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35화 (634/853)

제 635장. 려용의 처사

마신성 대전에서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려용이 상석에 앉아 있고, 아래쪽에는 마신성의 고위층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네 명의 지배자들 외에 실력이 가장 강하고 신분이 높은 이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피부가 하얀 초범 경지 3단계의 노인은 흥분한 얼굴로 화를 내며 말했다.

“려 대인, 그 인간 녀석은 감히 마신성에서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마족 일곱 명을 때려눕혔으니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다른 초범 경지 2단계의 노인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이렇게 날뛰다니요. 려 대인께서 자비를 베풀어 그에게 큰 이득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우를 해줬는데 그는 전혀 만족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대인의 자비를 믿고 제멋대로 굴고 있습니다. 그를 혼내 줘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누가 주인인지 알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했다.

고마 일족은 실력이 강한 만큼 자존심도 강했다. 그런데 이번에 휘하 제자 일곱 명이 양준에게 맞아 중상을 입었고, 심한 이는 반년을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당했다. 다들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다. 이번 일은 그들에게 있어 최대의 치욕으로, 양준에게 분풀이를 함으로써 무너진 체면을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려 대인이 요즘 양준을 매우 아낀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를 혼내 주기 전에 반드시 려 대인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녀야말로 마신성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자네들 모두 같은 마음인 건가?”

려용은 아름다운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가볍게 물었다.

“네!”

가장 격노한 듯한 얼굴이 하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가?”

려용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촉촉한 눈망울에는 한기가 번뜩였다. 그녀는 안색이 하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친 반랑이 자네 아들이라서?”

노인은 순간 당황하다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고마 일족을 위해서입니다.”

“려 대인!”

다른 한 사람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의 영향은 매우 심각합니다. 성 안의 많은 무인들이 석실로 가서 인간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난리입니다. 저희는 그가 자질이 뛰어난 연단사라는 것도, 우리 일족의 희망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다른 마족들은 모릅니다. 그를 엄벌로 다스려 반랑 무리의 체면을 되찾아주지 않는다면 마족들도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려용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고마 일족은 무력을 숭배하지. 언제부터 자신이 당한 것을 남이 대신 나서 주기를 바라게 되었던가? 반랑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상처를 치료한 뒤, 스스로 싸워 이기면 되겠군.”

“지금 다들 매우 흥분한 상태입니다. 그 인간 녀석이 안하무인이라고 하며…….”

반랑의 아버지 반복(潘卜)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마족들의 기분도 헤아려 주셔야 합니다.”

려용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벌하기를 원하는가?”

“간단합니다. 그가 우리 마족들의 뼈를 부러뜨린 만큼 저도 그놈의 뼈를 으스러뜨리겠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요.”

반복은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목숨을 취하겠다는 것인가?”

려용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그러자 반복이 웃으며 말했다.

“려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놈이 우리 마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터이니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앞으로 연단하는 데만 지장이 없게 하겠습니다.”

려용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반복은 멍해 있다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려 대인, 우리 일족은 이곳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대인께서도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침 갈등이 생겼으니 전의도 불태우고 좋지 않습니까? 이번 일을 대인께서 잘 처리하지 못하시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저견 대인께 의탁하러 간다든지요.”

반복은 실눈을 뜨며 말했다.

려용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그녀는 자애로운 모습을 감추고 위엄을 드러냈다.

이에 대전 안의 몇몇 초범 경지 고수들도 흠칫 놀라며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제야 그들은 려 대인이 괜히 마신성의 주인이 된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인자함과 선량함만으로 그 자리를 지킨 것은 더욱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인자하고 선량한 모습 뒤에는 위엄이 넘치고 강한 모습도 있었다.

려용은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다가 바로 거두었다. 그녀는 침묵한 채, 한참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걸세. 자네들은 모두 자신의 부하를 잘 단속하게나. 오늘부터 다시 그 인간을 괴롭히는 사람이 나온다면 내가 직접 그를 대마신의 품에 보내 주겠네.”

그 말에 반복 무리는 안색이 변하더니 경악한 얼굴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대인……!”

“다들 알아들었는가?”

려용이 차갑게 호통쳤다.

“려 대인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반복은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가 보게.”

려용은 손을 휘젓고는 덧붙였다.

“단아(斷牙)는 남거라!”

과묵한 마족의 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에 남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러났다.

“대인,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단아가 물었다.

“오늘부터 네가 그 석실의 주변을 지키고 있거라. 그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바로 죽이거라.”

