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4장. 연단사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양준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서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주 익숙한 생명의 기운으로 그가 아는 사람인 듯했다. 그는 사람이 있는 집에 이르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방 안에서 좌선하던 사람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더니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양준을 확인한 그녀는 놀라면서 나지막하게 외쳤다.
“네가 어떻게?”
“또 만났네.”
양준은 웃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단해가 보내온 보조는 뜻밖에도 설산에서 만났던 희몽이었다. 황금빛 옷도 그녀의 빼어난 몸매를 감추지는 못했다. 훤칠한 키, 풍만한 몸매, 기다란 다리. 긴 머리를 질끈 묶어 허리까지 늘어뜨린 모습이 아름답게 빛났다.
희몽은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날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문득 낯빛이 변하더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급히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있어? 이곳은 네가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뭐라고?”
이번에는 양준이 놀랐다.
희몽은 두말하지 않고 급히 달려와서는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넌 우리 뇌광신교 제자가 아니잖아. 이곳은 우리 문파에서 초청한 연단사의 거처야. 어서 가. 그 사람한테 들키면 큰일 나.”
“연단사? 어떤 연단사인데?”
양준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새로운 연단사가 양준인 줄 모르는 듯했다.
“영급 연단사인데 배경이 있다고 해. 단 장로님께서 나를 보내 시중들라고 했어.”
그녀는 말하다가 양준이 제자리에 버틴 채 움직이지 않자 초조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냥 여기 서 있으면 어떡해? 지금 죽고 싶은 거야?”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양준은 점점 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대단한 일이야! 우리 문파에 초청된 연단사의 거처에 마음대로 들어오면 문파의 모든 제자가 너를 죽이려 들 수도 있어. 산을 지키는 제자들은 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너를 들여놓을 수가 있어?”
“그럼 넌 왜 나를 죽이지 않는데?”
“내가 왜 너를 죽여? 참 이상한 사람이야. 어서 가. 연단사가 오기 전에 빨리 나가. 만약 그 사람이 너를 보면 일이 커진단 말이야.”
희몽은 말하는 동시에, 초조한 표정으로 양준을 힘껏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왜 나를 쫓아내려 하는 거야? 그 연단사에게 오해받을까 봐 그래? 연단사가 남자야?”
양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농을 던졌다.
희몽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고함을 질렀다.
“오지랖이 어지간히 넓네.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냥 물어본 거야. 알아봤더니 연단사 옆에 있는 보조들은 연단사의 모든 요구를 다 만족시켜준다면서. 심지어 연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던데, 넌 그 연단사가 늙다리일까 두렵지도 않아?”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씩 웃었다.
희몽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눈동자에는 두려운 빛을 가득 띠고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단 장로님께서 나이가 많지 않다고 했어. 아니면 나를 이곳에 보내지도 않았을 거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나이가 많지는 않을 거야. 너 참 못났다. 왜 함부로 남을 헐뜯어?”
양준은 그녀를 뚫어지게 지켜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도대체 나갈 거야, 말 거야. 정말 내가 너한테 손대지 못할 거 같아?”
희몽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그녀는 왠지 언짢았다. 그에 따라 말투에도 짜증이 묻어났다.
“됐어. 나도 농담 그만할게.”
양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조롱할 흥미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는 손을 뻗어 단해가 떠나기 전에 건넸던 검은 명패를 꺼내 희몽에게 보였다.
“이게 뭔지는 알지? 단 장로가 너한테 많은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나 보네.”
“연단사 명패?”
희몽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복잡한 빛이 반짝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새로 온 연단사는 아니겠지?!”
“맞아.”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명패를 다시 집어넣었다.
희몽은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기다리는 이틀 동안, 그녀는 새로 온 연단사가 어떤 사람일지, 나이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람이 양준이라니?! 양준은 너무나 젊었다.
“대인을 뵙습니다.”
희몽은 갈등하는 표정으로 얼른 예를 올렸다.
“이럴 필요 없어. 편하게 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희몽이 자신의 신분을 알자마자 너무나 공경스럽게 대하자 민망해졌다.
“죄송합니다. 단 장로님께서 얘기한 그분인 줄 몰랐어요……. 저는 몰래 들어온 줄 알고…….”
희몽은 다급하게 변명했다.
“괜찮아.”
양준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흘끔 보고는 뒤돌아 나갔다.
희몽은 입을 실룩이다가 그만두었다. 얼굴에는 온통 괴로움과 슬픔뿐이었다. 원래는 새로 온 연단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했는데 오히려 죽도 밥도 안 되는 꼴이 되었다. 양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커녕, 원래의 관계마저 망쳐 버렸던 것이다.
희몽은 방금 전 무의식중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 같아 후회되었다.
‘양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아마 날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인이라 생각하겠지!’
