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17화 (616/853)

제 617장. 신식의 불꽃

양준의 얼굴빛이 급변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매요가 신식을 쏘았고, 그녀의 신식은 곧 운훤의 머릿속에 침투했다.

운훤은 힘을 잃고 나른하게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몽롱해지더니 얼굴에는 욕정이 넘실거렸다. 그녀는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이채가 반짝였다.

“내 앞에서 감히 자결을 시도해.”

매요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여유 있게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지금 내 신식의 독소에 중독되었거든. 어떤 인간도 내 신식의 독을 막아 내진 못할 거야.”

양준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하나만 더 도와주면 안 될까요?”

매요는 짜증이 났는지 차갑게 말했다.

“뭘 더 도와달라는 거야?”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좀 민망하군요. 저 둘을 기절시키면 안 될까요?”

양준은 오래전부터 넋을 잃은 주락과 공포에 젖어 있는 완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매요는 미간을 찌푸리고 주저하다가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말하는 동시에 손을 흔들자 무형의 장벽이 양준과 운훤을 차단시켰다.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양준, 운훤, 매요 셋만 남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누가 지켜볼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당신도…….”

“뭔 요구가 이리 많아.”

매요가 차갑게 외쳤다. 동시에 그녀의 신식이 뿜어져 나오며 양준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러자 양준의 식해가 파도치기 시작했고, 은연중에 기괴한 기운이 그의 식해와 정신을 물들였다. 그 기운 때문에 그는 피가 들끓고 숨소리가 거칠어졌으며 욕망이 전에 없이 강렬해졌다.

“역시 욕정을 품은 남녀의 정기와 피가 제맛이야.”

매요는 미친 사람처럼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양준과 운훤은 모두 매요가 날린 신식의 독소에 중독되었다. 이런 신식의 독성은 일반적인 독약보다 수십 배 더 강했다. 신식이 강한 양준도 막아 낼 수 없는 만큼, 운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양준……!”

운훤이 가볍게 양준의 이름을 불렀다. 요상하게 변해 버린 자신의 목소리에 그녀는 쥐구멍이라고 찾아들고 싶었다. 매요의 신식에 중독된 상태에서 무기력한 저항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곧이어 머릿속에서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매요가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와 착지했다. 그녀 역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두 사람의 곁에 내려섰다. 두 사람이 매요의 신식에 중독되어 한창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양준의 등을 파고들며 그의 몸에 구멍을 뻥 뚫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대로 운훤의 아랫배도 찢기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운훤이 비명을 질렀다.

흥건하게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래 바로 이 냄새야… 이 맛이지…….”

매요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때, 양준의 눈동자의 빨간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어느 때보다 더 정신이 또렷했다.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키더니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관통한 매요의 작은 손을 꽉 잡고서 힘껏 꺾었다.

뚜욱-

희고 여린 손이 부러지며 허연 뼈가 드러났다. 그리고 팔이 부러진 곳으로부터 비취색 피가 흘러내렸다. 매요는 비명을 지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름다운 얼굴도 일그러졌다. 그녀는 마치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처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양준을 바라보았다. 곧 신형이 움찔하더니 그녀는 양준의 몸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눈앞이 번쩍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식에 중독되어 정신을 못 차리던 양준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갈고리 같은 큰 손으로 목을 졸랐다.

“끝내 미끼를 물었군!”

양준은 차가운 얼굴에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목소리에는 찬바람이 쌩쌩 일었다. 매요는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쫙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공포에 젖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사실 양준의 몸은 이미 관통되어서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매요는 그의 눈빛에서 조소와 경멸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양준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내 신식의 독을 막아 낼 수 있지.”

매요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왜 말이 안 되는데?”

양준은 냉소를 흘리며 손에 힘을 줘 매요를 땅바닥에 내리쳤다.

