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2장. 눈에 띄게 달라진 대우
려용은 엄숙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양준은 대마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투와 표정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금인독안에 겁을 먹었나? 그게 아니면 마신성의 주인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거지?’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 추측은 좀 황당했다. 려용은 입성 경지의 고수인데 간이 그렇게 작을 리 없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믿습니다.”
려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그녀는 원래의 기품 있는 모습을 되찾고 부드럽게 말했다.
“난 이미 네 수법을 보았어. 음, 앞으로 네게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지 지지해 주겠다. 너는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 연단술에만 몰두하면 된다.”
말을 마친 려용은 손을 휘저어 석실의 봉인을 풀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얼마 나가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참, 이곳에 있기 갑갑하면 완아와 함께 나가서 산책도 하려무나. 마신성에서 네 자유를 제한하는 사람은 없으니.”
“알겠습니다.”
양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려용이 떠난 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애써 감추려 했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전부 드러났다. 양준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연단에 매진했다.
*석실 밖,
려용은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간 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은연중에 흥분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완아는 다급히 뛰쳐나오며 살갑게 물었다.
“대인, 안의 상황은 괜찮나요?”
“괜찮다.”
려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잘 보살피거라.”
“네.”
려용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날려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뒤, 마신성의 가장 깊숙한 밀실.
밀실의 돌문이 열리며 려용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밀실에는 수많은 결계와 금제가 걸려 있었다. 밀실 안에는 마신성의 가장 귀한 보물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마신성의 주인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려용은 이곳에 들어온 뒤, 익숙하게 한 귀퉁이로 가 두터운 서적을 꺼냈다. 그것은 이미 오랫동안 찾는 이가 없어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녀는 급한 나머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먼지를 닦은 뒤,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그녀의 시선은 서적의 한 장에 고정되었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그것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점점 숨이 가빠지며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책장을 덮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긴 생각에 잠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침착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녀는 뭔가를 결단 내린 것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서적을 제자리에 돌려 놓고는 다시 빠른 걸음으로 밀실을 나갔다.
*다음 날, 양준이 연단하고 있는데 석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곧이어 완아의 안내를 받으며 수많은 마족들이 들어왔다.
양준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안색이 변했다. 그의 진원이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앞에 놓인 약 가마 안에서 검은 기체가 뿜어져 나오더니 제련하고 있던 약재가 망가지고 말았다.
완아는 사람들을 지휘해 석실에서 바삐 움직였다. 한참 지켜본 양준의 안색이 이상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그를 괴롭히러 온 게 아니라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석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매우 안락해 보이는 큰 침대가 석실의 귀퉁이에 자리했고, 탁상과 의자, 물주전자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시녀 차림의 여인들이 탁상 위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곧 석실 안에 식욕을 돋우는 향기가 진동했다. 단조롭고 휑하던 석실에 눈이 뒤집힐 정도의 변화가 생겼고, 보기만 해도 따스한 분위기가 풍겼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혹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일을 마치자 양준은 완아를 손짓해서 불렀다.
“이리로 와봐.”
완아는 그를 힐끗 보더니 내키지 않는 얼굴로 다가와 갸웃하고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이게 무슨 뜻이야?”
양준은 눈앞의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려 대인이 분부하신 거야. 우리더러 널 잘 모시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원하는 게 뭐야?”
양준은 경계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마신성의 사람들이 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연단할 약재를 제공해 준 것만 해도 양준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려용이 갑자기 그를 귀빈처럼 대우하자 오히려 경계심이 들었다.
“나도 궁금한걸.”
완아는 콧방귀를 뀌며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너처럼 비열하고 교활한 인간이 려 대인 앞에서 못 할 말을 해 대인을 속인 거 아니고?”
“려 대인은 쉽게 속일 수 있는 분이 아니야.”
양준은 냉소하였다.
“나에게 묻지 마. 나도 몰라. 난 그저 대인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물건을 여기에 둘 테니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말을 마친 완아는 손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뒤, 양준은 가져온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음식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껏 정성을 들인 요리였다. 무슨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음식에서 짙은 원기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들을 먹는다면 빠르게 체력과 정신을 보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위에는 수많은 진법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면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아가 가져온 물건 중에는 정석도 있었다.
