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45화 (644/853)

제 645장. 절망적인 전투

다년간 잠자고 있던 화산이 갑자기 폭발했다. 분출구에서 간담을 서늘케 하는 용암이 용솟음치는 동시에 하늘에서는 눈부신 벼락이 번쩍였다. 곧이어 셀 수 없이 많은 벼락이 촘촘히 떨어졌다.

마족들은 분출하는 용암을 피하다가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벼락에 맞아 순식간에 뼈도 추리지 못하고 피 안개가 되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마족들은 깜짝 놀라 공포에 젖은 눈동자로 서둘러 신법을 펼쳐 사방으로 도망쳤다.

용암과 벼락이 동시에 덮치면서 화산 지역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려용, 화묵, 저견은 모두 얼굴빛이 굳어졌다. 그들은 더는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너도나도 뒤로 물러났다. 이곳에서 어떤 변고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같은 하늘의 위엄은 세 사람도 감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저 멀리 하늘가에서는 천둥이 울리고 화산 아래쪽에서는 용암이 솟구쳤다. 이 같은 하늘의 위엄에 마족들은 모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안 되어 저견과 려용, 화묵 두 무리는 용암 분출구에서 몇십 리 떨어진 곳으로 피신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이르러서야 쌍방은 멀리 용암 분출구의 상황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려용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도 그녀는 양준과 한비의 생사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실낱같은 희망도 잔혹한 현실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같은 천재지변에 양준과 한비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바로 이때, 난장판이 된 용암 분출구에서 그림자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분출구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양준과 한비는 얼굴빛이 크게 바뀌었다. 갖은 애를 다 써서 용암에서 탈출하니 이처럼 세계 종말과도 같은 광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사방은 온통 죽음의 분위기로 뒤덮여 있어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공포감에 휩싸였다.

“어서 피해.”

한비가 고함을 질렀다. 밖에 나온 이상 그녀는 양준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진원을 돌려 양준을 감싸고서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양준은 주저하지 않고 뼈 방패를 꺼내 그 속에 진원을 주입했다. 그러자 뼈 방패에 나 있는 짐승의 입이 떡 벌어지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막아 주었다.

우르릉 쾅-

벼락이 연이어 떨어졌지만 모두 뼈 방패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네다섯 번이나 막았을까, 현급 상품으로 제련된 방어 비보는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할 기미를 보였다. 다행히 한비가 빠르게 양준을 데리고 용암과 벼락 사이를 누비면서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겨우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앞쪽에 사람이 있습니다.”

양준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차갑게 외쳤다. 곧이어 그의 낯빛이 살짝 달라졌다.

“저견이군요.”

“큰일 났네.”

한비도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저견이 이렇게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화산 내부에서 적어도 보름 동안 머물렀다. 그런데 저견이 뜻밖에도 이리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우리 그냥 도망칩시다.”

양준은 음울한 표정으로 한비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견을 발견함과 동시에 상대도 이쪽 상황을 눈치챘다. 저견은 양준과 한비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었다니. 하하하! 역시 하늘도 날 돕는군!”

그는 말하면서 화산의 다른 한쪽을 바라보았다. 려용과 화묵의 상황을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그가 저쪽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상대도 이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려용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양준과 한비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만 잡으면, 그는 려용과 맞설 패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었다.

려용은 한비보다 양준에게 더 관심을 쏟고 있는 듯했다. 저견은 그 내막을 알고 싶었다.

맞은편 멀지 않은 곳,

양준과 한비는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벗어난 뒤, 방향을 바꿔 옆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견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저견은 냉소를 흘리고는 주저 없이 곧바로 마신변을 시전했다. 험상궂은 얼굴은 순식간에 시커먼 마문으로 뒤덮여 점점 더 큰 공포감을 조성했다. 입성 경지 2단계도 더 향상되었고 온몸의 기혈과 전투력도 빠르게 강해졌다. 순간 신형이 번쩍하더니, 그는 한비와 양준의 앞을 가로막고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명이 참 질기군. 그런데 이번에는 운이 그리 안 좋네. 한비, 그 자식을 내놔.”

그는 말하는 동시에 커다란 손을 한비에게 뻗었다. 한비는 냉소를 지으며 힘을 주어 양준을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마신변을 펼쳐 저견의 공격을 막았다.

서로 간의 실력이 작은 경지 하나가 차이 나지만 한비가 전력을 다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연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저견의 한 수에 중상을 입었던 것은 상대방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기에 순간 대처하지 못하고 당한 것이었다.

양준은 한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녀가 던진 힘에 기대 멀리 도망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열몇 명의 마족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이들은 모두 저견의 부하로, 가장 낮은 경지가 신유 경지 정상이었다. 그중 두세 명은 초범 경지 고수였다.

