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56화 (655/853)

제 656장. 세상 참 작아!

세 사람은 눈밭을 걸으며 신식을 펼쳐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얇게 입은 여인이 기쁜 얼굴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영약이 있는 것 같아.”

그러고는 다른 두 사람을 이끌고 뛰어갔다.

몇십 장 밖, 셋은 힘을 들여 몇 척이나 쌓인 눈을 헤쳤다. 눈 아래에는 한기를 내뿜는 투명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식물의 줄기는 눈부신 빛을 발했다. 식물의 위에는 손톱만 한 새하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상큼한 냄새는 열매에서 풍기는 것이었다.

“언니는 참 대단해. 백옥과(白玉果)가 이렇게 깊게 숨어 있는데도 발견하다니.”

나이가 어린 여인이 기쁜 얼굴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희몽(姬夢)은 웃으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축영월(祝映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살펴보면 너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축영월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나도 노력하는데 언니보다 못하잖아. 사형보다도 못해.”

그 말을 들은 제조(齊朝)는 뾰루퉁해서 말했다.

“내가 약해?”

축영월은 콧방귀를 뀌었다.

“언니보다 많이 약하지.”

희몽은 그녀의 머리를 다독이며 말했다.

“너에게도 나눠 줄 테니 낙심하지 마.”

축영월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조는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먼저 채집하자.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십몇 년이 지나면 또 백옥과가 달릴 테니까.”

희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백옥과를 따서 건곤대에 넣었다. 재생할 수 있는 영초와 영약을 채집할 때, 무인들은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했다. 씨가 마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영초와 영약의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옥과를 딴 세 사람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때, 갑자기 제조와 희몽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둘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신속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뒤, 눈보라 속에 흐릿한 모습이 보이더니 세 사람과 십몇 장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양준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라도 휑한 벌판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경계할 것이다. 그 역시도 이들의 경지가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이렇게 대범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초범 경지 2단계 이상의 고수라면 그냥 피했을 것이다.

셋은 나이가 많지 않으니 말이 통할 것 같았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하는 사람이야? 어떻게 이 설산에 나타난 거지?”

제조는 한 걸음 내디뎌 희몽과 축영월의 앞을 막아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나가는 행인인데 길을 잃었어.”

양준이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행인이라고?”

제조는 미간을 찌푸리고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의심이 서렸다.

“지나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설산에 들어온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야?”

제조가 차갑게 대하자 양준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는 차근차근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야. 지나가던 길에 너희들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쪽으로 와본 거야. 다른 뜻은 없어. 그저 여기서 어떻게 나가면 되는지 물으려는 것뿐이야. 이 설산에서 며칠째 길을 헤매고 있거든.”

말하는 사이, 그들의 등 뒤에 있는 백옥과 나무가 보였다. 투명한 모습에 왠지 모르게 시선이 갔다.

제조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도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소현계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지금 목적은 정확한 방향을 알아내 끝없는 설산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이었다.

한참 뒤, 제조는 적의를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믿어 줄게. 하지만 이 설산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떠나고 싶으면 저 방향으로 쭉 가면 돼.”

그는 말하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보고는 공수했다.

“고마워. 나중에 보자.”

말을 마친 그는 신법을 펼쳐 제조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잠깐!”

제조가 싸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야?”

양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설산에서 영초를 캐지 않았어? 있다면 내놔. 여긴 우리 문파의 지역이라 모든 것이 우리 문파 거야. 외부인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어.”

양준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가 아무것도 채집하지 않은 건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명령하는 말투로 얘기하면 채집했다 해도 내놓기 싫었을 것이다. 이처럼 커다란 설산을 한 세력이 통째로 차지할 리가 없었다.

그의 뒤에 있는 두 여인을 바라본 양준은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 덤덤하게 말했다.

“없어.”

다음 순간, 한 가닥의 신식이 제멋대로 그의 몸을 훑었다.

‘이 녀석은 간이 왜 이렇게 커?’

양준은 실소를 하였다.

‘내가 반격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

그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상대가 살펴보게 내버려 두었다.

잠시 뒤, 제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 돼.”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떠나자 축영월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형, 저쪽은…….”

“쉿!”

