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72화 (671/853)

제 672장. 저한테 볼일이 있나요

바람의 눈이 있는 금지 구역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리더니 동시에 천지간의 기운이 어지러워졌다. 뇌광신교의 거의 모든 제자들이 그쪽의 이상을 느끼고 놀라서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곧 금지 구역으로부터 포악한 경풍(勁風)이 불어닥치더니 나무가 흔들리고 집들이 무너졌다. 사방 오십 리 안에 있는 뇌광신교의 재산들이 흙더미가 되었다. 뇌광신교의 많은 고수들은 얼굴빛이 크게 변하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금지 구역에 있던 이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천지의 기운이 폭발한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모두 운기조식을 해 막아 냈다. 바람의 눈에서 폭발한 기운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공격뿐만 아니라 형체가 없는 취혼풍(吹魂風)도 있었다.

취혼풍은 원래 바람의 눈 속에 내재된 기운이었으나 순간 밖으로 폭발했다. 일행은 바람의 눈에 가깝게 있었고, 누구도 이런 위험이 닥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해와 허기는 순간 넋을 놓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취혼풍이 머릿속에 흘러들자 그들의 식해가 출렁이며 기운이 어지러워졌고, 신혼도 덩달아 불안정해져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하성음도 방심하지 않고 수단을 시전해 취혼풍을 막았다. 창염은 두만과 미나를 보호해 뒤로 물러나려다가 두만이 차분하게 청색의 돌을 꺼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만은 청색의 돌을 손에 쥐고 진원을 주입했다. 곧이어 청색의 장막이 만들어졌다.

“창염. 어서 들어오게.”

두만이 창염을 불렀다.

창염은 얼른 장막 안에 뛰어 들어갔다. 장막 안에 들어서자 신혼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청석(煉靑石)? 참 저력이 대단하군!”

“지금은 그런 걸 말할 때가 아니네. 바람이 계속해서 공격해 오고 있네.”

두만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창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방심하지 않고 서둘러 기운을 모아 공격해 오는 바람을 모두 날려 버렸다. 연청석으로 형성된 청색 장막은 신혼에 대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뿐, 형체가 있는 실질적인 공격은 막을 수가 없었다. 창염도 연청석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별세계에서 온 이 물건이 아주 귀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연청석은 입성 경지 무인의 신식 공격을 막을 수 있기에 이것만 있으면 자신의 신혼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연청석은 쉽게 파손되어 몇 번만 사용하면 가루가 되었다.

두만이 지금 연청석을 내놓은 것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다. 그는 성급 연단사지만 입성 경지 고수가 아니었고, 초범 경지 1단계밖에 안 되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연단술에만 매달리다 보니 전투력은 신유 경지 정상 무인과 비슷했다.

“두 장로!”

하성음이 급하게 소리치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두만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을 더 많이 주입하자 청색 장막이 좀 더 커져 하성음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 두만과 미나를 등 뒤에 세우고, 초범 경지 3단계 고수 두 명이 함께 출수하자 습격해 오는 바람 공격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단해와 허기는 취혼풍에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바람의 기운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곧이어 둘 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철철 흘렸다. 하성음은 가슴이 아파 나지막하게 외쳤다.

“두 장로, 저들을 들어오게 할 수 없나?”

“나는 도저히 방법이 없네. 이제 진원을 더 주입하면 연청석이 부서져 버릴 것이네.”

두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만이 그들을 들이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성음은 탄식할 뿐이었다. 단해와 허기는 모두 뇌광신교의 장로였다. 그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하성음은 청색 장막에 숨어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보호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바람 공격을 쳐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를 쳐서 그들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원래 바람의 눈 속에 내재되었던 기운이 폭발하자 단해와 허기는 전혀 막을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되어 두 사람은 피바다에 쓰러졌다. 아직 생명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계속해서 취혼풍을 맞다 보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들의 신혼은 끌려나올 것이다.

하성음은 속이 타 들어갔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한차례 포악한 공격이 지나간 뒤,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방금 전의 폭발이 바람의 눈의 마지막 기운인 듯했다. 두만의 연청석도 그 순간 사명을 마치고 부서지더니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양준!”

미나가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모두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양준이 알몸 상태로 피범벅이 된 채 허공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으나 육신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창염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씨익 소리 없이 웃었다. 양준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의 흐릿한 그림자와 거의 비슷했다. 조사님이 찾으려던 사람이 맞았다.

