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0장. 같이 가도 될까요?
“양준, 수신전에서 데리러 왔어.”
수령이 말했다.
“어, 그래? 축하한다.”
양준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작별인사라도 하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수령이 대답했다.
수신전에서는 이미 이틀 전에 독오성에 도착했다. 그러나 양준이 줄곧 방에서 폐관 수련을 하는 바람에 수령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양준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준 것이기에 인사를 안 하고 갈 수는 없었다.
이별이 다가왔으나 수령은 전혀 슬퍼하지 않고 기쁜 표정으로 양준 일행과 내내 웃고 떠들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운훤 소대의 저택 밖에는 호화롭게 장식된 비행 비보가 세워져 있었다. 비행 비보는 기이하고 늠름한 요수 몇 마리가 끌고 있었는데 요수 발 밑으로 바람의 기운이 꿈틀댔다. 양준은 이를 보고 저도 몰래 혀를 내둘렀다.
“소저!”
비행 비보 밖에는 초범 경지 고수가 기다리고 있다가, 수령이 나오자 차가운 표정으로 서둘러 인사했다.
수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준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양준, 고마워. 음, 이 옥패는 네가 가지고 있어. 아무 때나 도움이 필요하면 수신전에 찾아와. 그리고 네 친구들의 소재 파악도 신경 쓸 거야. 만약 소식이 있으면 꼭 전할게.”
“고마워.”
양준은 물빛 옥패를 건네받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초범 경지 고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소년이 무슨 재주로 수신전 공주의 눈에 들어 물빛 옥패마저 선물 받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운훤도 눈동자를 반짝이며 의혹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수령은 그들의 저택에 열흘 동안 머물렀고, 서로 간에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양준과 수령이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이만 갈게.”
수령이 방그레 웃고는 뒤돌아 비행 비보에 올랐다.
초범 경지 고수는 차가운 얼굴로 양준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마부석에 앉았다. 이윽고 그의 몸속 진원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더니 요수 몇 마리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비행 비보는 밝은 빛을 반짝이며 하늘로 날아오르고는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역시 수신전의 공주님이셔. 비행 비보가 너무 멋있잖아.”
계홍을 포함한 몇몇은 부러운 눈빛으로 수령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수령이 타고 간 것은 전문적으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비행 비보로 등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만들기도 힘들었다. 수신전 정도의 세력들만이 보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수령을 보내고 나서 운훤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비보전에 가서 뼈 방패를 찾아오죠. 마 대사님께서 아마 잘 복구해 놓았을 거예요.”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며 은근히 기대했다. 이제 그에게 비보라고는 식해 속의 신혼 단검 외에 뼈 방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통현대륙에서는 고수가 수없이 많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뼈 방패가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양준은 운훤이 주는 공선옥도 거절하지 않고, 빙염성사까지 소모하면서 마 대사에게 뼈 방패를 맡겼던 것이다. 뼈 방패가 있으면 그는 좀 더 안전해질 수 있었다.
다른 대원들도 그 말을 듣고 모두들 따라가서 양준이 어떤 등급의 비보를 쓰는지 구경하려고 했다. 운훤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이 뒤따르게 내버려 두었다.
운훤은 양준을 데리고 지난번 갔던 비보전의 가장 안쪽 별실에 들어갔다. 마 대사는 양준을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뼈 방패를 건네주었다.
뼈 방패는 수수해서 특별히 이목을 끄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손에 드는 순간, 양준은 뼈 방패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겉에 드러나 있던 파손된 흔적이 모두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부러졌던 가시도 모두 복구되었다. 게다가 방패를 손에 드는 순간, 살을 에는 차가움이 전해졌다. 이는 빙염성사의 특성 때문이었다.
뼈 방패는 이전보다 등급이 훨씬 높아졌다. 양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현급 상품일세. 안타깝게도 영급 비보로는 제련하지 못했다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할 걸세. 초범 경지 이하의 무인들은 자네의 방어를 뚫지 못할 테니까. 초범 경지 고수와 맞서도 공격을 막을 정도의 힘은 있을 거네.”
마 대사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사님.”
양준이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는 안 해도 되네. 이건 내 직업이니까 거래일뿐일세. 이번에는 운 낭자의 낯을 봐서 싸게 해 주었지만, 다음번에 다시 찾아오면 지금처럼 후하게는 해주지 않을 거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흰 이만 가 볼게요.”
마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한마디를 덧붙였다.
“운 낭자, 몸조심하게나. 그리 죽기 살기로 할 필요는 없잖는가.”
