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9장. 마음 편히 연단하다
커다란 석실 안에서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앚아 항아리만 한 약 가마 앞에서 진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한 뒤, 약 가마 안에 간결한 영진을 새겼다.
곧이어 그는 약초들을 일정한 순서로 약 가마 안에 넣고 진원으로 그것을 감싸서 녹여 내며 약초를 담금질했다. 이내 약초는 모두 약물이 되어 덩어리가 되었고, 약물 덩어리는 영진과 진원의 이중 작용을 받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약 냄새가 약 가마 안에서 풍겨 왔다. 양준은 더욱더 정신을 집중했다.
또 한참이 지난 뒤,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곧 그의 손이 움찔하더니 진원을 거두어들였다. 동시에 동그란 노란색 단약이 약 가마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얼른 손을 뻗어 단약을 잡았다. 단약은 아직 따뜻했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단약의 품질을 확인한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급 상품이었다. 현재까지의 경험과 수단으로 양준은 손쉽게 지급 상품의 단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제련한 단약을 옆에 있는 옥병에 넣어 둔 다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한참 지나 또다시 연단을 시작했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석실에는 대량의 약재가 쌓여 있었다. 약재들은 모두 마족이 제공한 것이었다. 양준은 약재를 구하는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연단에만 몰두하면 되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 상황에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관노에게 잡혀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든, 려 대인이 심각한 얘기를 했든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전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단술을 연구할 생각이 있었다. 다만 자금이 부족해 약재를 사지 못했고, 독오성에서 열흘간 연습한 것이 다였다. 그런데 마침 마족들이 이처럼 좋은 조건을 마련해 주었으니, 양준은 급히 나가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려 대인이나 대전에서 봤던 차가운 분위기의 여인, 새하얀 수염의 노인, 저견 등 그들 모두 입성 경지의 고수였다. 이런 고수들 앞에서 그가 화를 자초할 리 없었다. 양준은 이곳에서 마음 편히 연단하며 연단술이나 익힐 생각이었다. 연단 과정에서 낙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연단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연단술이 향상됨에 따라 그의 실력과 심적 경지가 함께 향상되며 좋은 효과를 보고 있었다.
완아는 양준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녀는 양준과 몇백 장 떨어진 곳에서 그의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양준이 단약을 제조한 것을 보고 그녀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이때, 주변의 공기가 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완아는 흠칫 놀라며 매무새를 정리했다.
얼마 뒤, 려 대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차가운 분위기의 여인과 노인도 함께 왔다.
“세 대인을 뵙습니다!”
완아는 다급히 예를 올렸다.
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서 양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려 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엔 발전이 있더냐?”
“있어요.”
완아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믿을 수 없지만 그는 연단술에 정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한 달도 되지 않아 손쉽게 지급 상품의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어요. 며칠 더 지나면 천급 단약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해?”
려 대인은 눈을 반짝이며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그녀는 양준과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태도가 만족스러웠지만 이제 막 연단술을 접했다는 말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었다. 전에 잡혀 왔던 열몇 명 중에도 연단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십 년이 지나도 연단술에서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했었다. 그래서 려 대인은 양준도 그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그에게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완아의 평가를 들은 지금, 려 대인은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양준은 전에 만났던 이들과 너무 달랐다.
“려 대인, 이 속도로 나아간다면 십 년 안에 그가 성급 단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는데요!”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름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에는 기대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한시름을 놓을 만해요. 하지만 지금 문제가 있어요…….”
차가운 분위기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려 대인이나 노인 모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문제요?”
완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세 대인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았다.
려 대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바로 재료 문제지. 우리가 있는 소현계는 면적이 작지 않지만, 얻을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란다. 오랫동안 채집하다 보니 구할 수 있는 약초도 전보다 훨씬 못해졌고.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로 저 자를 성급 연단사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만약 부족하다면…….”
