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24화 (623/853)

제 624장. 입성 경지 고수?

열화성 밖,

관을 멘 사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열화성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의 뒤로 몇십 명의 고수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열화성에 있는 무인들도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양준은 운훤에게서 관을 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의문이 생겼다.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가요?”

“보상하기 위해서일 것이네!”

기염이 침울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보상? 뭘 보상한다는 겁니까?”

“이곳에 머무르며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보상이겠지.”

기염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서렸다.

“관을 멘 사람이 머무르는 곳은 모든 생명이 죽고 풀조차 자라지 않는다네. 사방 백 리가 십 년 동안 다시는 생기를 띠지 못하지.”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열화성에 머무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만 하는 거면 좋을 텐데…….”

만약 관을 멘 사람이 열화성에 머무른다면 사방 백 리는 분명 망가질 것이 뻔했다. 양준은 그제야 다른 무인들이 흥분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데 비해 기염이 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열화성의 성주인 그는 자신이 지키는 성이 그렇게 망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멈춘다. 멈춘다!”

기염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가 걱정하던 일이 끝내 벌어지고 말았다. 기염의 옆에 있던 독오맹의 제자들도 안색이 크게 변했다.

“기 아저씨……!”

운훤은 나지막하게 기염을 불렀다.

기염은 관을 멘 사람의 등을 노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갈등하고 주저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성으로 돌아가서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품을 들고 속히 떠나라고 알려라!”

“성주님……!”

“시간이 없다. 내가 가서 시간을 끌 테니 서둘러라!”

말을 마친 기염은 곧바로 관을 멘 사람을 뒤따르고 있는 몇십 명의 고수들에게 다가갔다.

운훤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관을 멘 사람이 멈추었다는 것은 곧 열화성이 황량한 곳으로 변하게 될 거란 얘기였다. 이는 독오맹에게도 큰 손해였다.

양준은 핏빛 관을 멘 사람을 신식으로 유심히 감지해 보았다. 그에게서 풍기는 죽음과 시체의 기운, 몸에 잔뜩 난 종기와 혹으로 볼 때 생명의 기운이 없어야 마땅했다. 다시 말해 그는 진작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몸속에 내재된 거대한 힘은 모든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기염이 고수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관을 멘 사람은 커다란 눈으로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든 것인지, 그는 곧장 지면으로 착지했다.

쿠웅-

대지가 뒤흔들리며 지면에는 거미줄 같은 틈이 죽죽 생겼다. 관을 멘 사람은 착지한 뒤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두 눈을 굳게 감은 것이 숨을 고르는 듯했다.

무인들은 탐욕스러운 얼굴로 힘을 모으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관을 멘 사람들 뒤에 있는 고수들이 두려워 무모하게 공격하지는 못했다.

기염은 이미 고수들에게 당도해 있었다. 그들과 서로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주고받더니 곧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황을 의논했다.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양준이 물었다.

“모두 근처 세력의 고수들이에요. 뇌광신교(雷光神敎)의 허기(許奇)는 초범 경지 2단계고, 현천맹(玄天盟)의 추흥(鄒興)은 초범 경지 3단계예요. 전혼전(戰魂殿)의 요적(姚迪)도 초범 경지 3단계고요…….”

운훤은 눈빛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그중에서 실력이 강한 고수들의 정보를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도 잘 몰라요. 아마 모두 꽤나 유명한 사람들일 거예요. 모두들 관을 멘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쫓아온 것 같아요.”

운훤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저들도 관을 멘 사람이 주는 보상에 관심이 많나 봅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초범 경지 3단계나 되는 고수들이 이런 작은 이익에 연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관을 멘 사람이 주는 보상에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관을 멘 사람 자체가 거대한 비밀인지라 다들 그의 정체와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죠. 그들의 목적은 관을 멘 사람 자체예요.”

양준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염은 여전히 공손한 자세로 그들과 논의하고 있었다. 그는 열화성의 성주였지만 초범 경지 1단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고수들 앞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 얘기를 나눈 뒤, 현천맹의 추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시진 더 기다리지. 기 성주는 어서 서두르시오.”

전혼전의 요적도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도 너무 과하게 나설 생각은 없으니 기 성주는 걱정 말고 가시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기염은 감격하여 인사를 한 뒤, 다급히 성 안으로 날아갔다.