양준은 하늘에 우뚝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의 적을 둘러보고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적들에게서 강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우리와 함께 가지 그래. 저견 대인께서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초범 경지 3단계인 마족이 냉랭하게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양준은 실눈을 떴다. 하지만 그 사이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매운맛 좀 봐야겠군.”

초범 경지의 마족은 냉소를 흘리더니 대수롭지 않게 양준 쪽으로 날아와 그를 잡으려 했다. 커다란 손이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양준은 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림자가 눈앞을 스쳐 지나는 것만 같아 순간 불안감이 몰려왔다.

양준은 들고 있던 뼈 방패로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뼈 방패에서 방금 전에 삼켰던 벼락이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슈욱-

벼락이 뼈 방패의 떡 벌어진 짐승 입에서 뿜어져 나가면서 눈앞의 그림자를 산산조각 냈다. 초범 경지 3단계인 마족은 몇 걸음 물러서더니 커다란 손을 쫙 펼쳤다. 그러자 사악한 기운을 띤 원기가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두 원기가 부딪치며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양준은 끝장을 보려는 각오로 신식의 힘을 모아 식해 속의 신혼 단검을 조종했다. 신혼 단검은 붉은빛이 되어 마족에게 날아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기운이군!”

양준의 신식의 속성을 감지한 마족은 혐오감을 드러내더니 살심이 일었는지, 자신의 신식의 힘을 뿜으며 맞불을 놓았다. 무형의 접전은 순식간에 치러졌다. 양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피를 내뿜으며 몸까지 휘청거렸다.

그의 신식의 힘은 일반 초범 경지와 비견될 수 있지만 초범 경지 3단계 고수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의 신식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단 한 번의 충돌로도 그는 죽을 수 있었다. 마족도 피해가 적지 않은 듯했다.

그는 신식의 불꽃의 공격력을 너무 얕잡아보았던 것이다. 신식이 부딪친 뒤,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채, 내내 비명을 질렀다. 신식의 불꽃을 정상까지 수련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양준은 고작 일 년 전부터 신식의 불꽃을 수련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남의 신식의 불꽃을 열몇 개나 흡수했기에 공격력이 만만치 않았다.

“저놈을 잡아라. 그냥 묵사발을 만들어 버릴 테다.”

마족은 울부짖는 한편, 동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양준은 마치 춤추는 나비처럼 두 손을 휘둘렀다. 몇십 방울의 양액이 그의 몸 주위에 떠오르더니 예리한 창으로 변해 사방팔방에서 공격해 오는 마족들을 겨냥했다.

슈욱- 슈욱- 슈욱-

양액으로 된 긴 창이 번개같이 날아갔다.

마족들은 너도나도 수단을 펼쳐 긴 창을 막았다. 하지만 마기를 억제할 수 있는 공격에 몇몇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창에 맞고 말았다. 그들이 자랑으로 여기던 강한 육체는 얇은 종잇장처럼 긴 창에 꿰뚫렸다.

우지직-

마기와 양기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서로 정화하고 녹아들었다. 고마 일족의 고수 두세 명이 순식간에 중상을 입었다. 다른 공격으로 인한 상처라면 그들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강한 신체로 며칠만 지나면 모두 회복될 터였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천적인 양기 공격이었다. 그들이 몸속에 침입한 양성 원기를 해소시키지 않는 한, 몸에 난 구멍은 영원히 아물 수가 없었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것이 마치 분수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나머지 마족들은 점점 더 잔인하고 흉포해졌다. 그들은 동료의 생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두 양준의 곁으로 모여들어 그에게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양준은 양액으로 보호 방패 두 겹을 만든 다음, 쏟아지는 주먹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양액으로 만든 보호 방패 두 겹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는 초범 경지 두세 명과 신유 경지 정상 7~8명의 합동 공격을 한순간도 버텨 내지 못했다.

양준은 피를 뿜으며 줄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날아가 땅으로 추락했다.

“산 채로 잡아.”

조금 전 신식이 손상된 마족이 나지막하게 분부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명을 듣고 얼른 양준의 뒤를 쫓아갔다.

그 순간, 화산의 다른 한쪽에서 려용과 화묵도 드디어 이쪽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다.

“려 대인, 저쪽에서 싸우는 듯합니다.”

화묵이 기이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귀를 기울여 듣더니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이 기운은…….”

려용은 힘들게 탐지해 보았지만, 한가운데서 화산이 폭발하고 하늘에서 우레와 벼락이 방해하고 있어 그녀는 맞은편의 상황을 전혀 살펴볼 수 없었다. 신식으로 감지해도 너무 흐릿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리하게 익숙한 원기 파동을 감지해 냈고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한비군!”

“한비가 안 죽었다고요?”

화묵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비가 무사하다면 그 인간도 무사할 것이다.”

려용은 말하면서 아름다운 빛으로 변해 서둘러 그쪽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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