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11화 (610/853)

제 611장. 어느 촌구석에서 온 겁니까?

“망할, 또 저 자식을 만나다니.”

계홍이 양준의 곁에서 가볍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눈에 불을 켜고 주락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참 동안 이를 갈았다.

“사이가 안 좋은가 보죠?”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보면 재수 없어서요.”

계홍이 콧방귀를 뀌었다.

“저 자식은 입만 달고 속에는 칼을 품은, 안팎이 다른 나쁜 놈이라고요. 온종일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독오맹의 적지 않은 여자들이 저놈 때문에 신세를 망쳤어요. 반년 전부터는 우리 대장을 눈독 들여서 들러붙고 있는데 대장이 곁을 주지 않고 있지요. 뻔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사실 속이 시커멓다고요.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우리 대장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려고 해서 벌써 몇 번을 만났는지 모릅니다.”

“그렇군요.”

양준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독오맹 사람들 사이의 은원은 그에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는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계홍의 말소리가 컸는지, 주락이 갑자기 뒤돌아서 계홍에게 씩 웃어 보였다. 계홍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이며 시선을 돌렸다.

운훤 일행은 주락의 뒤를 따라 살림 속에서 반나절 정도 걸었다. 양준은 앞쪽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대략 짐작해 보니, 적어도 열댓 명은 되는 듯했다.

독오맹은 소대로 나누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한 소대는 대략 5~8명의 대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운훤의 소대는 총 여덟 명이었다. 이번에 주락이 한 소대를 거느리고 도우러 왔고, 사전에 와서 상황을 살펴봤다던 심어 일행도 또 다른 소대였다.

양준은 기민하게 앞쪽에서 초범 경지 고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독오맹에서도 괜히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 초범 경지 고수를 보낸 것 같았다. 이 정도 경지의 고수가 있으면 다들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앞에 다다르자, 주락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운훤 소대가 도착했습니다.”

앞쪽에 있던 초범 경지 고수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아담하지만 몸매가 좋은 여인이 서 있었다. 계홍을 포함한 대원들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나같이 눈동자마저 빨개지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가 운훤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운훤은 앞으로 다가가며 초범 경지 고수에게 예를 올렸다.

“손 아저씨,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손영(孫營)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온 지 얼마 안 되었네. 운 낭자는 잘 지냈나?”

“네, 전 잘 지냈습니다.”

손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시간 되면 아버지라도 자주 찾아뵈지. 그분께서…….”

“손 아저씨!”

운훤은 눈썹을 찌푸리며 손영의 말을 잘랐다.

“그래, 알았네. 그만 말하지.”

손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한쪽에서 이 모습들을 지켜보며 그들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운훤은 아담한 몸집의 여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동생도 잘 지냈어?”

완심어(阮心語)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서 뚱한 얼굴로 말했다.

“좀 더 일찍 왔으면 더 좋았을걸. 이곳에서 며칠이나 기다렸단 말이야. 독오맹에서 기어코 너희 소대에 공로를 나눠 주려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 소대가 진작 다 처리할 수 있었어.”

운훤은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동생, 무슨 그런 농담을 해. 문파에서 이렇게 배치한 건 결국 우리 소대가 없으면 안 돼서겠지.”

완심어가 차가운 낯빛을 하고서 다시 반박하려고 하자 손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됐네. 둘 다 그만하지. 다 같은 독오맹의 제자로서 만나기만 하면 싸워서 쓰겠나.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인가?”

손영이 화해시키려 했으나 완심어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운훤 역시 억지웃음을 지었다. 손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

불현듯 손영이 양준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운 낭자, 대원이 한 명 늘었군. 독오맹의 제자인가?”

그는 말하는 동시에 양준을 아래위로 살펴보면서 신식으로 양준의 몸을 한차례 쭉 훑었다. 양준의 경지를 확인한 다음, 손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지가 그리 낮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양준에게는 독오맹의 제자라는 표식이 없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독오맹의 제자가 아니에요.”

운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완심어와 주락도 깜짝 놀랐다.

독오맹의 제자들은 임무를 수행할 때, 외부인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운훤의 이런 행동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오맹에 가입하고 싶어 해서요. 이번에는 그냥 실력을 점검하려고 데리고 온 거예요.”

운훤이 웃으며 해명하더니 몰래 양준에게 눈짓했다. 양준은 곧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침묵했다.

“그랬군. 좋은 일이지. 그럼 이번에 잘 해보게나. 다만 만약 시험에 통과하면 어느 소대에 편입시키지? 운 낭자 소대는 이미 인원이 꽉 차지 않았나.”

“괜찮다면 우리 소대로 오는 건 어때?”

주락이 손을 내밀었다.

양준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썹을 찌푸렸다. 이때 운훤이 입을 열었다.

“시험에 통과할지도 모르는데요. 독오맹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번 임무를 마친 다음 다시 얘기하죠.”

