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62화 (661/853)

제 662장. 초청을 받다

거석성에서 오백 리 떨어진 곳에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 있었다. 이곳은 설산의 변두리에 있지만 일 년 사시장철 새들이 지저귀고 꽃향기가 가득하며 기운이 따뜻했다. 거대한 산골짜기에는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수시로 경지가 높은 무인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곳은 큰 세력의 본거지였다.

다년간 밀실에서 폐관 수련을 하던 고령의 노인이 별안간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고 얼굴에는 의문의 빛이 어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거석성 방향을 지그시 살펴보았다.

순간 그는 은은한 원기 파동이 거석성 쪽에서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원기 파동은 왠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노인은 잠깐 생각하다가 현묘한 수인을 맺었다. 곧이어 원기 한 줄기가 슈욱 튀어나갔다.

잠시 뒤, 노인이 손을 내밀어 눈앞을 홱 그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허공에서 겹겹의 잔물결이 일더니 잔물결 속에 흐릿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노인의 얼굴은 더욱더 기괴해지며 놀라움과 의문이 서렸다. 그는 묵묵히 그림자의 대체적인 특징을 기억해 두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갑게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경계심과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대단한 경계심이군!”

노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대는 나이가 어리고 경지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이 대신통(大神通)을 펼쳐 몇백 리 밖에 있는 그의 용모를 보려 한 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이내 잔물결이 퍼져 나가면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재미있군!”

노인은 빙그레 웃고는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창염(蒼炎)!”

대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차분한 분위기의 남자가 걸어 들어와 공손하게 물었다.

“조사(祖師)님, 부르셨습니까?”

“거석성에 가서 이 사람을 찾아 내 앞으로 데려오너라.”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원기 한 줄기가 창염의 머릿속에 흘러 들어갔다. 창염은 곧 흐릿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예!”

창염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노인이 걱정되는지 한마디 당부했다.

창염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묻지 않고 서둘러 밀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준비한 뒤 거석성으로 향했다.

*연단사 협회.

한창 연단술에 대해 얘기하던 미나가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양준은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허공의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한순간, 그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이유 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집중해 살펴볼 때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음속에 의문이 생기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신식은 설령 초범 경지 무인이 탐지한다고 해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입성 경지 무인이 아닌 이상 그는 어떤 기운이든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입성 경지의 무인이 왜 자신을 주목하겠는가?

통현대륙에 온 뒤로 양준은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척을 진 매요는 이미 죽여 버린 상태였다.

“그래.”

미나는 더 캐묻지 않고 계속해 연단술의 세부적인 문제들을 물었다. 양준도 숨기는 것 없이 아는 만큼 그녀에게 답해 주었다. 물론 연단진결에 연관된 비밀스러운 것들은 말하지 않았다.

양준은 연단사 협회에서 보름이 넘게 지냈다. 그동안 두만이나 엽웅, 미나 모두 그를 한 집 식구처럼 대해 주었다. 이는 내내 정처 없이 떠돌던 양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나를 제외하고, 두만이나 엽웅은 그를 대할 때 과도하게 친절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어서 괜히 부담스러웠다.

그동안 양준은 줄곧 연단에 몰두했다. 사온 재료도 빠르게 소모되었다.

마신성에 있을 때는 약재를 모두 고마 일족이 제공해 주었기에 그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 재료를 준비해 연단하게 되자, 이러한 소모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수중에 많은 정석이 있다 해도, 얼마 못 가서 바닥이 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연단해서 자신의 등급을 올리고 조예를 갈고닦아야 했다.

“미나, 너희는 어떻게 충분한 재료를 확보할 수 있어?”

“누가 너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연단을 해!”

미나가 그 말에 눈을 희번덕거렸다.

“넌 연단 속도가 너무 빨라. 사부님도 영단 하나를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리거든. 하루에 기껏해야 두 알밖에 못 만드셔.”

양준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만든 단약을 가져다가 팔아서 정석을 바꾸면 돼. 그러면 다시 재료를 사서 연단할 수 있잖아.”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그는 줄곧 연단만 하느라 자신이 만든 단약을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여태껏 양준은 돈 때문에 걱정해 본 적이 없기에,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수중에 있는 단약은 대부분이 영급 단약이었다. 질적으로나, 등급으로나 수많은 무인들의 요구에 부합하기에 팔지 못할 걱정은 없었다.

양준은 미나와 함께 연단사 협회에서 개설한 점포로 찾아갔다. 그때 양준에게 조언해 주었던 점포 주인은 높은 가격으로 단약들을 사 주었다. 덕분에 양준은 전에 썼던 정석을 모두 돌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바꾼 정석으로 양껏 재료를 사들인 양준은 다시 연단사 협회로 돌아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어언 한 달이 지나갔다.

