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42화 (641/853)

제 642장. 채굴한 사람이 주인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저견에게 습격을 받은 뒤 오랫동안 추격당하다 보니 진원은 남아돌았으나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모가 너무 컸다. 둘은 자리에 앉자마자 몸부터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진이 지나 양준이 먼저 눈을 떴다. 그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고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한비는 여전히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아직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한 기운이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한참을 기다리자 한비도 점차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슬며시 양준과 거리를 두고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우리 어떡하지?”

“먼저 주변부터 둘러봅시다.”

양준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이어 진원이 그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며 밝은 빛을 뿌려 주위를 밝게 비추었다.

한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양준의 뜨거운 기운이 싫었다. 이는 양준 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마기와 양기의 본능적인 배척 관계 때문이었다.

“나한테 횃불이 있어.”

한비는 말하면서 어디선가 횃불 두 개를 더듬어 꺼냈다.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횃불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한비와 함께 각각 하나씩 들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양준이 전에 신식으로 살폈던 것처럼 이곳은 넓은 동굴이었다. 높이는 백 장이 넘었으며, 내부는 집 몇 채만큼 컸다. 그리고 짙은 천지의 기운이 흘러 넘쳤는데, 이곳에 있는 기운은 양기가 아니라 어떤 무인이든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순수한 기운이었다.

두 사람은 동굴 안에서 한참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더 깊이 들어가는 통로를 찾았다.

“더 들어가서 볼 건가요, 아니면 이곳에서 우리를 구해 주길 기다릴 건가요?”

양준은 횃불을 높이 추켜들고 한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비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양준의 말에 잠깐 갈등하고 주저하다가 말했다.

“려 대인께서 소식을 들었다 해도 우리가 아래쪽에 있는 건 모를 수도 있어. 얻기 힘든 기회니까 들어가 보도록 하지.”

“좋아요.”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고마 일족의 금지 구역으로 네 명의 지배자들조차 쉽사리 걸음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번에 만약 양준의 보호가 없었으면, 한비도 동굴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지 못하고 진작 용암에 녹아 버렸을 터였다. 그녀는 이곳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고마 일족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면서도 한 번도 이 위치까지 와 보지 못했었다.

둘은 통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주위의 암벽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반나절 동안, 한참을 깊숙이 들어갔는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내 양준의 뒤를 따르던 한비가 숨을 헐떡이더니 걸음걸이마저 휘청거렸다. 몸을 관통한 상처는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큰 영향을 미쳤다.

“잠시 쉬죠.”

양준이 제안했다.

한비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도 양준이 자신을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쉬는 동안, 양준은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 한 알을 꺼내 한비에게 건넸다. 한비는 그를 힐끔 보더니 묻지 않고 받아서 복용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지니고 다니지 않나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연단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단약이 있을 수 있어.”

한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없으면 진작 말씀하시죠…….”

양준은 할 말을 잃었다. 참 도도함의 극치를 달리는 여인이었다. 그렇게 심한 중상을 입고도 자연스럽게 완치되기를 기다릴지언정 그에게 단약 한 알을 요구하지 않다니. 그는 네 명의 지배자 중 한 명인 한비에게는 적어도 비상 단약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안하잖아.”

한비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무엇인가 꺼내 양준에게 건넸다.

“물 마실래?”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건네는 물주머니를 받아 몇 모금 마셨다. 그러자 한비가 다시 물었다.

“음식 먹을래?”

이번에 그녀는 양준이 본 적 없는 과일 몇 알을 건넸다. 과일 속에는 짙은 원기가 내재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아주 좋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어떡해서라도 빚을 갚으려는 건가?’

양준은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과일 몇 알을 건네받아 입에 넣었다.

“많은 물건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요.”

양준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녀가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궁금했다.

그는 통현대륙에 와서 적지 않은 이들이 건곤대를 사용하는 걸 봤다. 독오맹의 대장 몇 명도 모두 건곤대가 있었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매요에게도 건곤대가 있었다. 하지만 한비에게서는 건곤대가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양준은 그녀가 무엇으로 물건을 저장하는지 궁금했다.

“평소에 모았다가 비상용으로 허공 반지(虛空戒)에 넣어 둬.”

한비는 담담하게 설명하더니 자신도 과일 하나를 들고 조그맣게 베어 물었다.

“허공 반지?”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선은 한비의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고풍스러운 반지에 고정되었다. 반지는 검은색이었는데, 매우 오래된 물건인 듯했다.

“건곤대보다 등급이 높은 저장 비보이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보지 못했을 거야. 오직 역사가 유구하고 저력이 있는 세력에만 허공 반지가 있을 테니까.”

한비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녀의 손에 끼워진 허공 반지를 바라보던 양준은 순간 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자 놀란 말투로 물었다.

