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5장. 생각지도 못한 선물
아스라이 높게 솟은 설산.
새하얀 눈 아래에는 몇천 장에 달하는 얼음층이 있었다. 거위 털 같은 눈이 춤을 추며 내리자 삼십 장 이내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의 온도는 매우 낮았다. 수련하는 사람이라 해도 특별한 이유 없이는 이곳으로 걸음하기 싫어했다. 하늘에서 굽어보자 멀리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모두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설산 산허리에는 꽁꽁 숨겨진 동굴 입구가 있었다. 그 동굴은 산 중앙까지 이어졌는데 내부에는 얼음 기둥이 가득해서 한기가 살을 에일 정도였다. 이때, 허공의 힘이 동굴 안에 가득 퍼지더니 곧이어 붉은빛이 확 피어오르며 동굴 전체를 비추었다. 그러자 동굴 안은 더없이 음산하고 기괴해졌다.
이와 동시에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는 미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듯 쿵, 하고 얼음층 위에 떨어졌다. 그는 몸을 가눈 뒤, 강한 신식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잠시 뒤, 그는 안심한 얼굴로 신식을 거두어들였다.
“정말 설산 안이었군.”
양준은 신식을 통해 주변의 지형을 훑어본 뒤 중얼거렸다.
소현계에서 나올 때, 려용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녀는 관노가 사람들이 없는 추운 곳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지금 보니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관노는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었다. 살아 있을 때 입성 경지의 고수였고, 고마 일족인지라 몸이 단단하다고 하지만, 죽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그의 몸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그가 육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추운 곳을 찾아 숨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산은 이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곳이었다.
려용은 관노가 십 년에 한 번씩 밖으로 나가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무인을 찾거나 아니면 몸이 견디기 힘들 때,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그리고 십 년 뒤에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관노가 이런 행동을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가 고마 일족을 위해 지금까지 신식의 불꽃을 가진 무인을 열 명이 넘겨 들여보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옆을 바라본 양준은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관노를 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참을 수 없는 썩은 냄새가 풍겨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또 겉에 드러난 피부에는 종기와 고름 같은 것이 가득했다.
‘이런 몸으로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텐데. 어떤 집념을 가졌기에 이렇게 죽은 뒤에도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것일까?’
관노는 등 뒤에 여전히 시뻘건 관을 메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관 속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양준은 잘 알고 있었다. 관 안에는 봉인된 소현계가 있었다. 그는 지금 그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려용 무리와 약속을 한 뒤로 양준은 보름 만에 남은 약재를 몽땅 사용했다. 그 후, 세 지배자는 함께 움직여 소현계의 허공을 찢고 양준을 내보낸 것이었다.
‘내가 남긴 선물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네!’
양준은 속으로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관노를 경계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입성 경지의 고수를 잠에서 깨우고 싶지 않았다. 마신변을 펼치면 상대방의 적의를 없앨 수 있었지만 만약 근처의 고수가 그의 기운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이곳을 노출시키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깊게 잠든 관노는 깨어나지 않았다.
한참 뒤, 양준은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맹렬한 추위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양결이 저도 모르게 운행되며 한기를 물리쳤다. 하늘을 뒤덮는 눈을 한참 바라본 양준은 방향을 분별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그는 통현대륙에 온 지 일 년 반이나 지났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모두 소현계에서 보냈다. 때문에 이 세계는 그에게 있어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설령 방향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몸을 날려 번개처럼 눈속으로 사라졌다.
*마신성,
세 지배자는 천천히 닫히는 하늘의 틈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갔네.”
한비가 중얼거렸다.
“응. 하지만 돌아올 거야.”
려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묵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소인배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려 대인께서는 왜 그토록 그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 것입니까?”
“느낌이지. 그날의 약속이 너무 진실되어서 그를 믿기로 했다. 두고 보아라. 그는 약속한 대로 꼭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데리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려용은 미소를 지었다.
화묵은 미간을 찌푸린 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도 양준의 약속을 믿고 싶었으나 인류는 음험하고 교활하기로 소문이 난 종족이었다. 양준이 그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인, 대인!”
바로 이때, 완아가 급히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왜 그러는 것이냐?”
려용은 돌아서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이것 좀 보세요.”
