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80화 (579/853)

제 580장. 중도의 지맥

양백은 냉소하였다.

“누구도 떠날 수 없다! 날 보호하라!”

말이 끝나자마자 떠나려던 사왕들은 걸음을 멈추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에 막힌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점점 풀어진 그들은 양백의 곁으로 날아가 그를 둘러싸고 보호했다.

8대 세가의 고수들은 안색이 변했다.

다들 사왕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양백이 대단한 수단으로 사왕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양백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휘젓자 현묘한 기운이 공중에서 발사되며 중도 전체를 뒤덮었다.

“막아!”

양준이 소리쳤다. 양백의 목적이 무엇이든, 반드시 그의 움직임을 막아야 했다. 그의 명령에 아직 전투력이 남아 있는 초범 경지 고수들은 모두 양백과 여섯 사왕에게 달려들었다.

“늦었어! 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너희들은 무엇을 해도 소용없게 되었다고.”

양백은 웃음을 터뜨렸다.

말하는 사이, 중도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와 땅에 쏟아진 선혈이 모두 흘러내리며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기운이 지렁이처럼 땅속을 꿈틀거리며 누비기 시작했다.

양백은 기쁜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한곳에 머무른 채,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땅속에 스며들었던 피가 모두 그곳으로 몰려갔다. 곧이어 하늘을 찌르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양준의 옆에 있던 지마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주인, 이건 아마도 제를 지내는 수법 중의 하나인 것 같네.”

지마도 피로 제사를 지낸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수법은 양백과 달랐다. 같은 점은 모두 죽은 사람의 피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며칠간 양측의 죽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흘러나온 피는 강을 이룰 정도였다. 양백이 사용하는 수법은 지마의 마영성법과 비교했을 때, 차원이 달랐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격렬한 소리가 들리더니 중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양응호는 뭔가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큰일났군. 양백이 원하는 것이 땅속에 있는 건가?”

“땅속에 뭐가 있습니까?”

양준이 다급히 물었다.

“이건 단지 8대 세가의 기록에 존재하는 것일 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땅속에 거대한 지맥이 존재하고, 그 지맥 때문에 우리 8대 세가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 있다. 양씨 가문뿐만 아니라 다른 7대 세가에도 이 기록이 존재할 것이다.”

추수성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도 가문의 기록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누군가 지맥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존재하는데 우리가 줄곧 찾지 못한 것일까요?”

맹서평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8대 세가는 중도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지맥에 대한 기록은 있었지만 정말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주인 양백이 정말 그것을 지금 찾은 거라면 8대 세가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맥이라고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양준은 예전에 바다 건너 은도에서 메마른 지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남은 기운을 전부 흡수해 실력이 크게 늘었었다. 중도의 지하에 온전한 지맥이 있다니. 그걸 찾는 사람은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그의 목적은 이것이겠군요.”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백은 초범 경지 3단계로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실력을 더 키우고 싶으면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지맥에 담긴 방대한 기운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짐작일 뿐이지만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도 전체가 흔들리며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먼지바람이 흩날렸다. 마치 세계 종말이 다가온 듯한 광경이었다. 아무리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도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8대 세가와 양준 관저의 고수들은 전력으로 실력을 발휘해 양백의 움직임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섯 사왕이 그의 옆을 단단히 보호하고 있어 사왕들의 방어를 뚫지 않고서는 양백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6대 사왕 중, 선경라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초범 경지 2단계였다. 그중에서 영왕과 역왕은 이미 2단계의 한계에 다다랐다.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고 필사적으로 양백을 보호하고 있으니 방어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선경라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현급 비보 경라선에 진원을 주입했다. 경라선이 빛을 반짝반짝 흩뿌렸다. 곧이어 경라선 위의 미인도가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부채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경라선은 요미여왕 일족의 가보로, 요미여왕의 유혹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같은 초범 경지 고수라도 잠깐 동안 정신을 잃고 욕정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다만 선경라가 펼친 경라선의 위력이 겨냥한 상대는 양백과 다섯 사왕이었다. 가장 순진한 역왕은 두 눈이 벌개지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왕들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도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천한 것!”

역왕이 다시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는 심성이 단순하기에 술수에 쉽게 걸려들고 쉽게 빠져나왔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선경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요미여왕은 사색이 되어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리여리한 반쪽 몸이 역왕의 주먹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양백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에게 실망했다. 이게 네 선택이냐?”

