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4장. 창염의 임무
우레의 눈 속에서 난폭한 기운이 들끓었다. 그 기운은 바람의 눈보다 더 강했다. 창염은 바람의 눈 속에 신식을 풀어 살펴볼 수 있었지만 우레의 눈은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두 곳 중 우레의 눈이 더 위험했다.
“뇌광신교의 교주가 쫓아오니 저를 들여보내십시오.”
하성음은 헐레벌떡 이쪽으로 날아오면서 초조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창염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녀석 참 이상하구나. 그래, 네 소원대로 해줄게. 죽지 말거라. 안 그러면 조사님께 드릴 말씀이 없으니.”
그러고는 바로 양준을 안쪽으로 던졌다. 양준은 신속하게 우레의 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곧이어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련하고 있던 뇌광신교의 제자들은 경악한 얼굴로 우레의 눈 속으로 사라진 양준을 바라보았다. 다들 양준이 창염에게 밉보여 우레의 눈에 던져진 거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도착한 하성음은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양준은 우레의 눈에 들어오자마자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이런 압박감은 바람의 눈에서 느끼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번개의 위력이 그의 온몸을 꿰뚫자 솜털이 모두 곤두섰다. 찌릿찌릿한 느낌에 몸이 떨렸고 곧이어 탄내가 났다.
그는 만약영유를 다시 한번 복용한 다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번개로 인해 손상되고 있는 몸을 무시하고 풍뢰우익이 마음껏 주변의 우레와 번개의 기운을 흡수하게 내버려 두었다. 지난번의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훨씬 숙련된 모습으로 대응했다. 또한 풍뢰우익이 원하는 게 뭔지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오른쪽 견갑골에서 커다란 흡입력이 생기더니 주변의 우레와 번개의 기운을 몸속으로 마구 끌어당겼다.
촤아악-
날개가 다시 한번 펼쳐졌다. 왼쪽의 날개에서는 바람의 기운이 춤추고, 오른쪽 날개에서는 빛이 번쩍이며 전기가 흘렀다. 양준은 무아지경에 빠져 마음껏 우레와 번개의 오묘함을 느꼈다.
우레의 눈 밖,
뇌광신교의 제자들은 모두 흩어진 채, 창염과 하성음이 대판 싸우고 있었다. 결국 두만이 나서서 싸움을 말렸다.
초범 경지 3단계의 두 고수가 승부를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하성음은 자신이 창염보다 실력이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약 계속해 싸운다면 지는 쪽은 틀림없이 자신일 것이다. 이를 눈치챈 그는 두만이 말리는 틈을 타 재빨리 싸움을 그만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레의 눈 밖에 있는 사람들은 천지간을 맴도는 우레의 기운이 많이 약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레의 눈에서 내리치는 번개가 전보다 훨씬 적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성음의 안색은 말이 아니었다. 오늘 두 명의 장로가 죽임을 당하고 바람의 눈이 사라졌다. 게다가 지금은 우레의 눈까지 기운이 약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바람의 눈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루 뒤, 우레의 눈의 위력은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성음은 두 눈이 벌게진 채 원망 가득한 눈으로 우레의 눈을 노려보았다.
두만도 다른 문파의 근본까지 해치는 것이 좀 미안했지만, 단해가 자신이 추천한 사람까지 건드린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우레의 눈 안,
양준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서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하루 동안의 흡수를 거쳐 풍뢰우익은 이미 완벽에 가까워져 있었다. 풍뢰우익은 비로소 완전히 흡수되어 진정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날개에는 양성의 기운이 가득 넘쳤고, 왼쪽에는 바람의 영활함이, 오른쪽에는 우레의 난폭함이 깃들어 있었다.
바람, 우레, 양성 세 속성이 어우러져 신비롭게 평형을 이루며 서로간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단순한 한 가지의 속성이 아니라 바람과 우레의 힘에도 뜨거움이 스며들어 풍염(風炎)과 뇌염(雷炎)으로 진화한 것이다. 단순한 바람이나 우레의 힘보다 살상력이 배로 강해졌다. 다만 풍뢰우익은 비보 같기도 하고 무공 같기도 해 딱히 개념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모든 것을 떠나 한비가 그에게 큰 선물을 준 것만은 틀림없었다. 한비와 려용이 풍뢰우익을 흡수하지 못한 건 이런 기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이지만 또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했다.
풍뢰우익을 갈무리한 뒤, 양준은 위력이 크게 감소된 우레의 눈에서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양준이 걸어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하성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레의 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위력이 전보다 훨씬 못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양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번뇌와 원망 그리고 독기가 섞여 번뜩였다.
“한참 기다렸네.”
