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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620화 (619/853)

제 620장. 지금 절 의심하는 거죠?

삼림 속, 운훤과 완심어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운훤은 부상당한 몸이었고, 완심어는 한바탕 바삐 움직이다 보니 피곤함이 몰려와 한참 동안 쉬어서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완심어가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손영을 손쉽게 죽인 매요가 왜 그리 멍청하게 죽었는가였다.

그 당시 그녀는 기절한 상태였고, 양준과 운훤은 매요가 시전한 금제 속에 감싸여 있었다. 그녀는 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수습한 다음, 완심어는 운훤에게 자신의 의혹을 털어놓았다.

운훤은 잠깐 주저하다가 금제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완심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양준이 죽인 거야?”

“맞아.”

운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멀지 않은 곳에서 좌선하고 있는 양준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망연함이 서려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완심어는 곧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점을 알아차렸다.

“매요의 육체가 강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신식의 힘은 누구보다도 강해. 죽기 전에 만약 신식으로 공격했다면 충분히 양준을 죽일 수 있었어. 양준은 무슨 능력으로 그 공격을 피한 거지?”

“나도 몰라. 난 양준이 매요를 때려죽이는 모습만 봤어. 다른 일들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운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너하고는…….”

“그만 물어.”

운훤의 얼굴에는 난감한 빛이 어렸다. 그때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흐릿하고 혼란스럽던 장면은 수시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완심어는 양준에게 흥미를 가졌다.

“신유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매요를 죽였지? 게다가… 주락도 그의 한 수를 막아 내지 못했잖아.”

주락은 독오맹에서 한 소대의 대장인만큼 실력으로는 완심어나 운훤보다 한 수 위였다. 양준이 주락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두 사람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 참 복덩이를 주웠구나. 만약 양준을 문파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완심어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그를 포섭해 어쩌겠어? 대원들이 다 죽은 마당에…….”

운훤은 얼굴빛이 흐려졌다. 대원들은 그녀와 적어도 삼 년 이상을 함께한 이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헛되이 죽어갔다. 심지어 그들은 죽기 전에 적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가 독오맹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없어.”

“네가 포섭하지 않으면 내가 나설 거야. 대원들이 다 죽었으니 다시 보충해야 하잖아.”

완심어는 금방이라도 설득에 나설 것처럼 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흥분이 어려 있었다.

“양준은 건드리지 마.”

운훤은 곧바로 경계했다.

“쯧쯧… 너 왜 이래?! 자신이 포섭하지 않을 거면서 남이 포섭하는 것도 안 돼? 뭔 뜻이야?”

“아무튼 안 돼.”

운훤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지금 넌 부상자니까 내가 져주는 거야.”

완심어가 웃으며 말했다.

두 여인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이번 고난을 함께 겪으며 서로 간의 은원도 많이 해소된 듯했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자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

둘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쪽에서 기다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정신이 번쩍 들어 양준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다를까 양준이 눈을 떴다. 상처는 아직 완치되지 않았으나 기력은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

그녀들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양준이 고개를 들고 그녀들 쪽을 바라보았다. 운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양준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운훤도 곧 시선을 돌렸다. 완심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양준에게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더니 애교스럽게 말했다.

“이쪽으로 좀 와 보시죠.”

양준은 헛기침을 하고서 일어나 두 사람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태연한 얼굴로 그녀들을 마주 보았다.

완심어는 양준의 상체를 훑어보고는 몰래 혀를 내둘렀다.

‘녀석, 보기와 다르게 몸이 탄탄하군. 온몸의 근육에 아주 힘이 넘치네. 매요를 가까이 유인해서 죽일 만하네.’

“상처는 어때요?”

완심어가 물었다.

“죽지는 않을 겁니다.”

양준이 씩 웃었다.

“몸이 참 좋군요.”

완심어는 말하면서 슬쩍 추파를 던졌다. 그 모습에 운훤이 불쾌해하며 그녀를 가볍게 꼬집었다.

양준은 코를 매만지며 겸연쩍게 말했다.

“어제 일은…….”

“어젠 아무 일도 없었어요.”

운훤이 얼른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양준은 깜짝 놀라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그럼 좋아요.”

