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51화 (650/853)

제 651장. 마신변을 수련하다

검은 책은 양준이 우연히 얻은 것이었다. 심지어 처음 발견했을 때는 책의 형태도 아니었다. 양준이 베개로 사용하다 꿈속에서 현묘함을 발견하여 책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양준이 검은 책의 본래 주인이 대마신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며칠 전에 한비가 말해 주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대마신은 어디에서인가 진혼석을 얻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뒤 그것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자투리만 남겼고, 자투리를 다른 진귀한 재료와 배합해 허공 반지 네 개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허공 반지를 마족의 4대 지배자가 각각 나눠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때 대마신은 진혼석으로 검은 책을 만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게 맞다면, 결국 금신의 주인도 대마신이었다. 대마신은 이 세계를 벗어나 더욱 높은 차원의 세계로 가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해 육신이 사라지고 골격만 남게 된 것이다. 대마신의 골격이었기 때문에 금신 안에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던 것이다.

육체편, 향로, 진양결, 만약영액·영유·영고, 멸세마안은 모두 대마신이 안배해 둔 것이었다. 다만 양준은 성장하면서 대마신이 준비한 길에서 좀 벗어나게 되었다. 약왕곡에서 연단진결을 얻은 것은 대마신이 그에게 준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대마신은 자신의 후계자가 연단에 정신 팔리지 않고 무도의 정상에 오르기를 바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

오랜 시간 생각을 하던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며 또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완아는 고마 일족에 일찍이 정상급의 연단사가 있었는데 그 연단사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었다.

‘그럼 그 연단사도 대마신인가?’

추측에 불과했지만 거의 확실했다. 양준은 눈을 빛내며 머리를 굴렸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자세히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려 대인, 멸세마안이 있긴 하나 이것 하나만 보고 우리 고마 일족을 그에게 넘기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요?”

석실을 나서자 화묵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표정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멸세마안을 봤을 때, 그도 흥분되었지만 자세히 생각을 해보자 려용의 결정이 너무 섣부른 것 같았다.

“음, 그에게는 수상한 점도 많아요. 멸세마안 하나만으로 뭘 확신할 수도 없고요. 게다가 그는 인간이잖아요…….”

한비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화묵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려용은 미소를 지었다.

“멸세마안이 그를 선택했으니 그건 바로 대마신의 결정인 것이다. 우리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가 지금은 인간이어도 나중에는… 모르지.”

화묵과 한비는 숙연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지금 모습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화묵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가 고마 일족이 모시겠다고 하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그다지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고마 일족의 충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확신 없이는 경솔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대마신의 안목이 나쁠 리 없다는 것 아니냐.”

려용은 기쁜 얼굴로 웃었다.

“두고 보아라. 5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 고마 일족은 소현계를 벗어나 선조들이 살았던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화묵과 한비는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었다.

대마신이 그들을 소현계에 봉인한 뒤로 최소 몇천 년이 지났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대마신을 모셨던 충실한 노복, 고마 일족을 완전히 잊었을 것이다. 그들은 옛 서적에 기록된 해와 달, 별, 바다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그 신기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고마 일족의 평생 소망은 바로 이곳을 벗어나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제가 살아생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화묵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마신성의 한 팔각루(八角樓) 안.

건물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모양이 아주 독특했다. 수려한 느낌을 풍기는 팔각루는 여덟 귀퉁이에 모두 아름다운 장식품이 걸려 있었고, 창문에도 새와 짐승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양준은 완아의 안내를 받으며 팔각루 안에 들어갔다.

하룻밤 동안 생각한 그는 어느 정도 두서가 잡혔다. 고마 일족이 뭘 원하든 그의 목표는 항상 강해지는 것이었다. 이 점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강해져야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고, 남의 제약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고마 일족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 그는 상관이 없었다. 양준은 자신의 길만 가면 되었다.

“대인께서 안에 계시니 너 혼자 들어가.”

완아는 안쪽을 가리키고는 문밖에 서 있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들어갔다.

려용은 탁상 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양준이 온 것을 보고 그녀는 다급히 일어나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왔어요?”