“바람의 눈은?”

하성음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뇌광신교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바람의 눈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제 이곳에 바람 속성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발견한 하성음은 사색이 되었다.

바람의 눈이 없어지면 앞으로 바람 속성 공법이나 무공을 수련하는 제자들은 더는 이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바람의 비밀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양준, 어서 옷이나 입어!”

미나가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소리쳤다. 한편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양준의 다부진 몸매를 훑어보았다.

양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천천히 눈을 뜨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쪽에 서 있는 네 사람 가운데서 두만과 미나를 제외하고 다른 두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에게 주는 압박감은 단해와 허기보다 강했다. 양준은 곁눈질로 피바다에서 신음하고 있는 단해와 허기를 보고 섬뜩하게 웃었다.

신형이 번쩍하자, 그는 전보다 몇 배 더 빠른 속도로 단해와 허기의 곁으로 다가갔다.

“진짜 빠르네.”

창염과 하성음은 저도 모르게 놀라서 소리쳤다. 방금 전, 그들은 순간적으로 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같은 고수도 하마터면 양준의 그림자를 놓칠 뻔했다.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준은 곧바로 초식을 날렸다. 공격은 그대로 마침 단해의 목에 명중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뿜어져 나오며 단해의 머리가 날아갔다.

하성음은 허공에서 날아가는 고통스러운 표정의 머리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초청 연단사가 뇌광신교의 대장로를 죽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호?”

창염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지켜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는 조사님이 찾으려 하는 젊은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양준이 살기등등해서 전혀 반항할 힘이 없는 허기마저 죽이려 하자, 하성음은 화가 나서 호통을 쳤다.

“네가 감히!”

동시에 그는 번개같이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문파의 장로 둘을 연달아 죽이게 놔둘 수는 없었다.

창염은 냉소를 흘렸다. 이윽고 신형이 번쩍하더니 그가 하성음을 막아 섰다.

“창염, 지금 뭘 하려는 건가?”

하성음이 창염을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같은 초범 경지 3단계로 그는 창염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별 뜻 없네. 하지만 양준을 건드리려면 먼저 나한테 물어봐야 할 걸세.”

창염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천소종과 아무 연관이 없네. 창염,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성음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분노에 차서 말했다.

“양준, 자비를 베풀게.”

두만이 급히 외치면서 미나와 함께 양준에게 달려왔다.

두만의 말에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허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자 더는 살수를 펼치지 않았다. 곧이어 두만과 미나가 양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만은 가볍게 숨을 고르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연단사 협회에 있는 동안, 양준은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양준이 왜 뇌광신교의 두 장로를 죽이려는 하는지 궁금했다.

“두 장로님!”

양준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미나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나는 목까지 빨갛게 물들어서는 양준을 훔쳐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 시선을 돌렸다. 양준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창염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사람이 왜 자신을 돕는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양준은 관찰하는 한편, 침착하게 옷을 꺼내 입었다.

하성음은 더는 창염과 실랑이질하지 않고 양준을 증오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양준이 보기 드문 인재일 수도 있지만 뇌광신교의 대장로가 그의 손에 죽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단해를 위해 도리를 따지려고 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나한테 말해 줄 수 없겠나?”

두만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두 사람은 저를 해치려고 했습니다. 저의 신혼을 끌어내려고 바람의 눈에 던져 넣었고요.”

양준이 무덤덤하게 해명했다.

“웃기는 소리. 자네는 단해가 초청해 온 연단사인데, 그가 왜 허기와 함께 자네를 해치겠는가?”

하성음은 이런 해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초범 경지 2단계 고수 두 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젊은이를 해치려 하겠는가?’

“누구신데요?”

양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하성음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의 적의와 불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만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이 분은 뇌광신교의 하성음 교주일세!”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의 의문이 해소되자, 그는 다시 창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 분은요?”

“천소종의 창염이네.”

창염이 한 걸음 다가서며 자기소개를 했다.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죠?”

양준은 미소를 지었으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맞네. 모르는 사이야. 하지만 자네한테 볼일이 있다네.”

창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양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두만을 바라보았다. 두만이 서둘러 말했다.

“창염은 자네한테 악의가 없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장담하겠네.”

“그럼 조금 뒤에 다시 이야기하죠.”

양준은 창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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