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46화 (645/853)

제 646장. 법접할 수 없는 기운

그날 양준의 머릿속에서 금인독안을 보고, 금인독안이 내뿜는 금빛을 쬔 다음부터 려용은 뭔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금인독안이 그녀에게 주는 느낌은 선대의 기록에 적힌 상황과 비슷했다.

려용은 양준의 처소에서 떠난 뒤, 급히 기록을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짐작했던 것처럼 금인독안은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초범 경지 3단계인 단아를 보내 양준을 지키고, 심지어 이번에는 한비까지 출동시켜 그를 화산에 데려다 주게 한 것은 모두 양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그녀는 양준이 어떤 손해를 입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 추측에 대해 그녀는 같은 지배자인 한비와 화묵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함구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양준을 지켜보며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검증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견이 나서면서 그녀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저견을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두 사람의 행방을 알지 못해 간신히 참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비와 양준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그쪽으로 달려가 도움을 주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높은 경지로 용암 분출구 쪽의 죽음의 위험을 떨쳐 냈다.

그녀의 뒤를 바싹 따르던 화묵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려용이 분노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것이라 생각했다. 한 인간을 위해 자신의 안위마저 돌보지 않을 정도라니.

용암 분출구 다른 한쪽,

양준은 하늘에서 추락해 땅바닥에 떨어진 다음 몇 바퀴나 더 굴러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는 힘들게 일어서서 입가의 피 흔적을 닦아 내었다. 그의 눈빛은 진중하면서도 경계가 어려 있었다.

쫓아온 마족들은 신기한 듯이 그를 훑어보았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간의 몸은 우리 고마 일족에 못지않아. 저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큰 부상을 입지 않았군.”

“저 자가 마신성에서 반랑과 그의 부하 몇 명을 때려서 중상을 입혔대.”

“정말이야?”

“이거 재미있게 됐군.”

그들은 서둘러 양준을 잡으려 하지 않고 왁자지껄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때,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양준을 굽어보았다. 그의 몸에서 강하고도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저견이었다.

양준은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저견을 붙잡아 두었던 한비가 피바다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며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실룩이고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람에 양준은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입 모양으로 보아 그에게 도망치라고 하는 듯했다.

“대인!”

마족들이 저견에게 예를 올렸다. 저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준을 바라보며 섬뜩하게 웃었다.

“인간들은 상황의 흐름을 읽는 자가 인물이라고 하지. 그러니 그만 반항하거라. 한비든, 려용이든 모두 너를 보호하지 못할 테니까.”

“허허……!”

막다른 골목에 이른 양준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웃긴 것이냐?”

저견은 불쾌한 표정으로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은 천천히 한쪽 손을 들어 저견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려 대인이 온 것 같군요. 그 말은 려 대인한테 직접 하시죠.”

저견은 얼굴빛이 급변하더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과연 아름다운 그림자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려용의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저견, 그 인간을 가만두거라. 만약 이번 요구만 들어준다면 이전의 모든 과오는 더는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인간이 털끝 하나라도 다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려 대인! 여기까지 온 이상, 저한테 이미 퇴로는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할 겁니다.”

저견은 말을 마치고 더는 려용을 상관하지 않고 뒤돌아 음산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려용의 말로, 양준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려용과 직접 맞설 필요가 없었다. 양준만 사로잡으면 손쉽게 그녀를 이길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려용이 자신의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고, 자신이 마신성을 장악하여 소현계를 통치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미래는 그를 더없이 흥분하게 했다. 소현계를 통일하기만 하면 그는 모든 고마 일족의 본성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거느리고 이곳을 떠나는 순간, 곧 온 세상이 놀라는 순간이 될 터였다.

이때, 갑자기 몽환적인 속삭임 소리가 천지간에 울려 퍼졌다.

“입마!”

양준은 나지막하게 외치고 오른손 중지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처럼 모골이 송연해졌고, 천지가 전율하며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혼돈한 하늘에는 순간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소용돌이는 파괴성 짙은 기운을 내재하고 있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몰려오더니 화산 폭발보다 더 무서운 느낌이 덮쳐 왔다.