선경라는 덤덤한 얼굴로 추락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 이미 양준의 여인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당연히 당신을 도와 그를 상대하지는 못하죠.”

“후회할 것이다. 무도의 정상에 오르니 진정한 친구 한 명 없구나.”

양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8대 세가의 고수들이 쫓아가서 선경라의 목숨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당우선이 선수를 쳤다.

혈시들은 모두 양준과 선경라의 미묘한 관계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당우선이 요미여왕을 받아 안자,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슈슈슉-

이때, 강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땅속에서 솟구쳤다. 그 기운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짙었는데, 심지어 육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땅속에서 빛줄기 같은 것이 솟구치며 중도 전체를 뒤덮었다. 빛줄기에서는 살 떨리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양백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날려 아무 빛줄기나 고르고는 빛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곧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섯 사왕들만 제자리에 남은 채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말 지맥이 있었어!”

양응호가 소리쳤다.

눈앞의 광경에 8대 세가의 전임 가주들은 바로 알아챘다. 기록에 적혀 있는 것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중도의 지하에는 정말로 거대한 지맥이 존재했다.

양백이 지맥을 자기만의 수단으로 찾아낸 것이었다.

“저놈이 지맥으로 뭘 하려고 하든 절대 가만두어선 안 돼!”

양응호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다른 일곱 명의 전임 가주들과 함께 양백을 바짝 뒤쫓았다. 그들은 근처에서 빛줄기를 찾은 뒤, 빛줄기를 따라 땅속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도 가보자.”

지마는 다급히 따라나섰다.

*양준 관저.

양준 관저에서 천행궁을 유지하며 양준의 후방을 지키고 있던 몽무애의 표정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그는 공중에 뜬 채로 중도의 스산하면서도 기운이 넘치는 광경을 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지맥이다!”

한참 멍하니 있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애써 찾을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쉽게 찾는구나. 응상아, 따라오너라. 드디어 첫 봉인을 풀 때가 되었다.”

하응상도 그 말을 듣더니 기운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몽무애가 그녀를 어려서부터 거두고 열심히 양성한 것은 기회가 생겼을 때, 자신을 도와 봉인을 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몽무애의 첫 봉인을 풀려면 거대하고 엄청난 양의 기운이 있어야 했다. 기운이 무엇이든, 양이 충분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의 특수한 체질을 이용해 몽무애의 몸을 약 가마로 하여, 기운을 원천으로 삼은 뒤 첫 봉인을 해제할 수 있었다.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약령성체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도 근처에서 빛줄기를 찾았다. 몽무애의 보호를 받으며 하응상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중도,

8대 세가와 양준 관저의 고수들은 여전히 창운사지의 무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창운사지의 무인들은 사상자가 많아 무인 백 명 정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요수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섯 사왕들은 아직 전투력이 남아 있었지만 수십 명의 초범 경지 고수들에게 포위당해 도망칠 길이 없었다. 그들이 힘을 다 쏟아붓고 나면 살해당할 것이 뻔했다.

상황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양준과 지마는 중도의 깊은 땅속에서 빛줄기를 따라 아래로 끝없이 떨어졌다. 짙은 기운에 감싸여 좋은 느낌이 전해졌지만 그냥 추락하다 보니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 끝나는 거야.’

이 각이 다 지나서야 둘은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얼마나 깊이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도의 떠들썩한 싸움소리, 심지어 기운의 파동마저도 아예 감지할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짙고 순수한 기운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운이 한데 모여 옅은 빛을 내뿜고 있어 땅속 깊은 곳이라도 크게 어둡지 않았다.

“여덟 명은 어디로 갔지?”

지마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양응호 일행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이쪽에 있어.”

양준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쪽 땅 위에 어지러운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양준은 곧바로 신식을 펼쳐 보았지만, 백 장 정도밖에 감지하지 못했다. 짙은 기운 때문에 신식의 감지 범위가 감소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 몇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중도의 지맥은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었고, 지하의 통로도 구불구불했다. 신식의 힘이 제한받는 상황에서 8대 세가의 전임 가주와 양백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닥에 난 발자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방향을 몇 번이나 틀고 갈림길을 몇 개 지나자, 여덟 명의 발자국도 사라지고 없었다.

양준과 지마는 그들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는 느낌이 가는 대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양준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주인, 왜 그러나?”

양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리여리한 모습이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지마는 깜짝 놀라며 공격하려다가 양준에게 저지당했다.

지마가 다시 살펴보니 다가온 이는 바로 소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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