퍽-

매요는 가냘픈 몸에서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녀는 육체가 제압당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독기를 내뿜었다. 그녀의 방대한 신식의 힘이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양준의 식해의 방어를 뚫었다. 그대로 강한 독성을 띤 신식이 양준의 식해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단숨에 양준을 죽여 팔이 부러진 치욕을 되갚아 주려고 했다.

양준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몸을 가볍게 몇 번 떨더니, 곧이어 원 상태로 회복했다.

“신식의 불꽃(神識之火)?”

양준의 식해에서 폭발한 힘을 감지한 매요는 드디어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식해에는 뜨거운 기운이 있었다. 이는 불의 힘으로, 뜨거운 열기는 그녀의 신식의 독을 충분히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신식의 불꽃이라고 부르는구나. 고마워!”

양준은 중도에서 진령의 힘을 흡수한 다음 자신의 신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신식은 불처럼 뜨거워져 진양원기의 속성과 비슷해졌다. 게다가 식해도 전과 달라졌는데, 식해 속에서 흐르던 바닷물이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양준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또한 누구도 그에게 이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그동안 자신의 신식에 도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매요의 말을 통해 양준은 이러한 변화가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매요의 신식에 독소가 있다면 그의 신식에는 뜨거운 불의 힘이 있었다. 그리고 신식의 힘도 전보다 훨씬 강했다.

“살려줘. 주인으로 섬길게.”

매요가 두려움에 떨며 소리쳤다.

육체적 힘은 양준이 훨씬 더 강하고, 자랑으로 여기던 신식의 힘과 독으로도 양준을 제압할 수 없게 되자, 매요는 지금 살려 달라고 빌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양준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 요족은 원래부터 인류의 친구야. 고개만 끄덕여 주면 내 신혼에 낙인을 찍고 네 명에 따를게.”

매요가 연신 고개를 끄떡였다.

“필요 없어. 난 너처럼 위험한 종은 필요 없거든.”

양준은 매정한 얼굴로 말했다. 동시에 그의 주먹에서는 진원이 폭발했다. 매요의 두려움에 싸인 눈빛을 받으며 그의 주먹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내리꽂혔다. 생사의 순간을 감지한 매요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자신의 신식의 힘을 폭발시키며 양준의 식해를 공격해 살길을 찾으려 했다.

양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푸욱-

수박이 터지는 것처럼 매요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양준은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의 가냘픈 몸에서 더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되서야 그는 주먹질을 멈췄다. 매요의 육체는 너무나 약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준이 초범 경지인 그녀를 이처럼 쉽게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곧이어 양준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흡입력이 생기며 매요의 흩어진 신식의 힘을 모두 식해 속에 흡수했다.

양준은 솔직히 그녀의 제안에 살짝 마음이 혹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매요 같은 고수를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었다. 매요는 지마와 달리 너무나 위험했다. 양준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녀를 처리한 것이었다.

양준이 가볍게 기침을 하자,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손으로 피를 쓱 닦고는 검은 책 공간에서 만약영유를 꺼내 복용했다. 몸이 관통된 바람에 상처가 깊었지만, 다행히 중요한 순간에 몰래 급소를 피했기에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만약영유가 있으니, 이 정도 상처는 며칠이면 회복 가능했다.

운훤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복잡한 눈빛으로 잠깐 망설이다가 피바다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운훤은 생기를 잃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피바다 속에 누워 있었다. 양준은 그녀가 생명의 위험은 없지만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는 것을 날카롭게 감지했다.

양준은 무기력한 몸을 끌고 천천히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만약영액을 꺼내 그녀의 아랫배 상처에 발라 주었다.

“뭘 말하려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마세요. 살아남게 되면, 그때 가서 저를 때리든, 욕하든 맘대로 하세요. 우리 서로 그냥 꿈을 꿨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양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윗옷을 찢어 반으로는 운훤의 상처를 깨끗하게 처리하고, 나머지 반으로는 상처를 싸맸다.

그녀는 반항하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그저 눈을 꼭 감고 흐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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