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75화 (574/853)

제 575장. 양씨 가문의 선조

끼익-

대문이 열리자, 양준은 정신을 집중해 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예상한 대로 대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맨 앞쪽의 향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응호를 따라 대전으로 들어간 양준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다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대전의 네 모퉁이에는 위엄이 넘치는 살아 있는 듯한 석상이 우뚝 서 있었다. 청룡(青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네 석상은 서로 간에 희미한 연계가 있었다.

양응호는 양준을 대전의 정중앙으로 데리고 가서 손톱으로 자신의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를 냈다. 그가 손을 내젓자 피 네 방울이 뿜어져 나가며 정확하게 네 개의 석상의 입에 들어갔다.

그러자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석상에서 진법이 나타나더니 신기한 힘이 석상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신속하게 공중에 모였다. 곧이어 허공에 새하얀 빛이 나타났고, 석상의 기운을 주입함에 따라 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커졌다.

“곧 양씨 가문의 역대 가주들이 받았던 대우를 보게 될 것이다. 이건 양씨 가문의 최고 기밀이지. 양씨 가문의 모든 가주들이 어떻게 다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몸소 체험하는 게 더 나을 거다. 이것이 바로 양씨 가문의 가주가 얻게 될 이득이다.”

양응호는 공중의 빛무리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백부님!”

양준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말했다.

“이래도 됩니까?”

“안 될 것이 뭐가 있느냐?”

양응호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제가 이득을 다 가지면 나중에 큰형님이나 둘째 형님이 이곳에 왔을 때, 가져갈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양준은 조금 걱정되었다. 이득을 가지면 책임을 져야 하는 법. 하지만 그는 평생 양씨 가문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

양응호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욕심이 많구나. 다 가질 생각이었느냐? 정말 그럴 능력이 된다면 걱정하지 말고 가질 수 있는 만큼 가져가거라. 하지만 다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너무 많은 걸 물어보지 말고 이만 들어가거라. 그러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양준은 점점 더 의아해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위험이 있을 것이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면 바로 나오거라.”

“알겠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공중에서 번쩍이던 빛무리가 잦아들고 석상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도 잠잠해졌다.

다시 공중을 올려다본 양준은 눈앞이 밝아졌다. 그리고 왠지 눈앞의 모든 것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잠깐 생각에 잠긴 그는 드디어 뭔가가 떠올랐다. 지금 공중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광구는 예전에 봉신전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봉신전에서 8대 세가의 초범 경지 태상장로들은 신식의 기운을 한데 모아 그들만 들어가 교류할 수 있는 의식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의식의 공간에서 그들은 무공을 겨룰 수도 있고, 천도와 무도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그들이 전력으로 무공을 사용해도 주변 건물이나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지금 신근전에 있는 거대한 광구도 봉신전의 것과 거의 비슷했다.

양준은 이중에 담긴 비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들어가도 된다. 신식을 펼치거라.”

양응호의 말을 들은 양준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신식을 펼친 뒤, 광구 속으로 뛰어들었다. 양응호는 그를 보고서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그도 광구 속에서 큰 이득을 얻었다. 그 안에서 나온 뒤 수련 경지가 신속하게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침체기 없이 신유 경지 이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양씨 가문에서 양준의 자질은 단연 최고였다. 양응호도 양준이 얼마나 큰 깨달음을 얻을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양씨 가문 사람들의 값진 경험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광구 속에서 양준의 신혼 영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무심결에 봉신전 태상장로들의 의식 공간에 들어갔던 것처럼 안쪽 세상은 현실과 다른 허구의 세계였다.

산들산들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았으며 곳곳에서 새가 지저귀고 향긋한 꽃 내음이 풍겼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빛을 내뿜는 흰 점들이 그를 둘러싸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양준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흰 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때, 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흰 점을 노려보며 경계를 드러냈다.

곧이어 웃음소리와 함께 흰 점은 주변에 흩어지더니 원 모양으로 양준을 겹겹이 둘러쌌다. 이내 흰 점들이 꿈틀거리며 뚜렷한 신혼 영체로 변했다. 신혼 영체들은 모두 매우 강했는데 하나같이 초범 경지 수준인 백발 남녀였다.

백발 고수의 신혼 영체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양준을 살펴보며 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흥미가 동한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음울한 얼굴이었으며 누군가는 낄낄 웃으며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

“얼마나 되었더라?”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 양응호라는 녀석이 들어온 뒤로 거의 이십 년이 되어 가지?”