“알겠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보전을 떠나 밖으로 나오자, 독오맹의 대원들은 양준의 비보를 구경하자고 떠들어 댔다. 이에 양준도 거절하지 않고 뼈 방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다들 뼈 방패를 보고 부러워했다. 그들 역시 현급 비보를 쓰고 있으나 대다수가 현급 하품이었다. 그리고 뼈 방패는 방어 비보였다. 이런 방어 비보가 있으면 전투에서 한층 더 안전해질 수 있는 만큼, 모든 대원들이 원하는 보물이기도 했다.
“양준, 우리는 이만 헤어져야 할 거 같군요.”
운훤이 미안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파에서 임무가 내려와 곧 이곳을 떠나야 하거든요. 개의치 않는다면 계속해 저택에 머무를 수 있어요. 다만 저희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같이 가도 될까요?”
“함께 가겠다고요? 혹 우리 독오맹에 들어올 생각인가요?”
운훤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생긋 웃으며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제가 공선옥을 빚졌잖아요. 함께 가면 새로운 기연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수는 따로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운훤은 짙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양준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녀는 양준에 대해 잘 몰랐다. 요 며칠도 수령의 낯을 봐서 그를 잘 대해 준 것이었다. 수령이 떠난 지금, 그녀는 양준과 인연을 더 쌓을 필요가 없었다. 공선옥은 그냥 수신전과 줄을 대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녀로서는 그 정도 대가를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다.
양준이 급작스럽게 그들과 함께 움직이겠다고 하자, 운훤은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신유 경지 7단계라면 오직 경지만 놓고 봤을 때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준은 나이가 어렸고, 실제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위험천만한 순간에 그가 당황해서 일을 그르치면 자신의 소대에 불필요한 손실을 입힐 수도 있었다. 운훤은 대장으로서 더욱 많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저를 데리고 갔다가 혹시 뜻밖의 기쁨이 있을지도 모르죠. 대장님의 지휘에 따를게요.”
양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뜻밖의 기쁨이라?”
운훤은 생긋 웃고서 한동안 주저했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빚을 갚고 싶다면 거절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꼭 기억해 두세요. 밖에 나가서 움직일 때 모든 것은 저의 명령에 따라야 해요. 만약 당신 때문에 대원들이 위험에 부닥치게 되면, 당신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예요.”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동의를 표했다. 그는 남에게 빚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공선옥의 가치만큼만 도움을 줘서 운훤의 빚을 갚게 되면, 이들과 갈라져서 몽무애 일행을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그럼 가죠.”
운훤이 손을 흔들었다. 따로 더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운훤 소대는 모두 노련한 대원들로 사전에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운훤을 따라 독오성을 나서자, 계홍은 양준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뜻밖의 기쁨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요? 댁을 데리고 가면 어떤 기쁨이 있나요?”
양준은 이미 계홍의 붙임성 좋은 성격과 오지랖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양준은 가는 내내 가치 있는 물건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강한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대신 대원들의 한담을 통해 그들의 이번 임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독오성에서 약 7, 8일 정도 가면 있는 천엽삼림(千葉森林)에 갑자기 정체불명의 요수가 나타나 오가던 무인과 독오맹의 제자들이 적지 않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천엽삼림은 독오맹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삼림 속에 진귀한 약재가 많을뿐더러 삼림 중심부에 일석광맥(日錫鑛脈)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석광은 등급이 높지 않지만 연기사들이 무기를 제련할 때 쓰임새가 많았다. 이것이 바로 천엽삼림의 가치였다.
도망쳐 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요수의 등급이나 경지는 그리 높지 않아 대부분이 6급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이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먼저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운훤 소대의 이번 임무는 먼저 간 사람들과 합류해서 요수들을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요수의 요단과 신체 각 부위, 그리고 피는 단약과 무기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였다. 넝쿨째 굴러떨어진 호박을 독오맹에서 줍지 않을 리 없었다.
내내 질주하다가 중간에 조금씩 쉬며 7~8일 정도 지나자 드디어 끝없이 펼쳐진 삼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삼림 외곽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운훤 일행을 보자 기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왔어요?”
진심 어린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에는 연모의 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는 운훤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할 때도 상기된 표정으로 운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운훤은 살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주락(周駱), 어떻게 이곳에 왔어요? 다른 임무를 맡은 게 아니었나요?”
주락은 그녀의 말에 싱긋 웃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이곳에 온다는 말을 듣고, 이쪽에 와서 돕겠다고 요청했죠.”
운훤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이쪽은 어떤 상황인가요?”
“심어(心語)의 소대가 이곳에 온 지 열흘이 넘었는데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아보았다고 하네요. 실력이 특별히 뛰어난 요수는 없대요. 당신들이 도착하는 대로 곧바로 임무를 시작하면 되요.”
주락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럼 데려다 주세요.”
운훤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싱긋 웃고는 앞쪽에서 깍듯하게 길을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