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60화 (659/853)

제 660장. 이 정도였어?

중년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양준은 뜻밖에 정곡을 찔렀던 것이다. 그가 연단술을 수련하는 것은 결국 마족에게 단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그들은 세상에서 몇천 년간 잊혀졌던 고마 일족으로, 대마신을 모시던 종족이었다.

연단사 협회 안은 곳곳에서 상큼한 약 향기가 흐르고 있었다. 양준은 때때로 옆쪽 방에서 뜨거운 진원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단사들이 한창 열심히 연단하고 있는 듯했다.

외진 곳에 이르자, 남자는 양준을 내버려 두고 떠나면서 한마디 남겼다.

“이곳에서 기다려. 조금 뒤에 누군가 올 거야.”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 방은 크지 않았고, 가구가 얼마 없어 텅 비어 보였다. 그렇게 양준이 족히 두 시진을 기다린 뒤에야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방문이 열렸다. 표정이 일그러진 여인이 들어오더니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고서 물었다.

“네가 협회에 가입하려는 거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서서 물었다.

“그럼 이제 시험을 봐도 됩니까?”

“연단한 지는 얼마나 됐어?”

여인은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무엇이 불쾌한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가 직접 스스로 연단한 지는 1년 남짓 했다. 하지만 기초 지식을 배운 것까지 더하면 몇 년은 되었다. 연단진결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4~5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그는 드문드문 연단진결의 비밀을 캐냈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여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있는 척하긴!”

여인은 양준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자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허리춤의 건곤대를 매만지더니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약재를 꺼내 양준에게 건넸다.

“이건 천급 하품의 한성초(寒星草)야. 이것으로 약물을 만들어 봐.”

양준은 약재를 받아 들고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이대로 약물을 만들라는 겁니까?”

여인이 냉소했다.

“이것조차 못하면 협회에 가입할 필요도 없어. 협회에서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받아 주는 줄 알아? 천급 이상의 연단사들만이 자신의 옥패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거야. 빨리 서둘러. 나도 급하단 말이야.”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부님은 너무 한 거 아니야. 이리 어린 걸 그냥 내쫓지, 왜 남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지 몰라.”

양준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실소하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여인이 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본의 아니게 그녀의 연단할 시간을 빼앗은 듯했다. 연단사는 연단할 때, 누군가 방해하는 것을 가장 꺼려했다. 양준은 그녀가 불쾌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의 말투와 태도로 보아 자신을 얕잡아보는 것이 분명했다.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정말 연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생각하는 동시에 진원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성초를 손으로 감싸 쥐고서 진원이 약재에 스며들게 했다. 곧이어 은은하고 상큼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여인은 드디어 경시하던 눈빛을 거두고 그의 손동작을 지켜보았다. 한성초는 녹아내린 것처럼 액체가 되어 그의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곧이어 진원의 작용으로 이물질이 스며 나와 깨끗하게 증발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천급 하품의 한성초는 비취색의 약물이 되었다. 양준의 조예와 기법으로 천급의 약재는 손쉽게 응결시킬 수 있었다. 또한 설령 약 가마, 영진이 없어도 이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겨우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약물이 금세 만들어졌다. 여인은 신식으로 세심하게 훑어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경악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됩니까?”

양준이 물었다.

사실 그는 약물을 더 높은 등급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여인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어떤 품질의 단약을 만들 수 있어?”

여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양준의 수단과 능력을 너무 낮게 짐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영급 정도입니다.”

“뭐라고?”

여인은 낯빛이 급변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영급 하품. 하지만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양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높게 말해 남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영급 하품 수준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듯했다.

“불가능해. 너 기껏해야 스무 살이잖아. 어떻게 영급 단약을 만들 수 있어?”

“그럼 지금 만들어 보겠습니다.”

양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인은 마치 양준이 헛소리를 한 건지 확인하겠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다가 한참 뒤에야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날 따라와 봐. 네가 정말 그 정도로 재주가 있다면 난 시험을 볼 수 없어.”

그녀 자신이 현급 상품 연단사인데 어떻게 영급 연단사를 시험 볼 수 있겠는가?

다른 방 안, 방금 전 양준이 만났던 중년 남자가 그늘 진 얼굴로 연단 서적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심오한 영진을 깨치지 못해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사부님, 방금 전 협회에 가입하겠다던 젊은이에 대한 것이에요.”

여인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래, 시험에 통과했느냐?”

