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07화 (606/853)

제 607장. 어느 망할 녀석이 만든 비보인가?

그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신식으로 누군지 살펴본 뒤, 손을 휘저어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령이 달빛을 받으며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양준이 물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너랑 얘기나 할까 하고.”

수령은 의자에 털썩 앉아 스스로 차를 따랐다.

“오늘 낮에 잠깐 나갔던데 집에 연락하러 간 거야?”

“너 알고 있었어?”

수령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집에 전갈을 보냈어. 독오맹에 우리 수신전의 사무처가 있거든. 실종된 지 2년이나 넘었잖아. 보름 뒤에 수신전에서 날 데리러 올 거야.”

“넌 수신전에서 정확히 위치가 어떻게 돼? 지위가 낮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하하, 아버지가 수신전의 전주야.”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수신전의 공주님이었군.”

수령은 입을 삐죽거렸다.

“공주면 뭐? 네 관저에 있을 때, 너한테 괴롭힘이나 당했잖아. 네가 멋대로 주물럭거리고.”

양준은 웃으며 물었다.

“지금 복수하려는 건 아니지?”

“난 그렇게 심심하지 않거든.”

수령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부탁이 있긴 해. 네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수령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뭔데?”

“우리 수신전에 들어오지 않을래?”

수령이 물었다. 양준은 이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나더러 들어오라는 건데?”

“너한테서 많은 기적을 보았거든. 네 능력이면 통현대륙에서도 큰일을 할 거라 믿어. 그래서 네가 우리 수신전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거지. 너만 허락한다면 최고의 수련 환경을 제공하고, 네가 빠른 속도로 실력을 올릴 수 있게 도와줄게. 그리고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친구들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지? 우리 수신전의 도움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건이 좋네.”

양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넌 그럴 만해. 그리고 나도 이런 조건을 내걸 능력이 되고.”

“믿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전의 공주인 그녀에게 이 정도 일은 수월할 터였다.

“그럼 받아들일 거야?”

수령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양준은 고개를 젓고 나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날 좋게 봐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도 중도에서 봐 왔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거야.”

“당연히 알지. 너에게 제한을 두거나 그러지 않을게. 네가 수신전에 들어오기만 하면 나머지는 모두 네 자유야.”

“수신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제한이야.”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수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녀는 양준이 오늘 술을 많이 마셔서 충동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는 여느 때보다도 정신이 맑았다.

“됐어. 나도 강요하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수신전에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말해.”

양준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밤이 지나고 이튿날이 되자 운훤이 찾아와 두 사람에게 독오성의 경치를 구경하자고 제안했다. 양준도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고 싶었던지라 흔쾌히 동의했다.

멀쩡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양준은 그녀의 주량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택의 하인에게 들은 바로는 어젯밤 운훤 소대의 남자들은 모두 쓰러졌지만, 운훤은 홀로 술 몇 동이를 더 마시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양준은 그녀의 주량에 놀라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독오성은 작지 않았다. 면적으로 보면 중도보다 크지 않았지만 저쪽 세계의 성곽과 비교하면 규모 자체가 달랐다. 하늘에서는 이따금씩 기괴하게 생긴 요수들이 날아다녔고, 요수들의 등에는 모두 무인들이 타고 있었다. 요수를 탈것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싣고 다니는 비행 비보로도 쓰고 있었다. 모양새가 모두 달랐지만 하나같이 아름답고 눈부셨다.

운훤은 독오성의 공중에서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신분이 낮은 이들은 땅에서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계급 차이와 신분 차이가 현저한 것은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공통점이었다.

독오성은 떠들썩하고 번화했다. 양준은 길을 가면서 무인들의 경지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통현대륙에서 신유 경지의 무인은 보편적인 존재였다. 그가 지나치면서 본 독오성의 무인들 중 6할은 신유 경지였고, 가끔 초범 경지도 있었다.

저쪽 세계에서 신유 경지는 대단한 등급이었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진원 경지도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신유 경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양준과 수령은 운훤을 따라 한 대전에 들어섰다. 그곳은 많은 무인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긴장되고 기대 어린 표정이었고, 나가는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괴로운 표정이었다. 이에 양준은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매우 궁금해졌다.

대전 안에는 많은 별실이 있었다. 그리고 별실 밖에서는 무인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훤은 양준과 수령을 데리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별실 앞으로 갔다.

별실 바닥에는 두터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에는 생동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다. 가운데 위치한 향로에서는 진귀한 향초가 타오르고 있었고 방 안은 따뜻했다. 그리고 몸집이 뚱뚱한 노인이 태사의(太師椅)에 앉아 거만하게 눈앞의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운훤과 함께 입구에 나란히 선 양준은 마침 노인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창공독우(蒼空毒羽)가 없이는 비보를 고쳐 줄 수 없네. 게다가 자네는 우리 독오맹의 제자도 아니지 않나? 그러면 보수도 2할은 높아야 한다네. 자네는 재료도 없고 보수도 없는데 나더러 어찌 일을 하라는 건가? 내가 뭐로 보이나?”

