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95화 (594/853)

제 595장. 보옥 속 진령을 분리시키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대화가 지속되었다. 누구 하나 따분하다고 여기는 이가 없었다. 다들 탐구욕이 불타오르는 어린이들처럼 수령을 통해 미처 몰랐던 경험과 견식을 넓혀 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모두들 입이 다 마를 정도였다. 수령은 귀찮음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한두 명이 물으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대전 안에 있는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이미 탈진할 지경이었다.

“이제 그만. 알면 알수록 더욱더 방황할 수밖에 없어요.”

양준은 수령의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계속해 물으려는 것을 저지했다.

“설령 그쪽 세계가 그렇게 대단하다 해도 꼭 그쪽으로 가야겠느냐?”

능태허가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꼭 갈 겁니다.”

소안과 하응상 모두 그쪽에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두 사람은 꼭 찾아야 했다.

“그래, 난 지지하마. 남자라면 그래야지. 자그마한 곳에 붙박여 있을 필요가 없어.”

“사부님, 고맙습니다.”

능태허가 지지를 표하자, 양응봉 부부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기 싫어도, 아들의 꿈을 그들이 어찌 막아설 수 있겠는가?

“제가 먼저 가서 알아볼게요. 어쩌면 우리 다 같이 그쪽 세계로 건너갈 수도 있어요.”

양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수령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게 한 것은 여러분께서 우리 세계와 다른 세계의 격차를 알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제가 간 다음, 모두 해이해지지 말고 수련에 매진하세요. 언젠가 제가 다시 돌아와서 여러분을 데리고 그쪽 세계로 갈 수도 있어요. 때가 됐을 때 실력이 너무 낮으면 곤란하니까요.”

“당연하지. 이런 것들을 몰랐으면 모를까, 이제 알았으니 지금처럼 해이하면 안 되지. 모두 다 같은 인간인데 왜 그쪽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강해야 하는데?”

곽성진의 눈동자에는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동시에 의욕이 충만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다. 곧이어 대전 안에는 양준과 수령만 남게 되었다.

양준은 의혹에 찬 눈빛으로 수령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왜 특별히 남아 자신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 떠날 거야?”

수령이 다급하게 물었다.

“너하고 뭔 상관이야?”

양준이 놀라서 되물었다.

“당연히 나하고 상관있지. 네가 조만간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지마가 그랬어. 아니면 내가 왜 줄곧 이곳에 남아 너를 도와줬을 거 같아?”

양준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거야?”

수령이 겸연쩍어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랬구나. 네가 왜 갑자기 이리 착해졌나 했지. 너를 집에 데려다달라고?”

“너 그쪽 세계로 가는 길을 알아?”

양준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무튼 난 너만 따라다닐 거야.”

“그래. 마침 나도 안내자가 필요했거든.”

양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언제 떠날 거야?”

수령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양준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만만해하는 것을 보아서는 그쪽 세계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처리할 일들이 좀 남았거든. 이곳에 좀 더 있어야 해. 한 달 정도.”

양준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좋아. 기다릴게.”

수령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씨 저택에서 나온 양준은 곧장 자신의 관저로 찾아갔다.

능태허의 말로는 몽무애가 실종된 다음, 관저를 감싸고 있는 천행궁을 누구도 운행할 수 없다고 했다. 천행궁이 결계를 펼쳐 관저를 보호하고 있지만 능태허 외에 다른 사람들은 나올 수만 있을 뿐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때문에 지금 관저는 텅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천행궁은 평범한 비보가 아니었다. 양준이 소안, 하응상을 찾으러 가기로 결정한 이상, 천행궁을 몽무애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관저 밖에 다다른 양준은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짐작했던 것처럼 천행궁의 통로가 열리며 그를 통과시켰다. 몽무애가 사전에 설치해 둔 모양이었다. 천행궁에 자유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양준과 능태허 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갈 수 있을 뿐,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밖에서 들어가려면 반드시 몽무애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썰렁한 관저에서 양준은 신식을 펼쳐 구석구석 샅샅이 훑으며 천행궁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다.

천행궁은 원래 손바닥만 한 작은 궁전으로, 진원을 주입하자 넓게 결계를 펼친 것이었다. 양준은 바로 그 궁전을 찾으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이나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천행궁을 몽무애에게 돌려줄 생각은 있지만, 그것을 운행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무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몽무애가 방심한 탓에 비보를 잃어버린 것으로 치면 되었다.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검은 책 공간에서 새빨간 옥을 꺼냈다. 물끄러미 그것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주저하는 빛이 서려 있었다. 이 옥은 애당초 여사의 양정옥상에서 얻은 것이었다. 양준은 여씨 저택에서 손님으로 있으며 소부생에게 서신을 써 주는 대가로 여사에게서 그의 좌선용 양정옥상을 얻었다. 그리고 양정옥상에 내재된 기운을 모두 흡수한 다음, 이 옥이 남게 되었다.

