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81화 (580/853)

제 581장. 허공 통로

“왜 왔어요?”

양준은 다급히 소안을 끌어당겼다.

그녀와 능소각의 제자들은 창운사지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줄곧 천행궁 안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안이 나타나자 양준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몽 주인과 하 사매를 따라 내려왔어. 그리고 네 기운을 감지하고 이쪽으로 온 거고.”

소안이 말했다.

“몽 주인과 하 사저도 내려왔다고요? 그럼 제 관저는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관저는 괜찮아. 천행궁의 결계는 아직 있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몽 주인은 왜 내려왔대요? 게다가 사저까지 데리고.”

몽무애가 봉인을 풀면 초범 경지 2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만 자신도 다칠 수 있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양준은 몽무애가 싸움에 참여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몽무애는 그저 관저에 남아서 천행궁을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나오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왔으니 같이 다녀요.”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땅속 깊은 곳을 누비며 자세하게 느껴 보았으나 다른 사람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소안은 양준과 심심상인 단계에 이르렀기에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방법은 양준과 소안 서로에게만 통했다.

양준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지맥의 기운이 심상치 않게 꿈틀거렸다. 사방팔방의 기운이 모두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마치 그쪽에 거대한 흡입력이 생겨 미친 듯이 지맥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봅시다.”

양준은 무거운 얼굴로 기운이 모여드는 방향으로 향했다.

반 시진 뒤, 양준은 두 생명의 기운을 감지했다. 순간 놀란 그는 다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멀지 않은 갈림길에 몽무애와 하응상이 있었다. 몽무애는 편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고, 하응상은 그의 앞에 서서 두 손으로 현묘한 인결을 끊임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인결이 생기자 지맥의 기운은 끊임없이 몽무애의 몸속으로 모여들었다.

사람이 다가온 걸 느낀 몽무애는 긴장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응상도 멈칫했다. 이내 양준의 얼굴을 확인한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몽 주인, 뭐 하려고 내려오셨습니까?”

양준은 놀란 얼굴로 몽무애를 훑어보며 의혹에 차서 물었다.

“봉인을 해제하려고!”

몽무애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양준은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몽무애가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몽무애는 몸속에 봉인이 있어 여태껏 신유 경지 정상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만약 봉인을 푼다면 초범 경지 2단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몽 주인.”

양준도 몽무애가 봉인을 풀 수 있는 계기를 찾아 기뻤다. 양백의 이번 행동이 양준 쪽에도 이득을 가져온 것 같았다.

“몽 주인, 양백과 8대 세가의 전임 가주들을 보셨나요?”

양준은 다급히 물었다.

몽무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을 찾고 싶다면 응상이가 도와줄 거다.”

양준은 하응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손을 휘저어 기운을 뿜었다. 기운은 번개처럼 지하 여러 갈래의 길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한참 뒤, 기운이 다시 돌아왔다.

곧이어 하응상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양준은 씨익 웃으며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난 남아서 몽 주인과 하 사매를 보호할게.”

소안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모든 위험한 일과 전투는 거의 다 양준 혼자서 겪어 왔다. 때문에, 그녀는 이번에 양준을 도와 함께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몽무애와 하응상이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가 남아 있는다면 적어도 위험이 닥쳤을 때, 두 사람을 지킬 수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해요!”

“너도.”

소안이 활짝 웃어 보였다.

몽무애, 하응상, 소안과 작별한 뒤, 양준은 지마와 함께 하응상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그는 수시로 강한 신식을 펼쳐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지마를 데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앞쪽에는 아홉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중 여덟 명은 8대 세가의 전임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사주를 쫓아 이곳에 다다른 듯했다. 남은 한 명은 당연히 양백이었다.

양준과 지마가 도착했을 때, 양측은 대치 상태였다.

전임 가주들은 초범 경지에, 인원도 많았지만 사주 같은 인물에게 무턱대고 덤빌 수 없었다. 양백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그들에게 커다란 압박감을 주었다.

그에 반해 양백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흥분도 담겨 있었다. 그는 급히 움직이지 않고 느긋하게 여덟 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준과 지마가 나타난 것을 보자 양백은 눈을 더욱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사질도 왔군. 좋아, 좋아.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볼 관객이 없어 서운하려던 참이었거든. 사람이 많으면 좋지.”

양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양백을 진중하게 훑어보았다.

