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26화 (625/853)

제 626장 마족?

끝없는 어둠 속에서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기절하기 전 겪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에 양준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신식을 펼쳐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신식은 열몇 장밖에 뻗지 못하고 무형의 힘에 의해 막혀 버렸다.

그가 있는 곳에 결계가 쳐진 것 같았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신식을 거두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주황색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석실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은 차가운 돌벽으로 막혀 있었고, 천장에 부드러운 빛을 뿜는 조명용 돌이 있어 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참 동안 운기 조식을 한 그는 자신이 조금도 다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원도 전혀 봉인되지 않은 것을 보고 한시름을 놓았다. 그는 자신이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설 속의 고수는 그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양준은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관을 멘 사람은 왜 하필 자신을 점찍었을까? 그가 한 일이라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신식의 힘을 한 번 사용한 것밖에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던 그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양준은 숨을 고르면서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관을 멘 사람이 그를 잡아와서 진원을 봉인하지도, 괴롭히지도 않은 걸 보면 분명 바라는 게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날 게 분명했다.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양준은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한참 뒤, 인기척이 들리더니 점점 그에게 가까워졌다.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관노(棺奴) 어르신이 또 한 사람을 잡아왔더라고. 젊긴 한데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군.”

“난 별로 희망을 품지도 않아. 그놈도 능력이 없다면 십 년의 기한이 지나고 이곳에서 죽겠지 뭐. 우리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응, 하지만 려(麗) 대인은 선조들의 소원을 이뤄 드리고 싶으신가 봐. 그에 비하면 저(楮) 대인은 좀 더 생각이 열리셨지. 사실 이곳에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아.”

“쉿, 더는 말하지 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두 남자의 목소리가 양준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양준은 다시 찾아오는 이가 분명 관을 멘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당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힌 석실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에 있는 돌문이 열렸다. 그리고 두 남자가 입구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양준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기운을 감지한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둘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그가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음산하고 차가웠으며 사악한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마의 기운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또한 자신이 입마한 뒤 나타나는 기운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운은 지마나 자신에 비했을 때, 아주 옅었다.

‘마기인가?’

양준은 깜짝 놀랐다.

다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았다. 매부리코에 길고 가는 눈, 한눈에도 간악한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몇 가닥의 오색찬란한 무늬가 있었다. 이 무늬를 본 그의 안색은 더욱 이상해졌다. 입마를 시전할 때면 그 역시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같은 무늬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짐작되는 것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깼어?”

키가 큰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깼으면 일어나서 우리와 함께 나가자. 대인이 기다리고 계셔.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남자는 신유 경지 4, 5단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상태로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그는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둘은 한 명이 앞에서, 다른 한 명은 뒤에서 걸으며 양준을 중간에서 걷게 했다. 그리고 수시로 그를 힐끔거리며 경계했다.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양준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석실을 나선 그들은 긴 통로에 들어섰다. 계단을 밟고서 계속해 위로 올라갔다. 아마 지하에 갇혔던 듯했다. 한참을 걸어서야 계단을 벗어나 땅을 밟을 수가 있었다.

빛이 보이자 양준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본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는 전에 본 적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밤낮이 불분명하고 해와 달의 빛이 없으며 천지가 혼란스러운…….

그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런 곳에 가본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능소각 근처의 전승동천이었고, 다른 한 번은 능태허를 따라 유명산에 수련하러 들어갔을 때였다. 두 번 다 진입했던 공간에서 지금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순간, 양준은 자신이 전승동천이나 유명산의 수련지로 돌아간 줄 알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멈춰? 어서 가!”

양준의 등 뒤에 있던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호통쳤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 그는 이곳의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살펴보며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겉에 드러난 피부는 모두 적게나, 많게 색깔이 다른 무늬에 덮여 있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지?’

양준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화내지 않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곧 그는 두 남자와 함께 널찍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커다란 기둥이 가득 세워져 있었고, 기둥에는 무시무시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대전 한가운데 상석에는 궁장(宮裝)을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가냘픈 몸에는 양준이 불안해할 만한 힘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아래쪽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두 줄로 나뉘어 서 있었다.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양준이 대전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눈을 반짝거렸다. 상석에 앉은 여인의 눈도 기대의 빛으로 반짝였다. 양준은 어리둥절해졌다. 관을 멘 사람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본래 그는 자신을 끌고 온 두 사람이 말하던 대인이 관을 멘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성숙하고 기품 있는 여인일 줄이야. 그리고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는 무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여인의 옆쪽에는 청순한 얼굴의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옅은 미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양준이 나타나자 청옥같이 그윽한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여인에게 말했다.

“대인, 이 자가 바로 관노 어르신이 이번에 들여보낸 사람입니다.”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수고하셨겠구나. 이번에 다치신 데는 없다더냐?”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워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그녀의 기품 있는 차림새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 것 같았다.

소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외상만 살짝 입었을 뿐이에요. 인간들은 정말 너무해요. 관노 어르신이 공격하기 불편하다고 마구 괴롭히다니. 그게 아니었다면 관노 어르신이 손만 휘저어도 그들을 모두 죽였을 거예요!”

“휴, 우리가 관노 어르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여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내 여인은 표정을 거두고 양준을 주시하며 물었다.

“인간, 네 이름은 무엇이냐?”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오는 길에 살펴본 것과 방금 전의 대화를 통해 눈앞의 사람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실눈을 뜨고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마족?”

마족과 요족 사람들만 사람을 인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들의 몸속에는 모두 마기가 있었다. 이는 진원과 또 다른 기운이었다.

여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이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또 전혀 당황하지 않을 줄 몰랐던 것이다. 전에도 관노는 여러 사람들을 들여보냈지만 대다수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난리를 부렸다. 또 힘껏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처럼 태연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역시 마족이었군!”

양준은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고서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여긴 마강인가요? 왜 저를 잡아온 거죠? 의도가 뭔가요?”

“무엄하다!”

청순한 소녀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양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대인의 말씀에 똑바로 대답하고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거라. 또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네 놈의 혀를 뽑아버릴 것이다!”

양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 것이냐!”

소녀는 더욱 화가 나 양준에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지금 겁주는 거로 보여?”

“응.”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만하거라.”

여인은 소녀를 저지하고 양준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듯, 웃어 보였다.

“넌 조금도 무섭지 않나 보구나?”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넌 왜 완아(莞兒)가 널 겁주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냐?”

“뻔하죠.”

양준은 입을 삐죽였다.

“당신들은 절 잡아왔지만, 절 다치게 하지도 않고 제 진원과 신식을 봉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들 중 대다수는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고요. 전 당신들이 뭘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저한테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한테 바라는 게 있으니 당연히 절 다치게 하지 않겠죠.”

이 말을 듣고 대전 안에 있던 많은 이들이 웃었다. 청순한 소녀 완아도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인간이 교활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이 말은 농담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듣는 양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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