도봉과 당우선은 이 옥에는 이미 진령이 생겨났기에 몇백 년의 시간이 더 흐르면, 진령이 옥을 뚫고 나와 진정한 생명체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옥 속의 진령, 이는 전설로만 듣던 보물로 진령이 다 자란 다음에는 비할 데 없이 강한 전투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것은 초범 경지 고수도 피하려 하는 가공할 만한 전투력이라고 했다.

그때 당우선은 양준에게 진령이 위험천만하므로 절대 흡수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바깥 세계의 엄청난 실력을 알게 된 이상, 양준은 다시 진령을 흡수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경지는 낮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았다. 그쪽에는 초범 경지도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입성 경지의 고수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자신의 몸은 보호할 실력이 있어야 했다.

양준은 진령을 흡수해 초범 경지에 오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그래야만 미지의 세계에서 그나마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한참 동안 주저하던 양준의 얼굴이 드디어 결연해졌다.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 법, 어서 빨리 강해져야만 미지의 세계로 출발할 수 있었다.

위험한 만큼 기회일 수도 있었다. 천행궁이 보호하고 있으므로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두 손으로 옥을 꼭 잡고서 진양결을 돌리기 시작했다. 강한 흡입력이 옥의 양성 원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양성 원기는 끊임없이 양준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자그마한 옥에 내재된 기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다. 그는 살짝 놀란 나머지, 자세히 감지해 보았다. 양성 원기는 경맥에 흘러들었고, 경맥은 재빨리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똑-

양액이 만들어져 단전에 흘러들었다.

똑- 똑-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연이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준은 흐뭇한 얼굴로 흡수하다가 이내 얼굴빛이 살짝 바뀌었다. 옥 속의 기운은 그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흡수하고 나니 단전에는 양액 이백여 방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옥이 한꺼풀 벗겨졌다. 그러자 손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따가움이 전해졌다. 이와 동시에 무시무시하고 파괴성을 띤 기운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양준은 얼굴빛이 급변하며 재빨리 수중의 옥을 바라보았다. 옥은 이미 액체로 변해 그의 손가락 틈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손은 피범벅이 되었다. 이런 뜨거운 열기는 그조차도 견뎌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재빨리 물러섰다.

화르륵-

옥이 변한 액체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커다란 불꽃이 폭발하며 뜨거운 열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순간 그의 시야가 흐려졌다.

잠시 뒤, 정신을 가다듬은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순간, 그가 원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던 자리에는 사람 모습의 주황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무섭게 타올랐다. 그것은 험상궂고 흐릿한 외모에 사지가 온전했다. 그리고 오직 불꽃의 정수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휩쓸면서 양준 관저에 불이 붙었고, 집들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었다.

곧이어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양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람 모습의 불꽃에서 파괴성이 강하고 포악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옥 속의 진령은 이미 생명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대성(大成)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강제로 옥 속에서 분리해 내다 보니 그것은 오직 원초적인 본능밖에 없었다. 진령의 원초적인 본능은 바로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화르륵-

진령의 몸속에서 불줄기가 튀어나오더니 한쪽에 서 있는 양준에게로 달려들었다. 불줄기는 번개같이 빨랐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양준은 안색이 급변하며 서둘러 피했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가 팔을 스쳤고, 팔의 피부는 마치 메마른 땅처럼 빠르게 갈라졌다. 밀려오는 통증에 그는 그만 신음을 흘렸다.

그는 진령의 눈빛을 보고서 놀라는 동시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진양결을 수련했기에 그의 몸속의 진양원기는 강하고 순수했다. 그는 어지간한 고온을 모두 견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령의 온도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진령의 고온은 이미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경지에 이른 듯했다.

그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령이 또다시 공격해 왔다. 이곳에서 생명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건 양준뿐이었다. 때문에,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진령은 그를 목표물로 삼았다.

불꽃들이 불줄기가 되어 일렁였다. 그것들은 진령의 몸속에서 튀어나와 눈 깜짝할 새에 양준을 겹겹이 에워싸더니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양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사방팔방에서 불줄기가 포위해 오자 그는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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