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09화 (608/853)

제 609장. 연단의 첫 걸음

양준은 자그마한 향로를 쓰다듬고는 그 속에 진원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원이 일정한 노선에 따라 향로 안에서 흐르게 했다. 곧이어 향로에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빛이 나타남에 따라 향로가 커지더니 곧 항아리 크기가 되었다.

양준은 진원 주입을 멈추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 가마의 크기는 어떻게 보면 연단사의 조예가 깊은지를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약 가마가 클수록 연단사의 수준이 낮았다. 연단할 때, 연단사는 진원으로 약 가마에 서로 다른 영진을 각인해 약효를 촉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약재가 가마 안에서 충돌 작용을 거쳐 단약으로 응고되게 해야 했다.

조예가 높은 연단사는 아무리 작은 가마라도 영진을 정확하게 각인할 수 있고 불 조절도 잘 할 수 있었다. 항아리 크기의 약 가마는 양준이 연습하기에 제격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약 가마는 연단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진원을 좀 더 주입하면 이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양준은 한 가지 단약의 배합을 떠올린 다음, 하급 재료 무더기에서 약재를 찾아 한쪽에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끊임없이 수인을 맺는 동시에, 약 가마 안에 진원을 주입했다. 곧바로 간단한 영진 하나가 약 가마 안에 각인되었다.

우선 손을 좀 풀어야 하기에 양준은 연단 성공률이 높은 영진을 선택했다. 이는 기초 영진으로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라면 초보인 그도 영진의 각인과 안정성을 제어할 수 있었다. 양준은 약 가마 안의 영진을 감지해 보고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골라 낸 하급 재료들을 순서에 따라 약 가마에 넣는 동시에 진원을 주입했다. 뜨거운 진양원기로 약효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연단진결 속에 있던 여러 연단대사들의 소중한 깨달음과 경험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는 눈앞의 상황과 하나하나 비교해 보았다.

양준은 진원 주입을 조심스럽게 제어했다. 진원을 얼마나 주입하는 지도 약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많이 주입하면 약재가 타버릴 것이고, 적게 주입하면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단약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연단은 무척이나 세심한 작업으로 자신의 진원을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약재들이 양준이 주입한 진원의 작용으로 녹아내려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할 무렵, 약 가마에서 갑자기 검은 연기가 솟구치더니 약초 타는 냄새가 방 안에 가득 찼다.

그는 진원 주입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연단은 완전 실패였다. 진원을 주입하는 데 문제가 있는 듯했다. 힘 조절을 잘 못해 약재가 모두 타 버린 것이다.

그는 약 가마 안에서 타 버린 약초를 꺼낸 다음 곧장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방금 전의 느낌을 되새기며 정확한 방법과 대조해 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는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방금 전의 실패로 약 가마 안의 영진이 모두 타 버렸기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선 진원으로 약 가마 안에 필요한 영진을 꼼꼼하게 각인했다. 그러나 이번 시도는 처음 것보다도 못했다. 자그마한 실수로 살짝 삐끗하는 바람에 거의 다 각인되어 가던 찰나, 영진이 폭발해 버렸다.

양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제야 연단 지식을 깨닫는 것과 직접 단약을 제련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험해 보니 하응상의 타고난 재능이 정말 시샘이 날 정도였다. 그녀는 약령성체이기에 마음대로 연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약재든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손쉽게 그녀가 원하는 정도로 융합되기 때문이었다.

세 번을 연거푸 실패하고 나서야, 영진이 약 가마에 제대로 각인되었다.

영진을 각인하는 동안은 특히 정신을 더욱 집중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 되었다. 게다가 영진은 단번에 완성시켜야지 와중에 실수나 오차가 있으면 붕괴되기 십상이었다. 영진을 각인하는 것은 정력과 진원의 소모가 엄청났다.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완성되어야만 영진이 각인되고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말로는 쉽지만 직접 해보면 산 넘어 산이라 미쳐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양준은 끈기가 있는 편이라 한두 번의 실패에 낙담하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경험을 쌓아 성공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영진이 안정되자 양준은 다시금 순서대로 가마에 약재를 넣었다. 그러고는 진원을 주입해 약재들로 약물을 만들었다. 여러 약효들이 나타나면서 약물이 점차 덩어리가 되어 갔고, 충돌 작용을 거쳐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더 조심스럽게 제어했으나 결국 마지막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양준은 약재 속의 이물질을 제거해 약물을 순수하게 만들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 가마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탄내가 다시 한번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방 안에 앉아 조용히 생각하면서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동안 운기 조식해 정력이 회복되면 다시 연단을 시도했다.

