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82화 (581/853)

제 582장. 널 단죄할 것이다

“하지만 자네가 가진 기억은 온전하지 않은 것 같네.”

지마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양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의 자원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거기의 고수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게. 이곳은 미개한 땅이긴 하나 그곳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네. 자네의 경지는 나쁘지 않고 이곳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지만 저쪽에 가면 기껏해야 한 문파의 장로 정도나 할 수 있겠지. 내가 자네라면 이곳에서 활개치는 걸 택하겠네.”

지마는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거지? 그럴 리 없는데. 그 시신에 남아 있는 기억도 모조리 내가 물려받았어. 자네는 절대 그의 생각을 물려받을 수 없었을 텐데.”

양백도 깜짝 놀랐다.

“난 그의 생각을 물려받을 필요가 없어. 내 자체가… 저쪽 세상에서 왔기 때문이지! 굳이 따지자면 이 몸뚱아리의 주인은 내 후배의 후배지!”

지마는 낄낄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양백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지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짙은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는 시신의 전승을 얻었기에 오늘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마는 마두가 자신의 후배의 후배라고 하며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양백은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날 속이는 건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해도 난 넘어가지 않을 거네. 여기까지 온 이상, 저쪽의 세상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네.”

양백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야말로 정말 무식한 사람이군.”

“자네에게 날 평가할 자격은 없네!”

양백이 소리치는 동시에 짙은 사마의 기운이 그의 몸속에서 솟구쳐 나오더니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입마!”

양준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찍으며 금신의 강한 기운을 폭발시켰다. 마문(魔紋)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고, 양백 못지않은 사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오히려 양백보다 한층 더 짙었다.

이에 양백의 표정이 변하더니 양준을 바라보는 시선도 무거워졌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사질에게 이런 힘이 있었다니. 외부의 힘을 빌린 것 같군. 하지만 신유 경지 5단계밖에 되지 않아서 너무 약해.”

“그런가?”

지마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양준을 보호했다. 똑같이 짙은 사마의 기운이 지마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는 양백의 기운과 똑같았으며 은연중에 서로 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전임 가주들도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힘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원한에 찬 얼굴로 양백과 목숨을 겨룰 준비를 했다.

양백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쪽수로 날 이기려고? 너무 순진하시네. 가기 전에 초범 경지 3단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기회를 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은 건 자네라네. 오늘 내가 자네의 사악한 기운을 거두어 주지.”

마지막 말은 지마에게 한 것이었다.

양백은 곤룡골에서 빠져나올 때, 초범 경지 3단계가 아니었다. 마두의 시신에 담긴 기운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그는 경지가 더 오른 다음 다시 돌아가서 흡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온 지마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오늘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는 자신의 것이어야 했을 기운을 돌려받고 싶었다.

양백은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칠색의 빛이 갑옷처럼 그의 주변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전임 가주들이 펼친 무공과 비보의 빛이 피어올랐다. 천지를 뒤엎을 기세의 공격은 양백의 빛 장막에 부딪치자 옅은 잔물결만 일으켰을 뿐, 그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양백의 수단이 엄청나고 실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광경을 보자 전임 가주들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에 빠졌다.

지마도 번개같이 출수했다. 곧이어 핏빛 안개가 양백을 뒤덮었다. 그 속에는 지마의 오래된 깨달음과 경지의 힘이 담겨 있어 막아 내기 힘들었다. 핏빛 안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양백은 몸을 살짝 흔들어 가볍게 핏빛 안개를 물리쳤다.

지마는 코웃음을 치며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그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경지의 절대적인 차이는 경험으로 채울 수 없었다. 이곳에 대량의 피가 있다면 마영성법이라도 쓸 수 있겠지만, 죽은 사람들이 흘린 피는 이미 전부 지맥에 스며들어 지마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때, 드높은 용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양준의 뒤에 거대한 용머리가 나타났다. 용은 꿈틀거리며 커다란 입을 쩍 벌린 채, 양백에게 달려들었다.

“교룡?”

양백은 가소롭다는 듯이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거대한 칠색 구렁이가 나타났다. 찬란한 색깔의 구렁이는 이를 드러낸 채, 검은색 교룡에게 달려들며 아가리를 벌려 칠색의 빛을 내뿜었다. 그 빛에 담긴 사악한 기운은 순식간에 교룡을 산산조각 냈다.

