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65화 (664/853)

제 665장.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느냐?

양준이 뇌광신교에 온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그는 점차 이곳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희몽은 지난번에 왔을 때, 단해의 명을 받고 양준에게 많은 약재를 가져다주었다. 양준은 매일 연단했지만 괜히 주목을 받을까 두려워 많이 만들지는 않았다. 일반 연단사의 속도에 맞춰 하루에 두세 알 정도의 영단을 만들어 냈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체 수련을 하거나 연단진결에서 정보와 비밀을 캐냈다.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면서 양준은 희몽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대할 때, 언제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전에 설산에서 만났을 때처럼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 그녀는 다른 방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양준과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양준은 자신의 일에 바삐 보내다 보니 그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희몽은 이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다. 간혹 양준을 찾아 이야기도 하면서 사이를 돈독히 하고 싶었지만 체면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한 달 뒤 어느 날, 양준이 좌선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희몽이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입구에 서서 예를 올렸다.

“대인!”

“무슨 일이야?”

양준이 빙그레 웃으며 무심코 그녀를 힐끔 보았다.

“단약을 바치는 날이 되었습니다. 대인께서 그동안 제련한 단약을 문파의 주 건물에 가져가야 합니다.”

희몽이 가벼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는 단해가 그녀에게 준 임무 중의 하나였다. 매달 보조는 연단사가 한 달 동안 만든 단약을 모아 문파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단해에게 바쳐야 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동안 만든 영단을 꺼내 희몽에게 건넸다.

희몽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단약을 받았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무언가 말하려다 말을 꺼내지 못하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양준이 곧 입을 열었다.

“다른 연단사들에게서 들으니 내가 허락하면 너도 단약 몇 알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던데, 맞아?”

희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섯 알은 네가 가져.”

연단에 쓰는 재료는 뇌광신교에서 제공하지만, 연단사가 연단하다 보면 소모가 클 뿐만 아니라 혹여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있으면 재료만 낭비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연단사가 매달 단약 몇 알을 제련하는지는 연단사와 그 보조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단약을 주 건물에 보내기 전에 살짝 꼼수를 쓸 수도 있었다. 뇌광신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초청 연단사들은 일부 단약을 남겨 보조에게 주었다. 이렇게 되면 보조는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연단사 또한 보조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보조는 더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는 공공연한 비밀로 그에 대해서 단해도 잘 알고 있지만 저지하지 않았다.

연단사가 남겨 둔 일부 영단은 결국 모두 뇌광신교의 제자에게 쓰이기 때문이었다. 자질이나 용모가 뛰어난 여제자들을 보내 연단사들을 시중들게 한 이상, 단해도 그녀들이 빨리 성장해 문파의 기둥이 되기를 바랐다. 양준은 다른 연단사들과 한담을 하다가 이런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의 말에 희몽은 크게 기뻐하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녀는 아직 신유 경지 8단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영단은 그녀가 경지를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양준은 더 길게 말하지 않고, 자신이 이번 달에 영단을 얼마나 제련했는지 증명서를 써서 그녀에게 건넸다. 희몽은 크게 감동받은 채, 급히 산봉우리를 떠났다.

*주 건물에 이른 그녀는 영단과 양준이 써준 증명서를 단해에게 바쳤다. 단해는 영단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몽이 물러가려는데 단해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장로님, 무슨 일이십니까?”

희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가 보건대 양준은 어떠하냐?”

단해가 갑자기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괜찮은 분입니다. 말수가 적고 의사소통을 별로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한 달 동안, 저와 열 마디도 한 거 같지 않습니다.”

“대화도 별로 나누지 않았다고? 혹시 너에게……?”

단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희몽은 얼굴을 붉히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단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쾌해하며 말했다.

“널 보낸 목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단사들은 우리 문파가 발전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초청한 사람들로,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단 말이다. 반드시 그자의 마음을 꽉 잡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자가 달갑게 우리 문파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희몽이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느냐? 못 하겠으면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다. 우리 문파에 예쁜 여인들은 많단다.”

“노력하겠습니다.”

희몽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래. 가 보거라. 좋은 소식을 기대하마.”

단해가 손을 저었다.

희몽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다음에야 단해는 고개를 저으며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허기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 자는 우리 문파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는 듯하군. 그때 데려올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그렇지 않으면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하루 종일 미녀를 앞에 두고도 꿈쩍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자가 자신만의 신념과 목적이 있다는 걸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보통 이런 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해 제어하기 힘듭니다.”

허기가 탄식했다.

“데려올 당시, 그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 문파에 도움을 청할 거라고 했네. 과연 무슨 도움을 청할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좀 더 기다려 보세. 독오맹에도 사람을 보내 더 자세하게 알아볼 것이네. 이리 젊은 영급 연단사라 아깝단 말일세.”

허기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 그들도 양준에게 밉보이지 않고 잘 지내고 싶었다.

*되돌아온 희몽은 무슨 고민거리가 생겼는지 우울해했다. 하지만 양준은 묻지 않았다. 여인에게 고민거리가 있는 것은 정상이었다. 괜히 물었다가 혹시라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매달렸다.

두만과 단해가 친분이 있다고는 하나, 이것만으로 단해를 믿을 정도로 양준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동안 그는 이 세력에 소안과 하응상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도움을 청해도 될지 조사하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면, 주저 없이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독오맹에는 돌아갈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관노에게 잡혀 가는 것을 보았기에 독오맹에 다시 나타나게 되면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등 뒤 견갑골에서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바람과 우레의 힘이 또 말썽을 부리는 것이었다. 양준이 좌선에서 깨어나 미처 눈을 뜨지도 못했는데 사람을 취하게 하는 향기가 풍겨 왔다. 그가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희몽이 침대 가에 서서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복잡한 빛이 반짝였다.

“뭐 하는 짓이야?”

양준이 놀라서 물었다.

희몽은 긴장해서인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곧 진정하고서 이를 악물고 침대 가에 앉더니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거예요?”

“어느 쪽을 말하는 거야?”

양준이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 뭘 물으세요?”

희몽은 부끄럽지만 뜨거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박한 여자는 별로야. 하지만 그냥 재미 삼아 놀아 보자고 하면 만족시켜줄 수 있어.”

양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번 놀아 보시죠.”

희몽은 화가 나서 양준을 노려보았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이만 가서 쉬어.”

희몽은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실망한 얼굴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양준에게 사과한 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천천히 물러갔다. 그녀가 나간 다음에야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이번에 이렇게 당했으니 앞으로 더는 방자하게 나오지 못하겠지!’

희몽은 원래 양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대범하고 활달하며 숨기는 것이 없이 있는 대로 말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그녀와는 좀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괜히 가깝게 지내다가 나중에 매달리면 몸을 빼기 힘들 것 같았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양준이 뇌광신교에 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었다. 두 달이란 시간은 그다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양준은 뇌광신교에 의탁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야 할지 여태껏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조사를 통해, 양준은 뇌광신교에도 어두운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마음 놓고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희몽이 두 번째로 주 건물에 영단을 바치고 오더니 양준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단 장로님께서 주 건물에 다녀가라고 하세요.”

“무슨 일이지?”

양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장로님께서는 별다른 말씀 없이 중요한 일을 의논해야 하니 될수록 빨리 한번 다녀가라고 했어요.”

“알겠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해는 그를 이곳에 데려다 준 다음부터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뇌광신교의 대장로로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가도 될까요?”

희몽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

양준도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희몽과 함께 뇌광신교의 주 건물로 날아갔다. 양준은 처음으로 주 건물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희몽이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한참을 날아서야 인파가 모여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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