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91화 (590/853)

제 591장. 여왕 거미와의 거래

여왕 거미가 친절하게 초대하자, 양준도 두려움 없이 몸을 날려 거대한 거미 석상 앞에 이르렀다.

“깔깔, 과연 대담하군!”

여왕 거미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계속해 귓가에 들려왔다. 곧이어 사방팔방에서 대형 거미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양준을 겹겹이 둘러쌌다. 거미들은 은은한 빛을 뿜는 작은 눈으로 양준을 지켜보며 비린내가 나는 흰 거미줄을 뿜어 댔다.

대형 거미들은 모두 6급 요수였다. 협곡 내에는 어림잡아 이런 거미가 적어도 마흔 내지 쉰 마리 정도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작은 거미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양준은 여왕 거미와 뇌정수왕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도를 공격할 때 여왕 거미는 잠시 동안 수왕의 지시를 따랐고, 동시에 수왕에게서 적지 않은 이득을 챙긴 모양이었다. 지금 보이는 6급 대형 거미들은 수왕의 손을 거쳐 키워 낸 새로운 품종인 듯했다. 지난번 양준이 이곳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는 대형 거미가 이렇게 많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흔들리더니 거대한 형체가 거미 석상 안에서 걸어 나왔다.

드디어 여왕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하반신은 거대한 거미 몸집이었으나, 상반신은 이미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얼굴과 선이 부드러운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여왕 거미의 모습을 본 양준은 저도 모르게 놀라며 냉소했다.

“보아하니 중도 결전에서 이익을 많이 챙겼나 보군요.”

여왕 거미는 요염하게 웃었다.

“그래. 많은 고수들의 진원, 피와 살을 삼키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지. 그 맛이 정말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창운사지가 패배를 하는 바람에 나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 맛이 그립군.”

여왕 거미는 말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눈동자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새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네 냄새도 아주 좋은데, 입에 들어가면 무슨 맛일까 궁금하네.”

“날 먹으려고요?”

양준은 자신을 가리키더니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재주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자신 있어?”

“재주가 없으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당신을 제압할 자신이 있으니 제 발로 찾아왔겠죠.”

양준의 얼굴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여왕 거미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몸은 반인반요수지만 생각은 지능적인 인간 못지않기에, 여왕 거미는 양준이 무언가 믿을 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무엇을 믿고 이리 자신만만하지 알 수 없지만,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신을 제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에는 싸우려 찾아온 게 아니니까. 당신이 이곳에서 위세를 부리든지 말든지, 중도에 가서 소란을 피우지 않으면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여왕 거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거래 좀 하려고요.”

양준이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거래?”

“저한테 독과부 일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말해 주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양준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표향성에서 선경라가 사경을 헤매고 있기에 반드시 속전속결로 해결해야 했다.

“사람으로 완전히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여왕 거미가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양준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여왕 거미는 지금까지 그가 본 유일한 7급 요수였다. 그 정도 실력이면 인간 못지않게 대단한 실력이긴 했지만, 높은 지능을 갖고 있는 요수로서 가장 큰 목표는 당연히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왕 거미는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화생지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양준은 옅게 미소 지으며 미끼를 던졌다.

“화생지?”

여왕 거미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몸을 흠칫하더니 미심쩍게 물었다.

“그건 뭘 하는 것이지?”

“당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신비한 힘을 지닌 못이에요.”

양준이 설명했다.

“어디에 있어?”

여왕 거미는 흥분한 나머지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위압감이 커지면서 기운도 점점 더 위험해졌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으면, 저한테 독과부 일족의 체내에 있는 독을 어떻게 해독하는지 알려 주세요.”

사실 그도 화생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애당초 전성에 있을 때 수령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여왕 거미를 보고서, 화생지가 없으면 평생 사람의 모습을 갖출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그는 화생지가 여왕 거미를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왕 거미는 흥분한 기색을 거두고 황당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한참 뒤에야 요염하게 웃었다.

“네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알아? 화생지라… 난 들어본 적이 없어.”

“당신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 평생 이 모습으로 살 건가요? 정말 진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세요?”

양준은 비웃는 표정으로 여왕 거미를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 모습은 정말 아니거든요.”

“내 모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 마.”

