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48화 (647/853)

제 648장. 네 식해에 들어가야겠다

입마한 양준의 앞에서 려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을 쓸 수 없었지만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제가 외부인이 아니라고요?”

양준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나중에 말해 줄게. 여기는 말하기 편한 곳이 아니니까.”

양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산 폭발과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이 아까보다 더 격렬해진 것 같았다. 조금 더 있으면 려용 무리가 서 있는 곳에도 영향이 갈 것 같았다.

“넌 똑똑하니까 내가 처음부터 너에게 악의를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야. 먼저 마신변을 해제하고 함께 이곳에서 벗어나는 건 어때?”

려용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윽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마족들도 모두 양준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그들의 운명이 양준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오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양준은 려용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생긋 웃었다.

“나중에 네가 지금의 선택을 다행으로 여기는 날이 올 거야.”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악한 기운을 거두었다. 동시에 그의 몸을 뒤덮었던 마문도 빠르게 사라졌다. 천지간에 드리웠던 무시무시한 기운 역시 금방 사라졌다.

곧이어 모든 마족들은 다시 자신의 힘과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화묵, 양준을 보호하라. 우리는 지금 이곳을 떠난다.”

려용은 낮은 목소리로 지시하고는 혼미한 상태에 빠진 한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서 저견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견은 이미 죽었으니 그를 따르고 싶다면 막지 않겠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한다면 앞으로 소현계에서 너희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날 선택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충성을 다한다면 너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저견의 부하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무릎을 꿇고 일제히 외쳤다.

“려 대인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저견이 죽은 마당에 그를 따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지금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려용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한비를 안고서 날아갔다. 화묵은 두려움이 담긴 복잡한 얼굴로 양준의 곁을 지켰다.

반 시진 뒤, 사람들은 화산에서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뒤돌아보자 그쪽 하늘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화산 폭발의 여파가 이곳까지 닿으면서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모두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한비의 상처를 급히 처리하고 려용 일행은 마신성으로 향했다.

양준은 가는 내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족들은 그가 무서운지 다들 슬금슬금 피했다. 오직 려용만이 즐거운 일이 있는 것처럼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품에 한비를 안고 양준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주로 옛 서적에 기록된 대마신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는 화묵도 잘 모르는 내용들로, 평범한 마족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다들 옛이야기를 듣듯이 그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하루 뒤, 한비가 깨어났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양준이 그녀가 기절한 동안 입마했기에,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려용이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저 려용이 저견을 죽인 것이라 생각해 더 묻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이틀 뒤, 드디어 마신성에 도착했다.

양준은 원래의 석실로 돌아가 려용을 기다렸다. 그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려용이 어서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주길 바랐다.

*마신성 안은 고요했다. 다들 4대 지배자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양준은 이번 여정이 만족스러웠다. 단전 안에 양액이 가득 차 있어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십 년 이상은 양액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을 듯했다. 그리고 또 예상 밖으로 정석도 얻었다. 이건 큰 재산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기쁜 것은 입마했을 때, 고마 일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이미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려용은 그를 살뜰히 대해 주었고, 이전의 연단사들처럼 감금하지 않고 적당히 감시하면서 자유도 주었다. 심지어 초범 경지 3단계의 고수를 파견해 다른 마족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준은 여전히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 마음 한편으로는 언짢은 기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런 기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고마 일족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족들이 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분이 달라지니 그는 전보다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며칠 동안 양준은 평온하고 무탈한 나날을 보냈다. 려용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양준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저견이 죽은 일로 려용이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도 열심히 연단하면서 기다렸다.

이때, 석실 문이 열리고 완아가 들뜬 얼굴로 그의 앞에 다가왔다. 그녀는 흥분한 눈빛으로 급히 물었다.

“양준, 네가 저견을 죽였다며? 사실이야?”

“누구한테서 들은 건데?”

“려 대인이 말씀하셨어. 사실이야, 아니야?”

“네 생각엔?”

양준은 웃으며 물었다.

“내 생각을 물었어?”

완아는 눈을 깜박이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네 보잘것없는 경지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려 대인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네가 죽인 게 맞겠지.”

그러고는 또 흥분한 얼굴로 양준의 한쪽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말해 줘. 어떻게 그 나쁜 놈을 죽인 거야? 대인께서 항상 그놈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셨거든.”

“네가 려 대인에게 직접 물으면 되잖아?”

“려 대인께서는 요즘 한비님을 보살피고, 또 저견의 사람들을 거두어들이느라 바쁘셔. 내가 어떻게 대인을 귀찮게 하겠어?”

완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바빠.”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뭐가 바쁜데?”

완아는 그를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면 지금 바로 려 대인을 찾아가 네가 나한테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고 이르겠어!”

“완아야, 무례하게 굴지 마라!”

허공에서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공기가 일그러지더니 려용, 한비, 화묵이 나타났다.

완아는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려 대인, 전 양준과 농담을 한 거였어요. 양준은 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려용이 자신의 말을 믿고 양준을 벌할까 걱정되어 다급히 해명했다.

“알고 있다.”

려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정말 너에게 무슨 짓을 해도 그건 네 영광이다.”

완아는 려 대인의 말을 자세히 곱씹어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고마 일족 중에 평범한 축에 속했지만, 려용의 곁을 지키는 덕에 마신성에서의 지위가 낮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자질도 훌륭해 마신성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호감을 표했다. 지난번에 양준에게 호되게 당한 반랑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원해도 려용은 완아를 시집보낼 뜻을 비추지 않았다. 그들이 완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려용은 그녀에게 좋은 사람을 찾아 주거나 그녀가 마음에 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려용이 이런 말을 꺼냈으니 완아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에게 안기는 게 어떻게 영광이라는 거지?’

“미안, 오래 기다렸지? 너무 바빠서 자리를 비울 틈이 없었어.”

려용은 양준은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저도 별일 없었는데요 뭘.”

양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려 대인의 양준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진 듯했다. 왠지 모르게 려 대인이 양준을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완아는 이런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한비와 화묵도 이해되지 않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마신변을 펼쳐 고마 일족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굽신거릴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인간의 몸으로 마신변을 배웠으니 처형하지 않은 것만 해도 큰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한비, 화묵, 너희들은 모두 의아할 것이다. 대인과 마찬가지로.”

“대인이라고요?”

려용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절 왜 봐요? 저도 몰라요.”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 답을 말해 줄게.”

려용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앉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준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화묵과 한비는 시선을 교환하더니 하는 수 없이 려용처럼 양준의 옆에 앉았다.

려용은 부드럽게 양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신혼 방어를 풀어 주렴. 우리가 네 식해에 들어가야겠다.”

양준은 실눈을 떴다.

“제 식해로요?”

“그래. 그곳에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한비와 화묵도 내 말을 믿게 할 수 있고.”

“두렵지 않으세요?”

양준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려용은 고개를 저었다.

“너에게 악의를 품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 지난번에도 난 무사하지 않았느냐?”

한비와 화묵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양준과 려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제 식해에 들어가는 건 괜찮으나 제 기억을 함부로 보지 마십시오.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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