려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단아는 놀란 눈빛을 했다. 려용이 이토록 그 인간을 중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주저하며 물었다.

“반복 무리는요?”

“그들은 직접 나서서 젊은이를 상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리한다면…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단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물러났다.

대전 밖,

반복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단아처럼 려용이 왜 이토록 양준을 중시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연단사라고 해도 이런 보호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의 아들 반랑은 마신성 젊은 세대 중의 인재였다. 나중에 어쩌면 대권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다음 세대의 기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겨우 인간 따위에게 처참하게 당했으니 복수해야 마땅했다. 그는 려용의 결정에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어떻게 된 거야? 려 대인은 그 인간을 꽤나 신경 쓰는 모양인데.”

그중 한 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혹시 려 대인이 그놈에게…….”

“말을 삼가! 려 대인이 어떤 분인데 어찌 비천한 인간에게…….”

“이 일은 간단하지 않아. 려 대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처사하실 리 없어. 분명 뭔가 있을 거야.”

“이유가 뭐든 려 대인의 이번 처사는 공정하지 않아.”

반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어두운 얼굴로 냉소하였다.

“려 대인이 계속 이렇게 독불장군처럼 고집을 부리다가는 조만간 사람들의 지지를 잃게 될 거야!”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은 모두 반복의 불만을 알아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석실 안,

보이지 않는 기운이 양준을 중심으로 주변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속의 진원은 온몸의 피와 살과 함께 춤추며 날뛰고 있었다.

신유 경지 8단계였다.

양준은 몇 달 동안 연단술에만 빠져 지내느라 경지를 돌파할 때가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금인독안으로 수많은 고수들의 신식을 흡수한 덕분에 그는 입성 경지를 돌파하기 전까지 침체기에 들어설 걱정은 없었다. 힘만 따라준다면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날의 싸움이 없었다 해도 양준은 늦어도 한 달 안에 신유 경지 8단계를 돌파했을 터였다. 하지만 난폭하고 잔혹한 그날의 싸움으로 돌파하는시간이 한 달이나 앞당겨졌다. 싸움은 역시 경지 돌파의 중요한 작용을 했다.

신식으로 감지해 보니 석실 밖에는 많은 마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모두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석실 안 멀지 않은 곳에서 완아가 복잡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그를 다시 한번 파악하려는 듯이 눈동자에는 낯선 빛이 반짝였다.

“너도 참…….”

양준이 경지를 돌파하자 완아는 웃는 얼굴로 뛰어왔다. 그녀는 양준의 주변을 몇 바퀴 돌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어떻게 반랑 무리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거야?”

양준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너 혼자 싸운 거야?”

완아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럼 또 누가 있는데?”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너 정말 그렇게 대단해?”

“왜? 내가 그렇게 약한 줄 알았어?”

“약하다고 여긴 게 아니라 이렇게 강할 줄 몰랐던 거지. 인간의… 몸이 어떻게 우리 종족보다 더 강할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양준을 만져보고 싶은 듯했으나 쑥스러운지 손을 도로 가져갔다.

“너 좀 고소해하는 것 같다?”

양준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반랑과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사이가 안 좋을 건 없는데 좀 짜증나기는 했어. 자꾸 집적거리잖아. 네가 그를 다치게 했으니 나도 한동안 조용히 지낼 수 있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너에게 감사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외부인, 너 지금 큰일났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석실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을 말하는 거야?”

“맞아.”

완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밖에 모여서 널 끌어내 단단히 혼내 주겠다고 하고 있어.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하고는 상대가 안 될 거야.”

“그건 겨뤄 봐야 알지.”

“참, 건방지다니까. 정말 할 말이 없어. 너희 인간들은… 허풍만 잘 치지.”

완아는 하찮다는 듯이 웃다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려 대인과 성 안의 다른 대인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의논하고 있거든. 만약 려 대인이 네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넌 큰일났어.”

완아는 양준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네가 다친다면 내가 잘 보살펴 줄게. 네가 나 대신 반랑을 혼내 줬잖아.”

“그럼 너 실망하겠는데?”

양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려 대인이 내 편을 들어준 것 같은데. 그렇죠, 려 대인?”

그는 말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한쪽의 공기가 일그러지면서 려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준의 말에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한 표정이 드리웠다. 곧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너도 참 여유롭구나.”

려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 마족들이 이렇게 흥분한다고 탓하지 말거라.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보니 이렇게 되었단다. 이곳에는 다른 종족 사람이 너밖에 없는 데다가 네가 우리 종족을 공격했으니 당연히 가만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

려용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마족들을 대신해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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