완아는 말하면서 손에 움켜쥔 물건을 세 지배자 앞에 내놓았다.
“정석이네? 어디서 난 것이냐?”
려용은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한비가 많은 정석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고마 일족 전체에게 나눠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그 정석들은 모두 세 지배자들이 나눠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특정된 시기에만 일부를 나누어 사용했다. 완아도 지난번에 몇 개 얻었지만 금방 다 써버려 남은 정석이 없었다.
“양준이 연단하는 석실에서 찾은 거예요. 들어가 보세요. 아주아주 많아요.”
완아는 흥분된 얼굴로 손짓발짓하며 말했다.
려용과 한비는 시선을 마주치더니 놀란 얼굴로 다급히 날아갔다. 곧 셋은 양준이 연단하던 석실에 도착했다. 안의 상황을 살펴본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실의 한 귀퉁이에 정석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려용은 할 말을 잃고 흥분된 얼굴로 몸을 덜덜 떨었다.
“아마도 지난번에 화산 아래에서 수집한 정석일 거예요.”
한비가 말했다.
“이렇게나 많이?”
화묵은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그는 얼굴을 실룩였다.
지난번에 화산에서 돌아올 때, 한비도 그녀와 양준이 화산 아래에서 겪었던 일을 말했었다. 다들 양준에게 정석이 가득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그가 떠나면서 이렇게 큰 선물을 남겨둘 줄이야.
정석은 무려 한비가 가져온 것의 네 배 정도 되었다.
“우리에게 이렇게 많이 줬으니 그에게는 얼마 남지도 않았겠네.”
한비는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는 특별한 정석 열몇 개에 쏠렸다.
“성정도 남기다니. 참…….”
화산 아래에서 양준과 정석을 빼앗느라 다툰 일, 그를 속여 윗옷을 벗게 하면서까지 정석을 더 많이 가지려고 했던 일. 한비는 그 광경을 떠올리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려 대인……! 저도 지금은 그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화묵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래, 그는 분명 돌아올 것이다.”
려용은 기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는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만약 양준이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렇게 방대한 재산을 남겨두고 떠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남겨두었다. 고마 일족이 정석으로 실력을 키우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면 고마 일족이 밖으로 나갔을 때, 자신을 지킬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절대 그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돼!’
려용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마신성에는 단약과 정석이 충분히 있었다. 몇 년 동안 실력을 키우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고마 일족도 큰 선물을 줘야지!’
려용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먹었다.
*양준은 외롭게 설산을 누비고 있었다. 눈보라가 너무 세고 한기가 강해 그는 오래 날 수 없었다. 그러면 체력과 정신력이 너무 많이 소모되었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갔지만 사람은커녕 요수가 활동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만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곳의 영기는 약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이곳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아무리 냉성 공법과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양준은 무덤덤한 얼굴로 설산 속을 끊임없이 걸었다. 견갑골에서는 이따금씩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졌다. 풍뢰우익에 내재된 바람과 우레의 힘이 농간을 부리는 것이었다. 풍뢰우익을 몸속에 흡수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진척은 빠르지 않았다. 풍뢰우익은 쉽사리 흡수되지 않았는데 특정된 방법이 필요한 것 같았다.
설산에서 열흘 넘게 길을 가서야 눈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양준은 높은 산 위에 서서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오랜만에 환한 햇살을 받자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음?”
갑자기 몇십 리 밖에서 약하지 않은 생명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양준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이 있는 위치조차 알 수가 없어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인적을 발견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신식을 펼쳐 다시 감지해 보니 초범 경지의 고수는 없는 듯했다. 그제야 양준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느긋하게 설산을 내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몇십 리 밖의 눈밭,
일행 세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남자 한 명과 여인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신유 경지 7, 8단계 되는 무인들이었다. 남자는 준수하고 여인은 아름다웠다. 셋 다 황금색의 옷을 입고 있어 새하얀 눈밭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같은 문파나 가문 출신인 것 같았다.
두 여인은 앞에서 서로 팔을 잡고 걷고 있었다. 엄동설한에도 그중 한 여인은 옷을 얇게 입고 매혹적인 몸매를 드러냈다. 다른 한 여인은 키가 좀 작았는데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듯한 앳된 얼굴이었다. 그녀는 수시로 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