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6장. 마문의 현묘함
려용이 나타나자 완아는 급히 예를 올렸다. 려용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일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양준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원수를 갚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당신네 마족들이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전혀 두렵지 않느냐?”
려용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양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가 두렵겠어요?”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려 대인이 이번 일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면 제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겠죠. 제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 일을 처리하실 생각이라는 뜻 아닌가요? 려 대인께서 저에게 매우 잘해 주시는데 당연히 두려울 게 없죠!”
려용의 표정은 어색하게 변했다. 완아도 입을 틀어막고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려용 앞에서 이렇게 경박한 말을 내뱉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뻔뻔스러운 인간 녀석이 그런 말을 했는데도 려용은 화를 내기는커녕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가 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저한테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기에 려 대인께서 이렇게 신경 써 주시는 겁니까?”
양준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려용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관노 어르신이 들여보낸 사람을 홀대한 적은 없다. 언젠가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녀의 말은 자신을 속이는 말이었다. 완아도 거짓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데 양준이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려용이 말을 하지 않으니 양준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려용은 그의 식해에서 금인독안을 발견한 뒤로부터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협력 관계에 그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그녀는 여러 방면으로 그를 살뜰히 보살피고 있었다.
기품 있고 정숙한 려용이 자신을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성 경지의 고수로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한순간에 흩어지는 연기에 불과했다. 다른 원인이라고 해봐도 금인독안이 가져온 효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왜 금인독안이 그녀를 변화시켰는지 양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번 일을 처리할 거란 뜻이지. 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사람들을 단속시켰어. 그들은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도 앞으로 절대 우리 종족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게 조심해. 한 번은 지켜 줄 수 있지만 네 방자함을 계속 눈감아 주겠다는 건 아니니까.”
“전 한 번도 먼저 일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좋고.”
려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려용이 밖에 있는 마족들을 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석실 밖에 모여 있던 마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완아는 양준에게 혀를 홀랑 내밀어 보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해. 하지만 네 건방진 성격과 실력은 어울리지 않네. 네가 초범 경지까지 진급하고 나서 이렇게 날뛰어도 늦지 않아!”
완아는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에게 잡혀 있는 지금, 그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마족들 중에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이 다 그를 별종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보호가 없다면 그는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반랑이 트집을 잡아 그나마 상대할 수 있었지만 다음번에 만약 초범 경지의 고수가 쳐들어온다면? 또 그 다음에는 입성 경지의 고수가 나선다면? 때문에 양준은 직설적으로 자신에 대한 려용의 태도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확신을 얻고 싶은 것도 있었고, 자신의 짐작이 정확한지 확인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그의 추측은 모두 정확했다. 려용은 애써 숨기려 했지만 양준을 속이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른 음모가 있든, 아니든 양준은 그녀의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지켜야 했다.
한참 생각한 양준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마문이 뭔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양준은 몇 달 동안이나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고마 일족을 만나고 그들의 몸에서 무늬를 발견했을 때부터 마문이라는 것이 몹시 신경 쓰였다. 하지만 잘 아는 사람이 없어 차마 묻지 못했다. 괜한 화를 자초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려용이 자신을 진심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으니 알아볼 수 있었다.
양준은 고마 일족의 마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가 입마할 때도 이런 무늬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의 것은 반랑 무리의 것보다 더욱 기괴하였다. 양준은 어쩔 수 없이 완아가 다시 나타나면 물어보기로 했다.
양준은 결정을 한 뒤, 더는 생각하지 않고 약 가마 앞으로 다가가 계속해 자신의 연단술을 연구했다.
*려용은 석실을 나선 뒤, 양준을 괴롭히러 온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막막한 표정이 드리웠다.
그날 금인독안을 보게 되고 황금빛에 비춰진 순간, 그녀의 고마 일족 핏줄에 공명이 생기는 듯했다. 그녀는 밀실에서 서적을 찾아보다가 그 속에 기록된 뭔가와 자신이 관찰한 것이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때문에 려용은 양준에 대한 태도를 달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몇 달간 몰래 관찰한 결과, 그녀는 사실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준은 기괴하고 강하긴 하지만, 그녀의 예상에는 못 미치는 정도였다.
‘도대체 이게 옳은 것일까? 아닐까?’
