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7장. 가주 취임식
“양씨 가문 선조들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자랑을 망칠 셈이냐?”
양의가 덤덤하게 물었다.
그 말에 신혼 영체의 눈동자가 순간 맑아졌다. 이내 그는 양준을 내버려 두고 스스로 금인독안을 향해 날아갔다. 금빛이 쏘아지자 그도 정화되었다.
다음 순간, 남은 신혼 영체들도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도 복잡했는데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슈슈슉-
양준은 막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이 불나방처럼 금인독안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곧 양준의 식해에는 양의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신혼 영체들은 모조리 정화되었다.
양의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양준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들을 대신해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양준은 눈을 반짝이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양씨 가문에 너 같은 이가 가주가 되었으니 분명 큰 성과를 이뤄 낼 것이다.”
양의는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그녀의 늙은 얼굴이 천천히 변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꽃같이 어여쁜 미인이 되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버들잎 눈썹,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오똑한 코, 발그레한 볼, 앵두 같은 입술에 백옥 같은 피부와 완벽한 몸매까지 더해진 그녀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양준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젊었을 때의 모습이란다. 마지만 순간에는 이런 모습으로 떠나고 싶구나.”
양의는 생긋 웃더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닌다면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양준이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빛이 되어 위로 올라갔다. 금인독안이 다시 한번 금빛을 그녀의 몸에 쏘았다.
촤라락-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양의의 생각과 의식이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인독안은 천천히 감겼고, 해풍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식해의 위쪽엔 사오십 개의 순수한 기운이 떠 있었다.
양준은 손을 저어 그 기운을 한데 모았다.
양씨 가문의 선조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신혼 영체를 네 개의 석상 안에 주입했다. 이렇게라도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소망이라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 양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많은 신혼 영체들이 시간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지고 잔혹한 기운만 남아, 그들이 직접 없애 버렸다고 했었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도 결국 똑같은 운명일 것이다.
양준의 이런 행위는 산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죽은 자에게는 구원이기도 했다. 그것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그 자신도 평가할 수 없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순수한 기운 앞에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운을 흡수하던 중 양준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기운들이 너무나도 미약해, 그의 실력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정하고 끝없는 세월 속에 선조들의 신식의 힘도 끊임없이 소실되었다. 지금 그들의 신혼 영체에 담긴 신식의 힘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전성기의 천 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 정도의 기운으로는 그의 실력을 높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작은 기운이라도 그 안에 담긴 천도와 무도에 대한 선조들의 깨달음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신유 경지에 오른 뒤로 양준은 한 단계를 돌파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유 경지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선조들의 깨달음을 흡수한다면 그것들은 양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전에 흡수한 초범 경지 고수들의 신식의 힘과 깨달음까지 더하면 앞으로 오랫동안 침체기가 없을 듯했다. 어쩌면 초범 경지 3단계까지도 문제없을 수 있었다.
양준은 뛸 듯이 기뻤다. 이 기쁨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옅은 슬픔을 씻어 버렸다. 그는 서둘어 남은 기운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이틀 뒤, 양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을 살펴보았다. 경지는 여전히 신유 경지 5단계였지만 신유 경지에 대한 이해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는 모두 양씨 가문의 선조들이 남긴 보물이었다. 양준은 신유 경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초범 경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신근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곧이어 뒤에서 강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양응호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기운은 불안정했다.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했다.
양준은 몸을 움직이고 나서 불렀다.
“백부님!”
“성공했느냐?”
양응호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신근전은 가주에 대한 양씨 가문의 시험이기도 했다. 만약 신근전에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가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 양준이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양응호가 다급히 물었다.
양응호는 양준이 성공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응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몇 개 흡수했느냐?”
“모두요.”
“모두?”
양응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감당한 것이냐?”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양응호도 그 공간에 들어간 적이 있어서 안에 어떤 기연이 있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신유 경지 7단계일 때 들어가 죽도록 싸우고 나서야 겨우 두 선조의 신혼 영체를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그마치 이삼 년을 들여서 두 선조의 신혼 영체에 담긴 생각과 의식을 깨끗이 몰아낼 수 있었다.