곧이어 양준의 상체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무늬가 나타났다. 무늬들은 뱀처럼 그의 몸에 기어오르더니 다시 그의 살갗 속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양준의 분위기가 잔인하고 사악하며 피에 굶주린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는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려용이 오기 전까지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려용이 올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저견에게 사로잡힐 위험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그는 마족 앞에서 입마를 시전할 생각이 없었다. 입마가 고마 일족의 마신변과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입마를 시전할 경우 자신에게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자칫하면 자신이 마신변을 몰래 배웠다고 그들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 마신변은 고마 일족에게 있어 범접할 수 없는 금기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순간, 그는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 없었다.

곧이어 그는 이번에 시전한 입마가 여느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방에 있는 마족들의 몸속에서 원기가 솟구쳐 나와 모두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입성 경지 2단계인 저견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몇십 장 밖에 있는 한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부터 중상을 입은 데다가 원기까지 가득 빠져나가는 바람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한순간 양준의 주위에 있던 마족들은 자신의 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양준은 몸속에 거대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서리더니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마치 온 세상을 손아귀에 거머쥔 것만 같았다. 순간 그는 자신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신변?”

저견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지금 양준은 얼굴을 제외한, 드러난 피부가 모두 마문에 덮여 있었다. 이는 아주 표준적인 마신변이었다. 게다가 양준의 마문 수준은 자신보다도 몇 배 더 강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는 그만 얼이 나가고 말았다.

마신변은 고마 일족만이 시전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이는 다른 마족들조차도 모방할 수 없었다. 마문은 타고난 것으로 다른 마족들은 마문이 없기에 마신변을 시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인간은 어떻게 마신변을 시전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저 자의 마신변은 누구보다도 더 강하고 깊어.’

그리고 은연중에 양준의 몸에서는 그를 압도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있던 마문이 빠르게 옅어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또한 기혈이고, 전투력이고 심지어 기분마저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견이 놀란 만큼, 려용도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뻐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재빨리 질주해 온 그녀는 눈동자에 이채를 뿜으며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치 오랫동안 기대하던 모습을 본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화묵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준과 거의 백 장을 사이에 두고 려용과 화묵 일행은 갑자기 신음을 흘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압도하는 양준의 기운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마족들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천적을 보듯이 공포에 휩싸여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과연… 역시… 맞았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려용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려 대인!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인간이 어떻게 마신변을 시전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억제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화묵은 간담이 서늘해져 려용이게 다급히 물었다.

“대마신께서 우리 고마 일족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아마 우리 선대의 기도가 대마신께 닿아서 그분이 양준을 보내 우리 일족을 구하려는 모양이구나.”

려용의 얼굴에는 경건하고 공손한 빛이 어렸다.

“대마신이요?”

화묵은 그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 고마 일족의 마음속에서 대마신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려 대인, 지금 힘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화묵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뿐만 아니라, 그의 앞에서 모든 고마 일족들은 힘을 모을 수가 없다. 대마신의 위압감에 누가 감히 도전할 수 있겠는가!”

려용은 힘겹게 몸을 꼿꼿이 세우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공경하는 태도로 멀리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견은…….”

화묵은 얼굴빛이 흔들렸다.

“그도 예외일 수 없다.”

려용은 냉소를 흘리더니 말문을 닫고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았다.

양준은 순간 크게 포효했다. 그는 전에 없던 통쾌함을 맛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번에 입마를 시전하면서 그는 이전과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저 높은 구름 위에 우뚝 서서 사람들을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에게 거대한 압박감 내지 절망감마저 가져다주던 저견과 마족들이 지금은 그냥 개미처럼 느껴졌다. 또한 그들의 생사마저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왜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입마를 시전한 것은 시간을 끌어 려용이 오기를 기다리려던 것뿐이었는데, 지금 이 같은 변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모든 마족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양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백 장 밖에 있는 려용과 화묵 일행을 흘끔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그 자리에 서서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려용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과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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