열화성에는 많은 무인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대다수가 실력이 강하지 못했다. 일단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들은 도망칠 시간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기염은 열화성의 성주로서 그들부터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현 상황을 설명한다면 떠날 사람들은 서둘러 떠날 것이고, 굳이 남으려는 자들은 기염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성주지만 독오맹의 제자가 아닌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한 시진은 금방 지나갔다.

관을 멘 사람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 모두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쌌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관을 멘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염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다. 주변의 상황을 둘러본 그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더는 기염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운 낭자, 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마십시오. 관을 멘 사람이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그가 나타난 곳에는 큰 위험이 닥친답니다.”

기염은 나지막하게 당부했다. 운훤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몇십 명의 고수들 중에서 추흥이 나서더니 관을 멘 사람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외쳤다.

“다들 관을 멘 사람에 대해 들으셨겠지요? 오늘 드디어 이곳에서 마주쳤으니 절대 놓치지 마시고 이득을 원하는 분들은 그를 공격하십시오. 저희들은 여기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추흥은 다짜고짜 다른 무인들에게 관을 멘 사람을 공격하라고 부추겼다. 그가 좋은 마음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들 뻔히 알고 있었지만, 전설을 떠올린 일부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무공과 비보로 공격을 시작했다.

열 갈래가 넘는 빛줄기가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는 관을 멘 사람의 등에 쏘아졌다. 이는 적어도 신유 경지 무인이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관을 멘 사람의 몸에는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관을 멘 사람도 아무런 반응없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또한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다.

공격했던 열몇 명은 뒤로 물러서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관을 멘 사람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크게 기뻐했다. 아무리 공격해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입증된 셈이었다. 곧 더욱 많은 공격들이 날아와 관을 멘 사람의 등을 공격했다.

쿠웅- 쿠웅- 쿠웅-

수많은 공격으로 인해 땅이 쩍쩍 갈라졌다. 관을 멘 사람 근처의 지면도 순식간에 갈라지면서 혼란스러운 기운이 그의 주변에서 마구 들끓었다. 관을 멘 사람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에 구경하고 있던 모든 무인들이 전력으로 그를 공격했다.

드디어 관을 멘 사람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곧이어 그가 거칠게 숨을 쉬자 천지의 공기도 순간 멈춘 듯했다.

공격하던 사람들은 모두 속도를 늦추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관을 멘 사람이 반격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러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을 멘 사람은 여전히 반격하지 않았다. 조용히 서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양준은 그제야 관을 멘 사람의 무시무시한 점을 알게 되었다.

“입성 경지의 고수라고요?”

양준은 고개를 돌려 운훤에게 물었다.

“그래요!”

운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실눈을 떴다. 입성 경지의 고수가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새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세상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왜 아직 공격하지 않는 거죠?”

완심어는 뇌광신교와 현천맹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기염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성 경지의 고수의 방어는 그들이라고 해도 큰 힘을 들여야 뚫을 수 있습니다. 지금 공짜로 도와줄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그들이 나설 리 없죠. 하지만 그들도 곧 나설 겁니다.”

바로 이때, 관을 멘 사람의 뒤에 있던 몇십 명의 고수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혼전의 요적은 상황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얼추 된 것 같은데 우리도 나서지. 소문을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상황이 복잡해지니까.”

“그러지.”

허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서 보고하는 게 좋겠네. 한 달이나 따라다녔더니 피곤하군.”

“그럼 시작하지!”

추흥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이 합의를 보자 다른 사람들도 더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비보를 꺼냈다. 들끓는 기운이 순식간에 퍼지더니 많은 비보와 무공들이 별처럼 관을 멘 사람에게 쏟아졌다. 잡다한 사람들이 펼친 공격보다 훨씬 기세가 강했다.

쿠르릉-

땅이 갈라지고 사방 백 리가 흔들렸다. 강한 공격에 관을 멘 사람도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그의 몸에도 상처가 많아지고 종기가 터지면서 몸에서는 짙은 녹색 기체가 흘러나왔다. 기체가 흘러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기운을 감지했다.

촤라락-

녹색 기체가 지나간 곳마다 모든 생명이 죽어가며 녹색으로 변했다. 정말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었다. 기체는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 가까이 있던 무인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기체에 삼켜졌다. 그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내려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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