‘정말 나를 귀빈으로 보는 건가?’
양준은 손에 든 정석 몇십 개를 보면서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마신성의 사람들은 소현계에 오랫동안 봉인돼 있었다. 때문에, 정석은 그들에게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려용은 그에게 통 크게도 정석을 몇십 개나 주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양준은 우선 가져다준 음식을 다 먹어 치워 배를 불린 뒤, 침대에 누워 한참 휴식을 취했다. 그런 다음에야 계속해서 연단에 몰두했다. 그 뒤, 종종 며칠에 한 번씩 완아는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가져왔다. 양준도 이를 거절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쉬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약재와 단약에 빠져서 살다 보니 그의 연단술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는 영진에 기대지 않고도 손쉽게 천급 상품의 단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려용도 수시로 와서 양준의 진척과 성장을 지켜보고는 했다. 그녀는 양준의 연단술이 빠르게 향상되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에도 전보다 웃음이 많아진 듯했다.
양준의 성장 속도로 보아 재료가 충분하고 경지가 따라간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성급의 단약을 제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성장 속도는 그녀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예민한 양준은 려용이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교류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매번 그녀는 몰래 왔다가 조용히 떠났다. 와도 멀리서 지켜보거나 완아에게 상황을 묻는 것이 다였다.
*몇 달 동안, 양준은 완아와 한담하면서 소현계의 많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
소현계의 면적은 작지 않았다. 이곳에 갇힌 마족들은 모두 마신성에 속해 있었지만, 네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네 명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네 명의 지배자는 모두 양준이 본 적 있는 이들로 각각 려용, 한비, 화묵과 저견이었다. 넷은 모두 입성 경지의 고수로 서로의 영지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 번 왔다 가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고 했다.
또한 네 명의 지배자 중에서 저견은 항상 려용의 자리를 노리며 마신성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한비와 화묵은 려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삼 대 일이니 저견이 아무리 야심이 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배자들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하다 보니 4대 영지의 마족들도 서로를 좋게 보지 않았다. 저견 쪽의 사람들은 싸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소현계에 적이 없다 보니, 다른 세 영지의 사람들과 갈등을 만들며 마음속의 전의를 발산했다. 려용과 다른 지배자들이 여러 차례 저지했지만 이런 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족은 본래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종족이 아니었다.
새벽이 되자, 완아는 소녀들을 지휘해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런데 양준이 있는 석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앞에서 한 청년이 튀어나왔다. 청년은 매부리코에 음울한 얼굴, 좁고 긴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악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완아 낭자, 좋은 아침이네요.”
완아는 어두운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그냥 인사나 할 겸 들른 거죠.”
청년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몇 달간 보지 못했더니 완아 낭자는 더욱 아름다워지셨군요. 경지는 발전이 있나요?”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
완아는 혐오의 기색을 띠며 말했다.
“그렇게 서운하게 굴지 말라고요. 언젠가 한 식구 될 사람끼리.”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여전히 히죽거렸다.
완아는 어두운 얼굴로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당신과 한 식구가 된다는 거죠?”
“내가 초범 경지에 도달하면 아버지께서 려 대인께 말씀드려 당신을 요구하겠다고 하셨어요. 조만간 내 사람이 될 테니 한 식구 아니겠어요?”
완아는 냉소하였다.
“려 대인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포기하세요.”
청년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더는 매달리지 않고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지금 뭘 하러 가는 건가요?”
“상관하지 말고 비켜요!”
완아는 그를 힘껏 밀치고 소녀들과 함께 석실로 들어갔다.
청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석실 안의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짓하자 바로 다른 마족이 뛰쳐나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내가 폐관한 몇 달 동안 성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왜 이곳에 인간이 있지?”
나타난 이는 다급히 양준이 온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청년에게 양준이 그동안 받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우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려 대인이 저 자에게 정석을 몇십 개나 주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