“자그마치 이십 년이지!”

누군가 대답했다.

“이십 년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구먼.”

“이십 년밖에 안 되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또 들어온 거지? 양응호가 죽었나? 아니지, 죽었다면 신혼 영체가 이곳에 들어왔을 텐데. 밖에서 죽었나?”

“흠흠, 내가 그 녀석이 가주가 될 재목은 아니라고 했잖아. 역시 그렇게 되었군.”

“이 녀석도 안 돼. 너무 어리잖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떻게 들어온 거지?”

“휴, 보아 하니 양씨 가문은 점점 망해가는 모양이군. 이렇게 어린 녀석이 가주가 될 정도라니. 이게 무슨 꼴인가?”

“애송이, 너 우리 양씨 가문의 자제가 맞느냐? 사실대로 고하거라. 거짓을 고한다면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호통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백발의 신혼 영체들은 각자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오랫동안 사람과 교류하지 못한 그들은 산 사람의 신혼 영체가 들어오자 신나서 떠들어 댔다.

양준은 말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를 굴렸다. 어찌 된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어라? 말을 안 한다 이거지? 벙어리라도 된 것이냐?”

“양씨 가문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그냥 삼켜 버리자고! 흐흐.”

“양씨 가문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들어올 수가 없어. 네 석상은 반드시 양씨 가문의 핏줄만 열 수 있다고.”

“전혀 놀라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녀석 꽤나 마음이 단단하군. 예전에 양응호가 들어왔을 땐 우리 때문에 깜짝 놀랐잖아.”

“쳇, 양응호 그놈은 싹수가 노랬어. 지금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 게 뭐야.”

“입 다물어!”

호통소리가 전해지자 신혼 영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양준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백발의 노파가 지팡이를 쥔 채, 멀지 않은 곳에서 섬뜩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는 젊었을 때 꽤나 미인인 데다가 기가 셌던 모양이었다. 신혼 영체들 중에서도 항렬이 높은 편인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호통소리에 다른 이들이 모두 조용해질 리 없었다.

몸을 돌린 양준은 그녀를 마주하며 공수 인사했다.

“양씨 가문의 직계 제자 아홉째 양준이 양씨 가문의 선조님을 뵙습니다!”

노파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양씨 가문의 선조라는 것을 아느냐?”

“짐작했을 뿐입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는 찬사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단하군. 눈치가 빨라. 양응호보다는 낫군. 그가 들어왔을 땐 내가 한참 설명해 줬어야 했지. 양응호는 지금 어떠냐? 이미 죽은 게냐?”

“백부님은 건재하십니다. 그분께서 이곳을 열어 주셔서 제가 들어온 겁니다.”

양준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음.”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아느냐?”

“백부님은 양씨 가문의 최고 기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양준은 씩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엔 이곳은 양씨 가문 선조들이 죽은 후에 남은 신식들이 모여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눈에 이채를 띠고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것까지도 눈치챈 것이냐?”

“세상에, 양응호 그놈이 알려준 게 분명해. 사람을 데리고 와도 되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거늘. 겨우 산 사람과 대화 좀 하나 싶었는데 그놈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생겼군. 그놈을 단단히 혼내 줘야겠어!”

“셋째 어르신, 화 푸십시오!”

“그러게요, 시체가 이미 가루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화를 내서 무엇하겠소?”

그들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는지 양준을 보자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로 끊임없이 말을 했다.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곧이어 노파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맞다, 네가 말한 것처럼 이곳은 양씨 가문의 선조가 죽은 뒤, 신식이 모이는 곳이야. 이곳의 신혼 영체는 모두 양씨 가문의 태상장로지!”

노파는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양씨 가문의 제2대 태상장로 양의(楊儀)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양씨 가문의 제2대라면 얼마나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양씨 가문의 신유 경지 이상 고수는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느끼면 신근전으로 와서 신식을 네 석상에 주입하는 것으로 일생의 경험을 보존한단다. 그렇게 보존한 경험을 후손들이 흡수하게 하는 거지. 그걸 수많은 세월 동안 반복하면서 오늘의 규모를 이룩한 것이란다.”

양준은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략 세어 보니 이곳에 적어도 사오십 명의 초범 경지 고수의 신혼 영체가 모여 있었다.

‘이토록 방대한 수에, 방대한 자원이라니. 만약 전부 흡수한다면 엄청나겠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