련전봉-574화 (573/853)

제 574장. 신근전

동소죽은 소안과 하응상을 번갈아 보며 매우 흡족해했다.

‘한 명은 고상하며 우아하고, 다른 한 명은 얌전하고 귀엽군. 우리 아들 참 잘났어.’

양응봉은 무척이나 부러웠으나 뚱한 얼굴로 꾸지람했다.

“준아, 두 아가씨를 서럽게 하면 안 된다. 얼른 날짜를 잡아 식을 올리거라.”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왜 그리 급하세요. 저 아직 젊습니다.”

“넌 젊지만, 우리는 늙었단 말이다.”

양응봉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를 보세요. 소안과 사저랑 같이 앉아 있으니 꼭 자매 같잖아요.”

양준이 빙그레 웃으며 여인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정말이니?”

동소죽은 양준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었다.

“물론이죠.”

양준이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앞으로 우리 셋은 자매로 지내자꾸나.”

동소죽은 흥분한 나머지, 열정적으로 소안과 하응상을 끌어당겼다. 소안과 하응상은 아연실색해서 동소죽을 바라보았다. 양응봉과 양준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 어머님이 자주 이러신다. 상관하지 말거라.”

양응봉이 서둘러 해명했다.

“아버지, 오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양준도 소안과 하응상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얼른 화제를 돌렸다.

“백부께서 너를 데려오라고 하더구나.”

“양씨 가문에요?”

“그래.”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쯤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어.”

“알겠어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님께서 무슨 일인지는 얘기하지 않으셨나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셨어. 다만 아주 중요한 일인만큼 너더러 직접 양씨 가문에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가죠.”

양준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여기 일을 정리하고 올게요.”

안쪽에 들어가서 그는 양씨 가문에 다녀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다. 추억몽과 곽성진은 각각 가문에 돌아가 가주 자리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잠시 능태허와 몽무애에게 관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주인,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탓하지 말게. 양씨 가문에서 이처럼 급히 주인을 부르는 게 혹 음모를 꾸미려는 건 아니겠지?”

지마가 경계심을 높이며 물었다.

“아닐 거야. 이미 손잡기로 약속했는데 나를 견제할 필요가 없지.”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찌 알겠나.”

지마가 음산하게 웃었다.

“8대 세가는 항상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습관되어 있을 것이네. 지금은 억울한 대로 남의 휘하에 있지만 아마 불만이 가득 할 걸세. 주인이 변고가 생기면 관저의 힘은 곧 무너져 내릴 것이고, 때가 되면 8대 세가에서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지.”

“끝까지 경계해야 한다.”

몽무애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나온다면 너무나 근시안적인 거죠. 그럼 저도 할 말이 없네요.”

양준이 냉소했다.

아직 창운사지가 중도에 똬리를 틀고 있어, 중도의 위험이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부 싸움을 하고, 자신의 손에서 이익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면 8대 세가는 이 세상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주인과 같이 갈 걸세.”

지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준은 지마를 힐끗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러든가.”

그는 8대 세가가 이번에는 그렇게 멍청하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주 자리를 젊은 세대들에게 넘겨준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한 행동이었다. 큰 위험이 들이닥치기 전에 그들은 드디어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준은 8대 세가가 아직은 구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양준이 이번 싸움에 참여한 것은 죽은 신유 경지 고수들의 신식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잠잠한 상태라 반드시 계기를 만들어 싸움에 불을 붙여야 했다. 그리고 8대 세가와 그의 관저가 힘을 합치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기회였다.

*중도 양씨 가문.

8대 세가에서 첫자리를 차지한 양씨 가문은 중도의 남쪽에 있었다. 이번에 창운사지의 침입에도 양씨 가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양준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양씨 가문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를 대하는 양씨 가문 사람들의 태도였다.

마치 양준이 오늘 올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가문의 시위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엄숙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씨 관저에 들어서자마자 양준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맨 앞에 선 이는 셋째 양철이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양철이 높은 소리로 외치자,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예를 올렸다.

