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39화 (638/853)

제 639장. 반란을 꾀하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지나갔다.

양준은 얻기 힘든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진양결을 돌려 미친 듯이 양성 원기를 흡수했다. 이미 단전에는 포화된 느낌이 들 정도로 무수히 많은 양액이 모였다. 그 덕분에 온몸에 기운이 차고 넘치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이번 수련을 통해 몇 년간은 아낌없이 펑펑 써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의 양액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오랜 시간 양성 원기를 미친 듯이 흡수하면서 주변의 용암도 영향을 받은 듯했다. 그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사방 1리 정도는 천지간의 양성 원기가 크게 감소되었다.

양준은 화산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탐색해 보고 싶었지만, 한비와 약속한 시간이 거의 임박한 탓에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괜히 그녀에게 책잡힐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한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기다림에 지친 양준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좌선하고 있던 장소에서 뛰쳐나와 용암이 흐르는 노선에 따라 아래쪽으로 깊이 내려갔다. 진원으로 몸 밖을 감싸서 보호막을 했기에 용암의 온도가 높아도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화산은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깊었고, 양준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원기의 충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환경은 그와 같은 양성 공법을 익히는 무인들이 수련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그러나 고마 일족에게 있어서는 피하고 싶은 곳일 터였다. 양준은 아직 그들에게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아래쪽에 어떤 비밀이 있을지 궁금할 뿐이었다. 어차피 봉인된 소현계 안에서 평생 화산에 갇혀 있으려는 것이 아닌 이상, 그가 몸을 숨길 곳은 없었다.

아래쪽으로 족히 한 시진이나 내려갔지만, 양준은 여전히 바닥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의 온도와 열기는 이미 그마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는 잠깐 멈춰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아래쪽에 내려가서 확실하게 탐색해 보고 싶었으나, 지금 상황에서 계속해 내려가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었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탐색을 포기하고 위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한 시진이 지나 양준은 자신이 수련하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한비가 차갑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이 도망친 줄 알고 한창 이를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양준을 발견하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어디 갔던 거야?”

“내려가서 좀 구경했습니다.”

양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려갔다고? 내려갈 수 있어?”

그녀의 길고 가는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조차도 더 아래쪽으로는 내려갈 수 없었다. 지금 이 위치가 그녀가 견딜 수 있는 한계치였다. 그런데 인간인 양준이 더 아래쪽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하니, 그녀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양성 공법을 수련하거든요. 이곳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습니다.”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한비는 그의 대답에 썩 만족하지 못했다. 이곳은 설령 양성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 해도, 다른 재주가 없으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따지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원하던 건 얻었어?”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려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한비는 말하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진원을 뿜어 그를 감싸더니 몸을 날려 위쪽으로 올라갔다.

곧이어 두 사람은 용암 분출구 위쪽에 이르렀다. 바로 이때, 양준이 갑자기 한비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요!”

한비는 순간 몸이 굳어지더니 양준을 노려보았다.

“뭘 하려는 거야?”

그녀는 남과의 신체적인 접촉을 꺼려하는 듯했다. 특히 남자와의 접촉은 더 꺼려했는데 자그마한 접촉에도 과민 반응을 보였다.

“스스로 감지해 보세요.”

양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비는 그의 말에 당황하더니 곧바로 신식을 펼쳤다. 이내 그녀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양준도 화산 주위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데, 한비가 어찌 감지할 수 없겠는가? 방금 전, 그녀는 양준을 데리고 나갈 생각에 주변을 경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좀 귀찮게 된 거 같군요.”

양준이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허공을 훑어보았다.

“잠자코 있어. 나 혼자 대처할 수 있으니까.”

한비는 말을 마치자마자 한 곳을 주시하더니, 이내 차갑게 외쳤다.

“저견, 나와!”

곧이어 시원하고 통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견이 숨어 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희롱하는 눈빛으로 한비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순간 음탕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한비, 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저견은 말하면서 길고 가느다란 눈으로 음산하게 양준을 훑어보더니 곧 시선을 돌려 한비를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양준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다.

“저견, 이곳에서 뭐 하는 거야?”

한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화산 근처는 고마 일족의 금지 구역이어서 누구도 쉽사리 찾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이곳에서 저견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게다가 저견이 말하는 사이, 주위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저견의 영지에 있는 고수들이었다. 하나같이 섬뜩하게 웃으며 이곳을 바라보는 동시에 용암 분출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소식을 듣고서 일찍이 이곳에 매복해 있던 것이다.

