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6장. 모두 정화되다
“양씨 가문에서도 오로지 가주만 이곳에 들어와 우리의 신혼 영체에서 이득을 가져갈 수 있지. 우리들의 경험이 있다면 신유 경지 이상에 오르기 전까지 침체기가 오지 않을 수 있단다. 알겠느냐?”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초범 경지의 오르기 전에 침체기에 부딪힐 걱정은 없었고, 개인 실력이 따라준다면 아무 걱정 없이 지속적으로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양의가 또 말을 이었다.
“양응호가 널 이곳에 데려온 걸 보니 네가 새 가주라는 말이구나. 우리는 이미 죽어서 양씨 가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물어는 보아야겠구나. 어찌하여 너처럼 젊은 애가 가주의 책임을 짊어졌느냐? 넌 무슨 자격을 가지고 있느냐?”
“제가 무슨 자격이 있냐고 물으셨습니까?”
양준은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저는 신유 경지 5단계입니다. 휘하에는 초범 경지의 고수들이 스물일곱 명이나 있지요. 이 정도 자격이면 충분합니까?”
“너의 경지는 느낄 수 있다. 네 신식의 힘은 나도 놀랄 정도로 강하구나. 하지만 네가 말한 초범 경지란… 무슨 뜻이냐?”
양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그는 초범 경지라는 이름은 관저의 절정 고수들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양씨 가문의 선조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초범 경지가 바로…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신유 경지 이상입니다.”
양준이 설명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 경지에 대해 이렇게 부르는구먼.”
양의는 부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신유 경지 이상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알 뿐이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 스물일곱 명이라고?”
누군가 깜짝 놀라더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웃었다.
“녀석, 거짓말을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단다.”
다른 사람들도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죽은 사람에게 거짓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제야 그가 한 말이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휘하에 신유 경지 이상의 고수를 스물일곱 명 두고 있다는 말이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숫자는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한테서 이득을 가져가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양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양씨 가문은 2대때부터 심혈을 기울여서 네 개의 석상을 만들었지. 원래는 후손들에게 경험을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도 오래도록 그렇게 해 왔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마다 큰 이득을 가졌으니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어.”
그녀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난 이미 내 신혼 영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기나긴 시간을 적막하고 텅 빈 공간 속에 있다 보면 누구라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거야. 우리들의 의지와 초심도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변하게 되었다.”
“무슨 뜻인가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갑자기 그를 둘러싸고 있는 신혼 영체들의 기운이 달라졌다. 하나같이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맛있는 먹이를 침 흘리며 보고 있는 맹수 같았다.
“양응호가 네게 말해 주었겠지, 이곳에 위험이 있을 거라고. 그 위험이 바로 우리들이다!”
양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금 이곳을 벗어나는 거야. 너는 우리를 싣고 나갈 가장 완벽한 육체가 되겠지!”
“제 몸을 빼앗으려고요?”
양준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곳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우리의 신혼 영체에 스스로 생긴 본능이야. 우리도 애써 억누르고 있지만 너도 조심해야 해.”
양의는 높은 목소리로 일깨워 주었다.
“네가 이곳에 들어왔으니 우리에게서 경험을 가지고 무사히 빠져나가거나 네 신혼 영체가 우리들 중 한 명에게 먹혀 육체를 빼앗기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양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의의 말대로 양씨 가문 선조들의 신혼 영체가 모두 기대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그의 신식을 삼키고 싶으나 애써 충동을 억누르며 자신의 욕망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런 증상에도 정도가 각자 달라 오래 갇혀 있었던 사람일수록 욕망이 더욱 강렬했다.
“기나긴 세월을 지내오면서 우리들 중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리고 잔혹한 기운만 남은 영체들도 있었단다. 그런 영체들은 우리가 합심하여 없애 버렸다. 허나 우리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건 참 슬픈 일이네요.”
양준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담긴 뜻을 알아본 이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거나 초조하고 불안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을 동정하는 사람은 양준이 처음이었다.
일그러졌던 양의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한참 뒤 입을 열었다.