“혹시 진혼석으로 만든 건 아니겠죠?”

“진혼석을 알아?”

한비가 깜짝 놀랐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의 검은 책은 모두 진혼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진혼석이 조금 섞여 있어. 애당초 대마신께서 커다란 진혼석을 얻었는데, 어디에 쓰셨는지 자투리만 남게 되었대. 그리고 그 자투리로 조예가 깊은 연단사가 다른 재료와 함께 허공 반지 몇 개를 만들었다고 하더군. 반지는 지금은 네 명의 지배자가 보관하고 있어.”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려용과 화묵도 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반지에 대해선 그만 말하고, 이번에 큰 빚을 졌어. 물론 앞으로 더는 너를 이용하고 죽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화묵도 생각을 바꿀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려 대인이 너를 보호하는 이상, 화묵은 쉽게 너에게 손쓰지 못할 테니까.”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한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이었다.

“려 대인께서 왜 너를 중시하고 이렇게 보살피는지 원인을 알 수가 없네.”

“저도 모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대신 려 대인께 물어봐 주세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양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반시진이 지나 둘은 다시 횃불을 들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단약을 먹어서인지 한비는 방금 전보다 상태가 훨씬 나아져 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근처의 천지 기운이 점점 더 짙어졌다. 아래쪽에 기운이 모여 있는 듯했다. 이에 중도 지하의 상황을 떠올리고,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대담한 추측을 해 보았다.

“아래쪽에 지맥이 있는 건 아니겠죠?”

한비는 그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걷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또 한참 동안 걷자 어느 순간 앞쪽이 막혀 있었다. 이제 더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앞쪽 암벽에는 무엇인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뭐지?”

양준은 의혹이 담긴 얼굴로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한비도 서둘러 다가갔다. 눈앞의 상황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내밀어 진원을 돌리면서 앞쪽의 암벽을 깨뜨렸다. 그리고 양준은 암벽의 잔해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티 없이 순수한 보석 같은 물건을 찾아냈다. 양준은 그 속에 내재된 기운을 감지해 보고 모양을 살펴보다가 한비에게 말했다.

“한비! 어서 와 보세요. 이거 혹시 정석 아닌가요?”

한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양준이 감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양준이 들고 있는 물건에 정신을 빼앗겨 따지지 않았다. 한참을 살펴보고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정석이야.”

“이렇게 큰 게 정말 정석이라고요?”

양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역시 정석을 써 본 적이 있었다. 독오맹의 운훤에게서 얻은 것이나, 려용에게서 받았던 것이나 모두 호두알만 한 크기였다. 그리고 다 규칙적인 형태와 크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화산 아래쪽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정석을 찾게 될 줄이야.

“여기가 정석 광맥인가?”

한비는 흥분해 달려가더니 다른 정석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잔해에서 조금 작은 정석을 찾아냈다. 양준이 찾은 것보다 조금 작다 해도 일반적인 정석보다는 몇 배나 큰 크기였다.

“정말로 정석 광맥이군!”

한비는 단정 지어 말했다.

“그때 화산 아래쪽에는 양정광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양준이 놀라서 물었다.

“나도 그냥 기록에서 본 거라 틀릴 수도 있어. 하지만 정석은 양정보다 가치가 훨씬 더 높아. 특히 우리 고마 일족에게는…….”

한비가 변명했다.

양정광은 고마 일족이 사용할 수 없기에 양준이 이득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석은 달랐다. 정석은 모든 무인이 사용할 수 있었다. 고마 일족은 이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탓에 마신성에 저장해 두었던 정석은 진작 바닥이 나 있는 상태였고, 심지어 정석을 본 적도 없는 마족들이 더 많았다. 반랑 같은 인물도 양준에게 정석 쉰 개가 있다는 말에 눈독을 들일 정도였다. 이를 통해 정석이 소현계에서 얼마나 보기 드문지 알 수 있었다.

“부자가 됐네…….”

한비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이채가 어렸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채굴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너무 파렴치한 거 아니야. 이곳은 우리 고마 일족의 지역이거든. 이곳의 물건은 당연히 우리 고마 일족의 것이지.”

한비는 화가 나서 말했다.

“너무 탐욕스럽네요. 이곳은 정석 광맥이에요. 정석이 얼마나 매장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고요. 그리고 제가 없으면 당신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나요? 저는 지금이라도 당신을 이곳에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정석을 채굴할 건데요?”

양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너무 뻔뻔해!”

한비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녀는 이곳에서 줄곧 양준의 진원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만약 양준이 없다면 그녀는 움직이는 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정석을 채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냥 정석들과 함께 있으세요. 전 당신이 죽은 다음, 다시 와서 채굴할 거예요.”

양준은 말하면서 손을 젓고는 뒤돌아 떠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