“뭘 하려는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저 인간을 데리고 갈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저견이 여유 있게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간이 크구나! 이 인간은 려 대인의 귀빈인 동시에 우리 고마 일족의 희망이기도 해. 지금 우리 고마 일족의 희망을 무너뜨리겠다는 거야? 저견. 소란은 그만 피우지. 려 대인이 너한테 자비를 베푼다 해서 네가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는 건 아니야.”

한비의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려 대인?”

저견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조만간 내가 마신성의 진정한 주인이 될 거다. 우리 고마 일족은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일족이야. 아무리 이곳에 오래 갇혀 있었다고 해도 세월 속에서 예리함마저 잃어버리면 안 되지. 려 대인은 너무 물러서 마신성을 관리하는 데 적합하지 않아. 나 저견이야말로 가장 적임자지.”

주위에 있던 저견의 부하들은 그의 말을 듣자 분위기가 금세 포악하고 위험해졌다. 저견이 말한 것처럼 이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음에도 저견 휘하에 모인 고수들은 여전히 호전적이었다.

“미쳤구나. 진작부터 네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로 집착할 줄은 몰랐네. 저견,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결국 죽는 길뿐이야.”

한비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어? 과연 네가 먼저 죽을까, 내가 먼저 죽을까?”

저견의 살기를 느낀 한비는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제야 그녀는 이번에 저견이 정말로 작정하고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만약 마신성을 장악하려 한다면 우선 자신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쪽을 제거해야 했다. 때문에 우선적으로 그녀와 화묵을 제거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소현계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한비는 인간에게서 배웠던 음모와 계략 그리고 서로 속고 속이는 속임수를 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비, 너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나에게 승복한다면 너를 아내로 삼고 나와 함께 마신성을 지배할 수 있게 해줄게. 저 인간이 성급 단약을 만들어 내면 우린 이 세계의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어. 려 대인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창창한 앞날을 가질 수 있지.”

한비는 조소 어린 눈빛으로 저견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

“나보고 시집오라고? 혹시 잠이 덜 깬 거 아니야? 설령 인간에게 시집가더라도 너에게 시집갈 생각은 없어.”

“아니, 왜 저까지 끌어들이세요?”

양준이 뾰루퉁해져서 한마디 했다.

그는 마신성의 내부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그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싸움의 요인이 되면, 그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그는 중요한 요인으로써 이긴 쪽에서 그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입 다물어. 여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한비가 양준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저견은 실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마음이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틀렸어. 려 대인이 너무 자비롭기 때문에 내가 마신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가 만약 이 세계를 벗어나 밖으로 가게 되면 려 대인의 나약한 성정으로 우리 고마 일족은 발붙일 곳마저 없을 거야. 오히려 려 대인이 정말 나한테 손을 썼다면 나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려 대인은 설령 오늘 내 행동을 알게 된다 해도 내 죄를 묻지 않을 거야. 려 대인은… 고마 일족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려 대인의 자비로움을 네가 제멋대로 하는 구실로 삼지 마. 네가 만약 마신성을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일족의 가장 큰 불행일 거야.”

한비가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

“참 실망스럽군.”

저견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한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을게. 나와 함께 손잡고 큰일을 할 것이냐? 한 번 더 거절했다가는 절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거야. 아름다운 여인은 많거든.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네 경지 때문이야.”

“꿈 깨!”

한비가 고함을 지르면서 선수를 쳤다. 그녀는 양준을 감싼 채, 아름다운 빛으로 변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견이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의 포위를 뚫으려는 것이었다.

저견의 포위를 뚫기만 하면, 한비는 양준을 데리고 마신성으로 도망쳐 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저견은 충분한 준비를 하고 온 만큼, 그녀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한비가 움직이는 동시에 저견도 움직였다. 미처 움직임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저견은 이미 한비의 앞을 막아선 상태였다. 그가 커다란 손을 쫙 펴자, 사악한 기운이 순식간에 자욱해지더니 험상궂게 울부짖는 짐승 아가리가 한비와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한비는 얼굴빛이 급변하며 양준을 데리고 물러섰다. 흰 손을 휘두르자 부드러운 기운이 바람처럼 밖으로 밀려 나갔다.

콰앙- 콰앙- 콰앙-

격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면서 찬란한 빛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빛무리가 확산됨에 따라 저견의 공격은 한비에게 막혀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겨루지 않았더니, 한비 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저견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곧 그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수십만 개로 변했다. 곧이어 수많은 그림자가 한비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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