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2장. 서금수
이때,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자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주변은 온통 깜깜한 상태였다. 운훤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양준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이제 곧 출발할 거니까 조심하세요. 제 지휘에 따르고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돼요. 만약 당신이 죽기라도 하면, 제가 수 낭자한테 뭐라고 할 말이 없잖아요.”
“알겠어요.”
“음, 그리고 어제 당신이 독오맹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말한 건 그냥 둘러댄 거예요. 독오맹에 들어오든 말든 그건 본인의 뜻대로 하세요.”
운훤이 고개를 들어 동 틀 녘의 흰빛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 물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스물이에요.”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물에 신유 경지 7단계라. 하하! 세월이 빠르군요.”
운훤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갑자기 아련해지더니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마치 추억 속에 잠긴 것처럼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녀는 살며시 웃었다.
“한창 좋은 나이예요. 죽지 마세요. 죽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잖아요.”
양준은 살짝 당황했다. 왠지 운훤의 말속에 무언가 뜻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다시 캐물으려는 순간, 저쪽에서 손영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출발!”
모든 이가 눈을 번쩍 떴고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운훤은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잠시 뒤, 모든 이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손영의 지휘 하에 일석광맥으로 걸어갔다.
산중턱에 있는 시커먼 동굴이 바로 천엽삼림에 있는 광맥이었다. 양준은 주위를 감지해 보았다. 은연중에 어떤 기운이 느껴졌는데 아마 독오맹 사람들이 어젯밤에 설치한 금제인 듯했다. 방대한 신식이 산중턱의 동굴 안으로 퍼지자, 곧이어 요수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전에 확인했던 정보와 마찬가지로 대다수는 6급 요수였다.
손영이 두 손으로 끊임없이 순수한 진원을 내뿜었다. 진원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양준은 곧 주위에 결계 한 층이 더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는 서금수들이 도망칠까 두려워 손영이 어젯밤에 설치한 금제를 작동한 것이었다. 양준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왠지 모르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자!”
손영이 손을 흔들더니 선두로 안에 들어갔다. 다른 이들도 줄지어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매우 깊었다. 다년간의 채굴로 그 안의 통로 역시 굽이굽이 이어졌고 갈림길이 많았다. 통로 양옆에는 갉아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지나치는 곳에는 이미 서금수들이 깨끗하게 먹어치웠는지 일석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요수들은 광물질을 주식으로 하기에 외곽의 것을 다 먹어치우고는 안쪽으로 들어간 듯했다. 때문에 대부분 입구와는 거의 몇 리씩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또한 모두 분산되어 있어 독오맹에서 하나하나 잡아들이는 데에 유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 갈림길이 나왔다. 손영은 잠깐 감지해 본 뒤 지시했다.
“운 낭자, 그쪽에는 대원이 많으니 이쪽 길로 가보게. 자네들의 실력으로 대처 가능할 걸세. 심어 소대는 대원이 적으니 나와 같이 가기로 하고. 만약 변고가 생기거나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면 꼭 경고음을 내게나. 그러면 내가 재빨리 달려갈 걸세.”
운훤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대 대원들과 양준을 거느리고 갈림길 왼쪽 통로로 들어갔다.
“운 낭자, 조심하세요.”
주락이 정이 넘치는 표정으로 당부했다.
운훤은 못 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완심어는 코웃음을 치고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주락을 보며 말했다.
“무지 애쓰네!”
“됐네. 우리도 들어가지.”
손영은 그들 사이의 갈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참견하고 싶지 않아 손을 흔들고는 대원들을 이끌고 다른 한쪽 통로로 들어갔다.
양준은 운훤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잡고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손 선배께서 앞당겨 금제를 작동하면 혹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무슨 문제요?”
운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면 손 선배가 금제를 해제하지 않는 이상, 서금수뿐만 아니라 우리조차도 나갈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서금수를 잡으러 온 거에요. 그런데 나갈 일이 뭐가 있죠?”
운훤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다가 곧 양준의 뜻을 알아차리고 되물었다.
“만에 하나,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거에요?”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훤은 실소하고 말았다.
“걱정도 팔자네요. 심어 일행이 열흘 전부터 이곳에서 상황을 살펴봤어요. 손 아저씨도 직접 상황을 탐지했었고. 위험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앞당겨 금제를 작동시킨 거예요. 만약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면 손 아저씨께서 도와주러 오실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양준은 더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훤은 그를 힐끗 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심하는 것도 좋죠. 하지만 남자라면 좀 대담해야 해요. 그래야 큰일도 하죠.”
말소리가 높으면 서금수가 놀랄까 두려워, 운훤은 목소리를 낮추는 동시에 양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 걱정되면 제 뒤에 있으세요. 제가 움직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마세요.”
양준은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완전 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으로 아는 모양이군?’
“대장!”
이때 계홍이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대원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형형한 눈빛으로 앞쪽 모퉁이를 지켜보았다. 모퉁이 쪽에서 뭔가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몰래 신식을 펼쳐 보자 생명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한 마리. 운이 좋군!”
