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7장. 더는 외부인이 아니야
려용이 공경하는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양준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넌 도대체 인간이냐, 마족이냐?”
저견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창백한 얼굴로 분노에 차서 물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켜고는 저견에게 씩 웃어 보였다.
“어떻게 마신변을 알고, 마문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왜 네 마기가 나보다 더 순수하고 방대한 것이냐?”
저견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분에 찬 말투로 다그쳐 물었다.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사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은원 관계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네가 감히!”
저견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에게 다가서는 양준에게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양준이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얼굴의 마문도 보일락 말락 했지만,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마치 양준의 영향을 받아 온몸의 힘이 몸속에 봉인되어 그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를 알아차린 저견은 놀람과 분노가 교차하는 가운데 잔인함과 포악함으로 점철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비열한 인간, 나한테 무슨 꼼수를 써서 내가 이렇게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냐?”
“역시 힘을 쓸 수가 없었군요. 저는 또 제가 착각한 줄 알았습니다. 사실이었군요.”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굴빛을 바로 했다.
그가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간 것은 저견에게 압박감을 주어 그의 반응을 보려는 것이었다. 자신의 느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더는 마족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저 자를 죽여라!”
저견은 차가운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양준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영원히 억제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양준이 무슨 수단으로 자신의 힘을 봉인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인, 저희도…….”
하지만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의 부하들은 신유 경지 정상이든, 초범 경지든 모두 나무토막처럼 제자리에 굳어져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눈을 빤히 뜨고 양준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구도 당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양준은 고함을 지르며 속도를 올려 순식간에 저견의 눈앞으로 다가가더니 잔인한 표정으로 냉혹하게 말했다.
“오늘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양준이 말하는 동시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짙고 사악한 마기가 그의 등 뒤에서 용솟음치더니 우렁찬 용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은 교룡이 나타났다. 교룡은 양준의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저견을 내려다보았다.
“너 같은 놈은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난 입성 경지란 말이다. 내 몸은 바위보다 천만 배는 더 단단한데, 네까짓 놈이…….”
슈욱-
검은 원기가 뱀처럼 저견을 향해 덮치더니 손쉽게 그의 어깨에 구멍을 내었다.
저견의 목소리가 순간 멈췄다. 어깨의 통증에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양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슈욱- 슈욱- 슈욱-
원기가 끊임없이 저견의 몸을 공격했고, 얼마 안 되어 그의 건장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면서 그의 온몸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고마 일족의 강한 신체 덕분에 험한 상처를 입고서도 저견은 여전히 우뚝 서 있었다.
“입성 경지라!”
양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조소가 어린 눈빛으로 저견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 입성 경지 고수의 신식을 흡수한 적은 없군요. 맛이 어떨지 진짜 궁금하네요. 당신은 그 첫 번째가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깨달음과 경지를 유용하게 잘 쓸게요.”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저견은 얼굴빛이 크게 달라졌다. 실력이 그와 같은 정도에 이르면 육신이 파괴되어도 신혼만 따로 이탈해 다른 육신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애당초 지마가 양준을 탈사하려던 것처럼 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마족들이 그의 목표물이었다. 신혼만 조용히 몰래 다른 사람에게 숨는다면 재기할 기회가 있었다. 양준의 비밀을 파헤치고 그를 억제할 수만 있다면 신유 경지 8단계 인간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양준의 말에서 그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양준의 말은 신식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저견은 절망감을 느꼈다.
“좀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줄곧 그의 머리 위에서 선회하던 검은 교룡이 다시 우렁차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쩌억 벌리고 저견을 삼켜 버렸다. 저견이 교룡의 배 속에서 반항하고 발버둥치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힘이 봉인되다 보니 그는 어떻게 해도 교룡의 배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점차 저견은 아무 움직임도 없어졌다. 곧이어 교룡이 흩어져 사라지고 피범벅이 된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대인!”