그는 말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만 가게나. 재료를 찾고 돈을 구하거든 다시 찾아오게. 아니면 다른 연기사를 찾아가든가. 그들은 나처럼 보수를 많이 요구하지 않을 거야.”

“대사님……!”

무인은 더 애원하고 싶었지만 노인이 눈을 부릅뜨자 뒷말을 삼켜 버렸다. 그는 실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떴다. 입구를 지날 때,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은 그의 손에 든 비보와 아까 노인이 한 말을 떠올리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챘다.

안에 앉아 있던 노인은 밖에 서 있는 운훤을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운 낭자, 어서 들어오게.”

운훤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馬) 대사님!”

노인은 활짝 웃었다. 방금 전에 무인을 대할 때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운훤을 살갑게 대했다. 양준은 운훤에게 무슨 매력이 있기에 노인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아무리 독오맹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럴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그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은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바라보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음탕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또 무슨 비보가 망가졌나? 어디 보자고.”

마 대사라 불린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운훤은 귀엽게 혀를 홀랑 내밀고는 손을 살짝 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빛이 나타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긴 창 모양의 비보였다. 비보에 전류가 번쩍이는 것을 보아 등급이 낮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긴 창은 약간 벌어져 있었다. 창날에도 거뭇거뭇한 점들이 보이는 것이 부식된 것 같았다.

“자네가 어려운 싸움을 한 모양이군.”

마 대사는 어두운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운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여인의 몸으로 그렇게 애를 써 무엇하나?”

운훤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조심하지 않아 그렇게 됐어요.”

“자네도 참. 내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먼.”

“그럼 혼내지 마세요!”

운훤은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재료와 정석을 꺼내서 마 대사에게 건넸다.

“이건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보수예요.”

“보수는 됐네.”

마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독오맹의 일반 제자인데 어떻게 규칙을 어길 수 있겠어요?”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네. 그 정도 권리는 나한테도 있다네. 왜, 나를 무시하는 건가?”

마 대사는 짐짓 화난 척,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운훤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하는 수 없이 정석을 도로 넣었다.

“사흘 뒤에 가지러 오게. 이번에는 다시 망가지지 않도록 고쳐 놓겠네.”

마 대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마 대사님.”

운훤은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대사님께서 비보를 복구해 주십니까?”

줄곧 옆에서 살피던 양준이 물었다.

마 대사는 격을 차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팍에는 특별한 표식이 있었다. 양준은 그 표식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연기사의 증표일 거라고 짐작했다. 연단사의 가슴팍에 달린 표식과 같은 의미인 것 같았다.

마 대사는 그 말에 고개를 들고 양준을 바라보며 실소하였다.

“연기사니 물론 복구도 할 수 있지. 자네는 운훤 소대의 새로운 대원인가?”

양준이 고개를 젓자, 운훤이 재빨리 대답했다.

“대사님, 이 사람은 제… 음, 친구예요. 대원이 아니라.”

마 대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친구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나 보군. 독오맹의 비보전(秘寶殿)에 들어왔으면서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외딴 곳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나 봐요.”

운훤은 얘기하면서 몰래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우리 독오맹의 비보전이에요. 안에는 조예가 깊은 연기사들이 계시죠. 마 대사님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단하신 분이에요. 어떤 비보든지 모두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으시거든요.”

그녀는 문득 뭔가 떠올랐다.

“복구가 필요한 비보가 있나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뼈 방패를 꺼냈다.

뼈 방패는 중도 지하에서 큰 충격을 막아낸 뒤로 약간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폐토에서 흡수한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바람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양준은 기회를 찾아 그것을 복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운훤이 그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참 공교롭기도 하지.’

마 대사는 뼈 방패를 받아 들고 살며시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 진원으로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다가 그만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어느 망할 녀석이 만든 비보인가?”

양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릅니다.”

“한심해, 너무 한심해. 이 비보에 사용된 재료는 귀중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낮은 등급의 비보로 만들어질 정도는 아니었어.”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현급 하품은 저쪽 세계에서 사람들이 탐낼 만한 등급이었다. 그런데 마 대사는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법도 조악하기 그지없군. 이 비보를 만든 연기사는 끌어 내서 벌을 받아야 해.”

마 대사는 화난 얼굴로 씩씩거렸다.

운훤이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대사님께서는 무기 제조에 대해 매우 엄격하세요.”

그 말에 양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대사는 연기술에 푹 빠진 이였다. 그러다 보니 무기 제조에 대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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