“겨우 이 정도군!”

양백이 비웃었다.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음산하게 말했다.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 봐. 나도 누가 날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하거든? 난 평생 처량하게 살았어. 내가 원하는 것은 강해지는 것, 하나뿐이야. 그게 정도면 어떻고 사도면 또 어때? 강해질 수만 있다면, 날 막는 자는 누구라도 죽일 거야!”

“그 사람이 사숙을 키워 주고 가르친 사부님이라고 할지라도요?”

양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위급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지마는 눈치를 살폈다. 양준이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따라다닌 경험으로 그가 무턱대고 자신 없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용히 양준의 옆을 지켰다.

“사부님? 내겐 이미 사부님이 없어.”

양백이 냉소했다.

그는 말하면서 또 몸속의 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러자 전임 가주들이 일제히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얼굴빛이 칠색으로 변했고, 진원과 체력이 신속하게 양백의 몸으로 흘러갔다.

경지의 절대적인 차이에 그들은 양백의 무서운 면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 그들로는 상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양준, 어서 가거라. 우리는 안 될 것 같구나…….”

양응호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양백의 실력이 이토록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절대 여덟 명만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덟 명의 힘으로 최소한 양백과 함께 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현실 앞에서 가소로울 뿐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필사적으로 양준을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가지 못해!”

양백은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곧이어 매서운 경풍(勁風)이 뿜어져 나오며 양응호의 어깨를 관통했다.

“양백, 넌 사부님을 공격하고 문파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오늘 내가 사부님을 대신해 널 단죄할 것이다.”

양준은 화가 난 맹수같이 폭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양백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힐끔 보더니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신유 경지 5단계밖에 되지 않는 자가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망발을 하는구나. 사질, 곧 죽게 생겼는데 귀신이라도 되어서 날 단죄하겠다는 것이냐?”

같은 문파 출신인 그는 양준을 얕보았다. 양준이 지금 같은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외부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양준은 야릇하게 웃었다. 다음 순간, 웃음기를 거두고서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지마!”

지마는 전혀 지체하지 않고 미친 듯이 양백을 향해 날아갔다.

양백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어 지마를 공격했다. 난폭한 기운이 솟구치자 지마의 온몸의 진원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다가 곧 고갈되었다. 도로 튕겨나온 지마는 땅바딱에 털썩 떨어졌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광경에 전임 가주들뿐만 아니라 양백도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껍데기는 쓸 만하군.”

지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지금은 자네를 이기지 못하나 자네도 날 이기지 못하네. 이 몸뚱아리는 자네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지마가 가지고 있는 육체는 곤룡골 바닥에서 몇백 년이나 남아 있던 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육체가 부패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마두가 애당초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수련했다는 뜻이었다. 양백의 지금 경지로는 이 육체를 이길 수 없었다.

“너희들이 뭘 믿고 이러나 했더니 이것이었군. 그저 이뿐이라면 더는 놀아주지 않겠어.”

양백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한 기세로 다시 양백에게 달려들었다. 양백은 가소롭다는 듯이 입을 삐죽이며 차갑게 말했다.

“미개한 자가 몸뚱아리를 얻었으니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지. 차라리 나한테 돌려주게.”

그는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한 손을 뻗어 지마의 머리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지마는 피하거나 숨지 않고 그에게 잡혔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양백은 크게 기뻐하며 공법을 운행했다. 그는 미친 듯이 지마의 몸속 기운을 흡입했다. 이 사악한 기운은 그가 수련한 공법과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껏 흡수할 수 있었다. 지마의 힘을 흡수한다면 양백의 실력은 다시금 향상될 것이다. 심지어 비법을 사용해 지마의 육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꼭두각시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주인!”

지마는 힘겹게 막고 있었지만 몸속의 기운이 소실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그는 하는 수 없이 큰소리로 외쳤다. 양준이 무슨 수를 쓰든, 지금 나서야 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양준을 믿고 있기에 이토록 무모하게 덤빈 것이었다.

곧이어 금빛 찬란한 쇠사슬이 신비롭게 나타나면서 이와 동시에 더없이 강한 양성 기운도 나타났다. 지마나 양백 몸속의 사악한 기운은 천적을 만난 것처럼 불안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쇠사슬은 길지 않았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곧바로 양백을 휘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