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0장. 죽고 싶은 거야?
화묵은 갇혀 있으면서도 흥정을 하려는 양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준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선택할 수 있지요. 제가 성급 연단사로 성장했을 때, 당신들을 위해 그 단약을 만들어 줄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하게 단약에 손을 쓸지.”
양준의 말에 그들은 안색이 변했다. 한비는 살기가 가득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감히!”
화묵은 버럭 화를 냈다. 려용은 손을 뻗어 화묵을 저지하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지. 우리가 네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거지?”
“제 기분에 따라 다르죠.”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 요구를 말해 보아라. 방금 전에 완아에게도 말했다. 너무 과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무조건 너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네 앞에서도 약속하지.”
려용은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려용이 이렇게 말하자, 양준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약간의 반감과 적의가 모두 사라졌다. 양준은 다시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식의 불꽃을 주세요.”
그 말에 려용, 한비, 화묵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려용은 다급히 웃으며 애써 당황한 표정을 숨겼다.
“네가 바로 신식의 불꽃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냐? 우리에게 신식의 불꽃을 달라니, 사람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니더냐?”
양준은 침착하게 고개를 젓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려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말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잖아요.”
셋은 동시에 침묵을 지켰다. 그들이 침묵하자 희망이 있다고 느낀 양준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어 봤자 뭘 하겠습니까? 스스로 신식의 불꽃을 가진 연단사를 키워낼 생각인 겁니까?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당신들은 이미 시도해 보았을 테지요. 결과가 어떤지 아시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마족의 체질로는 연단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구나.”
화묵은 깜짝 놀랐다. 양준이 한 말은 언뜻 보기에 뜬금없어 보였지만,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는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이곳에 남긴 서적들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숨겨진 기록이 많던데요.”
“교활한 인간들!”
화묵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남은 서적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고 마신성에 불리한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야 양준에게 읽어 보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남아 있을 줄이야.
려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에겐 신식의 불꽃이 열몇 개 있다. 이 신식의 불꽃은 수많은 시간 동안 관노 어르신이 잡아온 인간 무인들이 죽은 뒤 남긴 유산이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여 지금까지도 전혀 손실 없이 잘 보존하고 있어.”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거예요. 그걸 주면 당신들의 소원을 들어 드리지요.”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려용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해 보았단다. 스스로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연단사를 키우려고 했지. 하지만 우리 마족의 체질이 아무리 강해도 무슨 문제인지 연단할 수가 없었어. 일부 마족들은 신식의 불꽃을 흡수하려다가 신식도 다 타서 죽고 말았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소현계에 이렇게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는데, 마족들이 외부에서만 신식의 불꽃을 갖춘 무인을 찾아 곤경을 해결하려고 했을 리 없었다. 그들 자신도 노력을 해 보았을 것이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족 사람들도 참 재미있군요. 신체적 소질이 다른 종족보다 훨씬 강하면서 왜 연단은 못 하는 건가요?”
양준은 고소하다는 듯이 웃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지. 신체적 소질이 강한 데다가 연단까지 한다면 다른 종족들은 어찌 살 수 있겠느냐?”
“그리고 모든 마족들이 연단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마족의 역사에 가장 뛰어난 연단사가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인류의 연단대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어.”
한비가 싸늘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네? 그런 인물도 있었다고요? 누군데요?”
려용은 고개를 저으며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전의 화제를 계속 이어갔다.
“우리가 신식의 불꽃을 남겨 두어 봤자 별로 소용이 없긴 하다. 네가 원한다면 줄 수 있어. 다만 넌 그걸 흡수하고도 죽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네가 죽는다면 우리도 난처해진단다. 너 같은 사람 하나 찾기가 아주 힘들거든. 관노 어르신은 십 년에 한 번씩 겨우 움직일 수 있어”.
“제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사람으로 보이세요?”
양준은 씨익 웃었다.
려용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 요구를 들어주지. 더 이상 선을 넘지 말거라.”
“그러지요!”
려용은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사람을 시켜 신식의 불꽃을 보내줄게.”
“기다릴게요!”
