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4장. 이렇게 강하다고?
마족의 변화를 본 양준은 겉으로는 침착한 표정을 고수했지만 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는 전에도 적지 않은 마족들의 몸에서 무늬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늬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려용, 완아 같은 이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무늬가 없었다.
지금 보니 그녀들은 무늬가 없는 게 아니라 눈앞의 마족처럼 자유자재로 숨기거나 드러낼 수 있는 듯했다. 무늬가 나타나면 마족의 실력은 한 단계 상승했다.
반랑 무리는 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양준이 크게 당할 것이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양준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공격을 피하지 않은 채 그와 정면으로 대치하기 위해 뛰어갔다. 그는 상대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쿠웅-
눈에 보이는 기운들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을 휘몰아쳤다. 양준은 나가떨어지다가 공중에서 몇 바퀴 공중제비를 돌고 나서야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상대방도 똑같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버티려 했지만 열몇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벽에 부딪힌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러고는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었다.
반랑 무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소현계 안에 나타난 인간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마 일족이 신체적으로 다른 종족들보다 훨씬 우세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족의 다른 이들도 고마 일족과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정면으로 대치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료는 인간과 실력이 비등했다.
반랑은 크게 화가 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인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는 거야?”
숨을 고르고 있던 마족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이 자식 몸이 아주 좋아.”
“몸이 아무리 좋아도 어떻게 우리 고마 일족과 비교할 수 있겠어?”
반랑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에겐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어. 또다시 실패한다면 나와 함께 움직일 자격이 없는 거야. 그럼 넌 일반 마족으로 전락될 거야.”
“걱정하지 마. 이번에 잘 상대해 볼게!”
마족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사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던 무늬가 또다시 바뀌었다. 무늬들은 녹은 것처럼 그의 얼굴 전체를 뒤덮어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시뻘건 두 눈에서는 차가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앞선 두 번의 실패로 그는 정말 화가 난 상태였다.
양준은 공중에 뜬 채, 싸늘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마음속 의문은 더 커졌다.
그제야 그는 소현계에 살고 있는 마족의 신체적 강인함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와 겨루고 있는 마족은 같은 신유 경지 7단계였지만 몇 번이고 자신의 기세와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경지의 다른 인간 무인이었다면 양준의 첫 번째 공격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이나 크게 다치고도 또다시 벌떡 일어났다.
‘고마 일족의 몸에는 큰 잠재력이 숨어 있는 것 같군!’
반랑 무리들의 그에 대한 태도와 말투로 보았을 때, 고마 일족의 무인들은 모두 호전적인 듯했다. 동료의 늑골이 부러져도 그들은 걱정하기는커녕 계속 자극을 주면서 체면을 되찾으라고 부추겼다.
‘이 종족은 역시 인간과는 많이 다르군.’
마족은 다시 한번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의 발 밑에서 갑자기 묵직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그의 형체가 양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속도가 극한까지 올라가면서 인영이 옅어졌던 것이다.
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문(魔紋)이 2단계로 펼쳐졌으니 저 인간 녀석은 큰코다치겠군!”
말이 끝나자마자 또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사라졌던 마족이 나타났다. 그는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 양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눈빛에는 온통 원한, 독기와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곧이어 그는 온몸의 힘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양준의 발 밑 아래 석판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덤덤하게 마족을 바라보았다. 마족의 놀란 눈빛을 받으며 그는 한 손으로 그의 발목을 잡고 풍차를 돌리듯 몇 바퀴 휙휙 돌리다가 위로 던져 버렸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진원이 몸속에서 폭발하며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저지했다. 그리고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다시 가슴과 복부에 묵직한 공격이 연거푸 쏟아졌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니 양준이 뒤쫓아와 자신이 몸의 중심을 잡기 전에 공격을 날린 것이었다.
양준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양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주먹에서는 순수하고 뜨거운 진원이 솟구쳐 나와 마족의 마기와 부딪쳤다. 그의 마기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움츠러들었다.
