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1장. 죽음의 지대
수령은 양준에게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바싹 뒤쫓았다. 그녀도 신유 경지 정상이었지만, 이곳은 왠지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양준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 그의 안색이 변하더니 수령을 끌고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십 장 뛰어가자, 등 뒤에서 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 수령은 저도 모르게 사색이 되었다. 뒤쪽에는 하늘까지 치솟을 듯한 회오리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대지를 산산조각 냈고, 바람 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바짝 따라붙어.”
양준이 당부했다.
“이곳의 기운은 혼란스러워서 자칫하면 죽을 수 있어.”
수령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이곳은 위험하기만 하고 천재지보도 없는데 왜 천랑국 무인들은 이곳에 기연을 찾으러 오는 걸까?”
“이 혼란스러운 기운이 바로 무공이 나타나는 방식이라서 그래.”
양준이 설명해 주었다.
“무공이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수령은 깜짝 놀랐다.
“응, 누군가 아주 오래전에 비밀을 지키려고 이곳에 등급이 높은 무공을 대량으로 숨겨 두었거든. 그 사람은 특별한 방법으로 무공들의 파괴력을 오랫동안 보존했지. 시간이 흐르면서 무공들은 흩어졌고 기운도 혼잡해졌지만, 기운 속에는 여전히 절정의 고수가 숨겨둔 비밀이 있어. 이 기운 속의 오묘한 비밀을 알아낸다면 무공도 익힐 수 있는데, 고수들이 혹하지 않겠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누구야?”
수령은 호기심이 생겼다.
“무공의 파괴력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해?”
“불가능할 게 뭐가 있어? 그 사람은 너도 본 적 있는 사람이야.”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군데?”
수령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러나 양준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수령은 몇 번 더 물어보다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역시 거짓말이구나? 자맥 낭자도 모르는 이곳의 비밀을 줄곧 대한국에 있었던 네가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그것 외에 천랑국 고수들이 목숨 걸고 이곳에서 기연을 찾도록 만들 이유가 또 있을까?’
수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앞으로 걷는 내내 한 시진마다 난폭한 기운의 습격을 받았다. 갖가지 속성을 띤 기운들이었는데, 그것들은 온갖 방법으로 기습을 가했다.
양준은 경계심이 강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때마다 그는 수령을 데리고 위험한 곳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이삼 일 동안 길을 재촉하자, 수령의 모습은 거지처럼 얼굴이 먼지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그녀의 자랑인 담청색 머리카락도 더 이상 전처럼 찰랑거리지 않고 부스스하게 어깨에 드리워져 있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마주치는 위험도 점점 많아지고 혼란스러운 기운도 점점 강해졌다. 수령은 깊은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녀는 양준의 목표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양준이 반드시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같은 시각, 폐토의 다른 한 곳.
열몇 명의 신유 경지 고수들이 빛을 내는 구체를 쫓고 있었다. 구체는 전기가 번쩍거리며 위력을 뽐냈다.
신유 경지의 고수들은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고수가 지시를 내리자 그들은 좌우로 흩어져 구체를 막으려고 했다. 구체를 잡아 그 속에 감춰진 오묘함을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한동안 애를 쓴 덕에 거의 성공할 무렵, 누군가 갑자기 먼 곳에서 그들을 습격해 왔다. 그 사람은 난폭하고 위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대지가 크게 흔들거렸다.
“누구냐?”
우두머리가 화를 냈다.
“형종이다!”
형종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마음속의 울화를 억누르는 것만 같았다. 다들 그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형종이라고?”
우두머리 고수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 그는 다급히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한 뒤, 공손한 태도로 공수하며 말했다.
“삼라전의 형 전주가 맞으시군요.”
삼라전은 천랑국의 유일한 대형 세력이었다. 삼라전 전주의 지위는 천랑국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들도 천랑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지만 형종의 앞에서는 자세를 낮추고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형종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두머리 고수는 웃는 얼굴로 물었다.
“형 전주께서도 폐토에 기연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형종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럼 형 전주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수는 더욱 궁금해졌다.
폐토는 좋은 곳이 아니었다. 기연 때문이 아니라면 이곳에 왜 왔다는 말인가?
“내 아들이 대한국의 무인 두 명에게 죽임을 당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그 두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형종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
“아드님께서 살해당하셨다니요? 게다가 대한국의 무인한테요?”
