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9장. 당신은 그럴 재주가 없어요
쿵- 쿵- 쿵-
양준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신형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그는 빠른 속도로 주락에게 달려들었다. 주락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양준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세찬 진원으로 주락의 가슴팍을 찍어 눌렀다.
곧이어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주락은 줄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날아갔다. 공중에서 연신 피를 토하는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양준은 냉랭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 뒤쫓지 않았다.
콰앙-
주락이 땅바닥에 털썩 떨어져 내렸다. 그는 얼른 기어 일어나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 냈다. 그의 눈동자에는 잔인한 빛이 반짝였다.
“여태껏 약한 척한 거였어? 역시 나쁜 자식이었군!”
주락은 그제야 양준의 진정한 실력은 신유 경지 7단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일격으로 신유 경지 9단계를 상처 입히는 것은 신유 경지 7단계 무인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어, 같이 저 자식을 죽여 버리자.”
주락은 양준의 실력을 확인하고 나서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완심어까지 끌어들이려고 했다.
‘혼자서는 안 되지만, 완심어와 손잡으면 이길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대단해도 결국 신유 경지잖아.’
주락은 기어코 양준을 죽이려 했다.
양준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 일격으로 주락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가 독오맹의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아직 화를 자초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손속에 여지를 둔 것에 대해 상대가 착각하고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완심어를 바라보았다. 완심어는 아직도 입을 쩍 벌린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승낙한다면, 양준은 이곳에서 살육을 저지르는 것을 개의치 않을 생각이었다.
“심어!”
주락이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완심어는 정신을 차리고서 미간을 찡그리더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정신 나갔어? 아무 연유 없이 왜 죽이려는 건데?”
주락은 얼굴이 퍼렇게 질리더니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완심어를 바라보았다.
“너마저도 저 자식 편이야? 내가 기절했을 때, 너마저도 저 자식한테 더럽혀진 거야?”
그 말에 완심어가 울화통을 터뜨리며 욕을 퍼부었다.
“허튼소리! 주락, 억지 그만 부리고 정신 차려.”
“하하! 내가 억지를 부려?!”
주락은 미친 것처럼 웃었다. 충격에 이성을 잃은 듯했다.
바로 이때, 운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주락! 그만하세요. 더 이상 공격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주락은 순간 휘청거리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운훤을 바라보더니 연신 고개를 저었다.
“역시 천박하군! 몸이 더럽혀졌다고, 마음까지 주려는 건가?”
그 말을 듣고, 운훤은 악에 받쳐 차갑게 말했다.
“이건 다른 문제예요. 당신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제 앞가림만 하면 되요.”
“지금 나보고 제 앞가림을 하라고. 허허!”
주락은 미친 것처럼 연신 냉소했다. 완전 정신이 돌아 버린 듯했다. 그의 눈빛이 점차 증오로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운훤과 완심어에게 향하는 순간, 눈동자에는 다시 슬픔과 경멸이 서렸다.
그가 손을 내밀자 삼지창이 다시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이윽고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그럼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겠군. 오늘 기어코 저 자식을 죽이고 말 거야.”
운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은 그럴 재주가 없어요.”
“너도 그렇게 말하는 거야?!”
주락이 노발대발했다. 지금 운훤이 내뱉은 말은 양준이 한 말과 거의 같았다. 순간 치욕감을 느낀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눈뜨고 잘 봐. 내가 그만한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
주락의 온몸의 진원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더니 몸속에서 커다란 빛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걸 어째! 주락이 미쳤어!”
완심어가 아연실색해서 소리쳤다.
이는 주락의 가장 강한 초식으로 평소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준을 대처하기 위해 이 초식을 쓰다니… 주락은 증오와 굴욕감에 이성을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완심어는 말하는 동시에 괜히 피해를 입을까 봐 연신 물러서는 한편, 잊지 않고 운훤을 끌어당겨 함께 멀리 피했다.
양준은 줄곧 말없이 차갑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주락의 몸속에서 원기 덩어리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그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원기 덩어리 속에는 거대한 살상력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빛 덩어리가 날아들었고, 그 가운데 주락의 삼지창도 섞여 있었다. 원기와 삼지창은 서로 어우러져 살상력이 방금 전보다 몇 배는 더 커졌다. 지금이야말로 신유 경지 9단계 무인이 전력으로 폭발할 때의 진정한 실력이었다.
“조심하세요!”
운훤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왜 양준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운훤은 양준이 원망스러웠지만, 그에게 살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기필코 상대를 죽인 다음 자진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상하면서도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양준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쳐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완심어는 기괴한 표정으로 운훤을 흘끔 보았다. 운훤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들고 싶었다.
“너하고… 저 녀석…….”
“묻지 마.”
운훤은 목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그래.”
완심어는 곧 침묵했다.
콰앙- 콰앙- 콰앙-
주락의 공격이 양준에게 닿았다. 폭발한 원기가 양준을 물 샐 틈 없이 겹겹이 에워쌌다.
두 여인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아름다운 눈동자가 가볍게 떨렸다.
퍽- 퍽- 퍽-
또다시 폭발음 소리가 들려왔다. 혼란한 원기가 연이은 폭발음 가운데서 사그라졌다. 곧이어 양준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이번 전투로 인해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왔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주락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럴 순 없어!”
그의 이 초식은 신유 경지 무인 가운데서는 천하무적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쉽게 파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불가능이란 없어.”
양준은 짜증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원래 부상을 입어 조용히 쉬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어쩔 수 없이 이성을 잃은 사람과 싸우게 되었으니 얼른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었다.
“원래는 죽일 생각 없었어. 그런데 이제 보니 살려 두면 안 될 거 같네!”
양준이 말하는 동시에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주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이 닥친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온몸의 뼈에 충격이 가해졌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타닥타닥, 콩 볶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양준의 신형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주락은 더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온몸의 뼈와 오장육부가 가루가 되어 뼈 없는 사람처럼 나른하게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생명의 기운이 사라졌다.
쿨럭쿨럭-
양준은 두어 걸음 휘청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누었다. 이내 그가 손으로 상처를 움켜잡자,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멀리 운훤을 힐끗 바라보니, 그녀는 살짝 흥분한 표정이었다. 양준은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기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더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얼른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속해서 운기조식했다.
“운훤……! 이제 어떡해야 돼?”
완심어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바라보며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뭘 어떡해?!”
운훤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가볍게 숨을 고르며 물었다.
“주락을 죽였어.”
“그래서 주락을 위해 복수할 거야?”
운훤이 고개를 돌려 차갑게 완심어를 바라보았다. 운훤의 눈동자에는 적의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그럴 생각은 없어. 원래부터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독오맹의 대장이잖아.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 죽었는데…….”
“이번에 죽은 사람이 적어? 주락 하나가 더해졌다고 해서 달라질 거 없어. 그가 없어지면 앞으로 성가시게 할 사람도 없잖아. 문파에 돌아가면 내가 위에 보고할 테니, 넌 신경 쓰지 마.”
운훤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변고를 통해, 그녀는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많은 일을 겪고 나자, 그녀는 더는 당황하거나 무기력해하지 않고 많이 차분해졌다.
“너도 참… 정말 저 녀석한테 마음이 기울었구나. 도대체 어디가 좋은데.”
완심어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운훤은 얼굴이 상기되어 불만스럽게 말했다.
“허튼소리 하지 마.”
그녀는 양준을 그윽하게 바라보고는 곧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너도 좀 쉬어. 이쪽 일은 내가 수습할게.”
완심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가득 널브러진 시체와 혼란한 상황을 바라보며 이마를 문질렀다.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운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생각하다가 그녀 역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