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3장. 도발
양준이 추측한 대로 마신성 사람들은 소현계에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만큼 정석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이곳의 천지 영기는 부족하지 않지만, 정석의 도움을 받는다면 실력을 빠른 속도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현계에 갇힌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신성의 정석은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려용이 완아를 시켜 양준에게 준 정석 몇십 개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밑천이었다. 때문에, 양준에게 정석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반랑(潘朗)은 욕심이 생겼다.
“한낱 인간 무인이 정석을 쓸 자격이 있겠어?”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려 대인이 요즘 저 인간 무인에게 매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도 저 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마족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했다.
“내가 언제 쟤를 괴롭히겠대?”
반랑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내가 쟤를 괴롭히는 걸 누가 봤대?”
그 말에 마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머리를 긁으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반랑은 음산하게 석실을 바라보더니 낄낄 웃었다.
*석실 안,
양준은 완아가 소녀들을 지휘해 음식을 내려놓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가 상이 차려지자마자 탁자 옆으로 다가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완아는 가소로운 얼굴로 입을 삐죽이고는 씩씩거렸다. 그녀도 왜 두 달 전부터 려 대인이 양준을 이렇게 잘 대해 주는지 알 수 없었다. 대우가 좋다 못해 다른 사람들이 시샘할 정도였다. 려 대인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먹다가 배 터져!”
완아는 부러운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양준은 손짓으로 그녀를 불렀다.
“같이 먹자. 이렇게 많은데 나 혼자 다 못 먹어.”
“누가 먹을 게 아쉽대!”
완아는 콧방귀를 뀌고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순간, 양준은 그녀가 침 삼키는 소리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완아의 태도로 봤을 때, 그녀가 가져온 음식들은 모두 좋은 것들이었다. 그녀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난 뒤로 온몸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은 금방 가져온 음식을 다 먹어버렸다. 완아가 데려온 소녀들은 접시들을 깨끗이 치우고 난 뒤, 방을 나갔다. 양준은 기지개를 쭉 켜고 좀 쉬고 나자 온몸에 기운이 마구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대로 다시 연단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석실에서 연단하고 있던 양준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귀를 쫑긋 세웠다.
밖에서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숨을 죽인 채, 석실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양준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
그가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되었다. 마족의 무인들은 대부분 그를 얕잡아 보았지만 감히 그를 괴롭히러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지?’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족히 예닐곱 명은 되었다. 모두 신유 경지의 무인이었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는 신유 경지 정상이었다. 이를 감지한 양준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여유롭게 약 가마 안에 진원을 주입해 넣고 약재의 약 기운을 담금질했다.
끼익-
돌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곧이어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양준은 고개를 들고 힐끗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는 매부리코에 안색이 우중충한 청년이었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양준을 향한 경멸과 멸시가 담겨 있었다. 다른 마신성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양준을 얕잡아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양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봐, 반랑, 이 인간 참 재미있는데. 우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잖아.”
무리 중 한 명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려 대인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우리를 두려워할 게 없다 이거지.”
반랑은 냉소했다. 그는 말을 하며 성큼성큼 양준 쪽으로 걸어갔다. 양준의 앞에 다가간 그는 쭈그리고 앉더니 비웃음을 띠고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침착하게 약 가마에 진원을 주입하고 불을 조절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반랑은 화가 나 손을 내밀더니 약 가마를 내리치며 진원을 주입했다. 그러자 안에 있는 약재는 순식간에 타서 재가 되어 버렸다.
“인간, 아주 건방진데?”
반랑은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도발적으로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내 약재를 망치지 말고!”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덤덤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의 약재는 우리 마신성의 소유물이지, 네 것이 아니야.”
반랑은 코웃음을 쳤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그에게 트집을 잡으러 온 것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온 거야?”
“별일 아니야. 네가 연단사라며?”
반랑은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쪽의 약병을 보고는 눈을 반짝거렸다.
“이게 네가 만든 단약이야?”
양준은 그동안 만든 단약을 모두 옥병에 넣어 보관했다. 그도 이걸 자신이 가질 생각은 없었다. 모든 재료를 마신성에서 제공했으므로, 이 기회에 연단술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려용이 단약이 필요하다고 하면 다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두 등급이 높지 않은 지급, 천급의 단약이었다.