제조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두 여인을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축영월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수시로 양준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시진이나 걸은 뒤에야 축영월은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사형, 왜 그에게 틀린 방향을 말해 준 거야?”

희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궁금해. 제조, 왜 그런 거야?”

“그 사람은 너무 수상해. 못 느꼈어?”

제조는 그녀들을 바라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한 말이 너무 의심스럽잖아.”

희몽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무리 수상하다고 해도 사람을 이렇게 해치면 쓰나? 그를 죽이는 거잖아. 그곳은 요수가 나오는 곳인데 홀로 들어갔으니 살아서 나올 수나 있겠어?”

“그가 죽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야.”

제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집을 나서면 다른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 몰라? 실력이 우리보다 강한 거 같은데 우리는 우리 생각만 하면 돼.”

“어떻게 알았어? 난 몰랐는데.”

축영월은 맹한 얼굴로 물었다.

“그가 먼저 우리를 발견했잖아. 그는 우리 문파의 제자가 아니야. 그런데 설산에 왔다는 것은 약재를 캐기 위해서거나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이지. 너희들 걔가 백옥과 나무를 봤을 때, 탐내는 표정을 못 봤어? 내가 쫓아내지 않았다면 우리를 죽이고 백옥과를 빼앗아 갔을지도 몰라. 내가 죽는 건 괜찮지만 너희들이 그런 사람에게 잡히면…….”

제조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축영월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다시 양준의 모습을 떠올린 그녀는 그가 인면수심의 나쁜 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몽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넌 왜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봐? 정말 그의 말대로 지나가는 행인인데 길을 잃은 거라면? 이 설산에서 길을 잃는 건 정상이야.”

“그럼 지금 가서 찾아봐. 그리고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 말해 주든지.”

제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희몽은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을 줄 알고 가서 찾으라고 하는 거야?”

“내가 아까 속일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모르는 사람일 뿐이잖아.”

제조도 화가 났다.

“네가 동문이니 외부인 앞에서 망신당하게 할 수는 없잖아.”

“싸우지 마.”

축영월은 두 사람이 점점 크게 다투자 다급히 말렸다.

“그래, 그래. 이번만 이러고 다시는 안 그럴게. 착한 일을 해 봤자 알아주지도 않고.”

제조는 서운한 얼굴로 말하면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희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뒤돌아 주저하는 눈빛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제조의 뒤를 따라갔다.

“언니, 그 사람… 죽지 않을까?”

축영월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마도.”

“사형이 잘못한 거야?”

“아니, 그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

희몽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일부러 신식을 내보내 우리에게 알렸어. 악의가 없었던 건 분명해.’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충분히 숨어 있다가 습격했을 수도 있었다. 희몽은 제조가 왜 그에게 틀린 방향을 알려 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낯선 사람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양준은 안색이 어두웠다. 그는 발치에 쓰러진 7급 요수의 시체를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다. 피로 얼룩진 그의 몸은 방금 전의 전투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7급 요수는 인류의 초범 경지와 비슷했다. 다행히 이 요수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노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가리킨 대로 양준은 내내 걸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요수 7~8마리의 습격을 받을 줄이야. 요수들은 모두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른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이었다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냉성 요수와 싸웠을 경우, 진작 죽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처의 눈보라가 점점 심해졌다. 다시 설산 깊은 곳으로 되돌아온 듯했다.

이에 양준은 안색이 일그러졌다. 그제야 그는 노란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다 가다 만난 사이에 길을 물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악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리 나쁜 놈인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양준은 요수에서 요단을 꺼낸 다음, 뿔 두 개를 뽑았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서서 음산한 얼굴로 원래의 길로 되돌아갔다. 높이 솟은 설산을 오르고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세상을 걷고 있는 그의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사흘 뒤, 양준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귀를 기울이고 한참 듣다가 신식을 펼쳐 살펴본 그는 표정이 변했다.

앞쪽 십몇 리 되는 곳에서 익숙한 생명의 기운 두 가닥이 느껴졌다. 바로 전에 마주쳤던 세 사람 중의 두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들의 정신 상태는 매우 불안정했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지 황급히 그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의 뒤쪽으로 강한 생명의 파동이 느껴졌다. 바로 7급 요수의 기운이었다.

‘세상 참 작아!’

양준은 의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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