“네.”

“물건은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려용은 책상 위의 서적 몇 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모두 마신변에 관한 것이니 마음껏 읽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려용은 눈을 빛내며 생긋 웃었다.

“그렇게 깍듯하게 대할 거 없어요. 그러면 너무 남 같잖아요.”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 모두 편하게 지내지.”

려용은 미소를 지었다.

양준은 앞으로 다가가 서책들을 집어 들고 려용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서책들은 모두 마신변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마신변을 수련하는지, 마문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또 어떻게 전투력을 상승시키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모두 귀한 책들이었고, 소수의 고마 일족만이 볼 수 있는 기밀이었다.

양준은 조금 읽어 보았을 뿐인데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며 표정이 환해졌다.

서책들에는 마신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었는데 모두 알짜배기였다. 양준은 큰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금방 흠뻑 빠져들었다. 그가 이렇게 빨리 빠져든 것을 보고 려용은 생긋 웃으며 걸어 나갔다. 그리고 차 한 잔을 가져다가 양준의 앞에 두고는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양준은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 책에 담긴 내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의식을 마문에 깊이 침투시켜 마문이 온몸에 퍼지게 한다. 그리고 원래 스스로 지니고 있던 사악한 기운으로 마문에 잠재된 힘을 깨워 몸을 강화시킨다. 1단계에서 마문은 그저 온몸에 퍼질 뿐이다. 양준이 지금 마신변을 펼쳤을 때와 같은 상태였다. 2단계가 되면 마문은 피와 살에 스며들게 된다. 그때가 되면 마신변을 펼쳐도 겉모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려용은 양준이 얼른 마문 2단계까지 수련하기를 바랐다. 마문 2단계가 되면 그가 고마 일족 앞에서 마신변을 펼쳐도 그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고마 일족들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힘을 못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3단계는 마문이 골격에 완전히 녹아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실력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는 여러 번 마신변을 사용해 보았기에 서적에 적혀 있는 요령들을 금방 터득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실질적인 수련에서 쌓아야 했다.

양준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지막 서책을 내려놓았다. 한참 뒤, 갑자기 눈을 뜬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마신성 안에 폐관하면서 마신변을 수련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진작 준비해 두었어요. 따라오세요.”

려용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책장 앞으로 가서 살짝 밀었다. 책장은 끽,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곧 지하로 통하는 문이 나타났다.

려용이 안으로 들어가자 양준도 바짝 뒤쫓았다. 아래쪽은 밀실이었는데 통로의 양옆에는 횃불이 있어 어둡지 않았다. 안으로 한참 걸어가자 텅 빈 커다란 밀실이 눈에 들어왔다. 밀실은 그가 연단하는 석실보다도 더 컸다. 주변에는 검은 돌들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돌에서 은은하게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는 제가 평소에 수련하는 곳이에요. 이곳에서는 마음껏 마신변을 펼쳐도 됩니다. 고마 일족에게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려용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하며 검은색 돌기둥을 가리켰다.

“금묵석(禁默石)이에요. 기운의 전달을 막아 주는 기능이 있죠. 안에 들어가면 금묵석을 통해 결계를 칠 겁니다.”

“알겠어. 지금 시작할게.”

양준은 조급해져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날려 한가운데 착지했다.

려용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급하긴!”

그녀는 말하면서 손으로 기운을 내보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금묵석에 주입했다. 곧 반원 모양의 투명한 결계가 씌워지더니 금묵석으로 둘러싸인 곳을 완전히 감쌌다.

양준이 려용을 바라보자, 려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곧바로 웃옷을 벗고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았다. 그는 오른손의 중지로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입마!”

곧이어 천지가 뒤흔들렸다. 금묵석으로 만들어진 결계 안에서는 잔물결이 한 층, 또 한 층 일었다. 양준의 상체엔 새까만 마문이 빠르게 나타났다. 마문은 뱀처럼 그의 온몸을 타고 올라가 복잡하고 요상한 그림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의 기혈과 전투력이 미친 듯이 향상되었다.

양준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려용도 눈빛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좀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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