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1장. 들키다
려용은 미간을 찌푸린 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 녀석은 어떻게 이처럼 대담하게 열몇 개의 신식의 불꽃을 식해 안으로 흡수한 거지? 그리고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어. 도대체 그의 식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그녀는 왠지 호기심이 일었다.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기운을 내보내 석실 전체를 밀실로 봉했다. 그리고 양준의 맞은편에 앉아 새하얀 손가락으로 양준의 이마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은밀한 신식의 힘이 려용의 식해 안에서 튀어나와 양준의 식해로 들어갔다. 그녀는 양준이 뭘 숨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양준의 식해 안은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아래쪽의 바닷물도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려용은 살그머니 식해의 상황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준의 식해는 기괴하고 강했다. 신유 경지 7단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 초범 경지 고수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신식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번 양준은 그녀의 앞에서 신식의 힘을 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여지를 많이 남겨 둔 게 분명했다.
‘정말 교활한 인간이군!’
허공에는 신혼 영체 하나가 조용히 떠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그것이 양준의 신혼 영체라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앞에는 파괴성을 지닌 신식의 불꽃 열몇 개가 무질서하게 식해를 휘젓고 있었다. 식해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려용은 걱정이 되었다.
“려 대인, 이렇게 제멋대로 남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건 좀 경우가 아니지 않나요?”
갑자기 양준의 신혼 영체가 돌아서더니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가 숨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려용은 순간 당황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실력이면 발각되지 않고 조용히 상대방의 식해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양준의 경계심이 매우 높았다.
그녀는 더는 숨지 않고 대범하게 신혼 영체를 드러냈다. 그녀는 양준의 옆으로 와서 진심 어린 말투로 입을 열었다.
“미안, 네가 무슨 수로 열몇 개의 신식의 불꽃을 흡수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우리 마신성이 너에게 투자한 것이기도 하고, 마신성의 주인으로서 지켜볼 자격은 되지 않느냐?”
“려 대인은 절 못 믿으시는 겁니까?”
양준은 씨익 웃어 보였다.
“조금은. 둘 다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전에 당한 일도 있고, 나는 신중할 수밖에 없단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럼 지금 나에게 너의 수단을 보여주겠느냐? 걱정하지 마. 난 널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보고만 있을게.”
려용은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양준이 신식의 불꽃을 흡수하려다가 되려 잘못될까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직접 옆에서 지키면서 만에 하나 변고가 생기면 양준을 구하려는 생각인 듯했다.
양준은 그녀의 호의를 알아챘지만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마다 비밀이 있지요. 려 대인은 제 식해에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전 대인을 내쫓지 않았습니다. 그건 당신이 제멋대로 제 비밀을 훔쳐보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려 대인은 믿을 만한 분이니까요. 그러니 강요하지 말아 주십시오.”
신식의 불꽃을 흡수하려면 반드시 금인독안의 힘을 빌려야 했다. 려용이 잠입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양준은 곧바로 금인독안과 오색 온신련을 숨겼다. 이건 그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양준이 칭찬을 아끼지 않자,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색한 기색이 감돌았다. 몰래 잠입했다가 양준의 칭찬까지 들으니 창피해진 것이다.
“정말 안 될까?”
려용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양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에 려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강요하지 않을게. 너도 조심해.”
말을 마친 그녀의 신혼 영체에서 강한 신식의 힘이 폭발하며 열몇 개의 신식의 불꽃을 감쌌다. 그녀는 그저 떠나기 전에 최대한 양준을 돕고 싶었다. 양준은 이를 알기에 막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려용의 신혼 영체에서 힘이 발사되자 양준이 숨겨 두었던 금인독안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리고 양준이 소통하지 않았는데 금인독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곧이어 커다란 위압감이 닥쳐왔다. 려용처럼 강한 신혼 영체도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순간 신혼 영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좁고 긴 황금빛 눈동자가 나타나자 사람을 무릎 꿇게 만드는 위압감이 식해에 드리웠다.
