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8장. 화산
양준이 너무 많은 질문을 해서인지, 완아는 그를 대강 구경시켜 주고는 석실로 돌아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양준은 대마신 석상 앞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의문에 빠졌다. 그는 그때 그 느낌이 환청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 깊이 생각해 보려 해도 아무런 증거가 없어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좌선하고 있던 양준은 근처에서 기이하고 신비로운 원기 파동이 전해져 얼른 눈을 떠 보았다. 이번에는 려용과 한비가 함께 찾아왔다.
양준은 한비까지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물건은요?”
려용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한테는 없어. 필요하면 스스로 얻어야 한다.”
“제가 스스로 얻어야 한다고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래. 이틀 동안 기다리라고 한 연유이기도 하지. 한비가 널 데리고 갈 것이다.”
한비의 영지는 마신성의 다른 한쪽에 있었다. 려용은 연통을 넣어 그녀를 불러오다 보니 이틀을 지체했던 것이다.
양준은 한비를 흘끔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치 있게 더 묻지 않았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지금 떠나자.”
한비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따로 준비할 건 없습니다.”
“그럼 바로 떠나지.”
한비는 말하면서 뒤돌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길에서 조심해.”
려용이 당부했다.
양준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한비를 따라 밖으로 걸어갔다.
양준이 석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비는 몸을 날려 아름다운 빛으로 변하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양준은 코를 훌쩍이고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려용이 의아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양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비는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해하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왜 따라나서지 않아?”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진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날아가면 진원을 너무 많이 소모합니다.”
양준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려고?”
한비가 짙은 눈썹을 살짝 구겼다.
“저를 데려다 주십시오.”
양준이 정색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비는 화가 나서 버럭 화를 냈다.
“간도 크네. 지금 나더러 너를 데리고 가란 말이냐?”
“저는 당신에게서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거든요.”
양준이 얼굴빛을 바로 하고 말했다.
려용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다가 한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비는 이를 악물었다. 이윽고 한마디 말도 없이 손을 흔들어 원기를 뿜어내더니 양준을 감싸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한비는 냉정한 성격으로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양준도 한비 같은 성격의 여인은 낯선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날아가는 동안 그는 눈을 감고 피로를 풀었다.
그런데 한비는 양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은밀하게 신식으로 끊임없이 그의 몸을 훑으면서 뭔가를 알아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소현계 안의 세계는 바깥 세계와 전혀 달랐다. 이곳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이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넓고도 척박한 땅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아 거의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없었다. 가끔씩 요수 몇 마리가 보일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내 침묵 속에서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 공기 중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기운에 양준은 저도 모르게 정신을 번쩍 차렸다. 뜨거운 기운은 그가 갈구하던 양성 원기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기 가운데 양성 원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짙어졌다. 앞쪽에 방대한 양성 원기가 모여 있는 듯했다.
양준은 기대감에 젖었다.
이틀 뒤, 저 멀리 하늘가가 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 이르자 천지에 양성 원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양준은 진양결을 돌려 자신이 원했던 양성 원기를 몸속에 흡수했다.
반면 한비는 자신의 힘을 끌어올려 양성 원기의 침입을 막아야만 했다. 양성 원기는 마기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아무리 고마 일족이라 해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시 반나절을 더 날아가자 양성 원기가 더욱 짙어졌다. 한비는 드디어 멈추더니 양준과 함께 하늘에 우뚝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는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산 입구는 짐승의 아가리처럼 험상궂게 벌어져 있어 공포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산 입구 깊은 곳에서 들끓는 용암이 보였다. 양성 원기가 지나치게 짙은 탓에 이곳의 바위는 모두 녹아내려 용암과 같이 바뀌었다. 이따금씩 산 입구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용암이 밖으로흘러내렸다.
동시에 양준의 가슴팍에 있는 양원인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무척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양원인은 양성 원기에만 반응하는데, 양준은 이처럼 강한 양원인의 파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아래쪽 양성 원기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목적지야. 이 정도로 짙은 양성 원기면 너도 만족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용암 아래쪽에는 양정광(陽晶鑛)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만약 재주가 있다면 마음대로 채굴해도 돼. 우리 고마 일족은 양정광이 필요 없거든.”
한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쪽에 내려가 수련 장소를 찾아줄게.”