“아니요.”

“통과하지 못했으면 찾아와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연단하러 가거라.”

여인은 이를 악물더니 갑자기 발을 들어 대문을 냅다 들이찼다. 양준은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여인은 서슬이 시퍼래져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에 중년 남자는 화가 나서 탁상을 두드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사부의 명을 무시하다니. 지금 네 눈에 이 사부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서 울화통을 터뜨렸다.

“사부님, 그 자가 연단한 지 얼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그런데 왜 영급 단약을 만들 수 있죠? 사부님 때문에 제가 천급 하품인 한성초로 시험했잖아요. 얼마나 낯 뜨거웠는지 아세요?”

“뭐라고? 영급 단약을 만들 수 있다고? 아닐 거야. 너 지금 나를 속이려는 거지.”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사람을 데려왔어요. 그런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부님께서 직접 시험해 보세요.”

여인이 밖에 대고 손짓을 하자 양준은 하는 수 없이 걸어 들어갔다.

남자는 위엄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네가 영급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이냐?”

양준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중년 남자의 낯빛이 진지해지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여긴 연단사 협회다. 어느 세력에서 왔든지 감히 망언을 했다가는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양준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문질렀다. 그냥 옥패 하나를 받아볼까 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을 겪을 줄이야.

“옥패를 받지 않겠습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하고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가 감히!”

남자가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연단사 협회는 네멋대로 들락거리는 곳이 아니다. 속이 켕겨도 소용없어. 지금 이 자리에서 네가 어떻게 영급 단약을 만들어 내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내 마음에 안 들면, 흐흐…….”

“나도 네가 정말 재주가 있는지 알고 싶어.”

여인도 양준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양준은 무기력감을 느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미나(米娜)야, 영급 재료를 가져오너라.”

남자는 양준을 지켜보며 여인에게 지시했다.

미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건곤대를 더듬기 시작했다. 곧이어 영급 재료가 방 안에 있는 탁상 위에 한가득 놓였다.

남자가 손을 뻗자 사람 머리 크기의 약 가마가 나타났다. 그는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내가 쓰는 약 가마다. 내가 8년간 재료를 수집해 성급 연기사에게 부탁해 특별 제작한 것이지. 연단 성공률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야. 만약 이 약 가마로도 영급 단약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중년 남자는 말하는 한편, 약 가마를 양준에게 던져 주었다.

양준은 약 가마를 받아 들고 살짝 가늠해 보더니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 가마는 일반 약 가마보다 질적으로 훨씬 나았다. 게다가 안쪽에 각인된 영진은 연단 성공률을 높여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날카로운 눈썰미로 영진이 완벽하지 않아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기에는 영단 다섯 알을 만들 재료가 있다. 그중에서 세 개만 만들어 내도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쳐 주지. 그게 안 된다면…….”

남자는 연신 냉소를 흘리더니 눈짓했다.

“이제 시작해 봐.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꼼수를 쓸 생각은 하지 말거라.”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양준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약 가마를 탁상 위에 놓아두고 재료 더미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잠시 뒤, 그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그중 몇 개 약재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중년 남자와 미나는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양준이 왜 저리 자신감이 넘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재료 더미는 모두 최적으로 배합해 놓은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뒤, 양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능숙하게 약 가마에 약재를 하나 하나씩 넣고 진원을 주입해 약물을 만들었다. 불의 강약이나 시간 모두 알맞았다.

두 사람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 시작하는 동작을 보고서 그들은 양준이 헛소리를 한 게 아니라 정말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기법과 자신감은 평소의 수련에 기인한 것이었다. 약재가 하나하나 더해지고 방 안에는 점차 약 향기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도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양준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점차 진지해지더니 더는 방금 전의 경멸어린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 시진이 채 안 되어 양준이 손으로 약 가마를 두드리자 동그란 황금빛의 단약이 튀어나왔다. 중년 남자가 잽싸게 손을 내뻗자 단약이 그의 손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남자는 세심하게 감지해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지막하게 외쳤다.

“정말로 영급 단약이네.”

“이 정도였다고?”

미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양준이 정말로 영급 단약을 만들어 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완성된 단약은 영급 하품이었지만, 그녀는 아직 만들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약의 성질이 은은하고 약재도 전혀 낭비하지 않았어. 그리고 한 끗 차이로 단문이 생기지 않았구나. 정말 대단해.”

중년 남자는 연신 혀를 내두르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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