다른 고수들도 화가 치밀었다.
삼라전은 천랑국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지만 전주의 아들이 대한국의 무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누구라도 타지의 적에게는 적개심을 품는 법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이곳에 들어온 것으로 보아 꽤나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수가 중얼거렸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찌 감히 폐토로 들어오겠는가?
“형 전주,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형종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그들의 종적을 찾을 수 있으니 나를 따르거라. 만약 두 놈이 도망치려 한다면 날 도와 막아다오.”
“형 전주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고수는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잡으려던 구체를 포기하고 다급히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형종을 따라갔다. 구체를 포기하는 것은 조금 아까웠지만, 지금 형종을 돕는다면 나중에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또 천랑국의 무인들을 만났다. 네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형종의 말을 듣고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이렇게 초범 경지 한 명, 신유 경지 이십여 명이 기세등등하게 양준과 수령을 쫓기 시작했다.
멱종충이 있기에 형종은 양준을 찾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암수의 특성상, 수컷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암컷 멱종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양준과 수령은 여전히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폐토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과 곧 들이닥칠 위험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던 그들 앞에 갑자기 시커먼 어둠이 나타났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몽무애는 소식을 전할 때, 너무 급해서 상세하게 알려 주지 못했다. 때문에, 양준도 폐토에서 길을 잃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깊은 어둠을 발견한 그는 드디어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다 왔어!’
그곳에는 허공 통로가 있었다. 허공 통로를 지나면 바로 통현대륙이었다.
“양준, 난 불안한 느낌이 들어.”
수령은 몸을 덜덜 떨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왠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긴 해.”
양준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그는 수령과는 다른 뜻으로 한 말이었다. 곧이어 그는 몸을 홱 돌리더니 실눈을 뜨고 뒤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그림자들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들은 이곳과 백여 장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다가오기 두려운 듯, 걸음을 멈춘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수령은 비명을 질렀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줄이야. 게다가 기운을 감지해 보니 상대방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양준, 수령과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스무 명이 넘는 신유 경지 고수들과 형종은 걸음을 멈추고 무거운 얼굴로 앞쪽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형 전주, 앞은 폐토에서 절대적인 죽음의 지대인데 정말 가야 합니까?”
처음 합류했던 일행의 우두머리 고수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절대적인 죽음의 지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든 살아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초범 경지의 고수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천랑국의 초범 경지 고수가 폐토에 숨겨진 오묘한 비밀을 찾으려고 들어왔다가 바로 이곳에서 죽었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천랑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 뒤로 그곳의 반경 백 장 범위는 절대적인 죽음의 지대로 불리기 시작했다.
폐토에 기연을 찾으러 온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멀리했다. 하지만 그들이 쫓는 대한국의 두 무인이 이곳으로 도망쳐 왔을 줄이야. 그들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형종도 머뭇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그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뒤, 그는 꿋꿋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려워할 게 뭐가 있나? 저들도 아무 일 없이 무사한데. 내가 보기엔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 같군. 다들 용기가 없으면 밖에서 구경이나 하라고. 한낱 대한국의 무인 둘 뿐인데, 나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네.”
형종이 스무 명의 무인들을 데리고 온 것은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였다. 초범 경지인 그에게 대한국 무인 두 명을 처리하는 것 따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폐토에서는 모든 것을 평소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모아 온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화난 얼굴로 들어갔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도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를 따라 들어갔다.
백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다섯 장 가까이 거리를 좁힌 형종은 양준과 수령의 얼굴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쫓아온 대한국의 무인이 이렇게 젊었을 줄이야.
“삼라전 전주?”
양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형종은 코웃음을 치면서 얼굴을 씰룩거렸다.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신분을 알아보다니. 네가 내 아들을 죽인 놈이냐?”
양준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라 얘가 죽인 겁니다.”
그는 말하면서 옆에 있는 수령을 가리켰다. 수령은 가슴을 쑤욱 펴면서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양준의 등 뒤에 슬쩍 숨었다. 그녀는 양준이 초범 경지의 고수 앞인 데도 어째서 전혀 겁을 먹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침착한 양준의 표정을 보고 반드시 믿는 구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종은 실눈을 뜨고서 매서운 눈초리로 수령을 바라보았다. 그는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너희들 중 누가 한 짓이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양준은 느긋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형 전주는 우리가 무슨 대가를 치르기 바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