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6장. 서혼지충
외롭게 우뚝 솟은 천 장 높이의 산봉우리, 창염, 비우, 양준은 산허리에 도착해 한참을 탐지했다. 이윽고 초범 경지 3단계의 두 고수는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미묘한 기운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면 그곳은 주변과 다른 점이 없는 평범한 땅이었다.
“눈속임인 것 같아. 수단이 뛰어나군. 그래서 오랫동안 이곳을 발견한 사람이 없었나 봐.”
창염은 놀란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시간이 하도 오래 지나서 문파의 제자들에게 우연히 발견된 것 같아.”
비우도 동의를 표했다.
“지체하지 말고 움직이자고.”
창염은 다리를 뻗어 땅을 굴렀다. 그러자 뜨거운 기운이 전해지는 동시에 땅에는 기묘한 부호가 나타났다. 부호들은 올챙이처럼 땅 위에서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은 모두 타서 재가 되었다.
창염은 화성 공법을 수련했기에 진원이 매우 뜨거웠다. 더욱이 초범 경지 3단계 실력으로 이미 오래전에 새겨진 눈속임용 진법을 파괴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곧이어 지면에 검은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크기를 보니 한 사람만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창염은 손을 내저었다.
“들어가게.”
“저도 들어가나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자신이 위에서 기다리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천소종의 열 명이 넘는 제자들이 이곳에서 죽었으니 안에 위험 요소가 많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섣불리 들어간다면 두 고수들의 발목만 잡게 될 것이다.
“당연히 들어가야지.”
창염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자네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어.”
“제 힘을요?”
양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하시는 거죠?”
“농담이 아니야. 나 혼자였다면 비우의 부탁을 거절했겠지만 자네가 있어서 허락한 거라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걸세.”
창염은 말하면서 양준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진원을 모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경계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매우 깊었다. 양준은 아래로 한참 동안 떨어진 뒤에야 겨우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무사히 착지한 다음 옆으로 비켜서자 창염도 곧 내려왔다.
“왜 이렇게 늦어?”
비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창염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곧이어 환한 불덩이가 갑자기 그의 옆에 떠오르더니 주변을 비쳐 주었다.
“이곳에 보물이 있는 건 확실해. 누구의 동굴이었을까?”
이곳의 천지 기운을 감지하던 창염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비우도 흥분된 얼굴이었다.
곧이어 창염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비우와 양준은 경계 어린 얼굴로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한참 가다가 비우가 갑자기 양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살며시 속삭였다.
“신식으로 살펴보지 마. 여기엔 서혼지충이 있어. 그놈들은 신식의 힘을 가장 좋아하지. 그놈들에게 걸리면 넌 끝장나는 거야. 천소종의 제자들도 그렇게 당했어.”
양준은 흠칫 놀라며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들이 모두 당했다면서 소식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그들이 소식을 전한 겁니까?”
“아니.”
비우는 고개를 저었다.
“조사님께서 말씀하셨어. 우리 조사님은 아주 대단한 분이야. 사방 오백 리 안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계시거든.”
양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소종의 창시자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인 듯했다. 양준의 신식도 같은 경지 중에서는 매우 강한 편으로 사방 백 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수록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모하는 신식의 힘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천소종의 창시자는 사방 오백 리를 살펴볼 수 있지 않는가?
‘나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네.’
창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천소종 옷을 입은 무인이 눈을 부릅뜨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조심스레 무인을 살펴보던 창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인은 이미 죽어 있었다.
비우도 더 이상 양준과 수다를 떨지 않고 무거운 얼굴로 방울 같은 비보를 꺼냈다. 그녀는 비보로 자신과 양준을 보호하며 창염의 뒤를 따랐다. 방울은 적어도 영급 정도 되는 신혼 비보인 듯했다. 비보를 작동하자 양준은 몸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잘 따라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말고. 너처럼 얄팍한 경지로는 서혼지충에 당하기만 해도 죽을 거야.”
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창염은 담이 크고 실력이 강해 줄곧 앞에서 길을 살폈다. 그리고 이따금씩 천소종 제자를 발견하면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다수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몇몇은 살아 있었지만 기절한 상태였다. 창염은 기절한 제자들에게 단약을 먹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일행의 앞에 구리로 만든 대문이 나타났다.