실패, 또 실패…….

누구라도 실패가 거듭되면 무기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양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못쓰게 된 재료를 가마에서 꺼내고 다시 전과 똑같은 절차를 반복했다. 그는 한 번 실패할 때마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긴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연단이라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양준은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방 안에는 폐기된 재료가 점점 쌓여 갔고, 탄내도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해이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얼마나 지났을까, 정석 쉰 개로 사온 하급 재료의 8할 정도가 모두 소모되었지만, 양준은 여전히 단약 한 알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연단에 푹 빠져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단약 제련에 몰두했다.

양준은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시도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리 은연중에 꼭 성공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영진 각인은 이미 익숙해져 잠깐 사이 약 가마에 영진이 생겨났다.

하급 약재들이 하나하나 약 가마에 들어갔고 진원을 주입함에 따라 녹아내려 약물이 되었다. 진원은 약물 속을 누비면서 그 속의 이물질을 태워 불필요한 성분을 제거했다. 양준은 모든 과정에서 조금의 오차도 없이 노련하게 제어했다. 단약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곧이어 은은하고 상큼한 약 향기가 가마에서 퍼져 나왔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더욱더 정신을 집중해 진원의 강약을 제어하면서 불을 조절했다. 또 한참이 지나서 약물이 최대한으로 응고되었을 때, 양준은 진원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동시에 약 가마 안의 영진도 빠르게 수축되면서 마치 그물처럼 모든 약물을 감싸 동글동글한 단약으로 만들었다.

또르르-

약 가마에서 청량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온통 땀투성이였지만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 가마에서 단약을 꺼냈다.

상큼한 약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조그마한 단약에는 양준의 모든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지만 그 속에는 모든 약재의 약효가 들어 있었다. 한참 동안 감지해 보고서, 양준은 난생처음으로 만들어 낸 단약이 겨우 범급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사용한 재료는 모두 지급이었다. 통현대륙에서 범급의 약재는 채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들은 길가의 잡초처럼 아무 가치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급은 그나마 쓰임새가 있는 편이었다.

지급의 재료로 범급의 단약을 만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양준은 만족하기로 했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 낸 단약이었다. 양준은 단약을 들고서 만든 과정에서 느낀 바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만약 약효를 좀 더 촉진시키고, 이물질을 더 깨끗하게 제거하고, 불 조절을 좀 더 잘한다면 단약의 질이 한층 더 나아질 것 같았다. 이번 성공을 통해, 그는 연단술의 심오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연단에서의 각종 현묘함에 대해서도 인지하게 되었다.

합격된 연단사가 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수많은 실천과 경험을 쌓아야 했다. 그는 이번에 단약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적지 않은 경험을 쌓게 되었다.

한동안 쉬고 나서, 양준은 다시 연단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양준은 정석 쉰 개로 사온 약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사용했다.

*양준이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밖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 찾아온 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고는 손을 휘저어 방 안을 감싸던 결계를 없애고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수령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는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고는 저도 모르게 손부채질을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냄새야?”

양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곧 운훤과 계홍도 다가왔다.

양준이 그동안 연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계홍은 앞으로 다가와 양준에게 눈을 찡긋했다.

“어떻습니까? 좋은 단약 만들어 냈나요? 저희한테도 좀 나눠 주시죠?”

“계홍!”

운훤이 계홍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녀는 한눈에 양준이 연단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흥적으로 약재를 사 심심풀이로 연단을 시도해 보았다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없이 단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단약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웠으면 연단사의 신분이 존귀할 리가 없었다.

운훤은 방 안에서 풍겨 나오는 탄내와 한쪽에 쌓인 폐기된 재료들을 보고서 양준이 열흘 동안 어떤 좌절을 맛보았을지 알 수 있었다.

“허허, 그냥 말해 본 겁니다.”

계홍은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는 그냥 생각없이 한마디 한 것이었다. 운훤은 미안한 표정으로 양준을 힐끔 보더니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정말 연단하고 싶다면 독오맹 단회(丹會)에 견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소개해 줄 게요.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이렇게 혼자서 연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전 그냥 심심풀이로 시도해 본 거니까요.”

양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운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참 재밌는 녀석이야! 분명 연단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혼자 방 안에서 연습하면서도 가르침을 거절하다니. 그런데 그런 식이면 아마 평생 가도 단약을 만들어 내지 못할 텐데!’

하지만 이런 일은 그녀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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