그는 운훤이 울면서 매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매우 차분했고, 더는 어제 일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이는 양준의 뜻과도 딱 맞았다. 어제 일은 양준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두 사람 다 매요의 신식에 중독된 상태였고, 더하여 양준은 매요를 그의 곁에 가까이 오게 유인해야 했다. 매요 같은 적을 상대하는데, 그녀가 가까이 오지 않으면 양준은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아니지…….”

완심어가 불쾌해하며 양준을 노려보고는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 무슨 말이에요. 그냥 입을 쓱 닦고 모른 척하려고요?”

“그럼 어쩌라고요?”

당사자가 더 말하지 않으려 하는데, 완심어가 따지고 들자 양준은 어이가 없어 왠지 웃음이 나왔다.

“뭘 어째요? 책임져야죠. 댁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져요?”

완심어는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완심어를 훑어보았다.

“둘이 그리 가까운 사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왜 편을 들죠?”

완심어가 연신 냉소를 흘렸다.

“나와 운훤 사이가 어떻든 그게 댁과 무슨 상관이에요. 지금 난 같은 여인으로서 운훤을 대신해서 도리를 따지는 거예요.”

“됐어. 심어. 내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너도 그만해.”

운훤이 목소리를 높였다. 완심어는 어쩔 수 없이 양준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화가 난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운훤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 눈빛에 난감해졌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운훤이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물을게요. 제가 손해를 입은 만큼 사실대로 대답해 주세요.”

“물어보세요. 대답할 수 있는 한, 절대 숨기지 않을게요.”

양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디서 왔어요? 그리고 경지는 어떻게 되나요?”

운훤은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양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전에 말했듯이 외진 곳에서 왔어요. 어떤 곳이라고는 설명하기 어렵네요. 경지는 당신들이 아는 대로 신유 경지 7단계예요.”

양준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고서 말을 이어 갔다.

“다만 신유 경지 7단계라고 해도 일반 무인들과는 좀 달라요. 아마 신유 경지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울 거예요.”

“뻔뻔스럽긴!”

완심어는 연신 입을 삐죽거렸다. 양준이 좀 과장을 보탰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지만 전에 보여준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수신전의 수령과는 무슨 관계죠? 수령이 왜 당신에게 신경을 쓰는 건가요?”

운훤이 또 물었다.

“수령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그냥 보통 친구일 뿐이에요. 그녀가 저를 신경 쓰는 건 아마도 제게 도움을 받아서 그럴 거예요.”

운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계속해 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왜 따라왔어요? 의도가 뭐예요? 그리고 동굴에서 왜 어떤 위험에 부닥쳤는지 확실하게 말해 주지 않은 거죠? 당신은 이렇게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독오맹의 제자들이 죽어갈 때, 진작에 나서지 않았어요. 왜 꼭… 꼭… 매요가 허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나요?”

이번에 운훤은 한 번에 많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살짝 흥분한 듯했다.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절 의심하는 거죠? 제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당신에게 접근했다고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알고 있는 건 모두 사실이에요. 저는 당신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 따라온 것도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냥 당신에게 빚을 갚으려는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저한테 공선옥을 줬고, 전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어요. 이제 보니 빚은 깨끗하게 청산했네요. 그리고 동굴에서 전 분명 당신에게 주의를 줬어요. 하지만 당신이 저를 믿지 않았죠. 저도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고. 그리고 말이 길어지면 미움만 살 테니 그냥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그렇게 돈독한 사이도 아니고, 독오맹 제자들의 생사가 저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거든요. 그리고 왜 매요가 허점을 드러낸 다음에야… 매요가 허점을 드러내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요? 진짜로 싸우면 저는 매요의 상대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당신들도 매요의 신식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해 봤잖아요. 당신을 이용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확실히 제 잘못이에요. 저를 때리든, 욕하든 맘대로 하세요.”

말을 마치고 양준은 ‘배 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완심어는 그런 양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이를 갈았다. 한참 동안 경멸과 조소를 보내던 그녀는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양준이 운훤을 선택했으니 망정이지, 자신을 선택했다면 아마 자신 또한 운훤과 같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운훤도 화가 치밀었다. 분명 자신이 손해를 본 일인데, 지금 양준이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해 흥분한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표정은 담담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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