세 사람이 그곳에 이르자마자 구리 대문 위에 갑자기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안갯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세 사람을 향해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창염은 안색이 크게 변하며 얼른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그의 뜨거운 진원이 폭발했다. 불꽃이 터졌지만 검은 안개는 타지 않았다. 그저 안개가 덮치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을 뿐이었다.
“서혼지충이다.”
비우는 비명을 지르며 진원을 폭발시켰다. 곧이어 단단한 물 화살(水箭)이 빠르게 만들어지더니 기세등등하게 검은 안개를 향해 날아갔다.
“왜 이렇게 많아?”
비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공격하며 소리쳤다.
“창염, 먼저 가!”
그녀와 창염의 실력은 모두 초범 경지 3단계로 매우 강했지만 서혼지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먼저 이곳에서 도망친 뒤, 창시자에게 보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염은 느긋한 얼굴로 비우와 양준의 곁으로 날아와서는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는 검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양준에게 말했다.
“신식으로 태워 버리게!”
양준은 잠깐 멍해졌다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곧 신식의 힘을 전력으로 폭발시켰다.
화라락-
뜨거운 열기가 공기를 휘감았다. 불꽃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창염과 비우를 허둥거리게 만들었던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타들어가며 재가 되었다.
“신식의 불꽃이야?”
비우는 눈을 반짝이며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양준에게 신식의 불꽃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누울 자리 보면서 발을 뻗지, 그럼 내가 그냥 죽으러 들어온 줄 알았어?”
창염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양준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가진 신식의 불꽃이 서혼지충의 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다. 그는 꾹 닫힌 구리 대문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대문 뒤에는 수많은 생명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아마도 서혼지충인 것 같았다.
천소종의 제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 듯했다.
신식의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자 서혼지충들은 구리 대문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전부 안에서 타 죽었다. 창염과 비우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한참 뒤에야 신식을 거둔 양준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은 것 같습니다.”
“총각 꽤 하는데.”
비우는 흐느적거리며 걸어오더니 양준의 어깨를 친근하게 다독였다.
“난 너처럼 젊고 능력 있는 젊은이가 좋아. 앞으로 우리 많이 친해지자고.”
“하하……!”
양준은 민망한 나머지 어색하게 웃었다.
창염은 다가와서 굳게 닫힌 구리 대문을 보더니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옛사람이 남긴 동굴이니 대문 뒤에는 분명 보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들어가 보지 않을래?”
창염은 고개를 돌리고 비우를 힐끗 보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면 안 되지?”
비우는 생긋 웃어 보였다.
양준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창염과 비우는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은 서둘러 해명했다.
“안에 다른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들어간다면 두 분께 방해만 될 겁니다.”
“그럼 그러게.”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곧 나오겠네.”
“혼자서 조심해.”
비우가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당부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염과 비우는 구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떠난 뒤, 양준은 다시 구리 대문 앞으로 가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곧이어 신식의 힘이 교묘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구리 대문 안에서 검은 안개가 일렁이며 나타났다. 서혼지충은 아직 다 죽지 않은 상태였다. 창염과 비우는 서혼지충 때문에 쉽사리 신식으로 살펴보지 않을 것이다. 양준은 이를 알고 두 사람을 속였던 것이다. 그는 천소종의 창시자가 왜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통현대륙에서 양준의 실력은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범 경지 3단계의 무인들도 어쩔 줄몰라 하는 서혼지충은 마침 그에게 있어 강한 필살기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소인배의 마음으로 군자의 아량을 헤아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양준은 어쨌든 자신의 앞날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대문 뒤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서혼지충을 수집하는 것 외에 창염, 비우와 같은 고수와 갈등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만약 보물을 발견하고도 두 사람이 그에게 나눠 주지 않는다면 기분이 껄끄러울 것이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다.
이내 신식의 힘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서혼지충을 그의 식해 안으로 끌어들였다. 서혼지충은 살아 있는 생물이어서 음양요삼처럼 검은 책 공간에 저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준의 신혼의 힘에 서혼지충은 고분고분해졌다. 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그의 뜻에 따라 식해 안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식해의 기운을 통제해 신식의 불꽃이 서혼지충을 다치지 못하게 했다. 서혼지충은 온신련으로 만들어진 섬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식해에서 신식의 불꽃이 없는 유일한 곳으로, 서혼지충이 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