“슬프고 말고는 우리가 스스로 한 선택이니 네가 평가할 필요는 없다. 너도 앞으로 타지에서 사고로 죽지 않는 한, 신혼 영체가 이곳으로 들어와 수련의 경험과 깨달음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다.”
“저는 안 그럴 겁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르신들의 슬픈 운명 또한 제가 매듭지을 겁니다.”
대략 사오십 명 정도 되는 양씨 가문 선조들의 신혼 영체는 놀란 얼굴로 말없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누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큰소리치기는!”
양의도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말은 우리들을 전부 삼켜 버리겠다는 것이냐?”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하하!!”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주 웃긴 얘기를 들은 것처럼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양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정말 그럴 능력이 있다면 우리들도 기꺼이 너에게 먹히겠다. 그것은 우리 신혼 영체들이 이곳에 들어온 가장 큰 소망이니 말이다. 하지만 너는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르신들, 지켜봐 주십시오!”
양준은 씨익 웃으며 억눌렀던 신식의 욕망을 풀어 놓았다.
이곳에 들어선 뒤부터 그의 신혼 영체는 강한 흡인력이 생겼다. 이는 식해 안의 금인독안이 만들어 낸 흡인력이었다. 이곳의 비밀을 파헤치기 전까지 그는 줄곧 흡인력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흡인력의 억제가 풀렸다. 방대한 흡인력이 공간 전체에 휘몰아치자 선조들의 신혼 영체는 하나같이 표정이 변했다. 그들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양준의 식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바다는 티없이 맑았다. 그리고 오색 찬연한 섬 하나가 조용히 수면 위에 떠 있었다. 상황이 급격히 변하자 신혼 영체들은 당황하여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양준의 신혼 영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뒷짐을 진 채, 주인처럼 그들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여기가 네 식해인 것이냐?”
양의가 놀라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이 바로 저의 식해입니다.”
“어떻게 한 것이냐?”
양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수단으로 모든 신혼 영체들을 자신의 식해로 끌어들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가 한 게 아니라 저것이 한 것입니다.”
양준은 오색 섬 위에 떠 있는 금인독안을 가리켰다.
양의와 다른 영체들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물체를 본 그들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천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무엇이냐?”
양의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그녀는 많은 느낌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공포심을 다시 한번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신혼 영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발을 벌벌 떨며 일그러진 얼굴로 금인독안을 노려보았다.
“저도 저것이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것은 어르신들을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양의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어르신들이 죽기 전에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신혼 영체를 석상 안에 주입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허나 기나긴 세월 동안 어르신들의 초심이 무너졌다면 오늘 이곳에서 끝냅시다.”
말하는 사이, 꼭 감겨 있던 금인독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양준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출수하려 했다.
위엄 가득한 황금빛 눈동자에 모든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솨악-
금인독안에서 금빛이 쏟아졌다. 제자리에 멍하니 있던 신혼 영체 하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금빛에 맞았다.
촤라락-
곧이어 신혼 영체에 담긴 의식과 생각이 순식간에 정화되며 순수한 기운만 남았다.
슈슈슉-
금빛이 연이어 쏘아지며 신혼 영체들이 연달아 정화되었다. 신혼 영체들은 위엄 가득한 금빛에 반항할 여력도 없었다.
양의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겼다. 그녀는 양준이 자신감 넘치게 그들을 전부 삼켜 버리겠다고 큰소리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비한 금빛이 그들의 생각과 의식을 정화하자, 모든 사람들이 흡수할 수 있는 순수한 기운만 남게 되었다.
“난 소멸되기 싫어!”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양씨 가문의 몇 대 선조인지 알 수 없는 그는 신혼 영체들이 소멸되는 것을 보자 억눌렸던 본능이 폭발했다. 그는 악귀처럼 소리를 지르며 손톱을 치켜들고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양준을 제압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는 것이었다.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눈빛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신혼 영체가 오랫동안 갇힌 채로 세월의 시달림을 받은 것이 불쌍했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초심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본성이 변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만!”
양의가 소리쳤다.
그녀의 고함소리를 들은 신혼 영체는 양준을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그는 온갖 감정이 담긴 복잡한 눈으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양준이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차마 공격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