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6장. 함정에 빠지다
하늘에서 굽어보니 아래쪽은 건물들이 가득했고, 황금빛 옷을 입은 무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하늘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날고 있었다. 모두들 바쁜 모양이었다. 뇌광신교는 생기가 넘쳐나고 무인도, 고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양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뇌광신교는 통현대륙에서 큰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 사방 몇천 리에서도 최고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최고는 천소종으로, 입성 경지 고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한 세력이었다. 다른 세력, 이를테면 라생문, 고월동천도 뇌광신교보다 저력이 있었다. 네 세력 가운데서 뇌광신교는 꼴찌였다. 하지만 꼴찌인 뇌광신교의 저력마저도 양준이 태어난 저쪽 세계와는 견줄 수가 없었다.
양준은 희몽을 따라 우뚝 솟은 건물 앞에 착지했다. 양준이 초청 연단사 명패를 내보이자, 문을 지키던 제자는 얼른 공경하게 예를 올렸다. 이렇게 젊은 초청 연단사는 처음 보는지, 그 제자는 양준을 연신 곁눈질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로 올라가면 됩니다. 단 장로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희몽이 손짓하며 말했다.
“넌 안 가?”
“전 들어갈 자격이 없어요.”
희몽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양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기다려. 조금 있다 같이 돌아가자.”
“좋아요.”
희몽이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계단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야 양준은 대전 앞에 이르렀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단해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양준이 들어서자 그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단 장로님!”
양준이 공수하며 인사했다.
“양 연단사, 두 달 만에 보는군. 그간 잘 지냈는가?”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우리 문파의 제자가 시중은 제대로 들던가? 만약 보조에게 불만이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바꿔 보낼 수도 있네.”
“괜찮습니다. 희몽도 잘하고 있습니다.”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자네 뜻대로 하게.”
단해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양준에게 자리를 권했다. 양준은 자리에 앉아 제자가 올린 차를 한참 마시다가 물었다.
“장로님께서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닐세. 별다른 일은 없고, 한 번씩 초청 연단사들을 불러 두루 이야기를 나눈다네.”
단해가 손을 내저으며 겸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준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상대가 자신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 만든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모든 세력에서 사람을 구슬리는 수단이기도 했다.
“전에 우리 문파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고 했었지. 혹시 무슨 일을 하려는지 물어도 괜찮겠는가?”
단해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예의를 차릴 필요 없이 말만 하게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네.”
“정말 때가 되면 예의를 차리지 않을 것입니다.”
양준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럼 됐네.”
단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전에 시기가 적절하면 우리 문파에 도움을 청할 거라고 했었지? 아직은 그 시기가 안 된 건가?”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알겠네.”
단해가 호탕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우리 문파에 크게 미련이 없고 남으려는 생각도 없는 모양이군. 심지어 믿음도 없는 거 같네만.”
양준은 미간을 구기며 단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단해가 지금 하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가능하다면, 난 자네가 우리 문파에 가입하기를 바라네. 그러나 자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구먼. 그리고 난 지금 한시 급히 자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조사하고 싶단 말일세.”
단해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빛을 하고서 말했다. 그러고는 두 발로 가볍게 땅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양준을 중심으로 주변의 바닥에 진법 무늬가 반짝였다. 그리고 진법 문양은 빠르게 수축하더니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양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양준은 낯빛이 급변하며 서둘러 진원을 돌렸다. 그러나 진원이 움직이는 순간, 경맥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다.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처럼 온몸의 피와 살이 저도 모르게 떨렸고, 금방 모였던 힘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단 장로님,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양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는 동시에 차가운 얼굴로 단해를 바라보았다.
단해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주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자네같이 젊은 영급 연단사는 우리 문파에 있어 큰 재산이기도 하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네가 우리 문파에 가입하려는 뜻이 없지 않는가. 아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네를 포섭하지 못할 거 같군.”