여왕 거미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보아하니 자신도 반인반요수의 모습이 매우 불만스러운 듯했다.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여왕 거미가 다시 물었다.

“요미여왕을 위해 찾아온 거지? 지금 어떤 상황이야? 이제 씨앗이 다 영글어서 반드시 너와 운우지정을 나눠야 하는 단계야?”

“잘 알고 계시군요.”

양준은 더욱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여왕 거미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도 독과부 일족의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독과부 체질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그럼 거래하지! 먼저 화생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줘. 그러면 독과부 체질을 해결할 방법을 말해 줄게.”

여왕 거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흘리개 취급하지 마시죠. 전 당신을 믿지 않아요.”

양준이 냉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널 믿을 수 없어. 보아하니 먼저 널 얌전하게 만들어야겠군.”

여왕 거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을 둘러싸고 있던 대형 거미들이 움찔거렸다. 여왕 거미의 명령을 받고 양준을 제압하려는 모양이었다.

“한번 해 보시죠. 진짜 싸우면 누가 죽을지!”

양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고는 손을 뻗자 거대한 뼈 방패가 나타났다.

뼈 방패는 거의 집 몇 채를 더한 크기에 맞먹었다. 가시 몇 개가 부러져 있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뼈 방패는 여왕 거미가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건 무슨 비보야?”

여왕 거미는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서며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현급 비보요!”

양준이 냉소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원래는 세숫대야만 했어요. 그런데 이것이 저를 공격하는 힘을 흡수할 수 있거든요. 많이 흡수할수록 더 커지고요. 그리고 흡수된 힘은 다시 방출할 수 있어요. 지금 이만한 크기가 되었는데, 얼마나 많은 힘을 흡수했을 것 같나요? 당신이 받아 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지금 방패에 축적된 힘은 중도 지하에서 폭발한 허공의 힘이었다. 초범 경지 고수도 막아내기 힘들었다. 정말 싸우게 된다 해도, 양준은 여왕 거미가 두렵지 않았다.

여왕 거미는 얼굴빛이 바뀌더니 이를 갈며 양준을 쏘아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여왕 거미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나긋하게 말했다.

“나를 죽이지는 않을 거잖아. 나한테서 방법을 알아내야 할 테니까.”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맞아요. 그럼 우리 한번 제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쌍방이 서로 받아들일 수 있고, 서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보자고요.”

“합리적인 방법 같은 거, 난 몰라.”

여왕 거미는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양준에게 문제를 떠넘겼다.

양준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 그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차분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신식을 제 식해에 들여보내면 제가 화생지의 비밀을 보여드릴게요. 그러면 거짓을 말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만, 내가 혹시라도 꼼수를 부릴까 두렵지 않아?”

여왕 거미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빨간 입술을 핥았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제 신식이 당신의 식해에 들어가도 되고요.”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왕 거미가 고개를 저었다.

식해는 가장 많은 비밀을 담고 있는 곳으로, 평소에는 절대로 타인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준의 제안은 무척이나 진지했으나, 여왕 거미는 왠지 그가 꿍꿍이를 꾸미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당신이 제 식해로 들어오세요.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비밀을 드러내 놓고 주고받으면 둘 다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잖아요. 게다가 제 실력이 당신보다 낮으니 제 식해 안에서 위험에 부딪칠 일은 없을 거 아니에요.”

양준은 무거운 얼굴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하면, 하는 수 없이 당신을 죽여 신혼을 제압하고 그 속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찾을 겁니다.”

말하는 동시에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여왕 거미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말 싸울 것처럼 전투태세를 취했다.

이에 여왕 거미의 얼굴빛이 바뀌더니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성격이 급하군. 난 거절하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 서로 원하는 답을 얻은 다음, 혼교(魂交)를 하는 건 어때? 자네 신혼의 맛이 너무나 감미로울 것 같단 말이야.”

“그건 거절할게요. 당신의 하반신에 전혀 흥미가 없거든요.”

양준의 얼굴빛이 거메졌다.

“깔깔깔.”

여왕 거미는 애교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상반신은 마음에 든다는 거야?”

“도대체 들어올 거예요, 말 거예요?”

양준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그래. 곧 갈 테니까, 식해의 방어나 풀어.”

이윽고 여왕 거미의 신혼이 육신에서 빠져나와 양준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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