열몇 개의 불안정한 신식의 불꽃은 천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모두 조용해졌다. 그것들은 한데 모인 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려용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눈부신 황금빛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애써 금인독안과 소통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곧이어 금인독안에서 금빛이 발사되며 열몇 개의 신식의 불꽃을 비추었다. 그러자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이물질이 모두 깨끗이 정화되었다. 그리고 금빛의 위력은 전혀 약해지지 않고 그대로 려용의 신혼 영체를 맞혔다.
양준은 입을 떡 벌린 채, 제자리에 굳어졌다.
려용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혼 영체는 점차 옅어지더니 곧 사라졌다. 려용의 신혼 영체가 사라지자 금인독안은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 양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양준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는 정화된 신식의 불꽃을 흡수하지도 못한 채, 다급히 식해 밖으로 나왔다.
급히 눈을 뜬 양준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려용을 보았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그의 머리에 대고 있었는데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가위라도 눌린 듯,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급히 신식을 펼친 양준은 석실이 밀폐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금인독안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려용의 신혼 영체가 금인독안에 비춰지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마신성의 주인인 려용이 그의 눈앞에서 죽는다면 그는 뭐라고 해명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는 연단술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소안과 하응상을 찾으러 갈 수도 없을 것이다. 한비와 화묵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으로 려용의 복수를 할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양준은 신식으로 려용의 몸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려용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표정은 놀란 채로 굳어 있었지만 그녀의 신식과 육체 모두 멀쩡했다. 다만 지금 그녀는 뭘 겪고 있는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양준은 어리둥절했다.
금인독안이 힘을 펼칠 때마다 살상력은 엄청났다. 양준의 식해로 들어온 외부의 신식은 모두 금인독안에 의해 깨끗이 정화되었다. 그런데 왜 려용의 신식은 괜찮단 말인가?
‘그녀의 경지가 너무 강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로?’
하지만 어찌 되었건 려용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양준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눈앞에 단정히 앉아 있는, 의식이 없는 려용을 바라보는 양준의 기운이 위험해졌다. 방금 전, 려용은 분명 금인독안을 보았다. 양준은 이 기회에 려용을 죽여 입을 막아야 할지 고민했다.
한참 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속의 생각을 지웠다. 려용을 죽인다면 그도 분명 번거로워질 것이다.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심호흡을 했다. 석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신성의 사람들이 이곳의 이상함을 느끼고 모여드는 것 같았다. 완아의 부름 소리도 들려왔지만, 그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한참이 지나도 려용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양준도 더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신식의 불꽃을 흡수하러 자신의 식해로 들어갔다. 양준이 려용에게 신식의 불꽃들을 요구한 건 서적의 기록 때문이었다. 기록에서는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무인은 다른 사람의 신식의 불꽃과 융합하면 자신의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신식의 불꽃은 보옥 속 진령에서 탄생한 것이라 불꽃의 열기가 강한 편은 아니었다. 만약 남의 기운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신식의 불꽃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는 향후 그가 실력을 높이는 데에도, 연단술을 익히는 데에도 모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려용에게 신식의 불꽃이 열 개 넘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이 동한 것이었다.
이미 한 차례 정화한 덕분에 흡수하는 과정은 매우 쉬웠다. 동시에 식해 안은 현저한 변화가 나타났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던 바닷물은 짙고 묵직해졌으며 뜨거운 기운도 몇 단계나 높아졌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신식의 불꽃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수확이 크자 양준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가 다시 식해에서 나왔을 때, 려용은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녀는 여전히 전처럼 성숙하고 기품 있었다. 그녀는 지혜와 냉정함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지켜보았다. 다만 그녀의 표정에는 망연함과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려용은 깜짝 놀란 듯,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양준이 물었다.
려용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방금 전, 보셨죠?”
양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려용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니까.”
“네?”
양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렇게 급히 자신의 뜻을 표명하자 왠지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양준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날 못 믿는 것이냐?”
려용은 미간을 찌푸려다.
“난 대마신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다. 네 허락을 거치지 않고는 방금 전에 본 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