“단 장로님, 전 뇌광신교를 해치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맞네. 내가 말했잖는가.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단해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양준의 눈이 반짝였다. 단해가 왜 이러는지 연유를 알 수 없지만 함정에 빠진 건 사실이었다. 그가 뇌광신교에 온 것은 온전히 두만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 두 장로는 연루되었을까?’
양준은 시선을 단해 등 뒤의 병풍 쪽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
“이젠 나오시죠. 이미 들켰는데 더 숨어 있어도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은연중에 단해의 태도가 바뀐 데에는 병풍 뒤에 숨은 사람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상대가 이처럼 예리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범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허기의 모습을 확인한 양준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허기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열화성 밖에서 관을 멘 사람을 뒤쫓던 인파 중에 허기가 있었다.
‘어쩐지 뇌광신교란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운훤이 소개했었구나!’
이 순간 양준은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은 관을 멘 사람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랬군요.”
양준은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통현대륙이 이토록 큰데 소현계에서 나오자마자 남의 눈에 띌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때 열화성에서도 그가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가는 것을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리 경계심을 높인다 해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네는 지금 인법 주문에 걸렸네. 괜히 주문을 풀려고 헛고생을 하지 말게. 자네가 진원을 돌릴수록 더 힘들어질 테니까.”
단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자네를 괴롭힐 생각이 없네. 자네가 얌전하게 따라 준다면 자네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걸세.”
양준이 냉소했다.
“장로님은 두 장로님께서 책임을 물을까 두렵지 않습니까?”
단해가 고개를 저었다.
“두 장로가 자네를 좋게 보기는 한다만, 만약 자네에 대해 물어도 설명할 방법이 다 있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게.”
양준은 순간 마음이 진정되었다. 두만이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하자 그는 왠지 기뻤다. 만약 두만마저 저들과 함께 손을 잡고 그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었다면, 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뻔했다.
단해와 허기의 경지를 확인한 양준은 인내심을 가지고 섣불리 출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초범 경지 2단계로 그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이곳은 뇌광신교의 주 건물로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진원을 봉인하는 인법 주문에 걸렸기에 섣불리 출수했다가는 더욱 위험해질 뿐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왜 여태껏 기다리다가 오늘에야 손을 쓴 거죠? 제가 여기에 왔을 때부터 손을 쓸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양준은 시간을 끌어 도망칠 기회를 찾으려 했다.
단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전에 말한 대로 나도 자네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손쓸 생각이 없었네. 게다가 두 장로께서 자네에게 대단한 배후가 있다고 말해 주었지. 그런데 두 달간 지켜보면서 알아보니 자네가 조만간 떠날 거 같더군. 또한 두 장로께서 말한 것과 달리 자네는 아무 배후도 없고, 그냥 외진 곳에서 온 청년일 뿐이었네.”
“그래서 두려운 게 없으신 모양이군요?”
양준은 조소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단해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은 이만하고.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관을 멘 사람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네. 자네가 잡혀 간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 그자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이 모든 걸 말해 주면 자네를 보내 줄 것이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죽여 입을 막는 일은 그도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단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단해는 일을 저지른 이상, 끝장을 볼 게 뻔했다. 그가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단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터. 하지만 그가 비밀을 말한다면, 그 다음은 시체가 될 게 뻔했다.
“그자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시죠.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되니, 제가 수혼법(搜魂之法)을 펼쳐 그자의 신식에서 비밀을 캐내면 됩니다.”
허기가 다가와서 음산하게 말했다.
단해가 탄식하더니 말했다.
“자네가 보다시피 내 사제는 나처럼 착하지 않고 아주 급한 성미일세. 수혼법으로 백치가 되고 싶지 않으면 고분고분 우리와 협의하는 건 어떤가?”
두 사람은 한 명이 어르면 한 명이 위협하면서 양준의 마음을 무너뜨려 얌전하게 말을 듣게 하려 했다. 참으로 사악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