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3장. 신유 경지 정상
양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이게 뭐야?”
“풍뢰우익이에요.”
한비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것의 내력과 재료에 대해 아는 이는 없어요. 저와 려 대인이 여러 번 흡수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어요. 당신에게도 천도의 법칙이 담긴 날개가 있는 걸 보고 한 번 시도해 보라고요.”
양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원래는 아무런 대가 없이 받고 싶지는 않아 그냥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등 뒤의 견갑골 쪽이 뻐근해지더니 뭔가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그는 표정이 바뀌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양염지익이 스스로 펼쳐지려 했던 것이다. 은연중에 양염지익과 풍뢰우익은 미묘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옥함을 꽉 움켜쥐고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풍뢰우익을 살짝 눌러 보았다. 그러자 풍뢰우익이 빛으로 변해 번개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낯빛이 변했다. 극심한 고통이 견갑골에서 느껴진 것이다.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순간, 안색이 하얗게 질린 양준은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려용과 한비는 옆에서 지켜볼 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동자에는 온통 걱정과 기대의 뜻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지켜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양준은 천천히 일어서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견갑골에서는 여전히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본 려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풍뢰우익과 인연이 있나 봐요.”
“아직 흡수하지 못했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쪽 견갑골에 강한 두 개의 힘이 숨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시시각각 그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수시로 폭발하는 바람과 우레의 힘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의 의지력과 인내심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덕분에 고통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알고 있어요.”
려용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저와 한비는 여러 번 시도해서야 겨우 그걸 몸속에 넣었었죠. 그리고 매번 한 시진도 되지 않아 그걸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안 그랬다면 우리 둘은 진작에 죽었을 거에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그것이 당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흡수할 수도 있을 거예요.”
“노력해 볼게.”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풍뢰우익을 흡수하는 것은 비보를 흡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진원을 주입해 그것을 굴복시켜야 했다. 그것이 완전히 그의 몸과 융합되기 전에는 단지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일 뿐이었다. 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어 아주 해로운 존재였다.
“먼저 쉬세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하세요. 누구도 단번에 성장할 순 없어요.”
려용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양준의 팔을 잡고 신법을 펼쳐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석실로 돌아간 양준은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침대로 갔다. 그리고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팔각루 안,
려용과 한비는 차를 마시며 침묵을 지켰다.
한참 뒤, 려용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한비, 그가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
한비는 찻잔을 내려놓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질, 끈기, 박력, 담력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죠. 우리 종족의 어떤 젊은이보다 뛰어나요. 심지어 우리들도 저 나이 때는 그와 비교할 수도 없었죠. 그가 요절하지만 않는다면 미래가 밝을 거예요.”
려용도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녀는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되려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구나. 저 자가 인류 출신이 아니라 몸속에 우리 고마 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비는 안색이 변했다.
“려 대인, 혹시…….”
려용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난 그렇게 악독하지 않다. 그저 감탄했을 뿐이지. 그렇게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야.”
한비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려용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려용이 나쁜 마음을 먹은 줄 알았던 것이다.
려용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에게 꽤나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지난번에 화산 아래에서 저를 구해 줬어요. 그가 아니었다면 전 진작 죽었을 거예요.”
한비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풍뢰우익까지 선물하지 않았느냐?”
려용은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비를 바라보았다.
“괜한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는 아직 어린애입니다.”
한비는 시선을 돌렸다.
“어린애는 아니지.”
려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 얘기는 그만하자. 난 그저 감탄했을 뿐이다. 우리가 살뜰히 대하고 잘 모시겠다고 얘기해도, 그는 이곳이나 우리 고마 일족에게 소속감을 느끼거나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그게 당연한 거죠. 그는 관노 어르신께 잡혀 들어온 것이고, 우리에게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소속감이 생기거나 의존하고 싶겠어요?”
한비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한비와 려용은 현재 고마 일족의 미래가 양준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양준이 이곳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고마 일족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라도 고마 일족을 내버려 둔 채 이곳을 떠날 것이 분명했다.
“대인은 그가 우리 고마 일족에게 미련이 남기를 바라는 건가요?”
