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67화 (666/853)

제 667장.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수혼법으로 남의 기억을 염탐할 수는 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단해와 허기는 수혼법으로 양준을 대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양준이 먼저 협조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바탕 겨뤄 보고 난 다음, 그들은 양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근이든 채찍이든 전혀 먹혀들지 않고 고집불통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위협하고 회유해도 양준은 관을 멘 사람의 비밀을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단해의 말도 진심이었다. 그는 앞날이 창창한 연단사와 이처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는 여전히 양준이 뇌광신교에 가입하기를 바랐다. 양준이 문파에 가입하기만 하면 단해는 그에게서 소식을 염탐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양준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단해는 결단력 있게 손을 썼다. 어차피 조만간 떠날 사람이고 영원히 뇌광신교에 가입하지 않을 터인데 밉보여도 상관없었다.

“관을 멘 사람을 찾아서 뭐 하려고요? 그에게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나요?”

양준은 단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단해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관을 멘 사람이 큰 비밀을 지키고 있다고 전해 들었네.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아주 큰 힘을 장악할 수 있다고 하더군.”

양준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단해는 관을 멘 사람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가 말한 것도 사실이었다. 고마 일족은 큰 힘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 종족은 누구나 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네, 무엇이든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말해 주지 않겠나?”

단해가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질문 상대를 잘못 찾았습니다. 전 정말 모릅니다.”

“사형!”

허기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나지막하게 외치고는 의견을 구하듯이 단해를 바라보았다. 단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미안하네.”

허기가 잔인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따르지. 수혼법을 시전하면 신혼이 상처를 입어 백치가 될 수 있네. 백치가 안 되려면 스스로 기도하게나.”

양준은 적절하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허기는 그 모습을 보고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양준 앞에 다가서더니 거드름을 피우며 한쪽 손을 쫙 펴 그의 정수리를 덮었다. 곧이어 초범 경지 2단계 무인의 신식의 힘이 세차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양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원래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그의 진원을 봉인했지만 신식의 힘에 있어서 그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허기의 신혼이 그의 식해에 들어오기만 하면, 양준은 그를 죽일 수 있었다. 대마신의 멸세마안은 입성 경지 고수도 막아 낼 수 없으므로 허기 같은 초범 경지 2단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허기를 죽인 다음, 다시 마신변을 시전하면 육신의 봉인을 해제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초범 경지인 단해 한 명만 남기에 양준은 이곳에서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허기가 초식을 펼친 뒤에야 그는 상대의 신혼이 자신의 식해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기의 신식은 얽히고설켜 무형의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방대한 흡입력이 생겼다. 그리고 흡입력으로 양준의 신혼을 머릿속으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양준의 식해 안은 순식간에 파도가 출렁이며 불안정해졌다. 이와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양준은 순간 얼굴이 험상궂어지고 이마에는 힘줄이 툭 튀어나왔으며 온몸의 뼈가 우드득 소리를 냈다. 이는 영혼에서 전해지는 고통으로 육신의 고통보다 천만 배는 더 아팠다.

“어허? 괜히 막으려고 헛짓하지 마시게. 막을수록 더 힘들 거네. 얌전히 식해의 방어를 풀게나. 내가 자네의 기억을 끌어내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을 걸세.”

허기는 살짝 놀라더니 냉소를 흘렸다.

허기의 말이 무형의 힘을 지녔는지 양준은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때문에 양준은 더욱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처했다.

“완전 꽉 막혔군!”

허기는 화가 나서 신식의 힘을 더 많이 방출했다. 그러자 흡입력도 훨씬 더 강해졌다.

양준의 신식은 초범 경지와 비견될 수 있지만, 허기와는 그래도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단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허기가 그의 신혼을 끌어낼 게 뻔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양준은 저항을 포기했다. 이내 그의 신식의 힘이 폭발하며 무형의 공격으로 변해 허기에게 달려들었다.

허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사제, 조심하게!”

단해가 낯빛이 급변하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순간,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허기는 저도 모르게 그 열기에 부담감을 느껴 급히 물러서며 양준과 거리를 두었다.

화르륵-

뜨겁고 밝은 불꽃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의기양양하고 험상궂던 허기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면서 고통으로 물들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신식의 불꽃?”