선조들의 신혼 영체를 흡수하면 그들의 천도와 무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기나긴 세월 동안의 고통도 이어받게 된다. 그 고통은 몸소 겪은 것처럼 괴롭기 그지없어 반드시 몰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을 더 흡수했더라면 그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지 않아도 폐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양준은 지금 양씨 가문의 모든 선조의 신혼 영체를 흡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양응호는 믿기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 개의 석상에 금이 잔뜩 생겼기 때문이었다. 의식이 모여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선조들의 신혼 영체가 모인 곳이 이미 사라졌고, 신혼 영체들이 모두 흡수당했다는 뜻이었다. 오늘 이후로 신근전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작용을 발휘할 수 없었다. 네 개의 석상을 복구하고 양준이 죽은 뒤에 신혼 영체를 이곳에 주입하지 않는 이상은.
양응호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존경이 담겨 있었다.
이런 표정과 태도는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 보여 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응호는 저도 모르게 공손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가 양준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양준은 그가 바라볼 수도 없을 높이에 이를 터. 그때가 되면 양준은 구름 위에 서서 사람들을 굽어살필 것이다.
“양씨 가문의 토대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꼭 보상하겠습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석상이 망가졌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아니다. 이곳은 원래부터 양씨 가문의 가주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 괜찮다.”
이내 양응호는 표정을 바꾸고 공손하게 말했다.
“가주님, 7대 세가의 가주 취임식은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들 양씨 가문의 제천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주님만 가면 시작할 것입니다.”
“네?”
양준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가야지요.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양응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길을 안내했다. 신근전 밖에 나오자 장로들과 양응봉 부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지마만 홀로 양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준이 무사히 나온 것을 보고 지마가 히죽 웃었다.
*양씨 가문 제천대.
2년 전, 양씨 가문의 계승 싸움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양씨 가문의 여덟 공자는 이곳에 모여서 양응호의 연설을 들은 다음, 답운구를 타고서 의기양양하게 전성으로 떠났다.
2년 뒤, 7대 세가의 가주 취임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양준이 도착했을 때는 모든 준비를 마친 뒤였다.
‘양씨 가문 가주께서 오셨습니다’라는 외침소리와 함께 모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손하게 양준을 맞이했다. 양준은 태연한 얼굴로 제천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며 우렁차게 말했다.
“지금은 제가 임시 가주가 되었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가주 취임식의 절차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오늘 일은 백부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는 가주 취임식을 맡을 수 없었다. 망신을 당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7대 세가에게는 큰일인데 절차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응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제천대 위로 올라갔다.
양응호가 말하는 사이, 양준은 슬그머니 물러나 새로운 7대 세가의 가주들 옆에 나타났다.
“느낌이 어때?”
양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엉망이야.”
곽성진은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곽씨 가문의 가주가 될 걸 생각하면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걸.”
“넌 안 어울리긴 해.”
양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양준.”
추억몽이 말했다.
“뭐가 고마운데?”
양준은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척하지 마. 다 알아. 네가 그날 의탁하러 온 세력들을 모두 받아들인 건 8대 세가에 압력을 가해 가주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거였지?”
추억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네가 세력을 모으는 거라고 여겼지만, 난 네가 바라는 게 지금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지.”
양준은 깜짝 놀랐지만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지.”
“난 줄곧 추씨 가문의 가업을 잇고 싶었어. 지금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 당연히 네가 고맙지.”
추억몽은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말해 봐. 사례로 뭘 원해? 날 원해도 돼.”
곽성진과 다른 젊은 가주들은 깜짝 놀라더니 이상한 눈빛으로 추억몽을 바라보았다. 맹선의는 헛기침을 크게 하다가 한참 뒤에야 숨을 고르고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추 낭자, 지금은 추씨 가문의 가주인데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추씨 가문의 명예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