한비는 려용의 계획을 눈치채고 물었다.
“그러기를 바라지.”
려용은 부인하지 않고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구나. 선조의 기록을 보면 인간의 젊은 남자들은 모두 여색을 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는 그래 보이지도 않고. 완아와 일 년 넘도록 함께했는데도 선을 넘은 적도 없고 말이다.”
“완아가 그의 취향이 아닌 건 아닐까요?”
한비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 소현계에서 살아온 그들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선조들이 서책에 기록한 것들밖에 없었다. 선조들은 인간이 음험하고 교활하며 미색과 권력을 탐한다고 기록했으므로 다들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떤 여인을 좋아할까? 우리 마신성에는 어린 소녀가 적지 않지. 각양각색의 소녀가 다 있는데 그가 누구에게도 접적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게요. 저 하고 화산 아래에 있을 때도 그는 그저…….”
한비도 생각에 잠겼다.
“네가 한 번 시도해 보지 않겠느냐?”
려용이 웃으며 한비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한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진지하단다.”
려용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그가 우리 일족에게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게 해야 한다. 그가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한비는 깜짝 놀라더니 멍한 얼굴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려용의 얼굴에는 농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전 그러지 않을 거예요.”
한비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에게 있어 양준을 유혹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려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강요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머리가 아팠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녀는 이런 저급한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도 이 방법을 떠올리는 순간, 수치심이 들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그녀도 이런 방법으로 양준을 잡아 두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 뒤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지만 양준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이미 이런 통증에 적응된 듯했다. 그는 앞에 있는 약 가마에 끊임없이 진원을 주입하며 영단을 만들었다.
노련한 손놀림과 뛰어난 기술로 양준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영단 한 알을 만들어 냈다. 단약의 품질을 느껴 본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급 중품이었다.
이제 그는 영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술과 수단만으로도 영급 중품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만약 영진을 사용하고 약재에 만약영액을 넣는다면 영급 상품이 나올 수도 있었다. 성급 단약과는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양준은 정석 한 개를 꺼내 손에 움켜쥔 뒤, 좌선한 채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는 기운을 회복한 뒤, 석실을 나와 려용이 있는 팔각루 안으로 들어갔다. 팔각루 지하에 내려간 그는 입마를 시전해 마신변 2단계에 들어갔다.
저견이 죽은 뒤로 몇 달이 지났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줄곧 스님 같은 생활을 하며 석실과 밀실을 오갔다. 하루 중 반나절은 연단하고 반나절은 마신변을 수련했다. 매일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충실하게 보냈다.
몸속에 숨겨진 풍뢰우익도 수시로 진원에 의해 흡수되며 나날이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마신변에도 많은 진척이 있었다. 그리고 몸속의 금빛은 점점 더 많아졌다. 적어도 삼 분의 일의 혈액이 금색으로 변했다.
몇 달간의 수련을 통해 양준의 실력은 이미 신유 경지 정상에 이르렀다. 기초가 누구보다도 탄탄한 그는 육신의 경지가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되지만 무도에 대한 깨달음은 입성 경지의 고수에도 뒤지지 않았다. 천도의 깨달음과 죽은 고수들의 신식을 많이 삼켰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지만 양준은 자꾸만 뭔가가 부족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신유 경지 정상에 오른 뒤로 그의 실력은 더디게 향상되었다. 초범 경지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중도 쪽에서 초범 경지는 가장 최고 경지의 고수였다. 천지간의 제약을 받아 이 단계에 이른 사람도 극히 적었다. 8대 가문에서도 한 가문에 겨우 세네 명 정도였고, 일등 세력에서는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세력들은 초범 경지의 고수가 한 명밖에 없었다.
영기와 자원이 충족한 통현대륙에서도 많은 무인들은 평생 초범 경지를 돌파하지 못하고 신유 경지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총체적으로 봤을 때, 중도에 비하면 이곳에는 초범 경지의 고수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양준은 초범 경지만 몇십 명을 보았고, 입성 경지도 여러 명 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양준은 초범 경지의 문턱에 걸려 더욱 깊은 비밀을 탐색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