저견의 부하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입성 경지 2단계 고수가 반항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양준의 기괴함과 횡포함에 그들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시체에서 방대한 신식이 은은하게 용솟음쳐 나왔다. 이는 저견의 신혼으로, 그는 양준이 살인하는 찰나를 이용해 부하의 몸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신혼이 식해를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흡입력이 멀지 않은 곳에서 전해졌다. 그의 신혼은 흡입력에 가차 없이 빨려들었다. 마치 방금 전 전혀 반항할 여력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그는 한사코 발버둥 쳤지만 흡입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은연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견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의 식해 안에는 방대한 신식이 더해졌다.
식해 안,
저견의 신혼 영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온통 불바다 같았다. 식해 안에는 짙은 불의 기운이 내재되어 있었고, 마치 그의 신혼을 불태우는 것 같이 뜨거워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불바다의 한가운데는 선경같이 아름다운 오색 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꼭 감긴 눈이 하나 떠 있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저견은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복종심이 생겨났다. 그가 미처 마음을 가다듬기도 전에 꼭 감겼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가늘고 긴 금빛의 눈동자는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금인독안에서 금빛이 튀어나오더니 저견의 신혼 영체를 맞혔다. 그러자 상상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오면서 그의 신혼이 정화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문득 몇 년 전에 보았던 기록이 의식 저편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동자를 부릅뜨고 하늘에 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놀라서 소리쳤다.
“멸세마안(滅世魔眼)?”
‘그렇게 된 일이군!’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저견은 어째서 양준이 마신변을 시전할 수 있고, 왜 모든 고마 일족이 그의 앞에서 힘을 쓸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양준은 멸세마안을 가지고 있었고, 대마신의 위엄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소실되기 직전, 저견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고 모든 내막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양준이 저견을 죽이는 광경을 지켜보던 마족들은 온몸의 솜털이 모두 빳빳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고마 일족은 호전적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성 경지 2단계의 지배자가 영문도 모르게 죽었다. 예측할 수 없는 공포감이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다시 양준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온통 두려움과 공포감에 젖어 있었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식해 안의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 저견의 의식이 완전히 정화되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산한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늑대가 우리 속의 양들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마족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면서 감히 그와 마주 보지 못했다.
그는 저견의 부하를 모두 죽여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복수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마 일족의 세계에서는 강자를 으뜸으로 섬기기에 자신의 추종자를 바꿀 자유가 있었다. 그들은 줄곧 저견을 따르면서 려용과 맞섰지만, 만약 려용에게 수단이 있다면 충분히 이들을 수복하고 얌전히 말 듣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 일을 눈앞에서 지켜본 그들이 더는 양준을 괴롭힐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을 죽이든, 안 죽이든 자신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양준은 일 년 동안 완아에게서 고마 일족의 특징에 대해 많이 알아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려용에게 물어보자!’
양준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뒤돌아 침착하게 려용에게 걸어갔다.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화묵이 놀라서 말했다. 양준이 이쪽으로 다가옴에 따라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 방금 전에 그는 조금이나마 힘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이 오십 장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내가 협의할 테니까 잠자코 있어.”
려용이 서둘러 말했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자신을 따라온 마족들에게 말했다.
“저분께 어떠한 적의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아직 양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그의 화를 돋우면 안 되었다. 마족들은 모두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려 대인!”
려용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양준이 삼 장 밖에 멈춰 서더니 그녀를 살갑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대인이라고 부르지 마. 려용이라고 부르면 돼.”
려용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양준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양준은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실수로 고마 일족 입성 경지 고수를 죽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죽어도 아까울 것 하나도 없어!”
려용이 재빨리 대답했다.
양준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려용이 이렇게 대답한 것은 그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는 말씀이시죠?”
“왜 너에게 죄를 묻지?”
양준은 겸연쩍게 웃으며 실눈을 떴다.
“당신과 저견 사이 싸움은 어디까지나 내부 싸움입니다. 하지만 저는 외부인이 아닙니까. 저견이 제 손에 죽었으니 다른 고마 일족들이 그를 위해 복수하려 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누군가와 원수가 되면 아예 후환을 뿌리 뽑는 것을 선호하죠.”
려용은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일 때문에 너를 난감하게 하는 자는 없을 것이라 약속하지.”
양준의 말은 그녀마저도 모두 의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요?”
양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방금 전까지 너는 우리 고마 일족에게 있어 외부인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부터 더는 외부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