“사숙, 창운사지 고수들의 목숨을 버려 가며 애쓴 게 겨우 이 지맥 때문입니까?”

“그렇다!”

“왜죠? 이 지맥은 중도의 것이니 찾았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다 흡수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8대 세가 좋은 일만 하는 꼴이지요. 사숙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정도로 멍청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양준이 질문했다.

양백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질이 이 여덟 명보다는 머리가 좋네. 이 사람들은 내가 지맥을 차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했거든. 잘못 짚었지. 난 중도 사람들의 눈앞에서 지맥의 기운을 흡수할 정도로 대단하지도 않고, 야심이 크지도 않아.”

양응호 일행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양백의 말대로 그들은 양백이 지맥의 기운을 탐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왜 이러는 거지?’

“네 목적이 무엇이든 오늘 여기가 바로 네 무덤이다.”

양응호는 차갑게 말하며 양백의 말을 잘랐다.

양백은 미소를 지었다.

“고작 너희들로는 그럴 능력이 없을 거야.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너희의 목숨을 취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숙께서는 왜 여태껏 공격하지 않으셨습니까?”

양준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지켜볼 관객이 필요했다고 말했잖아. 선경라가 딱인데, 그녀를 데리고 같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녀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줄 누가 알았겠어.”

양백은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거 취향 한 번 고약하네요.”

“괜찮아.”

양백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곧 이곳을 떠나 더욱 대단한 세상으로 갈 거니까.”

“더욱 대단한 세상이라고?”

여덟 명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양백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마는 낄낄거렸고, 양준은 생각에 잠겼다.

“무식하긴.”

양백은 연민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신유 경지 이상이 무도의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신유 경지 이상은 정상도 아니고 신유 경지 이상이라는 이름도 틀렸어. 그저 너희들이 이 경지를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지.”

전임 가주들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마냥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양백을 바라보았다. 그가 신유 경지 이상이 도대체 어떤 경지인지 말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듯했다.

“일반인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해서 초범 경지라고 하죠.”

양준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잘난 척하는 양백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사숙, 전 당신이 뛰어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었네요.”

양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양준이 이 경지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곧이어 그는 모든 것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뒤에 있는 자가 가르쳐 준 거지?”

지마는 낄낄 웃으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도 똑같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양백을 바라보았다. 양백이 지마 앞에서 초범 경지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양백은 지마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 성과는 자네의 지금 육신에서 기원되었으니 우리는 같은 출신이네. 우린 지금보다 더 친하게 지내야 하지. 자네만 괜찮다면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는가?”

“됐어. 난 그래도 주인을 따를 것이네.”

지마는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사질은 자질이 뛰어나긴 하나 이곳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네. 나와 함께라면 더 큰 세상으로 데려가 줄 수 있네.”

양백은 실망한 표정으로 계속 그를 설득했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옆의 동굴 벽을 치고는 진원을 주입했다. 그러자 지맥의 기운이 순식간에 끓어오르면서 끊임없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백이 내리친 곳에 작은 검은 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검은 점은 점점 커지더니 잠깐 사이에 지름이 몇 장 정도 되는 검은 구멍으로 변했다. 구멍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어둡고 깊었다.

전임 가주들은 망연한 얼굴로 급히 뒤로 물러났다. 검은 구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준과 지마는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허공 통로?”

양백은 경악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이것을 알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건 허공 통로지. 통로의 끝은 이곳과는 다른, 더욱 높은 차원의 세상이고. 이곳은 미개한 땅이야. 천지의 기운이 결핍하고 고수도 적어. 하지만 저쪽은 달라. 저쪽은 천지의 기운이 넘쳐 무인들이 천도와 무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에 딱이지. 고수들도 넘쳐나고 말이야. 자네, 고개만 끄덕인다면 자네를 데리고 들어가 저쪽의 자원을 함께 누리게 해주겠네.”

“그렇군! 자네는 이 육체의 전승뿐만 아니라 기억도 물려받은 거였군.”

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

양백은 통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각 곤룡골 아래에 있던 마두의 시신은 지금 지마의 육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 양백은 이 시신에서 전승과 그의 기억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범 경지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실력도 이처럼 빨리 강해진 것이었다. 또한 마두의 시신에 담겨 있던 기억이 중도 지하에 있는 지맥과 허공 통로의 위치를 찾게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의 목적은 중도도, 지맥도 아닌 눈앞의 허공 통로였다. 그는 이 세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서 더욱 높은 경지를 수련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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