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4장. 다른 세계로 갈 거야
중도에서 바삐 일하고 있던 이들도 금우응의 움직임에 놀란 듯했다. 양준이 미처 중도에 다다르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곽성진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양준, 양준! 역시 죽지 않았군! 내가 말했지. 나쁜 놈은 명이 길 거라고.”
양준은 얼굴빛이 거메졌다.
곽성진의 뒤로 동경한, 동경연, 만화궁의 네 소녀, 자미곡의 낙소만, 영월문의 진학서와 서소어, 문심궁의 좌방, 비우각의 저경산, 혈전방의 호씨 자매, 풍우루의 방자기, 보기종의 도양……. 양준 관저의 젊은 세대 통솔자들은 거의 다 온 듯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흥분한 얼굴로 양준의 앞으로 날아왔다.
곽성진은 다짜고짜 양준을 와락 껴안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양준! 정말 그리웠어. 드디어 돌아왔군!”
그들의 모습에 양준 역시 감격스러웠다. 그는 괜히 곽성진을 밀어내고는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희들이 그리웠어. 다 가까이 와 봐. 그동안 좀 컸나 안아 보게.”
“뻔뻔스럽긴!”
만화궁의 한소칠이 얼굴을 붉히며 한소리 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준은 낙소만을 곁눈질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소만이는 좀 컸네.”
“뭔 말이야…….”
낙소만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양아치 짓 그만하고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
추억몽이 양준을 흘겨보며 말했다.
반년이나 자취를 감췄던 양준이 중도로 돌아오자, 양준 관저의 혈시 열세 명, 8대 세가의 젊은 가주와 장로들이 모두 놀라서 양씨 가문으로 달려왔다.
양씨 가문 대전,
양응봉 부부는 온통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동소죽은 양준이 다시 사라질까 두려워 아예 그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대전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8대 세가 사람들과 양준 관저의 사람들까지 합쳐서 거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다들 반년 동안 그가 어디에 있었고,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리고 반년 전 중도 지하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했다.
“막내야, 네가 무사하게 돌아왔으니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는…….”
양소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양준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라 버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제 뜻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가주에는 형님이 적격입니다.”
양소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계승 싸움에서 난 완패했어. 무슨 자격으로 양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어?”
“둘째 형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형님의 수단과 능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실 계승 싸움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말 끝까지 들어주세요.”
양소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에 저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남아 양씨 가문의 가주 직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양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동소죽은 몸을 흠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양준의 손을 꼭 잡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디 가려고?”
양준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차원이 더 높은 세계로요!”
대전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유일한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여태껏 들어보지도 못했던 또 다른 곳이 존재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이전까지 신유 경지 이상을 초범 경지라고 부른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에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사주 양백이 창운사지를 거느리고 중도를 침략한 목적도 저와 같습니다. 바로 차원이 더 높은 세계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중도를 침략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지?”
동경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중도 지하에는 지맥이 있는데 지맥 가운데 문을 통해서 차원이 더 높은 세계로 갈 수 있어요. 양백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지맥을 찾는 것이었죠.”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반년 전 그는 살육을 감행하고 피로써 제사를 지내 지하의 지맥을 뚫고 그 문을 찾게 되었습니다. 8대 세가의 전임 가주들께서 쫓아가 그를 저지하려 했고, 저와 지마도 쫓아갔죠. 몽 주인과 하 사저 그리고 소안 사저도 함께 지하에 있었어요. 그리고 한바탕 접전을 치른 뒤 몽 주인이 양백을 죽였습니다. 양백은 죽기 전에 그 문을 무너뜨려 천재지변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모두와 함께 죽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양준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줄곧 의문을 가지고 있던 문제였다.
“문이 무너져 내리려는 중요한 순간에 몽 주인은 자신의 제자와 소 사저를 데리고 그 문을 통해 차원이 높은 세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몽무애는 허공 통로가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 양준에게 이런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을 통해 양준은 그들이 허공 통로를 안전하게 통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는 한 발 늦은 관계로 폭발한 허공의 힘에 의해 바다 건너에 떨어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반년을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여태껏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전임 가주님들은?”
누군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유명을 달리했을 것입니다.”
양준이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그분들의 움직임은 저보다도 좀 더 늦었습니다. 제가 허공의 힘에 의해 멀리 밀려갔을 때, 그분들은 아마 폭발한 지맥의 기운 때문에 그대로 지하에 묻혔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졌다.