운훤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계홍이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옷소매를 걷어붙였고, 다른 대원들도 흥분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운훤은 재빨리 몇 가지 손짓을 했다. 대원들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명, 한 명 살그머니 빠져나갔다.
은연중에 미약한 기운의 파동이 전해졌다. 양준이 그쪽을 바라보니, 대원 두 명이 땅바닥에서 뭔가 조작하고 있었다. 함정을 설치하는 듯했다. 다른 대원들은 서금수들이 이쪽의 기척을 감지할까 봐 그들의 주위에서 경계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함정이 설치되었다. 계홍이 고개를 돌려 운훤을 힐끗 보았다.
운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홍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혀를 내밀더니 입술을 핥았다. 곧이어 그의 손에는 한 장 남짓한 길이의 커다란 도끼가 나타났다. 도끼가 나타나는 순간 음침한 살기와 피비린내가 섞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양손으로 도끼를 들고서 힘차게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앞쪽을 향해 휘둘렀다.
무언가 씹던 소리가 순간 멎었다. 양준은 모퉁이 쪽의 기운이 점차 위험하게 바뀌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계홍의 도발에 서금수가 분노한 모양이었다.
쿵- 쿵- 쿵-
땅바닥이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흔들림이 점차 더 격렬해지더니 이내 모퉁이 쪽에서 양쪽에 뿔이 나고 은빛이 반짝이는 머리가 나타났다. 양쪽 뿔에서는 금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는데 위력이 대단하고 기운의 파동도 강했다.
서금수!
양준은 처음 보는 요수였다. 시선을 고정하고 훑어보니 요수는 약 두 장 길이로, 높이는 사람의 키만 했다. 비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속도는 전혀 느리지 않았다.
양준이 신경 쓰이는 것은 놈의 몸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였다. 껍데기가 단단하기 그지없어 쉽게 뚫을 수 없을 듯했다. 거북 등딱지 같은 껍데기는 요수의 등과 꼬리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지면에 거의 닿을 듯한 아랫배 쪽이 그나마 약점인 듯했다.
서금수가 거의 석 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야 계홍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거친 6급 요수와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 없었다.
“왔다! 왔어!”
계홍이 달리면서 소리쳤다.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대원들도 흥분한 듯 기대에 차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설치한 함정에 다가가자, 계홍은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6급 요수인 서금수는 미처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비대한 몸집을 끌고 그 위를 지나가려 했다.
진작 준비하고 있던 대원들은 운훤이 명을 내리기도 전에 함정에 숨겨 둔 비보를 작동시켰다. 아름다운 빛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밧줄 같은 기운이 튀어나오더니 서금수를 겹겹이 감싸고 묶기 시작했다.
둔탁한 사지가 빠르게 묶였다. 서금수의 비대한 몸집은 관성에 의해 십몇 장을 더 나아가서야 겨우 멈춰 섰다. 땅바닥은 골짜기같이 푹 파여 있었다.
“먼저 두 뿔을 없애.”
운훤이 소리치고는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온몸으로 대단한 기운을 뿜으며 재빨리 서금수 곁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대원들도 빠르게 연이어 도착했다.
서금수의 두 뿔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이 굴에서 빠져나온 뱀처럼 동굴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었다. 그러나 6급 요수는 인간의 신유 경지 무인과 같은 경지이기에 놈의 공격은 운훤 일행에게 어떤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잠깐 사이 계홍은 도끼로 서금수의 단단한 뿔 두 개를 잘라 냈다.
서금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슬프게 울부짖었다. 운훤은 얼굴빛이 급변하더니 얼른 수단을 펼쳐 놈의 입을 막았다.
“대장!”
계홍이 허허 웃으며 잘라 낸 두 뿔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운훤에게 건넸다. 운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서 뿔을 받아 자신의 건곤대에 넣었다.
서금수는 체질과 구조 그리고 광물질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뿔 두 개와 온몸의 껍데기 모두가 좋은 무기 재료였다.
“너무 쉬운 거 아니야?”
계홍이 커다란 머리를 흔들며 득의양양해했다.
“6급 요수라 지능이 그리 높지 않아. 그리고 함정도 설치했잖아. 그래서 쉽게 잡은 거지. 만약 놈과 정면으로 싸우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껍데기가 단단한 데다 두 뿔 사이에서 내뿜는 원기 공격도 약하지 않거든. 일반 신유 경지 무인은 놈의 상대가 안 돼. 게다가 동굴 안이라 우리는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지만 놈은 모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 그러니 절대 놈을 얕보면 안 돼.”
운훤은 계홍이 요수를 너무 얕보고 불필요한 실수를 할까 봐 정색하고 설명했다.
“알겠어요.”
계홍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훤은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됐어. 계속 앞으로 가자. 이놈은 여기에 두었다가 돌아갈 때 챙겨 가자.”
운훤 일행은 다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