양준이 나온 것을 보자 창염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네, 기운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보니 깨달음이 큰가 봐?”
“조금요.”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는 아직 변화가 없지만 우레의 오묘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두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왔으니 이만 갑시다.”
창염이 손을 내저었다.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하성음을 힐끗 보았다. 하성음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창염이 있는 한,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이틀간 뇌광신교의 손해는 매우 컸다. 그런 와중에 창염에게 미움을 사 천소종과 싸움이라도 난다면 뇌광신교는 감당할 수 없었다. 천소종의 4대 호법 중, 그보다 실력이 약한 사람은 없었다. 싸움이 시작된다면 뇌광신교는 멸문될 게 뻔했다.
그 때문에 하성음은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하 교주, 민폐를 끼쳤네.”
두만은 하성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가시게. 배웅하지 않겠네.”
하성음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아 버렸다.
창염은 코웃음을 치고는 진원을 내보내 양준, 두만, 미나 모두를 감쌌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이 떠나간 뒤에야 하성음은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그는 신법을 펼쳐 바람의 눈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는 양준이 말했던 사실에 대해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때 두만이 옆에 있어 따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꼭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허기와 단해는 모두 죽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그들의 신혼을 모으면 그 속의 기억을 통해 쌍방이 어떤 원한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두 장로의 옆에서 하성음은 몰래 신공(神功)을 운행해 현묘한 기운을 내보냈다. 곧 사방 삼십 리 안에 결계가 생겼다. 그는 이곳을 봉쇄하고 허기와 단해의 신혼을 수집할 생각이었다.
두 장로의 경지로 미루어 보아, 육신이 죽어도 신혼이 그렇게 빨리 흩어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신혼의 힘을 한 가닥도 소환할 수 없었다. 두 장로는 이미 신혼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에 하성음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뇌광신교 내 상공, 일행 네 명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한 산봉우리를 지날 때, 양준은 무심결에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몸매가 늘씬한 여인이 서 있었다. 상대방도 그를 발견한 건지 미안해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훌쩍 날아오르더니 전력을 다해 이쪽으로 날아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속도는 창염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쳐졌다.
“나쁜 자식, 아까 어떤 여자가 너 쫓아왔어.”
미나가 양준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양준은 시치미를 뗐다.
“모르는 척하기는. 네 이름까지 불렀는데? 너 설마 가지고 놀다가 버린 건 아니지? 몰랐는데 너도 겉과 속이 다르구나. 너를 멀리해야겠어.”
미나는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난 순정파라 그런 짓 안 하거든.”
양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미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연단사 협회에 오래 있다 보니 남의 사생활 얘기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녀는 양준을 붙잡고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양준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의아한 얼굴로 창염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창염이 왜 자신을 이렇게 성심껏 도와주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뇌광신교의 교주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참 머뭇거리던 양준이 물었다.
“왜 절 도와주시는지, 절 도우면 무슨 좋은 점이 있는지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창염은 날면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경계심이 대단하군.”
“네.”
양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두만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창염을 의심하지 말게. 자네를 뇌광신교에 추천해 들여보낸 일은 내 불찰이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장담할 수 있네. 창염은 절대 자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걸세.”
“두 장로님의 말씀을 당연히 믿습니다만. 그렇다고 제 마음속의 의아함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선배께서 저한테 악의가 없다면 이유를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해 줘도 되네. 난 그저 내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중일세.”
“임무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네. 다른 건 길게 말할 수 없으나 이따가 나와 함께 가면 알게 될 거네. 속사정은 나도 잘 모르네.”
“누가 시킨 일입니까?”
“우리 조사님이네.”
“천소종의 종주님 말씀입니까?”
양준은 깜짝 놀랐다.
창염은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양준도 여러 번 묻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두만에게 물었다.
“천소종의 종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입성 경지의 고수네. 상세한 건 나도 잘 모르네. 자네가 만나면 물어보게나.”
두만이 대답했다.
창염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입을 열었다.
“두 장로,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우린 급히 천소종으로 돌아가야 하네.”
“그러게.”
두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 이번에 고생했네. 내가 미안하네. 하지만 연단사 협회의 문은 언제나 자네에게 활짝 열려 있으니 한가해지면 언제든지 오게.”
두만의 자상하고 친근한 모습에 양준은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두 장로님의 잘못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연단사 협회는 나중에 가겠습니다.”
두만은 미소를 짓고 창염에게 말했다.
“종주에게 안부를 전해주게. 난 나이가 있어 가지 않겠네.”
“알겠네.”
창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장로, 그럼 우리 먼저 가겠네.”
말을 마친 그는 양준을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양준, 꼭 돌아와야 해.”
미나는 양준에게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