“너라도 살아남았으니 다행이구나. 우린 사라진 이들이 모두 죽은 줄 알았어. 이제 누군가는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최악은 아니구나.”
능태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몽무애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한편 기쁘기도 했다.
대전 안은 적막에 싸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추억몽이 입을 열어 물었다.
“양준, 네가 가려고 하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어?”
“조금만 알고 있을 뿐이야.”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전의 구석진 곳으로 시선을 보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잘 아는 사람이 있어. 수령, 네가 말해 봐.”
구석진 곳에는 주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담청색 머리의 수령이 벽에 기대서 견과류를 까 먹고 있었다. 양준이 자신에게 눈길을 돌리자 수령은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넌 그쪽 세계에서 온 거 맞지? 몽 주인이나 지마처럼 말이야.”
한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수령에게 쏠렸다.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왜 다들 저를 보세요?”
수령은 언짢은 듯 투덜거렸다. 그녀는 반년 전 전투에서 몽무애 곁에 있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몽무애를 따라다녔다면 그녀는 여기 남아 있을 필요가 없이 진작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쪽 세계는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양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곳이냐고?”
수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면 나도 딱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설명할게. 이곳에도 무슨 대형 세가, 1, 2, 3등 문파가 있잖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이어서 말하라고 눈짓했다.
“이곳의 세력과 우리 쪽의 세력을 비교했을 때, 중도 8대 세가는 기껏해야 2등 세력밖에 안 돼.”
그 말을 듣고, 모든 이들의 낯빛이 급변했다. 양준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 수신전은?”
“가까스로 1등 세력이나 될까 하는 정도야.”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이 그쪽 세계의 실력을 너무 낮게 짐작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저한 실력 차이에 그는 차원 높은 세계를 더욱더 동경하게 되었다.
“지금 중도의 영기도 그런대로 짙은 편이지만, 우리 쪽에는 이런 곳이 곳곳에 있어. 큰 세력이 자리 잡은 곳은 영기의 농도가 중도의 열몇 배는 넘지. 그리고 수많은 성지도 있어. 중도는 그런 곳과 비할 수가 없어.”
수령은 가볍게 말했지만, 다들 이곳과 그쪽 세계와의 현저한 차이를 인지하게 되었다. 동시에 모두 부러워서 눈이 붉어질 정도였다. 현재 중도는 짙은 영기로 인해 이미 그들이 동경하는 수련 성지가 되었다. 그런데 수령은 그쪽 세계에는 중도보다 못한 곳이 없으며 심지어 더 좋은 곳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풍부하고 짙은 영기는 무인들이 수련할 때, 수련의 성과를 배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이런 지리적 우세가 있는 곳은 무인들의 쟁탈전을 야기하기도 했다.
양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수령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이미 반년 전 경지가 신유 경지 8단계에 달했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신유 경지 정상으로, 한 발 차이로 곧 초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수령과 같은 나이에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신유 경지 이상이 초범 경지라는 건 알고 있지. 그럼 초범 경지 이상은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
수령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상세하게 말해 줘.”
양소는 눈이 번뜩 뜨이며 겸손하게 가르침을 부탁했다.
“범인을 초월하면 성급(聖級)이 되지. 그래서 초범 경지 이상은 입성(入聖) 경지라고 불러.”
수령은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우리 쪽에서는 입성 경지 고수가 있는 세력만이 대형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어. 수신전에는 한 명밖에 없거든. 그래서 일등 세력에도 겨우 들 정도야. 그리고 비보와 천재지보의 등급도 달라. 너희 쪽에서는 현급이 최상이지만, 우리 쪽은 더 높은 등급인 영급, 성급의 비보와 단약이 있어.”
“영급, 성급?”
다들 깜짝 놀랐다.
수령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 쪽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은연중에 어떤 굴레가 있어 무인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같아. 또한 만들어 낸 비보와 단약의 등급도 제한을 받는 것 같아.”
수령은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 그쪽 세계에 대해 숨기지 않고 아는 만큼 다 말해 주었다.
수령의 이야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물었다. 그들은 알면 알수록 차원이 높은 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그곳의 모든 것은 그들의 이해 범위를 훨씬 벗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