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4장. 후회막급
운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양준이 갑작스럽게 소리치는 바람에 그녀 역시 깜짝 놀랐다. 그녀는 급히 신식을 펼쳐 살폈지만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곧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아무 연유 없이 경고음을 내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혼란에 빠져, 진정한 위험이 닥친 순간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주위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신식을 통해 동굴 깊은 곳에서 기이하고 강한 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판단했을 때, 그 기운은 분명 초범 경지 고수의 기운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초범 경지의 적이 지금까지 숨어 있었는데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점에서 적이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알 수 있었다.
손영은 사전에 동굴의 상황을 탐지했었다. 그런데 그조차도 이곳에 초범 경지 고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손영은 적의 상대가 안 되었다. 심지어 양준도 방금 전까지 탐지할 때,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적이 도대체 무슨 수단을 사용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운훤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곳이 위험한 것 같아요.”
양준이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좀 제대로 말해 보세요.”
운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난 실력의 고수가 이곳에 숨어 있습니다. 죽기 싫으면 얼른 나가야 해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안 거죠?”
계홍도 다가서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농담은 하면 안 돼요. 이곳에 무슨 위험이 있다고 그러는 거에요?”
“농담한 거 아니에요.”
양준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대원들이 모두 의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가 어떤 말을 해봤자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양준은 신유 경지 7단계로 소대에서 특별히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다. 운훤도 신유 경지 9단계인데 그녀는 이상한 점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운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따라온 것은 그냥 빚을 갚기 위해서예요. 저를 믿으면 대원들을 데리고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믿지 못하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어요.”
“뭘 보고 당신을 믿으라는 거냐고요? 원래는 독오맹에 들어오라고 말하려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 없겠군요. 제 소대는 제 지휘에 따를 거예요.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요. 연유 없이 겁주는 건 더욱이 안 돼요.”
“저는 일부러 겁주려는 게 아니라…….”
“그럼 증거를 내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더 말하지 마세요.”
운훤이 냉랭하게 말했다.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운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나갈게요.”
그러고는 뒤돌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에게는 증거가 없었다. 그의 직감은 그만의 주장일 뿐이었다.
“양준!”
계홍이 깜짝 놀라 소리 높여 불렀다.
“가게 내버려 둬.”
운훤이 차갑게 소리쳤다. 그녀는 사라지는 양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양준의 지금 이 순간 행동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운훤은 이런 사람이 독오맹에 들어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를 포섭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어휴… 그런데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혹시라도 정말 뭔가 발견한 건 아닐까요?”
계홍이 탄식하더니 운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훤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손 아저씨께서 이곳에는 위험이 없다고 하셨는데, 걔가 뭘 발견했겠어. 게다가 나도 아무런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마 괜히 놀란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게요!”
계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당연히 손영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양준은 동굴 안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걸음마다 땅바닥이 푹 꺼져 들어갔고 등 뒤로 기다랗고 희미한 그림자를 남겼다. 그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들어왔던 길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미궁과도 같은 갈림길은 그의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어 방향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신식으로 감지해 보니 기묘한 기운의 파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양준은 주제 파악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신유 경지 중에서는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초범 경지 무인과 맞선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지만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여왕 거미를 죽일 때는 식해 속 금인독안의 위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삼라전의 형종을 죽일 때는 뼈 방패가 흡수한 허공의 힘을 이용했었다. 이는 모두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다. 초범 경지와 신유 경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특히 이곳의 지형은 강한 전투를 벌이기는 적합하지 않았다. 동굴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이가 땅속에 묻힐 수 있었다. 때문에 숨겨져 있는 적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제일 먼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다음은 다시 생각하면 되었다.
안타깝게도 운훤은 그를 믿어 주지 않았다. 이는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아서 계속 해명해도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때문에, 양준은 결국 결단력 있게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게다가 독오맹 쪽에도 초범 경지 고수가 있었다. 손영의 실력도 높기에 반드시 이곳에 숨어 있는 적에게 진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강한 기운의 파동이 전해졌다. 그것은 손영의 기운이었다. 동굴 주변의 미세한 울림과 땅바닥의 가벼운 흔들림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 이 순간 손영은 적과 맞붙은 듯했다.
양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속도를 좀 더 올렸다. 이와 동시에 운훤 일행도 전투의 파동을 감지했다. 모든 이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무슨 일이지?”
운훤은 깜짝 놀랐다.
손영이 출수했다. 손영은 독오맹의 초범 경지 고수로서 그들과 함께 이번 임무를 맡게 되었다. 만약 뜻밖의 변고가 없으면 그는 먼저 출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직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주위에 금제를 설치해 서금수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출수했다는 것은 완심어의 소대 또는 주락의 소대가 대처할 수 없는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떤 위험이기에 손 아저씨가 출수한 거지?’
운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방금 전에 양준의 귀띔이 떠올랐다. 운훤은 금세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제야 양준이 겁을 준 게 아니라 정말로 심상치 않은 점을 감지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이어 땅바닥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동굴 벽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의 전투로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초범 경지 고수들의 접전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소저!”
계홍이 놀라서 외쳤다.
“어서 도망쳐!”
운훤은 더는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후회막급이었다. 방금 전에 양준의 권유를 듣고 모든 대원을 데리고 밖으로 도망쳤다면 지금보다는 위험이 많이 줄었을 것이다.
운훤은 소리치는 동시에 푸른 빛으로 변해 양준이 사라진 방향으로 질주했다. 다른 대원들도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러나 몇십 장을 나가지 못하고 콰앙, 하는 소리가 동굴 깊은 곳에서 들려오더니 곧이어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커다란 돌들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며 앞쪽 길을 모두 막아 버렸다.
운훤은 사색이 되었다. 더는 망설일 사이도 없이 온몸의 진원을 끌어 모아 위쪽으로 뿜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살길을 뚫어 보려 했다.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멀리 있던 양준의 얼굴빛도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는 자신의 바람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영은 숨은 적의 상대가 안 되었다. 방금 전의 충돌에서 양준은 손영의 기운이 멈칫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쌍방이 맞붙으면서 폭발한 파괴력 때문에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양준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얼른 뼈 방패를 꺼내 들고 머리 위쪽을 막았다. 다음 순간, 돌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둑후둑-
두 팔을 내리누르는 무게가 점점 더 커졌다. 동굴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온해진 다음에야 양준은 이를 악물고 뼈 방패를 받쳐 들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불뚝불뚝 튀어나오며 힘줄이 퍼렇게 솟아올랐다.
그는 위쪽에 얼마나 많은 돌과 흙들이 쌓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뼈 방패가 보호해 준 덕분에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그 무게를 견뎌 낼 수가 없었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고서 온몸의 힘을 폭발시켰다. 진원이 위로 솟구쳐 나가며, 위쪽으로 나가는 통로가 단번에 뚫렸다.
잠시 뒤, 양준을 내리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고, 그는 땅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햇빛이 내리쬐고 상큼한 공기가 코와 입으로 밀려 들어왔다. 귓가에는 멀리서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이 무너져 내리면서 새들의 휴식을 방해한 듯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아래쪽은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사방 백 리가 모두 아래로 한참 꺼져 내려갔다. 주위는 적막에 싸여 있었다. 일부 불안정한 곳이 계속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고, 손영의 기운 또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운훤, 완심어, 주락 일행도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 섬세하게 감지했다. 곧이어 1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동굴 위쪽에 이르러 진원을 뿜자, 커다란 돌들이 한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