한비는 싸늘한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경고를 날렸다.
“너한테는 십 년의 시간밖에 없어. 십 년 뒤에도 단약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한비는 꽤 뒤끝이 있는 모양이었다.
세 명의 입성 경지의 고수는 바로 자리를 떴다. 어느새 완아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튿날, 완아는 백옥을 깎아 만든 정교한 용기 열몇 개를 가져왔다. 용기는 주먹만 했는데 모두 밀폐된 상태였다. 위에는 희미한 문양이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특별한 수단으로 봉인된 것 같았다.
열몇 개의 용기를 양준 앞에 가져다준 완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 네가 원하던 거야.”
양준은 흠칫 놀라며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진원으로 용기의 봉인을 깨려는 순간, 완아가 크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봉인을 해제하고 흡수하려고.”
양준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쳤어?”
완아는 더없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 신식의 불꽃 주인들은 초범 경지거나 그 이상의 고수들이었어. 그들의 신식은 너보다 훨씬 강하다고. 그렇게 무모하게 흡수하다간 불타 죽을 거야. 장난치지 마.”
“난 장난 친 적 없어.”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더 안전한 방법은 없는 거야?”
완아가 초조하게 물었다.
“어제 네가 신식의 불꽃을 달라고 했을 때, 려 대인은 네게 안전하게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줄 알고 이걸 너에게 주려고 하셨던 거야. 네가 이렇게 무모하게 흡수하는 걸 알면 대인께서는…….”
“이것이 내 방식이야. 죽고 싶지 않다면 멀리 떨어져.”
“잠깐만. 려 대인께 보고하러 갈게. 대인이 오시면 다시 얘기해.”
완아는 말하면서 다급히 밖으로 뛰어갔다.
“려 대인이 오시기 전까지 무모하게 움직이지 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완아는 안쪽에서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 열기는 진원의 열기가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작열감이었다. 갑작스러운 열기에 완아는 자신의 영혼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눈을 파르르 떨며 다급히 밖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신혼이 불에 타버릴까 봐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바쁜 와중에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석실 전체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 속에는 열기가 가득 넘쳤다. 곧이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불꽃이 세차게 피어올랐다. 불꽃에는 신식의 불꽃뿐만 아니라 무인들이 죽기 전에 남긴 정신과 의지도 담겨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가슴 졸이게 만든 열기는 양준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는 즐기는 얼굴로 제자리에 앉은 채,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미친 듯한 흡입력이 그의 머릿속에서 전해졌다. 그러자 신식의 불꽃을 담은 기운이 순식간에 그에게 흡수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숨을 쉬는 법까지 잊고 말았다.
석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양준은 만족하지 않고 남은 용기에 봉인된 것을 모두 풀었다.
완아는 화들짝 놀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놈!”
그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재빨리 석실을 벗어났다. 신식의 불꽃 하나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는데 열몇 개가 동시에 튀어나온다면 그녀는 감당할 수 없었다.
뜨거운 열기는 석실에서 솟구쳐 나왔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던 완아는 크게 고꾸라지며 하마터면 땅에 넘어질 뻔했다. 그녀가 가까스로 몸을 가누자, 마신성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려용도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그에게 신식의 불꽃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봉인된 것이 한꺼번에 풀린 것이냐?”
“그가 스스로 푼 거예요…….”
완아는 울먹거리며 변명했다.
“제가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 없었어요…….”
“죽으려고 작정한 건가?”
려용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날려 석실로 들어갔다. 그녀도 자신만만해하던 양준이 이런 멍청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봉인을 풀었으니 살아남지 못하겠지?’
시선을 고정하고 안쪽을 바라본 그녀는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따가운 열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이다. 양준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개운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식의 불꽃 열몇 개를 흡수하는 중인 것이 분명했다.
려용은 깜짝 놀랐다. 순간 그녀는 양준을 파악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 명이 넘는 초범 경지 고수가 가지고 있던 신식의 불꽃은 그녀도 쉽사리 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준이 모조리 식해에 흡수한 것이었다.
‘그는 무슨 수로 자신의 안전을 장담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