완아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양준이 성장하려면 대량의 약재로 연습해야 했다. 경험과 연단술을 쌓으려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마족들은 몸속에 마기가 있어 연단할 수 없었다. 약초를 채집해도 씹어서 삼킬 수밖에 없는지라 효과는 아주 미미했다. 이런 연유로 많은 마족들은 인류의 연단사를 부러워했다. 그들도 많은 돈을 들여 인류의 손에서 단약을 구입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 동안, 이곳에 사는 마족들은 많은 약초를 먹어치웠다. 려 대인도 목적을 가지고 약밭을 키우고 있었지만 생산되는 약초는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럼 어떡하죠?”
완아는 당황스러웠다. 겨우 희망을 보게 되었는데 약재가 부족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관노 어르신을 통해 바깥 세상에서 약재를 좀 가져올 수는 없나요?”
완아가 제안했다.
려 대인은 고개를 저었다.
“관노 어르신은 이미 죽었어. 그는 집념으로만 움직이고 있지. 그 집념은 바로 통현대륙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신식의 불꽃을 지닌 사람을 찾는 거야. 우리는 그와 소통할 수 없단다.”
노인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백 년 동안 저견은 한 번도 마신성(魔神堡)에 약재를 바친 적이 없습니다. 그에게 꽤 많은 약재들이 있을 텐데요!”
“그에게서 뺏어 오게요? 그는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차가운 분위기의 여인은 눈빛을 흐렸다.
“려 대인은 마신성의 주인이니 대마신의 마도들은 모두 그녀의 명령에 따라야지요. 저견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반역입니다.”
그 말에 여인은 냉소를 지었다.
“그놈이 반역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게 어디 하루이틀인가요?”
려 대인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우선 저견은 신경 쓰지 말자. 약재는 한동안 떨어질 일이 없으니까. 정말 떨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는 거로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려 대인은 항상 이렇게 마음이 약했다. 그녀는 마족답지 않게 너무 인자했다.
“완아야, 이곳에 남아서 그를 보살피거라. 원하는 게 있다면 너무 과하지 않는 선에서 무조건 들어주거라.”
려 대인이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완아는 서둘러 대답했다.
려 대인은 또 멀리서 양준을 힐끗 보고는 다른 두 명의 대인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양준이 뭔가를 감지한 듯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잘 오셨어요. 마침 할 얘기가 있었는데.”
려 대인은 미소를 짓더니 다른 두 명의 대인과 함께 양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양준은 대답하지 않고 눈알을 데굴거렸다.
노인은 싸늘한 얼굴로 호통쳤다.
“인간, 네 더러운 눈빛을 어서 거두어라. 그러지 않으면 예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
양준은 실소를 하며 말했다.
“전 그냥 당신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려 대인은 깜짝 놀랐다가 웃으며 말했다.
“난 려용(麗蓉)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들은 한비(寒菲)와 화묵(花墨)이고. 완아는 알지? 어떻게 부를지는 네 마음대로 해. 어르신이라고 불러도 되고, 직접 이름을 불러도 된단다. 협력 관계이니 말이야.”
“한비라…….”
양준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과 어울리는군.”
화묵은 표정이 이상해졌고, 한비는 싸늘하게 양준을 바라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내가 무섭지도 않아? 그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진작 죽어서 시체가 되었을 거야.”
누구도 그녀를 감히 이렇게 평가한 적이 없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좀 친근하게 느껴져서요.”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그냥 당신과 분위기가 아주 비슷한 여인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겉은 차가운데 속은 따뜻하지요.”
양준은 이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소안을 떠올렸다. 양준의 말에 한비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에 어색한 표정이 드리웠다. 그녀가 다시 화를 내려고 할 때, 양준이 입을 열었다.
“이 얘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려용이 물었다.
“우리가 협력 관계이니 저도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솔직히 전 당신들이 저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곳에서 마음껏 연단술을 연구할 수 있으니 당신들이 숨기는 일에 대해서 캐묻지 않을 겁니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되니까요.”
려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 마신성의 주인으로서 그녀는 모든 사정을 외부인인 양준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가 빨리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지요. 당신들 때문에 이곳에 갇혀 있는데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저도 기분이 썩 내키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양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또 무슨 이득을 얻으려고 그러는데?”
화묵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인간, 염치가 있지 그래? 우리가 네 자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많은 것을 베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