그녀는 한마디 하고는 그를 원기로 감싸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모든 것을 녹일 것만 같은 용암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준이 놀랄 만한 힘을 온몸으로 폭발시키며 용암을 양옆으로 밀어내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마치 날카로운 검 같았다. 그녀가 지나간 곳마다 용암이 스스로 피하는 것만 같았다.
지나는 곳은 전혀 위험이 없었으나, 위쪽으로는 용암이 다시 뒤덮였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돌아가는 길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양준은 순간 그녀의 강한 경지에 놀라고 말았다. 입성 경지 고수면 이미 절정 고수였다. 다만 그는 그녀가 입성 경지 몇 단계인지 알 수 없었다.
몇 장이나 더 내려가자 한비도 점점 힘들어 보였다. 근처의 양성 원기가 너무 짙어 그녀조차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온몸에서 땀이 배어나오며 향긋한 냄새가 양준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양준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차갑게 그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내려가는 속도를 늦추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여긴 어때?”
“좋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곳에서 수련하고 있어.”
그녀는 말하면서 손을 내밀어 옆으로 그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용암이 갈라지며 바위벽에 구멍이 생겨났다. 양준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에 안성맞춤인 크기였다. 그녀는 금제용 원기를 몇 갈래 더 뿜어 공간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양준을 그 안에 던져 넣고 차갑게 말했다.
“인간, 꼼수 부리지 말고 이곳에서 네가 필요한 양성 원기나 흡수해. 한 달 뒤에 데리러 올 거야.”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한비는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더니 위쪽으로 몸을 날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떠나간 뒤에야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자신이 있는 위치를 탐지했다.
이곳은 매우 안전했다. 입성 경지 고수가 만들어 낸 공간이라 밖에서 흐르는 용암은 이곳에 침입할 수 없었다. 양준은 용암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말려들어 방향을 찾지 못하면 어지간히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양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진양결을 운행시켰다. 진양결이 운행되자 온몸의 모공이 동시에 열리며 사방의 짙은 양성 원기가 미친 듯이 몸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양준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이같이 넋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온몸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똑딱-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짧은 시간에 양액 한 방울이 만들어졌다.
지금 양준의 경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진원의 순도나 농도가 전보다 몇십 배는 더 강했다. 이는 양액 한 방울을 응결시키는 데 전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양성 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짧은 시간에 양액 한 방울이 형성되었다. 이 속도는 그의 상상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이곳의 환경은 그가 수련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똑딱- 똑딱-
가벼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는 기쁜 나머지, 곧 시간마저 잊고 말았다.
높은 산 아래쪽, 용암이 콸콸 흐르는 가운데 양준은 수련에 몰두했다.
*마신성에서 동쪽으로 천 리를 더 가면 곧 4대 지배자 중 한 명인 저견의 영지였다.
그 시각, 저견은 대전 안에서 심복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잠시 뒤, 저견은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더니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마신성을 떠났다는 말이냐?”
“네, 대인. 한비가 데리고 갔습니다.”
심복이 얼른 대답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느냐?”
“화산 쪽으로 간 듯합니다.”
“화산…….”
저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물론 화산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고마 일족의 금지 구역으로서 지배자들도 그곳에는 거의 걸음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험이 있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곳의 양기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화산에는 왜 갔지?”
저견은 그들이 화산으로 간 연유를 알 수가 없어 미간을 잔뜩 구겼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한비가 양준을 데리고 화산으로 갔을 리가 없었다.
“대인, 좋은 기회입니다. 혹시…….”
심복이 주저하며 물었다.
저견은 실눈을 떴다. 눈동자에는 순간 서슬 퍼런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당연히 좋은 기회인 줄 알고 있다. 가서 인간을 우리 영지로 모셔와야 할 거 같구나.”
저견도 양준의 여러 가지 소문에 대해 예의 주시했다. 그가 연단술에서 많은 진척을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저견은 줄곧 려용을 제끼고 소현계를 다스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번에 만약 양준을 자신의 영지로 데려와서 성급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연단사로 키워 이곳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고마 일족 사람들의 추대를 받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려용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는 려용 쪽에약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반면 자신의 영지에는 쌓아 둔 약재가 많았다. 양준이 이곳에서 계속해 연단하려면 반드시 그에게서 약재를 공급받아야 했다.
저견의 눈동자에는 마치 이미 그날이 온 것처럼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서둘러 임무를 지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