단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비명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허기는 다시 정신을 회복했다.

방금 전, 그는 미처 막을 사이도 없이 양준의 신식의 불꽃에 신혼이 타서 조금 손상을 입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신식의 힘이 양준보다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당했을 터였다. 정신을 차린 허기는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괜히 방심했다가 된통 당할 뻔했군!’

“자네 어떻게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건가?”

단해는 착잡한 표정으로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독기와 증오를 머금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진작 말해 주지 그랬나? 신식의 불꽃이 있다고 말했으면 나도… 어휴…….”

단해는 무척이나 괴로워하면서 고개를 젓더니 연신 탄식했다. 양준이 신식의 불꽃을 가진 연단사인 줄 진작에 알았다면, 단해는 결코 쉽사리 그와 척을 지지 않았을 테고, 그에게서 관을 멘 사람의 비밀을 캐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비밀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했다. 관을 멘 사람이 정말로 보물을 지키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단해도 도박을 해본 것이었다. 그러나 신식의 불꽃을 지닌 연단사는 확실한 보물이었다.

지금 천하제일 연단사로 일컬어지는 천장노인(天藏老人)도 바로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천장노인은 인간, 요족, 마족 사이에서 더할 나위 없이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었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양준이 천장노인처럼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단해는 갖은 방법을 다해 그를 포섭했을 것이다. 어떡해서든 그를 뇌광신교에 가입시켰을 것이고, 대장로의 자리를 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식의 불꽃을 지닌 연단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통현대륙의 고수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한순간 단해는 후회막급이 되어 어쩔 줄 몰랐다.

“사형, 일은 이미 저질렀고, 이제 와서 저 자와 화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허기는 분노에 차서 양준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에 조금 손해를 본 탓에 더는 수혼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단해는 차갑고 음산하게 허기를 바라보았다. 순간 허기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그때 양준을 청해 올 때만 해도 그는 기쁜 마음이었다. 양준이 앞날이 창창하기에 힘껏 키워 보려고 했었다. 그러다 허기의 도발과 설득에 못 이겨 결국 나쁜 마음을 품게 된 것이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이상, 화해할 가능성은 없었다.

“신식의 불꽃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알았다면…….”

허기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는 말하지 말게.”

단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오늘 우리가 한 짓을 용서하지 못하겠지?”

“저를 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오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죠.”

양준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단해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손을 뻗어 원기 몇 줄기를 뿜어내 밧줄처럼 양준을 묶었다. 그러고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미안하네.”

*양준은 지하 감옥에 갇혔다.

지하 감옥은 특별한 광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안에서 신비한 힘이 흐르면서 수시로 정교한 부적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이곳은 초범 경지 고수도 수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단해와 허기는 신유 경지 정상인 양준이 도망칠까 걱정하지 않았다.

진원은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양준은 몇 번이고 봉인을 풀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게다가 진원을 돌릴 때마다 온몸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곤경에 처했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도 경험했었다. 몇 번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지만 매번 기회를 찾아 위기를 모면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양준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다리다 보면 분명 적절한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게다가 단해와 허기는 그를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다. 양준이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지금쯤 그들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죽이자니 아깝고, 남겨 두려니 후환이 두려울 터였다.

며칠이 지났지만, 양준은 줄곧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지내며 종일 햇빛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거운 소리와 함께 지하 감옥의 문이 열렸다. 빛이 비쳐 들어오자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름답고 훤칠한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지하 감옥 앞에 멈추었다.

희몽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마주 보다가 그녀는 몸을 낮춰 가져온 물건들을 감옥 안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음식을 가져왔어요. 제가 마음을 담아 만든 거예요. 맛도 괜찮을 거예요.”

“단해가 나에 대해 말해 줬어?”

양준이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네.”

희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널 왜 보낸 거지?”

“설득하라고 했어요.”

희몽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문파에서 제가 당신과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저를 보낸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당신을 설득해야죠.”

“네가 나섰으니 마지못해서라도 승낙해야지. 가서 단해에게 내가 뇌광신교에 가입할 거라고 말해.”

양준은 비릿하게 웃었다.

희몽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승낙했다고 해도, 단 장로님은 믿지 않을 거예요. 그분이 세 살 배기 어린애로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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