“그래도 되고. 잘 해봐. 난 운훤의 안목을 믿거든. 운훤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 돼.”

주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심어는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

“덜렁이!”

양준은 줄곧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양준이 좀 어리숙하다고 생각했다. 더하여 운훤과의 은원이 있어 덩달아 양준도 눈에 거슬렸다.

“심어, 자네가 일찍 왔고, 이곳의 상황도 너희 소대가 알아봤으니 모두에게 말해 주게나.”

손영은 이미 신식으로 주변의 상황을 탐지해 보았으나 더 길게 말하기 싫어 완심어에게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임무에 대해 말하자 완심어는 곧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쪽 상황은 전에 들었던 소식과 별반 차이가 없어요.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요수는 모두 서금수(噬金獸)로 광물질을 주식으로 하죠. 이곳의 일석광이 그것들을 끌어들인 듯합니다. 적어도 사오십 마리 정도 되는데 대다수가 6급이고 간혹 5급도 있어요. 7급은 없는 듯해요.”

“서금수라고?”

운훤이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서금수. 다들 서금수에 대해 들어봤을 거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주락이 흥분해서 말했다.

“물론 알고 있지. 잘됐네. 이곳의 서금수를 다 잡으면 연기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겠군. 이 요수들이 있으면 일석광을 손쉽게 제련할 수 있어 문파에도 큰 도움이 될 걸세.”

손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 소대 모두 대원들의 실력이 출중하니 6급 요수를 대처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네. 요수들의 포위 공격을 피하기만 하면 될 걸세. 그리고 꼭 기억해 두게. 요수들을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야 한다네. 한 마리라도 죽으면 우리한테는 손실이거든. 다들 알겠나?”

모두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열의가 넘쳤다. 서금수가 그들에게 아주 큰 가치가 있는 듯했다.

양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운훤, 주락, 심어. 자네 셋은 대원의 반을 거느리고 나와 함께 서금수가 도망치지 못하게 금제를 설치하세. 곧 날이 어두워질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휴식하게. 금제를 다 설치한 다음, 내일 움직이는 걸로 하지.”

손영이 지휘했다.

잠시 뒤, 독오맹의 대원 절반은 손영을 따라가 근처에서 금제를 설치했다.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었다. 계홍이 시무룩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양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무척이나 심심해 보였다.

운훤이 자신을 데리고 가지 않아 불쾌한 모양이었다.

“서금수는 무슨 요수인가요? 다들 왜 그렇게 기뻐하는 겁니까?”

양준이 잠깐 주저하다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 임무가 요수를 죽이고 내단과 재료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도착하자 임무는 요수를 사로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마 살아 있는 서금수가 죽은 것보다 훨씬 가치가 더 높은 모양이었다.

양준의 물음에 계홍은 입을 딱 벌린 채,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서금수라고 들어보지 못했나요?”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느 촌구석에서 온 겁니까?”

계홍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촌놈 구경하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허허!”

양준도 왠지 난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대단하군요! 서금수라는 이름에서 뭔가 떠오르는 게 있잖습니까. 이런 요수는 피도 살도 먹지 않고 광물만 먹습니다. 또한 그것들은 체질과 구조가 독특해 광물을 먹고는 몸속에서 제련해 정제된 광물을 배설합니다.”

계홍은 고개를 저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건 그냥 똥이잖아요?”

양준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것들의 배설물은 우리에게 큰 쓰임새가 있습니다. 서금수가 몸속에서 제련한 광물질은 연기사들이 제련한 것보다 훨씬 순수하거든요. 이제 왜 그것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야 하는지 알겠죠?”

“알겠어요. 요수들을 문파로 끌고 가서 광물질과 재료들을 제련시키려는 거군요.”

“맞아요. 서금수들이 있으면 문파에서는 많은 인력을 절약할 수 있고, 연기사들도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죠.”

계홍은 말할수록 얼굴에 흥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금수 사오십 마리라. 정말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우리 소대가 많이 잡을수록 보수도 많을 거고요. 이번에 잘하면 소대장이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운훤과도 동등한 위치가 되겠죠. 허허!”

계홍은 얼굴에 빛이 나면서 열정으로 넘쳤다.

“운훤은 무슨 상황이에요?”

며칠간 살펴본 결과, 운훤의 신분이 보통이 아닌 듯했지만 그녀는 줄곧 자신은 독오맹의 일반 제자라고 말했다. 양준은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계홍은 얼굴빛이 살짝 굳어지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대장에 대해서는 제가 섣불리 말할 수 없네요. 알고 싶으면 스스로 물어보세요. 아마 말해 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야밤이 되어 손영 일행이 돌아왔다. 금제는 확실하게 설치했고 내일 서금수를 잡으면 되었다. 자정이 넘어서는 모두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쉬었다. 모두들 몸 상태를 조절하고 내일의 임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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