그런데 반랑이 그걸 탐낼 줄이야. 그를 따라 들어온 몇몇 마족들은 달려들어 약병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은 뒤 기쁜 얼굴로 말했다.
“등급이 높지는 않아. 천급은 좀 도움이 될 거 같군.”
반랑은 손을 흔들었다.
“다 가져가.”
마족들은 기뻐하며 약병의 단약을 나누어 가졌다.
“이건 모두 려 대인에게 드리는 거야. 너희들이 다 가져가면 난 뭐라고 말해야 되지?”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가 뭐라고 말하든 내가 알 게 뭐야. 네가 먹었다고 하든, 제조에 실패했다고 하든, 이유를 대면 될 거 아니야?”
반랑은 냉소하였다.
“이번 단약도 내가 가져갈 거고, 앞으로 네가 만든 단약을 다 반씩 나누어 줘야 할 거야. 안 그러면…….”
협박의 냄새가 다분했다.
“이걸 려 대인이 알게 되면 네가 많이 시끄러워질 텐데?”
양준은 웃으며 말했다.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린다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반랑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양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고 의기양양해하며 말을 이었다.
“인간, 려 대인이 너에게 상으로 정석을 주었다면서? 혼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그 정석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
그러고는 양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어. 너희들은 날 괴롭히러 온 거구나.”
“그렇다면 뭐? 고작 인간 따위가 이런 대우를 누릴 자격이 돼? 난 마신성 미래의 기둥이야. 나야말로 누릴 자격이 된다고.”
“고작 그 실력으로?”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을 꺾었다.
“나쁘지 않네. 몇 달간 싸움을 하지 않아 몸이 근질거렸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몸을 풀어 주겠다니 그 호의를 받아 주지.”
반랑은 멍해 있다가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그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마족들은 재미난 소리를 들은 것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반랑은 너무 웃겨서 꺽꺽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양준을 가리키며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들었어? 우리와 싸우겠대. 하하. 인간이 감히 우리 고마(古魔) 일족과 싸우겠대. 정말 죽으려고 작정했군.”
“내가 혼내 주지.”
반랑의 뒤에 있던 몸집이 장대한 마족이 걸어 나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들은 항상 주제도 모르고 날뛰지.”
“그럼 교훈을 좀 주라고!”
반랑은 웃음기를 거두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려 대인이 양준을 예우해 주고 있지만 어쨌든 다른 종족이었다. 전에 이곳에 왔던 인간 연단사들도 많은 마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려 대인은 한 번도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죽지만 않는다면 괜찮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그들은 양준이 예전 연단사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집이 큰 마족은 양준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더니 경멸 어린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먼저 공격해!”
“그럼 넌 기회가 없을 거야!”
양준이 냉소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석실 안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리더니 양준과 대치하던 마족은 순식간에 나가떨어져 몇십 장 밖에 있는 돌벽에 부딪히고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주변의 돌벽에도 순식간에 거미줄 같은 틈이 생겼다. 그는 반동에 의해 땅바닥에 떨어진 뒤에도 몇 바퀴를 더 굴러서야 겨우 멈춰 섰다.
반랑과 마족들은 동공이 수축되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도 굳어지고 말았다.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전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방금 전의 공격은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힘도 매우 강했다. 마족의 무인들과 견줄 만한 정도였다.
“꽤 강한데?”
반랑은 깜짝 놀란 얼굴로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쓰러진 동료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건방질 만하네.”
“나쁘지 않은 실력이야!”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자신이 날려보낸 이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공격할 때 얼만큼의 힘을 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일격이라면 상대의 경지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분노의 감정이 더 큰 것 같았다.
“느낌이 어때?”
반랑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만져 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늑골 한 줄이 부러졌을 뿐이야. 괜찮아!”
“괜찮으면 이 자식에게 피의 교훈을 안겨줘. 우리를 얕보지 못하게 해야지!"
반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럴 생각이었어.”
그는 대답하고 나서 커다란 몸집으로 번개같이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달려오는 그의 얼굴에 검은 무늬 몇 갈래가 나타나더니 원래도 난폭하고 사나운 얼굴이 더 무섭게 일그러졌다. 얼굴에 나타난 무늬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무늬는 마치 뱀처럼 그의 얼굴을 타고 올라갔고, 동시에 그의 기세가 바뀌면서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