협회에 있는 이들이 자신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자, 양준은 두만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평생 연단사 협회에서 연단술을 연구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연단사 협회에 머무는 것은 연단사의 존귀한 신분을 이용해 소안과 하응상을 찾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사람을 찾으려고?”

두만은 양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네, 사저 두 분과 사숙을 찾으려고 합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마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몽무애는 하응상의 사부이기에 그에게는 사숙이 될 수도 있었다.

두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정말 대단한데. 양준의 배후로 한꺼번에 세 사람이 나오다니. 그러면 두 여인의 신분도 평범하지 않겠군. 그리고 웃어른이 함께하고 있으니 양준보다도 더 뛰어난가 보군!’

“자네가 사람을 찾는다면, 협회에서 도움을 줄 수 있네. 내가 다른 지부에 그 사람들에 대해 유의하라고 연통을 보내겠네. 만약 소식이 있으면 가장 먼저 자네에게 통지할 것이네. 다만 협회에도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서… 그냥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네. 자네가 정말로 그들을 찾길 바란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봐야 할 수도 있네.”

“고맙습니다. 이미 저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양준이 정색하고 말했다.

두만은 주저하더니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만약 그게 자네의 바람이라면 근처의 세력에 의탁하는 건 어떨지 제안하는 바네. 그들더러 자네를 도와 사람을 좀 찾아 달라고 하세. 자네의 영급 하품 연단사의 신분으로는 어느 세력도 자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네. 어디 가든지 그들은 모두 자네를 귀빈으로 대접할걸세.”

“저도 그럴 생각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근방의 세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어느 세력을 선택해야 할지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의 세력들에 대해 양준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만에 하나 나쁜 마음을 품은 세력에 의탁했다가는 몸을 빼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만약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양준도 다른 세력에 의탁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거였군!”

두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방 세력들 중엔 뇌광신교, 천소종(天霄宗), 고월동천(古月洞天), 라생문(羅生門)이 큰 세력에 속하네. 이 네 세력 가운데서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라생문은 안 가는 게 좋을 걸세.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말이야. 나머지 세 곳은… 음, 내가 그들과는 모두 친분이 있어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힘들군!”

“세 곳 모두 괜찮나요?”

양준은 눈앞이 밝아졌다.

“세 곳 모두 명성이 다 괜찮네. 내가 며칠 잘 생각해 보고, 다시 대답해 주면 안 되겠나?”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네.”

그 뒤 며칠간, 아무 일도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양준은 여전히 매일 연단을 하였고, 미나도 때때로 찾아와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만이 갑자기 양준을 불렀다. 양준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두만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는 두만이 결단을 내리고 자신에게 의탁할 세력을 추천해 주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방문을 열자 거기에는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내성적인 분위기에 눈동자에는 예리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양준이 들어서는 순간,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쳐다보았다. 그에 대해 큰 흥미를 가지는 듯했다.

‘초범 경지로군!’

양준은 순간 흠칫했다. 그가 가져다주는 압박감으로 보아 적어도 초범 경지 2단계는 되는 듯했다.

“장로님!”

양준이 인사했다.

“이리 앉게.”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협회에 새로 온 연단사입니까?”

그는 흥미진진하게 양준을 훑어보며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다네. 자질이 뛰어난 영급 연단사일세.”

두만이 정색하고 소개했다.

“영급이라고요?”

그는 얼굴빛이 바뀌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난 거짓말을 할 줄 모르네.”

“물론 두 장로님을 믿습니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게. 이 분은 뇌광신교의 단해(段海) 장로라네.”

양준은 단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단 장로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일세. 단 장로가 어디에서 자네가 협회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이렇게 특별히 찾아왔다네. 자네를 뇌광신교의 연단사로 초청하고 싶다는군.”

단해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연단사 협회를 감시한 게 아닙니다. 실은 제 사제가 그날 거석성에서 일을 보다가 마침 미나와 이 친구가 함께 협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거든요. 사제는 제가 두 장로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처럼 염치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세력에서 채갈 게 아닙니까.”

두만은 실소하고 말았다.

양준은 연단사 협회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 나갔었다. 그런데도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발각되었으니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우리 뇌광신교에 갈 생각이 있나?”

단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급 연단사면 매우 괜찮은 등급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어리고 자질이 뛰어났다. 만약 그가 뇌광신교에 귀속감이 생기게 된다면 후에 성급 연단사까지 키울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 뇌광신교에서는 성급 연단사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이는 장기적인 투자였다.

단해에게는 이런 안목과 패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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