쿠웅- 쿠웅- 쿠웅-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양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맹공격을 펼쳤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마족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런 맹공격은 초범 경지의 인간 무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마족은 버텨냈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질 때에야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여전히 양준의 옷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죽어도 굴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양준은 다시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양준이 주먹을 거두자 마족의 기세는 순식간에 사그라지더니 몸이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의 마문도 빠르게 사라졌다.
양준은 천천히 일어선 뒤 앞에 서 있는 반랑 무리를 음산하게 바라보았다. 동료가 맞고 있어도 그들은 나서서 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랑이나 다른 마족들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은 인간 무인의 전투력이 이렇게 강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잔혹한 싸움 방식은 그들의 입맛에 꼭 맞았다.
“재미있군. 우리가 널 얕잡아 보았나 보군!”
반랑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이긴 건 우리 중에서 가장 약한 놈이야. 다음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할 거야.”
그러고는 또 다른 마족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마족이 바로 걸어 나왔다.
“번거롭게 굴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양준은 팔을 움직이며 말했다. 몇 달간 연단술에만 매진하다 보니 사람과 겨룰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바탕 움직이고 나니, 몸이 개운한 것이 몸속의 전의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기운이 철철 넘치는 상태였다. 특히 오랜만에 실력이 강한 상대와 싸우니 오히려 의욕이 샘솟았다.
반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렇게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생사를 건 싸움이라면 다른 얘기겠지만 널 그냥 혼내 주는 것뿐인데 우리 모두가 나설 필요는 없지.”
“그래?”
양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실력을 남김없이 폭발하며 말없이 몸을 날려 마족들에게 달려들었다. 뜨거운 진원이 순식간에 공간을 뒤덮었다. 그의 공격은 정확하고 미묘한 제어로 동시에 남은 대여섯 명의 무인들을 적중시켰다.
반랑은 버럭 화를 냈다.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그가 소리를 지르자, 남은 마족들의 목에 마문이 나타나더니 무늬가 얼굴까지 기어오르며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반랑 무리도 양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그에게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반랑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양준의 진원이 그들의 마기를 억누른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혼잡한 싸움이 벌어졌다. 양준은 혼자서 여러 명의 적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기는커녕 흥분한 얼굴로 전의를 불태웠다. 너무 오랫동안 참았던 것이다. 만약 이번 기회에 몇 달간 쌓인 짜증을 해소하지 못하면 아마 조만간 엄한 사람한테 풀 수도 있었다. 반랑 무리가 딱 알맞은 시기에 도발을 해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각종 교묘한 무공들이 석실 안에서 펼쳐졌다. 양준도 고마 일족의 강한 전투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들의 기척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석실 대문을 여는 순간, 완아의 아름다운 눈은 실눈이 되었다. 그녀는 엉망진창이 된 석실의 상황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동안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몇 달 동안, 양준은 매우 고분고분하게 행동해 왔다. 그가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기에 수시로 감시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이야. 석실 안에는 예닐곱 명의 마족들이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거나 엎드린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또한 석실 안 곳곳에서 싸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핏자국도 군데군데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완아는 소리를 지르며 다급히 들어와 마족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장 처참한 이는 몸 절반의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이런 상처는 아무리 고마 일족이라고 해도 완전히 회복하려면 적어도 반년이 필요했다. 가장 상처가 가벼운 이도 뼈가 열몇 대 정도 으스러진 채,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반랑?”
마지막 사람을 살펴보던 완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도 싸움으로 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완아는 반랑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같은 종족이었다. 그들을 때린 장본인이 양준인 것을 알게 되자 당연히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다가가기도 전에 귓가에서 려 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방해하지 마라. 곧 경지를 돌파할 것 같구나. 사람들을 불러 반랑 무리를 조용히 데리고 나가라고 하거라.”
“대인, 하지만 여긴…….”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있다. 반랑 무리가 먼저 도발한 거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완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멍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망연함이 깃들었다. 려 대인의 말을 들어 보니 정말 그가 반랑 무리를 다치게 한 것 같았다.
‘이 인간 녀석이 이렇게 강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