양준은 당황하며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형님,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백부님께서 우리더러 이곳에서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양철도 똑같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양씨 가문의 가주가 되셨으니 걸맞은 대접을 해야지요.”

“그저 가주 대리일 뿐입니다…….”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같습니다.”

양철은 몸을 일으키더니 미소를 지으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시지요, 장로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앞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의 뒤로 양응봉 부부와 지마가 바싹 뒤따랐다. 양응봉 부부의 얼굴에는 기쁨과 뿌듯함으로 넘쳤다. 아들이 가주가 되자, 부모로서 당연히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마는 시시각각 주변의 상황을 경계했다. 그는 노마두라 의심이 많았다. 양씨 가문에서 급하게 양준을 불러들인 것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양철의 안내를 받으며 양준 일행은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 앞쪽에 사람들이 조용히 두 줄로 서 있었다. 적어도 마흔 명은 되어 보였다. 이들은 모두 양씨 가문의 장로들이었다. 양진과 전에 양준이 본 장로들도 그중에 있었다. 양준을 비웃었던 장로들은 지금 다시 그를 보게 되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양준이 트집을 잡을까 봐 은근히 걱정되었다. 하지만 양준은 그들을 보고도 못 본 척 스쳐 지나갔다.

이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응호는 뒷짐을 지고 대전 앞에 서서 위엄 넘치는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예를 올렸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불편한 마음을 외면했다. 그는 두 줄로 늘어선 장로들 사이에서 엄숙한 얼굴로 걸어갔다. 양응호의 앞에 다가가서야 그는 공수하며 말했다.

“백부님!”

“가주님!”

양응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으로 들 거라.”

말을 마친 그는 양준에게 대전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그의 옆에 있던 양씨 가문의 태상장로 세 명은 앞으로 나서더니 지마와 양응봉 부부를 막아섰다.

“허, 이게 무슨 뜻이지?”

지마는 낄낄 웃으며 물었다. 그에게서 위험한 기운이 풍겼다.

“대협, 양해해 주십시오. 이곳은 양씨 가문의 중요한 곳이라 역대 가주 말고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협께서는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초범 경지의 태상장로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되지. 난 주인 곁을 따라야 해.”

지마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양준의 안전을 보호하려고 따라온 것인데 어찌 양준과 떨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지마, 거기에 잠깐 있어.”

양준이 고개를 돌려 나지막하게 말했다.

“주인……!”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주인 조심하게.”

지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당부했다.

양응호가 실소하며 물었다.

“대협께서는 우리가 가주님께 나쁜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사람을 어찌 겉만 보고 알겠습니까?”

지마가 냉소하며 말했다.

“지마, 예의 없게 굴지 마.”

양준이 차갑게 호통쳤다.

“네.”

지마가 얼른 대답했다.

세 명의 태상장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찬사의 눈빛으로 지마를 바라보았다.

“대협의 가주님에 대한 충성심은 우리들도 다 지켜보았습니다. 대협,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들은 모두 지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름을 몰랐다.

지마는 여유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난 지마라고 해.”

태상장로들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럼 지 대협께서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빠르면 두세 시진 안에 나올 것이고, 늦으면 사나흘 걸려야 나올 것입니다. 여봐라, 차를 내와라!”

바로 누군가 차를 가져와 지마에게 올렸다.

양준은 양응호와 함께 대전 안을 걸었다. 한참 뒤, 대전 앞에 도착한 양준은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근전(神根殿)?”

“그래, 신근전이다.”

양응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우리 양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전당이자 토대지. 역대 가주들 말고 이곳에 발을 들일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 양씨 가문의 태상장로들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전당의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있고, 이곳이 양씨 가문의 중요한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진귀함으로 치면 신근전은 화룡지보다도 높은 등급에 있었다. 신근전은 줄곧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백부님, 저는 그저 임시 가주일 뿐입니다. 그리고 양씨 가문을 관리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 8대 세가가 제 관저와 손을 잡고 창운사지를 몰아내기 위해 내건 명분일 뿐인데 이렇게 들어가도 됩니까?”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임시 가주도… 가주지.”

양응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거라.”

말을 마친 그는 신근전의 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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