그녀는 확신을 내릴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부하가 찾아와서 화묵과 한비가 약재를 가져왔다고 보고했다. 려용은 기쁜 얼굴로 다급히 대전으로 걸어갔다.
양준이 연단하면서 많은 약재를 사용했기에 마신성에 저장된 약재는 동나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다른 지배자의 영지에는 오랫동안 모아 둔 약재가 있었다. 화묵과 한비는 몇 달 동안 부하들을 시켜 약재를 찾아오게 한 뒤, 지금 한꺼번에 가져온 것이었다.
화묵과 한비를 만나 약재를 받은 뒤, 세 사람은 전처럼 한데 모여서 한담을 나눴다.
“려 대인, 저견 쪽에서는 약재를 가져왔습니까?”
화묵이 물었다.
“가져오긴 했는데 아주 적더군. 저견의 말로는 그의 영지에는 땅이 척박해 약재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동안 이것밖에 모으지 못했다면서 말이야.”
려용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새빨간 거짓말만 하는군요.”
화묵은 코웃음을 쳤다.
“저견의 영지에는 산맥도 있는데 어떻게 약재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점점 대인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겁니다.”
한비도 싸늘하게 말했다.
“그는 우리 마족의 앞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이 소현계만 지배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네요. 정말 미련하기는!”
두 지배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저견의 흉을 보았다. 둘 다 려용에게 저견을 혼내줄 필요가 있다고 한마디씩 보탰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려용은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화묵과 한비도 흥미를 잃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참, 려 대인, 그 인간 녀석이 사고를 쳤다고 들었습니다만? 려 대인께서 항상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시다가 왜 이번에는 외부인인 그의 편을 드신 겁니까?”
화묵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한비도 의아한 눈빛으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양준과 반랑 무리가 무슨 일로 갈등이 생겼는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차치하더라도 마족이 손해를 보았으니 외부인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들이 들은 바에 의하면 려용이 내린 처사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려용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소식이 참 빠르군.”
화묵이 말했다.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이 일에 대해 얘기하고 다닙니다. 제가 모르고 싶어도 쉽지 않지요.”
한비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일로 많은 사람들이 대인께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하셔야 했습니까?”
려용도 엄숙한 얼굴로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만약 내 짐작이 맞는다면 이 일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무슨 짐작입니까?”
화묵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은 살펴보는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 만약 자네들도 내가 본 것을 보게 된다면 분명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야. 확신이 서는 날에 다시 말해 주지.”
화묵과 한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려용을 봐와서 그녀의 안목과 판단을 믿고 있었다. 그녀가 외부인을 보호하기로 선택했다면 분명 그녀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화묵과 한비는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같은 마신성에 속해 있었지만, 각자의 영지가 다른 탓에 화묵과 한비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반랑이 양준을 도발했다가 오히려 당한 사건 이후로 고마 일족이 양준을 대하는 태도는 점점 더 나빠졌다. 양준도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서 매일 석실에 처박혀 단약과 약재에 파묻혀 지냈다. 그의 연단술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다. 매일 대량의 단약을 만들어 냈고 또 많은 약재를 소모했다.
양준은 석실 밖에서 정상급의 고수가 몰래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수는 자신의 기운을 거의 완벽하게 숨겼지만 시간이 흐르자 양준은 그의 종적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고수는 려용이 그를 보호하라고 파견한 사람인 듯했다.
이것을 발견한 양준은 한시름을 내려놓게 되었다.
완아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마족 소녀는 바깥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양준이 한가할 때면 그녀는 항상 다가와 바깥 세상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완아는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을 동경했다. 따라서 양준이 연단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가 언젠가 성급 단약을 만들어서 이곳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랐다.
양준도 완아에게서 마문에 관한 정보를 알아냈다.
완아의 말에 따르면 고마 일족은 혈통이 매우 순수하고 고귀한 마족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다른 마족들은 고마 일족과 비견될 수가 없었다. 마문은 마족들이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훗날 수련을 통해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싸울 때, 마문을 사용하면 실력이 오르고, 마문이 전면적으로 펼쳐질수록 실력도 더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반랑 같은 이들은 마문을 2단계까지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완아도 마찬가지였다. 양준은 그녀가 마문을 펼친 뒤, 경지가 올리가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신유 경지 6단계밖에 되지 않는 완아는 마문을 2단계까지 펼치자 몸속의 기운과 기혈이 신유 경지 정상의 고수와 맞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