*뇌광신교 총부.
어느 행궁 안, 이제 막 도착한 단해가 미처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밖에서 한 사람이 급히 들어왔다.
단해는 고개를 들어 보더니 웃으며 인사했다.
“허(許) 사제!”
“전에 말했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허기(許奇)가 은연중에 조급함을 드러내며 다그쳐 물었다.
단해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문파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더니,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신경을 쓰지? 아무튼 자네가 좋은 소식을 말해 줘서 그 사람을 데리고 왔다네.”
“정말입니까?”
허기는 그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사흘 전에 이미 우리 문파에 도착했네. 지금은 연단사들이 거처하고 있는 산봉우리에 있지. 외모와 자질이 최상인 여제자도 보내서 시중들게 했다네. 아마 금방 떠날 궁리는 하지 않을 걸세.”
단해는 말하는 한편, 일어서서 직접 허기에게 차를 따라 주고는 칭찬했다.
“이번에는 정말 자네 덕분이네. 우리 문파에서 어렵사리 이리 좋은 연단사를 포섭하게 되다니. 나중에 큰 쓰임새가 있을 것일세. 이 일을 교주께 보고하면 자네한테도 포상을 내릴걸세.”
그러나 허기의 표정은 괴이쩍었다. 단해의 말에 그는 어떤 기쁜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단해는 그의 모습에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나? 뭐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형에게 직접 가서 그를 데리고 오라고 한 건 그의 연단사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연유인가?”
허기는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펴본 다음,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단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허기가 이처럼 신중하게 행동하자 단해도 저도 모르게 진지해졌다. 그는 뭔가 있다는 생각에 귀를 가까이 대고 귀담아들었다.
“관을 멘 사람 때문입니다.”
단해는 흠칫하고는 경악에 차서 허기를 지켜보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단해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무슨 뜻인가? 그자와 관을 멘 사람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저도 잘 모릅니다. 지난번에 제가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가 뜻밖에 관을 멘 사람을 만났던 걸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지.”
“그때 전 다른 제자들과 내내 관을 멘 사람을 따라다녔지요. 그러다 열화성에서 관을 멘 사람이 멈추었는데, 그 다음의 일은 사형도 들어서 알고 계시겠죠.”
“그때 관을 멘 사람이 독오맹의 제자 한 명을 사로잡고는 사라졌다고 했지.”
“그자는 사실 독오맹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사후에 알아본 데 의하면 정체가 불분명한 자였지요. 독오맹의 여제자 두 명과 그럭저럭 아는 사이라고 하더군요. 관을 멘 사람이 잡아갔던 사람이 바로 사형이 데리고 온 연단사입니다.”
“뭐라고? 정말인가? 혹시 잘못 본 거 아닌가?”
단해는 낯빛이 급변했다.
허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도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그날 거석성에서 무심코 그자를 봤을 때, 제 눈을 의심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가 바로 관을 멘 사람이 잡아갔던 그자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사람들은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가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양준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다시 나타났다. 허기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관을 멘 사람은 놀랄 만한 보물고를 지키고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것만 있다면 어떤 세력이든 거대한 부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자는 관을 멘 사람의 손에서 살아남았으니 혹시 무엇인가 알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관을 멘 사람이 숨어 있는 곳은 알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만약 우리 문파가 그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근처의 천소종, 라생문, 고월동천을 싹 다 밀어 버리고 이곳의 패자가 될수도 있습니다.”
“그건 전설일 뿐…….”
단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자는 영급 하품 연단사일세.”
“네?!”
“게다가 두 장로도 그자를 좋게 보는 모양이야. 떠나기 전, 두 장로가 특별히 나에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출신이니 홀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네.”
“두 장로가 그렇게 평가했다고요? 하지만 우리가 일 년여 동안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자의 출신이 불분명하나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허기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잘 모르니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게지.”
단해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허기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순식간에 흥분된 표정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니 양준에 대해 알아본 정보에는 의문점이 수두룩했다.
“어떻게 할지는 사형이 알아서 하십시오. 그를 우리 문파의 기둥으로 키우든지, 아니면 도박을 걸든지. 저는 사형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허기는 더는 설득하지 않고 단해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이렇게 젊은 영급 연단사는 정말로 보기 드문 인재였다. 어렵사리 문파에 데리고 왔는데 괜히 잘못 건드리면 뇌광신교에는 큰 손실이었다.
단해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저었다. 그러자 허기가 조용히 물러갔다.
허기가 떠난 다음, 단해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힘든 선택이었다. 관을 멘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소문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많은 고수들이 관을 멘 사람에게 세상이 놀랄 만한 비밀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등에 멘 핏빛 관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물건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그렇게 많은 초범 경지 강자들이 관을 멘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지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관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